흑살마신 9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96화
96화. 천마신공도 내 거, 독목신공도 내 거
"교주님."
"아, 그래. 자네 왔는가?"
천산의 꼭대기의 자리한 신교의 신전.
그 안에서 집무를 보던 천마가 천수마검에게 앉으라며 자리를 권했다. 고개를 한 번 숙인 천수마검은 의자에 앉아 보고를 올렸다.
"신입교관들의 의심은 완벽하게 해결됐답니다."
"그런가? 그것 참 다행이군. 흑철마괴가 고생 많이 했겠어."
"아닙니다. 본인은 한 게 없다고 했습니다. 그…… 아드님이 권광투마의 여식과 싸웠다가 졌다고 합니다."
"권광투마? 하핫. 그자의 여식이라면 내 아들 녀석이 질 만하지.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는 무공이었지 아마?"
"예, 상당히 까다로운 무공이지요. 큰 기술을 쓰지 않고서는 그걸 파훼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일대일 대인전에 최적화된 무공. 권광투마의 독목심공이란 그런 무공이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의심을 거두진 않았을 텐데?"
"예. 그 이후에 대역을 맡은 소년이 나타나 그 여식과 싸워 이겼는데, 내기를 사용하지 않고 근력만으로 무력화 시켰답니다. 그게 결정적이었던 모양입니다."
"하?"
교주에 얼굴에 황당하단 표정이 올라왔다. 아니, 거의 초절정에 근접한 이를 근력만으로 무력화시킨다?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소년이로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며 교주가 쳐다보자, 천수마검이 설명을 더했다.
"그 소년이 아드님을 데리고 사백동굴 밖 열목 폭포에서 따로 수련을 하고 있답니다."
"열목 폭포면 암운곡 면회훈련장소?"
"예. 그곳에 화정마녀가 권광투마의 여식을 교육 시키기 위해 와있는데, 거기에 함께 하기로 했답니다. 신입 교관들의 시선이 아직 민감한 만큼 그것을 피하려 한 것이지요."
확실히…… 이번 세대는 교주 자신이 활동을 많이 했기에, 천마신공의 무공을 목격한 이가 많았다.
그에 사백동굴 내에서 검술 훈련을 한다면 금세 표가 날 것이었다.
"고작 열한 살 어린애인데, 마치 행동은 마교에서 20년 넘게 구른 인물처럼 구는군."
한편 그 시각.
사백동굴 근처. 열목 폭포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두 남녀가 싸우고 있었다. 바로 천강과 화정마녀였다.
"말이 된다 생각하나!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끝이라니!"
화정마녀는 분노를 참지 못해 언성을 높였다. 그도 그럴 게, 나흘 전 소년과 그녀는 일종의 약조를 맺었다.
두 사람이 이곳에서 연화와 같이 훈련하게 해주는 대신, 소년은 매일 그녀와 한 번 대련을 해주기로.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생겼으니, 응당 대련을 한다 했으면 못해도 이각(二刻)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싸움 시작 이후 약 일다경(一茶頃) 정도 흐르자, 소년은 바로 양손을 들어 올리며 싸움을 그만 하겠다 선언했다.
그리고는 그 변명이 이거였다.
"하루 한 번 대련한다 했지, 얼마나 한다고는 말 안 했습니다."
"뭐라?! 그 무슨 사기꾼 같은!"
여인의 몸 주위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딱 봐도 화가 단단히 난 모양.
그래도 소년의 결정엔 변동이 없었다.
사실 천강 입장에서는 그리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처음 하루 이틀이야 천강도 자신이 뭔가 놓친 건 없을까 하여 적극적으로 임했다. 무려 반 시진을 공방을 주고받을 정도로.
그러나 겉으로 살펴볼 수 있는 건 다 살펴봤다. 굳이 더 쳐다본들 나올 게 없다.
그런 상황에서 천강이 화정마녀와 오랜 시간 대련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저 자신이 깨달은 게 맞는지 확인차 하는 잠깐의 대련만 필요할 뿐.
"이익……!"
여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진다. 천강은 그녀가 할 말을 예상하고는 한 박자 먼저 입을 열었다.
