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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8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4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86화

86화. 현경에 도달하다

 

 

보름달임에도 푸른빛이 감돌아 은근히 시리게 느껴지는 밤.

만년설로 덮인 봉우리를 한 사내가 가만 바라보고 있다.

그는 신교의 하늘이라 불리는 인물. 천마는 손에 들린 차를 마시며 천산의 절경을 가만 바라보았다.

'현경끼리의 싸움이었으나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다라…….'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만천옥주의 실력이 생각보다 별 볼 일 없었던 것인가?

그러나 현경은 현경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면 투파창귀가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혹여나 다음 경지로 올라선 건?'

천마는 쓸데없이 드는 걱정을 애써 털어내었다.

생사경(生死境)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그 결정적인 예가 신선환이 파다하게 번진지 어언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생사경에 도달했다면 굳이 만천옥주를 치지 않고 바로 날 잡으러 왔겠지.'

천마의 좁혀진 미간이 살짝 풀어졌다.

그럼 어떻게 된 걸까. 어찌 만천옥주가 힘도 못 쓰고 죽게 된 걸까.

"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목을 매만지던 천마가 깜짝 놀란다. 그러다 이내 떠올랐다는 듯 작게 미소 지었다.

'왠지 목이 허전하다더니……. 그 소년에게 줬었다는 걸 깜빡했군.'

55년 전 받은 목걸이. 그것이 있으면 천산의 보고 비밀공간에 들어설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늘 수시로 확인해왔다. 잠깐 사이 혹여나 누가 가져가진 않았을까 하여.

그러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목걸이를 만지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정작 그게 사라지자 조금은 허전함을 느끼는 천마였다.

'결국 발견하지 못했었지.'

찾고 또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어르신에게 물어도 인연이 있다면 만날 수 있을 것이란 말만 하실 뿐.

'혹시나 그 아이가 찾아내는 건…….'

달빛을 관조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천마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

 

사라진 감각을 되찾았을 땐, 천강은 전혀 다른 세계에 와 있었다.

눈앞으로 거대한 산 하나가 서 있고, 그보다는 작지만 웅장한 산맥이 그 주위를 두르고 있다.

바닥에 쭈그려 앉아 풀을 매만지는 천강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오오. 신기해. 이런 짙은 기운이라니?'

풀만이 아니다. 공기부터가 천강이 살던 세계와는 뭔가 질적으로 달랐다.

이런 곳에서는 숨만 쉬어도 단전에 내기가 충분하다 못해 넘칠 것 같았다.

그렇게 상경한 촌놈처럼 한참을 이리저리 구경하는 그때였다.

"웬 놈이냐?"

고개를 돌린다. 뒤편에 누군가 서 있다.

새하얀 털. 우악스럽고 위협적인 발톱과 이빨. 그리고 붉은 눈.

천강의 뒤에 서서 삐딱하게 자세를 잡고 있는 그것은 토끼였다.

"응? 토끼가 말을 하네?"

"하! 이런 건방진! 말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이곳 주민이 아닌 모양이구나!"

토끼가 허공에서 물건 하나를 빼 든다. 그것은 흑색 절굿공이였다.

천강보다 작은 체형임에도 자신의 몸뚱어리에 족히 다섯 곱절은 더 되는 몽둥이를 든 녀석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천강에게 휘둘렀다.

"죽어랏!"

"야, 잠깐."

"문답무용! 토묘신공 제 1식, 공이 내려치기!"

쿠구구구구.

뿌연 연기가 인다. 지진이라도 인 것처럼 한 차례 땅이 요동친다. 소년에게 일격을 먹인 토끼의 입엔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건방진 입을 놀린 자의 합당한 말로로다!"

침입자도 처리했겠다, 몽둥이를 회수하려는 토끼. 그러나 뭔가 잘 안된다.

"무, 뭐지? 왜 이게…… 에잇. 이익!"

용을 써도 꿈쩍도 안 하는 몽둥이. 그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내기가 쭉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닌가?

"어엇?"

"여어. 토끼가 말을 하는 것도 신기한데, 힘도 꽤 장사네?"

먼지가 걷힌다. 멀쩡히 서 있는 소년이 보인다.

토끼의 눈은 왕방울만 해졌다.

"너, 너어 어떻게? 내 일격은 이곳 선계 주민조차도 쉬이 막지 못하거늘……."

