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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90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90화

90화. 천진악

 

 

"야. 들었어?"

"뭘?"

사백동굴에서 훈련을 하던 아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교관들의 단체 사망사건 이후, 훈련에 매진하느라 수다라는 걸 잘 하지 않는 그들이었으나 왜인지 오늘은 제법 시끄러웠다.

"이번에 쥐 굴 졸업하고 새로 들어올 신참 애가 있는데, 실력이 장난 아니라더라."

"어느 정도인데 그래?"

"천강 들어올 때와 거의 비슷하다던데?"

"에이. 말이 안 되지. 천강 걔는 이제 2년차인데 벌써 초절정이잖아? 그런 괴물이랑 같다고? 비교가 될 걸 비교해라."

그때 옆에서 그 이야기를 같이 듣던 다른 아이가 끼어들며 말했다.

"야. 나도 동기한테 들었는데 진짜 장난 아니래. 이번에 3년차 대표가 걔 손 좀 봐주려다가 역으로 탈탈 털려서 지금 암운곡에서 요양하고 있다잖아."

"정말로?"

"어."

아이들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언제나 새로운 동료의 유입은 즐거운 법이다. 실력도 있다면 더더욱.

"다만 걔 실력만큼이나 성깔도 장난 아니라던데?"

"뭐 어때. 실력만 좋으면 됐지. 천강이 알아서 해주지 않겠어?"

"하긴. 그 악독한 소운 선배도 천강 덕분에 완전 개과천선해서 사람 됐잖아."

아이들은 은근히 신입 실력이 매우 뛰어나길 바랐다. 그건 곧 그들의 전력이 되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암운곡의 최강자인 천강의 실력을 다시 엿볼 수 있을까 해서였다.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다!"

 

***

 

"987, 988……."

늦봄. 따스한 바람이 부는 천산 어느 중턱.

한 소년이 검을 들고는 머리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고 있다. 특이하게도 소년 주위로는 검 6개가 둘러싸, 마치 관전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소년의 검 끝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997, 998……."

상황을 보아하니, 검을 998번 내리그은 모양.

겨우내 열 살배기에 불과한 어린애가 진검을 들고 그 정도 휘둘렀으면 땀이라도 한 방울 날 만하건만, 그런 게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소년의 얼굴엔 그저 지루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999, 1000! 아, 드디어 끝났다!"

털썩. 땅바닥에 드러눕는 소년.

기초 훈련을 마친 천강의 얼굴은 말 그대로 죽을상이었다.

'아, 더럽게 재미없네. 원래 검을 휘두른다는 게 이리 재미가 없었던 건가?'

- 수고했어요, 소년.

- 참네. 그 몇 번 흔들었다고 드러눕고. 용케도 현경에 도달했구만?

- 그러게. 그 정도 인내심으로 어떻게 안 죽고 살아남았지?

쏟아져 나오는 질문들에 천강도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스스로도 이해가 잘 안 간 것이다.

"아니, 근데 천 번씩 휘두르는 걸 꼭 해야 해?"

- 자고로 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일단 친숙해져야 하고 이후엔 익숙해져야 한다. 네 몸이라 인식이 될 때까지 말이다.

- 그리고 그것에 제일 적합한 것이 휘두르는 거지. 암!

"야. 친숙해지는 거야 매일 껴안고 자면 되는 거고, 익숙해지는 것도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오는 깨달음 아니겠어?"

- 미안하지만 거부한다. 남자 품속에서 자는 취미는 없어서. 흠흠.

- 나 또한 같은 의견이니라.

이것들이? 나는 나름 진지하구만.

"아 몰라, 안 해. 안 해! 20년 만에 다시 기초부터 시작하라니! 검 따위 때려치우고 만다!"

- 응? 20년?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소년?

- 포기하지 마세요. 처음 검을 잡아보는 것 치고는 매우 훌륭합니다. 아니, 사실 이 정도면 거의 신동이에요.

- 흠흠. 그렇긴 하지. 좀 인내심이 없고 게으른 것만 빼면, 검의 궤적도 힘 배분도 깔끔하다. 이런 재능은 나도 처음 볼 정도다.

어련하시겠어.

뭐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전생에 암운곡 시절 내내 검을 휘둘렀으니까, 무려 5년간 연습한 게 어딜 가겠는가?

- 그뿐 아니에요. 운용도 다루는 형(形)도 탁월합니다.

그거야 하도 검 쓰는 애들에게 당하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거고.

- 그러니 힘내세요, 소년!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냐.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검 수련은 아닌 것 같다.

"그냥 투파창귀 악기 하나당 너희 둘씩 붙고, 나머진 내가 다 처리하고. 얼추 그럼 이길 수 있지 않겠어?"