"설마 그걸 핑계로 나흘 전 약조하신 걸 번복하진 않으시겠죠? 명색이 화정마녀께서?"
부들부들. 천강의 얄미운 말에 여인은 결국 화를 억눌렀다.
내가 이런 꼬마 놈에게 사기를 당하다니. 순간 그런 독백도 들린 것 같았다.
"언니, 괜찮아?"
"……연화야. 넌 저런 애랑 친하게 지내면 절대 안 된다. 알겠니?"
"응, 언니. 야, 천강! 내가 봐도 너 진짜 너무했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검지를 치켜들고는 잔소리를 해대는 연화의 행동에, 화정마녀의 얼굴이 조금은 풀렸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일다경(一茶頃)만 하던가! 자꾸 그러면 나 너랑 안 놀 거야. 알겠어?"
그에 천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연화의 환심이야, 고기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으니 조금도 걱정 안 하는 천강이었다.
'그럼 나도 수련이나 해볼까.'
신병이기 중 하나를 꺼내 들어 이리저리 휘두른다. 그러면서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물 건너편과 폭포 주위를 쳐다본다.
그곳에서는 진악과 연화가 각각 천마신공과 독목신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어때? 좀 알겠어?'
- 일단 여자애 쪽은 아직 모르겠어요. 눈이라는 원체 작은 부위에서 일어나는 거라, 이 먼 거리에서 파악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소년.
어쩔 수 없지. 처음부터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늘 그랬다.
전생에 천강은 쥐 굴 졸업 관문 순위권에 들지 못해, 교관을 배정받지 못했었다.
그에 수련을 하다 막힐 때마다 주위에 잘하는 애들에게 물어보거나 남의 훈련을 훔쳐보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 마음에 드는 대부분의 무공이나 기술들은 늘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훔쳐보고 고심을 거듭한 이후에야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쉽진 않겠지.'
그에 반해 천마신공은 의외로 눈에 쏙쏙 잘 들어왔다.
천강은 눈을 감은 채 진악의 행동을 보며 하나하나 따라 했다. 그 형(形)과 식이 눈에 그려지고, 하나하나 몸으로 재현된다.
- 거기서는 내기를 바깥으로 뭉쳐 원심력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다, 소년.
그리고 이렇게 신병이기가 관찰하고 분석한 천마신공의 묘리가 더해지면…….
스스슷-
하나의 검 끝에서 갈라져 펼쳐지는 수십 개의 환검. 마치 꽃이 활짝 만개하는 듯한 모양새가 천강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아직은 뭔가 좀 어색하지만, 천강은 진악이 연화와의 대련 때 썼던 기술을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었다.
'성공이군. 역시 데려오길 잘했네.'
천강이 진짜 소교주 천진악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
아직은 초보 수준인 소교주의 천마신공 검결을 쭉 같이 따라 훈련하다 보면, 언젠가는 검에 대한 깨달음도 통달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냥 생사경(生死境)에 도달하거나 새로운 무기를 찾아도 되지만, 여러 방면으로 두루두루 준비를 해둔다면 필히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서였다.
겸사겸사 흑철마괴의 눈을 피하는 건 덤.
'그건 그렇고, 쟤도 열심히 하는구만.'
사흘 전만 해도 싸가지 밥 말아먹은 행태를 보이던 소교주는 최근 묵묵히 수련에 매진했다.
화정마녀와 천강의 싸움을 보며, 꽤 깨달은 바가 많은 것이리라.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
천강의 검 끝이 좌하단에서 우상단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검 끝이 파르르 떨며, 여러 개의 환검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것이 활짝 만개하려는 순간, 천강의 몸이 멈춰 섰다. 방해꾼들이 나타난 것이다.
- 소년, 또 하나 나타났다.
- 폭포 좌편, 꼬맹이 옆이다. 수준은 초절정이다.
신병이기들을 얻은 뒤, 매일 같이 시끄러이 떠드는 통에 불만이 좀 많았는데. 최근에 녀석들의 쓸모를 발견한 천강은 무언가 보상을 받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거였다.