"뭐 그럴 것 같아. 덕분에 허리까지 땅속에 파묻혔잖아."

타닷- 토끼 녀석이 몽둥이를 회수해 거리를 벌렸다. 천강은 공격을 막아낸 자신의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일격…… 장난 아니었지.'

이전에 천산의 보고에서 현경과 싸운 뒤로 늘 하는 수련이 있다. 기의 통로를 넓히고, 소상혈 외에 다른 혈로를 개방하는 일이었다.

북명신공이 적의 기운을 흡수하는 건 좋은데, 다량의 기운이 응집된 공격은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상뿐만 아니라 오른팔의 모든 혈로를 개방해 흡수했다.'

그런데도 다 흡수하질 못하다니.

마치 신수 백호의 일격을 받아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천령초로 몸이 단단해지지 않았다면 심히 타격이 있었을 정도로.

'물론, 지금은 아무런 타격 없지만.'

소년이 땅속에 묻힌 다리를 끄집어낸다. 대략 상대의 수준 파악이 끝난 소년의 입가엔 진한 미소가 그득했다.

"자, 공격을 했으면 역으로 받을 준비도 됐겠지?"

"큿……!"

토끼 녀석이 자세를 잡는다. 그러나 천강에게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한 녀석의 얼굴엔 패색이 가득했다.

그걸 본 천강 왈.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용서해주고."

"헛소리! 네 건방진 입을 단번에 뭉개주마!"

토끼 녀석의 신형이 갑자기 흐려졌다. 그리고는 천강의 주변을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녀석의 움직임은 말 그대로 전광석화.

신수 백호와도 비견할 수 있을 속도였다. 그러나…….

'어디로 올지는 뻔하지.'

속도 위주의 움직임을 가진 녀석들은 대개가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눈앞에서는 화려함을 보여주고 그것에 상대가 현혹당한 순간, 사각지대에서 공격을 시도하는 것이다.

"토묘신공 제 3식……."

목소리가 서서히 우편 뒤쪽으로 향한다.

'슬슬 들어오겠군.'

천강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순간, 좌편으로 옮겨가는 목소리.

묵직한 바람 소리가 뒤통수에서 울린다.

'오. 그래도 선계에 산다고 머리를 한 번 더 쓰는 건가?'

천강의 좌편 후미, 머리 뒤쪽에서 토끼가 흑색 몽둥이를 힘껏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뒤통수 후려치기!"

토끼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녀석은 확신했다. 이번엔 제대로 공격에 들어갔다고.

다른 건 몰라도 이 근처에서 속도만큼은 자신 있는 그였다.

보통 싸움 좀 하는 이들은 자신이 사각지대에서 공격할 걸 예상하고 있기에, 일부러 기술명을 외치며 함정을 파 유도한 일격이었다.

열에 아홉은 이 일격에 당황해 받아내지 못했다. 그러니 응당 이 보잘것없는 침입자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그때, 소년의 주변으로 일순 신묘한 바람이 일었다.

'어?'

오른편으로 돌아가 있던 고개가 순식간에 돌아, 정확히 왼편에 있는 자신을 마주한다. 그 움직임에는 그 어떤 거리낌도 없었다.

'이, 이런 미친?!'

지천뇌공.

콰앙. 천강에게 달려들던 토끼의 머리가 땅에 처박혔다.

"큿. 마, 말도 안 돼! 한낱 인간이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바로 고개를 쳐드는 녀석. 그러나 이후엔 더 깊이 땅속에 박혀야 했다.

지천뇌공. 지천뇌공. 지천뇌공.

쾅. 쾅. 콰앙.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가는 지천뇌공의 특성뿐만 아니라, 천령초로 강화된 근력과 백호의 가호가 곁들여진 천강의 일격은 심히 어마어마했다.

채 열 번을 내려치기도 전, 반경 100보 주변은 움푹 가라앉아 말 그대로 초토화되었다.

"여어. 용케도 안 죽고 살아있네?"

파들파들 토끼 녀석이 몸을 떨어댄다.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하기보단, 괜히 머리를 들어 올릴 경우 한 대 더 얻어맞아야 하니 가만히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사과해라. 응?"

"네깟 놈에게 내가 사과할 성싶으냐!"

"호오. 그래?"

천강은 토끼에게서 절굿공이를 빼앗았다.

