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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84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7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84화

84화. 천산의 보고 2층

 

 

"이상하군요."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교주의 질문에 일필일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교주님과 그 소년이 노린 것은, 암운곡 지하수로로 경쟁 살수들을 모아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까지 아닙니까?"

"그렇지."

"그런데 전부 사망이라니요. 이건 너무 작위적입니다. 나올 수 없는 경우입니다."

분명 그들 모두가 사라진 건 좋은 소식이다.

특히 마교서열 3, 4위의 핵심전력이 사라진 것은 교주 진영에 매우 큰 이득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 찜찜함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가?"

"그럴지도 모릅니다. 흠. 아무래도 적삼혈마에게 사람을 더 붙여야 할 듯싶습니다."

"그게 좋겠군. 어찌됐든 그쪽의 총지휘자는 그자이니."

그리 결론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교주님!"

천수마검이 신전 안으로 허겁지겁 들어왔다. 그는 일필일사에게 짧게 목례를 하고는 교주에게 보고했다.

"교주님,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뭔데 그러는가?"

"마교서열 3위 만천옥주가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뭣?!"

교주뿐만 아니라 평소 잘 놀라지 않는 일필일사의 눈조차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게, 현경이다. 무려 현경이 암살당했단 의미였다.

"범인이 누군지는 파악됐는가?"

"예. 만천옥주의 모든 세력이 다 죽임을 당했고, 그 살해 흔적은 크게 두 사람의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투파창귀와 그 제자입니다."

"투파창귀……! 녀석의 상태는 어떻지?"

반드시 부상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엄청난 손실이다.

만천옥주가 죽었더라도 놈이 부상을 당했다면, 그 틈에 많은 걸 뺏어오면 되었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주가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잔 상처 하나 없이 본인의 거처로 복귀했답니다."

"……."

천마의 이마가 크게 구겨졌다.

마교서열 3위인 만천옥주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세력.

여울나무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 만큼, 그동안 여울나무쪽으로 쏠리는 세력 구도를 어느 정도 잡아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세력이 모조리 몰살당했단다. 그를 암살한 적은 상처 하나 없고.

"이렇게 작년 예산에서 이득 본 것이 그대로 날아가 버리는군요. 하하핫."

일필일사가 쓴 웃음을 짓는다. 천마는 골이 아파오는 걸 느꼈다.

 

***

 

"다녀왔습니다, 어르신!"

천산의 보고 문이 벌컥 열린다. 소년의 등장에, 업무를 보고 있던 노인의 고개가 올라갔다.

"끌끌. 응당 성공할 것은 예상했지만, 이리 빨리 끝내고 돌아올 줄은 전혀 생각 못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강에게로 다가온다. 그는 천강을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좋은 인연이 있었던 게로구나. 금나한은 만났느냐?"

"예, 만났습니다."

"그가 널 봤다면 필히 막았을 텐데, 용케도 들어갔다 나왔구나."

"안 된다고 하길래 냅다 구멍 속으로 뛰어내렸습니다."

"끌끌끌. 그것 참 속 시원한 아이로고."

노인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천강은 그에게 챙겨온 천령초를 건네었다.

"임무를 완수했으니 나 또한 약조를 지켜야겠지."

노인이 천강의 손에 열쇠 두 개를 놓아줬다. 그 중 하나는 처음 보는 색이었다. 호숫가와 같은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열쇠.

천강은 그것을 집어, 눈 가까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어떻게 보면 특출난 것 하나 없이 평이하면서도, 가만 보면 기묘한 기운이 흐르는 것도 같다.

"바로 올라가 봐도 됩니까?"

"피곤하지 않느냐?"

"생생합니다!"

"끌끌. 그래. 그러거라."

천강은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런 소년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은 즐겁기만 했다.

"천령초를 흡수해버릴 줄이야.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소년이로구먼."

 

1층 비급서들은 건너뛰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가는 문 앞에 선다. 천강은 쿵쿵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는 열쇠를 돌렸다.

'드디어 현경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신병이기는 주인에게 깨달음을 주는 경우가 대다수다. 환상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공명 혹은 그 외 다양한 방법으로 주인이 경지의 한계를 돌파하는데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천강이 가진 천해지경의 경우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림인이라 그런지 앞뒤가 꽉 막혀서 알쏭달쏭 모호한 설명만 하는 상황.

'얜 좀 갑갑하니 다른 애를 하나 더 구하면 되지 않을까?'