- 크흠! 우리는 신병이기들 중에서도 매우 뛰어나, 역사에 그 이름이 남겨진 이들이다. 근데 2대1이라니!

- 맞다. 그런 불명예스러운 짓은 하지 않는다! 무조건 일대일이니라!

"근데 너희들도 들었잖아. 사용자의 숙련도와 깨달음에 영향을 받는다고."

- 그러니까 더더욱 우리를 잘 다룰 수 있게 연습해야지요!

- 그러하다!

"아, 몰라. 배 째!"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녀석들.

그렇게 한참을 녀석들과 입씨름을 하고 있는 그때, 누군가 수풀 속에서 나타나 소년에게 다가왔다. 그는 천강이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천강. 잘 지냈나?"

"예, 흑철마괴님. 저야 늘 잘 지내지요. 그런데 이곳엔 무슨 일이십니까? 교관들 일로 바쁘실 텐데."

"새 교관들은 왔다."

"그럼 더 바쁘신 것 아닙니까?"

전에 일귀에게 내가 진짜 소교주가 아니란 걸 밝힐 즈음 전해 들은 게 있다.

암운곡에 교관이 빨리 배치되지 못하는 것은, 교주 쪽에서 이쪽에 배치할 만한 인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향후 들어올 소교주 때문에라도 대충 할 수는 없을 테고. 그렇다고 잡은 권력을 내줄 수는 없을 테니,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미검증된 인력들을 배치했겠지.

그런 상황에서 교주의 최측근이 이곳까지 와야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이제 슬슬 암운곡으로 한 번 돌아와야 할 듯싶다. 외부에서 네가 어디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아, 그렇군.

"하긴. 너무 자리를 오래 비우긴 했죠."

교주와 협상해 천산의 보고에 들어온 걸 들킬 경우, 마교 전체가 뒤집어질 수 있는 상황.

들통나기 전 슬슬 돌아가는 게 좋을 것이리라.

'그럼 어디…… 나 없는 동안 상황이 얼마나 재미있게 돌아가게 됐는지 확인 좀 해볼까?'

 

***

 

암운곡 밑바닥.

약 백여 명의 신입들이 중앙에 모여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그 주위로는 사백동굴에서 막 훈련을 마치고 복귀한 선배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워워. 신입들 치고는 제법 기세가 등등한데?"

"그러게. 나 때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네."

그랬다. 낯선 장소에 처음 들어오면 잔뜩 기세가 눌릴 만하건만, 쥐 굴에서 막 졸업하고 넘어온 신입들에겐 하나같이 자신감이 그득했다.

그도 그럴 게, 원체 잘난 동기를 둔 탓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동기 중 하나가 3년차 대표를 쓰러뜨렸으니, 어찌 어깨에 힘이 안 들어가겠어."

"결판이 나기까지 채 일다경(一茶頃)이 안 걸렸다던데?"

"정말로?"

"어. 듣기로는 움직임은 평이한데, 공격을 받아내려는 순간 내기 폭발이 말이 아니라더라."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가자, 자연스레 신입들의 허리가 더욱 꼿꼿해졌다. 선배들의 얼굴엔 흥미가 돋고.

그리고 그 모든 시선은 이내 한곳으로 모였다.

그곳엔 한 아이가 바닥에 걸터앉아, 암운곡 지하수로에서 들어오는 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야야. 쟤야? 그 3년차 대표 선배를 때려눕혔다는 게?"

"맞아. 장난 아니지?"

"와아……. 아니, 내기 양이 웬만한 4년차들보다 많은 것 같은데?"

"내가 전에 말했잖아. 천강과 얼추 비슷할 거라고."

"그런 그렇고, 그거 정말이야? 자기랑 동기들은 선배들에게 인사하는 규칙 따르지 않겠다고 한 거?"

"어. 그거 때문에 3년차 선배랑 싸운 거 아냐. 지금 그거 농성한다고 저러고 있는 거야. 봐봐. 우리가 지나가도 인사 하나 하는 애들이 없잖아."

그때 지하수로에서 암운곡으로 소운이 막 들어섰다.

곧바로 문제의 신입을 알아본 그는 그 앞으로 나아가 자신을 소개했다.

"만나서 반갑다. 난 이곳 암운곡의 5년차 대표 소운이다. 네가 3년차 대표를 쓰러뜨렸다는 신입인가?"

"그렇다면?"

……요새 애들은 왜 이렇게 말이 짧고 싸가지가 없는지.

진짜 옛날 같았으면 반 죽여 놓았을 것이나, 나름 천강을 만나고 겸손의 미덕을 깨달은 소운은 화를 한차례 억눌렀다.

"후배에겐 들었다. 규칙을 따를 수 없다고 했다며? 그래도 선배를 보면 인사는 해야지?"

"풉. 나보다 약한 놈들에게 왜 그래야 하지? 내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등신들에게?"