"앗. 안 돼애! 내 거 내놔!"

"줄 테니까 사과해."

"흥. 너 같은 버러지에게 사과하느니, 땅속에 지렁이에게 하리라!"

이게?

"너 이거 부숴버린다?"

"하하핫. 그걸 부순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진짜? 진짜 내가 못 부술 거 같아?"

천강의 진지한 얼굴을 마주한 토끼 녀석이 주변을 슥 한 번 둘러봤다. 대지진이라도 만난 것처럼 초토화된 지형. 녀석은 곧바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래도 자존심은 상하는지 끝까지 버티는 녀석.

그에 언제까지 버티나 가만 지켜보려는 그때였다.

흠칫.

'뭐지?'

갑자기 몸이 쭈뼛 선다. 온몸의 털이 오소소 서며 소름이 돋는다.

마치 광활한 평야나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혹은 구름 위까지 솟아있는 태산과 같은 대자연의 경관을 마주할 때나 종종 느낄 수 있는 감정.

그래. 가슴이 실로 웅장해지는 그런 기시감이 돌연 느껴졌다.

문제는 그게 자연이 아닌 한 개인에게서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고오오-

천강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강력한 존재가 빠른 속도로 이곳으로 다가온다는 걸 깨달았다.

"게 누구냐!"

우렁찬 호통 소리가 하늘을 메운다. 마치 뇌성(雷聲)이 울리는 것 같다.

그 외침에 완전히 기가 죽어있던 토끼의 고개가 슥 위로 들렸다. 녀석의 입가엔 얄미울 만치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크크큭. 넌 이제 죽었다, 인간!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함부로 행패…… 꾸에엑."

천강은 주절주절 떠드는 토끼 녀석의 뒤통수를 발로 자근자근 밟으며 빠르게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분명 금나한이 그랬지. 아직 화경에 불과한 난 이곳에 들어오면 매우 위험하다고.'

그러면 현경은 괜찮냐? 괜찮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현경 정도는 되어야 이곳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 할 수 있는 밑바닥 정도는 될 거란 것이었다.

그런데 오자마자 이곳 주민과 불화가 있었으니,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

물론 시비는 요 녀석이 먼저 틀었지만, 늘 팔은 안으로 굽지 않던가?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왔던 문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쪽이냐!"

거의 지척에 다다른 미지의 존재.

대화를 해보고, 안 되면 싸워야 하나? 그리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번쩍. 천해지경이 품에서 빠져나오더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앞으로 문 하나가 생성되었다.

이곳에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문.

그걸 본 토끼 녀석이 고개를 쳐들고는 고래고래 소리쳤다.

"범죄자가 도망간다!"

"어이. 내가 왜 범죄자냐?"

"버러지 주제에 선계 주민인 날 팼으니 그게 범죄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잡히면 넌 수백 년간 고통 속에서 그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오오. 그래?"

소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그럼 이왕 죄를 저지른 거 하나 더 저지르지 뭐."

"응?"

발로 토끼 녀석의 내기를 쪽 빨아들인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어, 눈앞에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뒤늦게 천강의 의미를 알아들은 토끼 녀석이 앞발을 치켜들고는 파들파들 떨어댔다.

"어, 어어?"

"요 방망이 잘 쓸게."

"자, 잠깐! 내 거 돌려줘어!"

"잘 있어라!"

"안 돼애애애!"

간절함이 담긴 토끼 녀석의 외침이 아득히 멀어진다. 이곳에 올 때처럼 감각이 한 차례 사라졌다 돌아왔을 때, 천강은 천산의 보고 2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 오오! 돌아왔다.

-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네요.

- 이곳 시간으로 하루니까, 정말 잠깐 구경만 하다 온 것 같은데?

'음? 하루? 그곳에 잠깐 있었을 뿐인데 하루가 지나갔다고?'

천강은 벽 앞에 서서 천해지경을 이리저리 흔들어보았다.

문의 형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전처럼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진 않았다. 아무래도 왼편 문설주에 적힌 대로 보름달이 떠오른 자정(子正)에만 활성화되는 모양이었다.

'하. 그곳이 정말 선계……. 내가 신선계에 가 보다니.'

선계란 어떠한 곳인가. 신선들만 간다는 곳 아닌가? 인간이 선계에 가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자연경(自然境)에 도달해 우화등선을 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자연경이란 게 말만 무성한 꿈의 경지.

