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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87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87화

87화. 투파창귀

 

 

짙은 어둠이 내리깔린 시간.

눈썹이 두터운 한 사내가 방안 이 끝에서 저 끝을 쉴 새 없이 오고간다.

그는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표정이 어두운 걸 보면, 그다지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 슬슬 인내심이 바닥이 난 걸까?

"왜 아직도 안 오는 게냐!"

그가 고개를 쳐들고는 바깥을 향해 소리치는 순간, 누군가 후다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흑도마황 님. 저 왔습니다."

"그래. 알아봤느냐?"

"예. 때마침 만천옥주 쪽 일을 마치고 오던 백발괴의를 만나 부탁할 수 있었습니다."

"사인이 어떻다든?"

남자의 질문에 보고하는 이가 일순 주저했다.

"왜 말을 못하는 것이냐?!"

"저기 그게…… 후우. 이번 만천옥주 사체 있지 않습니까? 그것과 상태가 비슷하답니다."

"얼마나?"

보고자가 남자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시체가 물에 불어 알아보긴 힘들었으나, 동일 인물의 소행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흡사하다고……."

뿌득.

"이노오옴! 투파창귀!!"

 

***

 

천산의 보고 최하층.

이곳의 관리자인 노인은 늘 그렇듯 정중앙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위층에서 천강이 내려오자,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는 웃으며 천강을 맞아주었다.

"좀 늦었구나."

"예. 무기들과 이야기 나누고 교감을 하다 보니 하루가 훌쩍 지나고 말았습니다."

"단순히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만."

천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현경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끌끌. 축하한다. 이젠 이 마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가 되었구나."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곳에 내려올 때까지도 아직은 꿈 같이 느껴지던 천강이었다. 그런데 현경에 도달했다는 걸 다른 이로부터 축하받자, 천강은 그제야 온몸으로 실감되기 시작했다.

'전생에도 이루지 못한 그 현경에 내가 도달하다니.'

비록 중간에 죽어 환생했지만, 마치 천강에게는 이전 생의 노력까지 모두 결부돼 한 생처럼 느껴졌다. 그 20년 넘는 노력을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도 잠시, 문득 드는 의문.

'근데 이 어르신은 대체 실력이 어느 정도이신 거지?'

화경일 때야 못 알아본 건, 내가 수준이 낮아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아직 가보지 않은 현경이란 경지가 그만큼 높아, 언젠가 같은 현경이 되고 나면 이 노인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경이 되고서도 짐작되지 않는 노인의 수준에 천강은 마른침을 삼켰다.

'새삼 왜 교주가 이곳 천산의 보고에 힘을 쓰지 못하는지 알 것 같군.'

노인은 천강의 의구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끌끌. 그래. 그 교감을 이룬 무기란 게 그것들이더냐?"

"앗. 예."

노인의 시선이 천강의 뒤로 가 닿는다.

소년의 머리 뒤편으로 7개의 검과 몽둥이 하나가 두둥실 떠, 어미를 뒤따르는 오리 새끼들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음? 설마 그것도?"

"아, 이건 아닙니다."

천강은 머리를 긁적이며 흑색 절굿공이를 슥 옆으로 치웠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걸 바라보던 노인이 말을 이었다.

"설마 일곱 개 모두로부터 인정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저도 이 일곱이 모두 절 따라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 이 뻔뻔한 꼬맹이 놈. 저 순진무구한 얼굴 뒤에 음흉한 간계가 있다는 걸 진즉에 알아챘어야 했는데.

- 흠흠. 그러게 말일세.

그러나 이것들의 대화는 직접 몸이 닿지 않는 한 천강에게만 들린다. 그걸 잘 아는 천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찌나 제가 좋다고 들러붙는지…… 필요 없다고 해도 꼭 좀 써달라며 필사적으로 따라붙고 애원하기에 그냥 그러라 했습니다."

- 그, 그 무슨 천인공노할!

- 우리가 언제 애원했단 말이더냐!

- 하. 정말 당황스럽군요.

'음? 아니었어? 그럼 도로 들어갈래?'