그것이 천강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였다. 그것도 무저갱까지 들어갔다 나오는 수고를 하면서 말이다.

'제발 괜찮은 신병이기가 있기를!'

스르륵 문이 열린다. 문 안쪽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놓여 있었다.

곧바로 그것을 타고 오르자, 널따란 공간에 좌우로 늘어선 여러 장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무구들.

첫 만남에 천강이 큰 호감을 표하자, 그것들 중 몇몇도 천강을 향해 관심을 보이는 게 느껴졌다.

'물건의 숫자는 27개. 그 중 신병이기로 보이는 건 5개인가?'

그래도 혹시 모르는 바, 천강은 일일이 하나하나 손으로 집어 내기를 흘려보내 보았다.

그러자 총 7개의 신병이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천강은 그것들을 모조리 모아와, 자신의 주변에 둥글게 펼쳐놓았다. 기를 퍼뜨려 그것들과 연결하자, 그들의 대화 소리가 머릿속으로 나직이 들려왔다.

- 이건 뭐야. 웬 애새끼가 여길 들어왔어?

- 끽해야 열 살 안팎이겠군.

- 그래도 잠재력은 나쁘지 않은 것 같지 않나요?

- 그래봤자 화경이겠지. 날 사용하려면 내기가 충분해야 할 텐데, 겨우내 2-3년 모은 내기로는 쯧쯧.

- 나는 포기할란다.

대체로 부정적인 대화들.

'이거 이대론 안 되겠는데?'

신병이기는 주인이나 동료, 즉 자신이 인정한 자에게만 힘과 지혜를 나누어 준다. 그런데 분위기로 보아하니 다들 협조 안 해줄 것 같은 기색이다.

그에 천강은 숨기고 있던 내기를 풀어냈다.

고오오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내기의 양. 천 년 동안 내기만 모아본들 지금 이 소년보다 많지는 않으리라.

천강이 내력을 발산하자, 건물 안으로 광풍이 휘몰아쳤다.

- 무, 무슨?!

- 이 녀석 인간이 맞나?

- 혹시 신수냐?

별의별 말이 다 나오나 결론은 감탄사. 천강은 다시금 내기를 정돈하며 말했다.

"그냥 내 무공 특성상 내기가 많은 것뿐이다."

- 아니, 대체 어떤 종류의 무공을 익히면 인간이 이무기 정도의 내기를 가질 수 있지?

- 진짜 신수 아냐?

- 인간 형태를 하고 있으니 백호일지도.

- 그런 것치고는 기운이 정순하진 않군요.

- 소년. 네가 익힌 무공의 이름은 뭐지?

마지막 질문이 모두의 의견을 대변이라도 하는 것인지, 소란이 일순 잠잠해졌다. 천강은 팔짱을 끼고는 되물었다.

"북명신공이라고 아나?"

- 북명신공? 그게 뭐야? 넌 아냐?

- 아니, 나도 몰라.

- 최근에 누군가 새로 만든 무공인가?

시끄러이 떠들지만 결론은 다들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이었다.

살아온 기간이 최소 몇 백 년씩은 되는 신병이기들도 못 들어본 무공이라……. 전생에 왜 그리 비급 찾기가 힘들었는지 바로 이해가 되는구만.

"그러면 흡성대법은?"

그러자 아는 이가 하나 나타났다.

- 그 사악한 무공으로 내기를 늘린 건가요?

- 오오. 막야. 무슨 무공인지 아는 건가? 대체 어떤 무공이지?

- 상대의 내기를 강탈하는 무서운 무공입니다.

- 하. 상대의 내기를 빼앗는다?

웅성웅성. 무기들이 시끄러이 떠들기 시작했다.

막야라 불린 검이 천강에게 물었다.

- 그런데 빼앗는다 한들 그것들은 이종진기 문제로 자유자재로 못 다룰 텐데요?

"그 문제는 해결했다. 이젠 아무런 제약도 없고, 그 결과 인간의 몸뚱어리로 모을 수 있는 최대의 내기 양을 축적한 상태다."

- 그래서 우릴 찾아온 것이로군.

- 내기 양은 충분하니, 화경에서 현경으로 넘어가는 거야.

- 제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과 무공을 지녔다한들, 깨달음은 시간이 걸릴 테니까.

과연 명검들 아니랄까봐 모두 똑똑하군. 내가 온 이유를 바로 알아맞힌다.

그러나 천강의 능력을 보고도 녀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괜히 까다롭기로 소문난 무기들이 아닌 것이다.