신입대표의 한마디에 좌중으로 서늘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입이 걸걸하고 한 성깔 한다는 건 미리 전해 들었지만, 면전에서 들으니 느낌이 완전 다른 탓이다.

"하. 미리 전해 듣긴 했지만, 너 정말 성격 좆같구나?"

"좆같은데 보태준 건 있고?"

요 근래 인(仁)과 덕(德)을 쌓아올리며 인자해진 소운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그는 요 싹퉁머리 없는 신입에게 교육을 해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어나라. 너 같은 건 말보단 행동이 낫겠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딱 빈사 상태까지만 패자 마음을 먹은 소운이었다.

그러자 녀석 왈.

"선배. 그냥 가라. 괜히 후배들 앞에서 털려서 쪽팔리지 말고."

……이것이? 싸가지 밥 말아 먹은 녀석의 행태에 소운은 간만에 살해충동을 느꼈다.

그에 검을 빼들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녀는 연화였다.

"소운 선배."

"어? 왜."

"선배가 나서면 모양 안 살잖아. 1년 선배인 우리들 선에서 해결할게."

"뭐…… 그 말도 일리가 있긴 하네."

5년차 대표인 자신이 신입 교육에 나설 경우 영 모양새가 안사는 것도 사실이긴 했다.

그렇게 싸우게 된 두 사람.

천강이 도착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인파 속. 무진의 옆으로 슥 다가가자, 깜짝 놀라 돌아본다.

"형님, 오셨군요!"

"쉿. 그동안 기감 훈련을 열심히 했구나. 바로 알아보고."

"당연하지요. 누구의 지시인데요."

"근데 무슨 상황이야?"

"그게 말입니다."

대략의 사정을 무진에게서 전해들은 천강은 연화와 싸우는 저 신입이 교주의 자녀임을 깨달았다.

'근데 내기 양이 진짜 어마어마하네.'

아버지가 교주 아니랄까봐 얼마나 영약을 처먹였는지, 내게서 만년하수오를 얻어먹은 연화보다도 내기 양이 많을 정도였다.

"이거 잘못하면 연화가 질 수도 있겠는데……."

"그 정도인가요? 저 신입이?"

무진이 놀란 눈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재 연화의 실력은 천강을 제외하고는 제일 강하다고 볼 수 있는 소운과 필적했기 때문이다.

연화가 팔다리를 풀기 시작한다. 상대가 누구든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는 그녀다웠다.

그에 반해 심드렁한 표정으로 연화를 바라보는 이번 쥐 굴 기수 최강자이자, 마교의 진짜 소교주 천진악.

'3년차 대표도 꺾었는데, 그보다 한 단계 밑인 2년차…… 그것도 대표도 아닌 일개 훈련생이라니.'

별 거 없을 것 같은데, 대충 처리하고 아까 그 선배 콧대나 꺾어 놓자.

그리 마음을 먹은 진악은 단숨에 튀어나가, 검을 내질렀다.

'천마신공 환검결 제 1식, 춘풍낙화!'

내기로 강화된 근육과 그것에서 파생된 일격이 공기를 가르고 날카로운 비명을 만들어낸다.

소년의 팔 움직임에 따라 화려하게 나부끼는 검 끝은 이내 사방으로 활개 해, 상대를 향해 일제히 쇄도해 나갔다.

'이것으로 끝!'

여러 개의 검격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좌측에서 쏘아져 나가는 게 진짜 움직임.

그러나 실제로는 그마저도 속임수다. 그걸 분석해낸 상대가 공격을 막거나 회피하면, 미풍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검이 그것을 넘어 공격하는 꽤 고급 기술이었다.

아직 싸움에 대한 경험이 적은 이들이라면 당할 수밖에 없는 기술.

설령 경험이 있더라도, 천마신공의 특성상 속임수로 보이는 그 공격조차도 기세가 상당하기에 속지 않기가 정말 쉽지 않은 공격법이었다.

그걸 본 천강의 입에서조차 나직이 감탄사가 터져 나올 정도로.

'고작 열 살짜리가 저런 기술을 사용한다고?'

다른 건 몰라도 무(武)에 대한 재능은 타고 났다고 봐도 좋으리라.

'그건 그렇고 괜찮으려나?'

은근 환검 계열의 공격에 취약함을 보여 왔던 연화가 돌연 걱정되기 시작했다. 저것은 아직 경험이 미숙한 암운곡 수준에선 절대 피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그에 싸움을 중단시키기 위해 앞으로 나서는 그때였다.

퍽.

"어?"

천강과 진악의 예상을 깬 결과가 나타났다.

달려들던 진악이 역으로 허공에 붕 떠오른 것이다. 그것도 단 일격에.

'방금 그것은?!'

연화의 움직임을 본 천강의 안광이 강하게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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