신병이기 일곱 중 셋은 각각 화정마녀, 연화, 진악을 살피고, 나머지 넷은 동서남북 사주경계를 선다.
덕분에 천강은 마음 놓고 편히 훈련에 매진할 수 있었다.
'뭐…… 내기가 충분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인간의 한계까지 내기를 축적한 천강이기에 가능한 이야기.
- 소년, 어떡하겠느뇨?
'어떡하긴 어떡해? 내 걸 훔쳐 가려 했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천마신공도 내 거고, 독목신공도 내 거다. 내가 깔아놓은 판에 다른 이를 앉혀줄 생각은 요만큼도 없다.
- 참으로 뻔뻔하군요, 소년.
- 그러게 말일세.
그러거나 말거나, 천강은 행동을 개시했다.
소년의 등 뒤에 있던 검은 안개에서 검 하나가 하늘 위로 쏘아져 올라가더니, 이내 침입자의 몸 위로 정확히 떨어졌다.
"컥. 커억……."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그대로 절명하는 침입자.
적을 처리한 신병이기가 다시 하늘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는 처음 쏘아져 나가던 때와는 정반대로 천강의 뒤로 되돌아왔다.
'수고했어.'
멈추었던 천강의 팔이 움직인다. 검 끝이 좌하단에서 우상단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그리고는 활짝 만개하는 환검.
- 천마신공 환검결 제 1식, 춘풍낙화.
"천마신공 환걸겸 제 1식, 춘풍낙화."
천강과 진악의 입에서 같은 기술 이름이 튀어나왔다.
***
"괴기나한님, 189번 구역에 진식을 손보러 들어간 인원이 아직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몇 명째지?"
"3개조, 총 여섯 명째입니다."
"크흠. 위에서는 뭐라고 해?"
"크게 신경 안 쓰는 눈치입니다. 마교에서 마인 대여섯 죽는 거야, 흔히 일어나는 사건 아닙니까?"
그랬다. 싸움에 미친 놈들. 강해지길 원하는 이들. 그런 놈들만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마교였다.
그래서 늘 싸움은 일어나고, 사람 죽는 건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기계진식 부문의 인력 손실은 중요하게 다뤄줄 거라 생각했는데, 위에서 보기엔 다른 마인과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되는 일 하나 없구먼. 킁."
이대로 다시 인력을 보내본들 죽을 확률이 높고, 설령 가라 해도 이젠 다들 가지 않으려 하리라. 간덩이 부은 놈들은 이미 진즉에 저승으로 다 갔으니까.
그때 한 마인이 작업실 안으로 들어왔다.
"괴기나한님."
"오. 그래. 교주님께서 뭐라 하시던가?"
"그게…… 따로 차출해줄 인력이 없다고 합니다."
"왜?"
"얼마 전 소교주 교육과 만천옥주의 일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그 빈 공백을 메워야 한다 하셨습니다."
듣고 나니 맹익은 아차 싶었다.
그동안 여울나무와 암운곡, 양 세력의 완충 역할을 해오던 게 중립세력. 그중 제일 큰 세력이 만천옥주였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사라졌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잠잠해 보여도, 지금쯤 양 진형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정보를 수집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었다.
그 인력도 부족한데, 어찌 이쪽 일을 신경 써 줄 수 있겠는가?
'상대편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수리를 미루자니, 당장 해당 구역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상황이다.
그에 고민에 빠진 맹익에게 조수 중 하나가 다가와 제안했다.
"영감님, 그럼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듣고 있네. 말해보게."
"암운곡에서 지원을 받는 겁니다. 다행히도 암운곡에서 꽤 가까운 거리이고, 과거에도 그러한 선례가 몇 번 있었다고 적혀있습니다."
"에라이. 고작 열 살 베기 애들한테 보호받으면서 일하고 싶니? 호랑말코 같은 새끼들."
그러나 말은 그리해도 맹익의 생각 또한 그쪽으로 굳어졌다. 딱히 다른 방도가 없었다.
"……연통해. 사람 좀 보내달라고."
"그럼 직원은……."
"내 직접 갈 것이다. 너희들은 나 돌아올 때까지 집이나 잘 지키고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