- 보아하니 흡성대법이면 마공인데, 난 빠질란다. 내 명성이 있지.

- 저도요.

대체 어떤 놈이 그런 말을 하는가 본다. 흑백 검 한 쌍. 간장과 막야다.

그 옆에서 누군가 또 중얼거렸다.

- 매일 같이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꽃향기가 나는 고급진 기름으로 닦아 준다 약조하면 한 번 생각을 해보지.

- 나는 앵화꽃.

슬쩍 고개를 들어, 녀석들을 가져왔던 곳에서 그 이름을 확인해보았다. 청강검과 의천검이었다. 한때 조조 밑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요구사항이 굉장히 까다로웠다.

두 녀석이 요구사항을 읊자, 너도 나도 그 기세에 편승해 자신이 원하는 걸 늘어놓기 시작했다.

- 나는 매일 실력 있는 현금 연주소리를 들어야겠다.

- 어불경인사불휴(語不驚人死不休). 제가 지은 시를 매일 한 시진씩 들어준다면 생각해 보지요.

- 하루에 한 번 이상 큰 싸움을 한다 약조해주면 내 너에게 깨달음을 주도록 하지.

'……아주 단체로 지랄들을 하는구나.'

어떡하지? 고민이 든다. 현경의 깨달음은 얻어야겠고. 그러나 이것들 요구사항을 들어주자니, 하나하나 굉장히 귀찮고 까다로운 것뿐이다.

'아니, 다른 건 다 그렇다 쳐. 근데 쟨 뭐야? 자기가 지은 시를 하루 한 시진씩 들어줘야 한다고?'

그냥 이 새끼들 들고 무저갱 용암 위에 서서 협박이라도 해볼까? 협조 안하면 확 녹여버린다고?

'……좋은데?'

- 뭐지? 왜 갑자기 오한이 들지?

- 자네만 느낀 게 아닌 모양이구만.

- 둘 다 슬슬 갈 때가 됐나보군. 큭큭.

하지만 이왕이면 자발적인 협조를 받는 게 좋은 법.

천강은 내기를 사용해 신병이기들을 모두 공중에 띄웠다. 그리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응? 뭐야?

- 어디를 가는 거냐?

- 당장 이거 놓지 못해요!

"진정들 해. 너희들 그동안 이 안에만 있어서 갑갑했을 거 아냐? 모처럼 만났으니까 바람 정돈 쐬게 해줄게."

- 흠흠. 그렇다면야.

- 무공은 사악할지 몰라도 됨됨이는 된 인간이네요.

0층으로 내려가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노인.

"그것들을 다 가져가는 게냐?"

"아니요. 바깥 구경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잠시 들고 나왔습니다."

"끌끌. 알겠다."

밖으로 나가 천산의 풍경을 보여준다.

나올 때까지만 해도 시끌시끌 떠들던 녀석들이 금세 조용해진다. 천강은 그렇게 약 일다경 정도 서 있다가 2층으로 되돌아갔다.

"어때?"

- 흠흠. 나쁘지 않구만.

- 간만에 바깥 공기를 쐬니 좋긴 하군.

- 고마워요. 덕분에 잘 봤어요.

'역시 예상대로군.'

스윽. 입꼬리가 올라가는 소년. 그때부터 천강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천강은 매일 하루에 두 번. 신병이기를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자, 오늘도 날씨가 좋은데 바람 좀 쐬러 가자고."

- 흠흠. 피부에 좋지 않지만, 그리 원한다면야.

- 나이 먹은 우리가 양보해 주는 것도 미덕이지. 암.

그렇게 삼 일 즈음 지나자, 처음에는 시큰둥한 녀석들이 어느새부터인가 천강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 오늘은 좀 늦었네요.

- 평소보다 일각(一刻)이나 늦었지 않았느냐!

- 어서 가자. 오늘은 어디로 갈 테냐!

하나씩 하나씩 천산의 전경을 구경시켜주는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온다.

'중이 처음 고기 뜯는 게 힘들지, 한 번 뜯으면 못 말리는 법이지.'

스스로의 가치를 알아 오만한 녀석들. 그러나 그 가치 때문에 오랜 기간 갇혀 지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떤 것은 몇 백 년, 어떤 것은 천 년 이상도.

그런데 바깥바람을 쐬었다. 그것도 주기적으로.

'처음 바람 쐬러 나온 순간 이미 끝났어.'

천강은 때가 무르익었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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