천강의 전음에 바로 입을 다무는 녀석들. 이미 현경에 도달한 천강 입장에서는 아쉬울 게 하나도 없는바, 그들은 그냥 이 현실에 순응하기로 했다.

그때 천강과 신병이기들을 살펴보던 노인이 수염을 쓸며 말했다.

"그렇게 여러 개의 신기들을 들고 다니는 걸 보니, 소요악사가 생각나는구나."

"소요악사요? 그도 신병이기들을 여러 개 들고 다녔습니까?"

"그래. 내가 만났을 당시엔 여섯 개를 들고 다녔었지."

이야…… 여섯 개.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 이것들, 어찌나 수다를 많이 떠는지……. 어휴. 평소 어떻게 관리하나 그 비법을 전해 듣고 싶을 정도입니다."

"끌끌. 그러느냐? 그러나 아쉽게도 이제는 만나볼 수 없다."

천강에게 말을 하던 노인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죽임을 당했거든."

"예? 아니, 누가 죽였답니까?"

신병이기를 여섯 개나 들고 다닌단 의미는 간단히 이야기해서 그걸 여섯 개나 모을 힘도 지킬 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괴물을 죽였다고?

"너도 아는 인물이니라. 이곳 마교에서 교주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인물이지."

"……투파창귀로군요."

"소요악사와 그는 친형제다. 그는 자신의 형과 그 일가족을 다 살해하고 그것들을 자신이 소유했지. 그렇게 그는 기존에 본인이 가진 신기들을 포함해 총 열 개를 보유하게 되었다."

신병이기를 열 개나?

"물론, 그 중 하나는 작년에 어떤 아이에게 주었다고 들었지만 말이다."

작년이라면, 아무래도 청청과 칠현금 구소환패(九霄環佩)를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천산의 보고에만 있음에도 마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알고 있는 노인의 모습에, 천강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어 근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르신."

"그래. 말해보거라."

"혹시 저와 투파창귀를 비교하면 누가 더 강합니까?"

그것은 일종의 궁금증이었다.

이제 막 현경에 도달했지만 최강의 무공을 지닌 자신과, 신병이기를 아홉 개나 지닌 숙련된 현경 투파창귀. 과연 누가 더 강할까?

지금쯤이면 녀석과 한판 해볼 만하지 않을까?

노인이 시선이 천강의 눈을 직시한다. 그리고는 서서히 움직이는 입.

"그건……."

꿀꺽.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방해꾼이 등장했다.

"소년! 이번엔 있었구나!"

누군가 하여 본다. 작년에 이곳에 와서 한 판 붙었던 현경 고수다.

그는 잽싸게 다가오더니, 노인에게 예를 올리고는 천강의 손을 붙잡았다.

"간만이다, 소년!"

"아아. 그 이름이……."

"태공이라 한다."

"난…… 천강입니다.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순간 반말을 내뱉으려다, 어르신과 선후배 하는 이에게 막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천강은 예를 갖추었다.

그는 호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늘 잘 지내지! 그래 어떤가? 작년에 못한 싸움, 마저 해야 하지 않겠나?"

"지금 말입니까? 지금 전 어르신과 이야기 중……."

"그리하거라."

노인이 잔잔한 미소를 띠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마침 잘 나타났구나. 투파창귀가 얼마나 강한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스스로 직접 체험해 보는 게 좋겠지."

"예?"

이해할 수 없다는 천강의 표정에 노인은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태공이란 자와 천산의 보고 밖으로 향할 뿐이었다.

천강은 의아함을 품은 채 그들을 조용히 뒤따랐다.

태공은 천산의 보고 옆에 자리한 조그만 소로(小路)를 통해 밑으로 쭉 이동했다. 그 뒤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자, 이내 널따란 평지가 나타나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알 수 없는 결계가 펼쳐져 있는 그곳에서 태공은 양팔을 크게 펼쳤다.

"무형원에 온 걸 환영한다. 여기는 선배님께서 흑영대를 위해 신경 써 만들어주신 특별한 훈련장이다. 전력을 쏟아 부어도 지형이 붕괴되지 않고 자동으로 복구되며 그게 외부로 전혀 표출되지 않지."