그렇기에 선계 자체도 실존하지 않는 곳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곳에 갔다 왔다. 눈으로 보고 숨도 쉬어보고, 풀을 직접 손으로 만져도 보고. 무엇보다 가장 실감 나는 건…….

'선계 주민을 이 발로 꾹꾹 밟아봤다는 거지.'

지금쯤이면 그 토끼 녀석, 사라진 날 찾겠다며 아마 울분을 토하고 있을지도.

그럼 이만 어르신에게 가볼까. 그에 신병이기들을 주섬주섬 챙겨 천강이 2층을 떠나려는 그때였다.

"음?"

늘 보던 풍경인데 뭔가 색다르게 느껴졌다.

음. 그래. 저쪽 세계에서 느꼈던 막연한 느낌이 잔재해, 머릿속을 유영하는 것 같은 기분.

'설마……!'

천강은 바로 눈을 감고는 고요히 물아일체의 깨달음을 되뇌었다.

'자연은 곧 나. 내가 곧 자연.'

선계에서 느꼈던 그 기이한 흐름이 머릿속을 고스란히 지나 정신과 몸에 투영된다. 손끝에 잡힐 듯 말듯, 깨달음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그런 소년의 변화를 감지한 신병이기들이 재빨리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 선계에 갔다 오고 나서 현경의 깨달음에 대한 단서를 찾은 듯해요. 도와줘야 합니다!

- 잘됐군. 이참에 우리들의 가치를 한 번 보여주자고!

- 다들 힘 조절 잘하게!

천강 주위로 날아와 둘러싸는 신기들. 7개의 검 사이로 푸른 기운이 이어진다. 전격이 일며 기이한 역장을 형성해낸다.

그 속에서 천강은 쉬지 않고 물아일체의 구결들을 되뇌었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나비처럼 날아다니는데…….'

오묘한 깨달음과 흐름 속에서, 한 마리의 나비가 허공에 떠오르는 걸 그려 나간다.

날개의 힘찬 움직임과 그 궤적. 그리고 그것의 느낌까지.

'자연의 흐름 속에 나를 투영해 그것과 하나가 되다 보면, 자연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이게 되고.'

나비를 날아오르는 게 하는 게 아니다.

나비는 가만히 있고 내가 날아오르는 것이다. 그리해야 비로소 나비도 날아오르고 나 또한 날아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지를 심는 건 사람.'

그건 곧.

"나."

천강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순간, 신병이기들의 축하 소리가 들려왔다.

- 하하핫. 축하한다, 소년!

- 과연 재능이 실로 두려울 정도로구나!

- 하늘이 내린 인재로고!

- 정말…… 뭐라 할 말이 없군요. 그 나이에 현경이라니.

고개를 내린다. 그 어떤 발판도 없이 허공에 두둥실 떠올라 있는 자신의 몸뚱어리가 보인다.

몸이 내려가길 원하면 내려가고, 위로 떠오르길 원하면 뜻대로 올라간다.

내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도, 내 의지를 받들어 자연의 기운이 알아서 척척 움직여 준다.

심지어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전보다 몸이 더 가벼워졌다. 신체가 변했어.'

기의 통로가 확장되면서 자연스레 원활해진 내기 순환. 왠지 지금이라면 토끼 녀석의 일격을 받아내도 무릎 정도 파묻히는 걸로 끝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 제일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머리였다.

'머릿속이 무한히 넓어졌다.'

마치 이전엔 작은 호숫가가 자리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끝을 모를 바다가 들어선 것처럼.

"하, 하하핫."

소년의 입에서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러 기연을 통해, 마침내 그토록 염원하던 현경에 도달하게 된 천강이었다.

그에 들뜬 마음도 잠시, 문득 궁금증이 인 천강은 천해지경에 물었다.

"혹시 생사경(生死境)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생사경부터는 사실상 거의 신선의 경지. 과연 어떤 깨달음이 있어야 그 단계에 올라갈 수 있을까?

누런 백지 위로 검은 글자가 빠르게 새겨진다. 그걸 기대에 찬 얼굴로 본 소년의 미간은 이내 확 찌푸려졌다.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자여, 100가지 다른 생물을 이해하라. 그럼 자연스레 뜻하는 바를 이루리라.』

 

'……기어이 토끼 뒤를 쫓게 만드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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