호오?

외곽의 결계를 슥 살펴본다. 천산의 보고 문과 열쇠처럼 온통 알 수 없는 수식들로 그득하다.

"자, 소년. 이쪽으로 들어와라."

천강은 태공을 따라 그 안으로 들어섰다.

결계막 안으로 들어설 때만 조금 특이한 기분이 들 뿐, 바깥과 전혀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공간. 그러나 가볍게 발로 바닥을 내려치자, 순간적으로 움푹 가라앉았다가 이내 빠르게 복구되었다.

"신기하지?"

"예. 정말이지…… 흥미가 도는군요."

이런 걸 만들어 내다니. 대체 이 노인의 정체가 뭔지.

"자, 그럼 바로 시작하자고. 준비가 되면 말하거라, 소년!"

태공이 검을 빼 들며 자신은 싸울 만반의 준비가 끝났음을 보여주었다. 그에 천강 또한 가볍게 몸을 풀자, 노인이 다가와 천강에게 말했다.

"투파창귀와 너, 둘 중 누가 더 강할까. 그 질문을 한 이유는, 그와의 싸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

"예. 맞습니다."

"그래. 내 그에 대해 솔직히 말하마. 나도 둘 중 누가 더 강할지 알지 못한다. 싸움의 변수야 늘 있기 마련 아니냐? 특히나 고수들의 싸움은 사소한 요소가 더욱 승패를 가르곤 하니 확답을 할 수 없느니라."

그렇다. 내가 남들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듯, 투파창귀 또한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비장의 수가 있을 것이다.

혹은 모용진과 나처럼 서로 상성이 안 좋을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승패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에 내가 가르쳐주는 건 그의 모든 것이라 할 순 없다. 그러나 네게 분명 도움은 될 것이다. 대신 그게 그의 전부가 아니란 걸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알겠느냐?"

"예."

"그럼 이제부터 태공과 싸우는데, 너는 움직이지 말고 오로지 네 무기들만을 사용하거라."

"네에? 그게 무슨……? 저는 전혀 힘을 쓰지 말고, 무기들에게 싸움을 맡기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시키는 대로 해 보거라."

전생부터 지금까지 늘 싸움은 직접 해왔다. 내 목숨은 응당 나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게 당연하기에. 누군가에게 등을 맡긴다는 건 생각도 못한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에게 내 생존권을 맡기라고?

- 자, 그럼 간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볼까?

- 한 천 년 만인가?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보자고!

- 이왕 싸우는 거 순서를 정하는 게 어때?

'하아. 영 못 미더운데.'

그런 천강의 표정을 읽었는지, 그나마 눈치 빠른 막야가 한마디 했다.

- 소년,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전 진지하게 임할 테니.

노인이 결계 밖으로 걸어 나간다. 그는 나가며 태공에게 간단한 지시 하나를 내렸다.

"전력으로 임해주시게."

"예?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걱정 말게. 무제(武帝)의 뒤를 잇는 자이네. 절대 죽을 리는 없을 게야."

"예, 그렇다면."

고오오-

검을 비스듬히 늘어뜨린 사내의 기세가 눈에 띄게 변모했다. 이전에 한 번 맞붙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

등골에 털이 오소소 돋는다. 그저 그 존재를 눈앞에서 마주했을 뿐인데, 천강은 목 밑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원래 이 정도로 강자였던가?'

화경 때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그의 검에 대한 깨달음의 경지라든지, 주위 자연과 얼마나 동화를 이루고 있는지 등등.

그걸 통해 천강은 그가 작년에 자신을 상대로 얼마나 장난스럽게 싸웠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얼마나 운 좋게 그에게서 무승부를 따냈는지도.

'모용진 같은 애새끼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이놈은 진짜다……!'

천강은 마른침을 삼키며 등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신병이기들에게 내기를 쏟아 부었다. 그리고 그 순간, 태공의 검이 움직였다.

"천마신공 파검결 제 4식……."

어? 천마신공?

공중에 떠오른 태공의 검이 천강에게 향한다. 그러자 해일과 같은 거대한 기운이 천강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파천일검!"

쿠구구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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