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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8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82화

82화. 천령초

 

 

천강은 기대에 찬 얼굴로 비급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시급한 상황을 타개해줄 기가 막힌 방안이 나올 거라 확신하며.

그런데 천해지경 왈.

『신체가 땅에 닿지만 않으면 된다.』

아아악! 소년은 바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 시점에 천해지경의 모호한 답변이 또 시작된 것이다.

이 녀석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닐까? 날 가지고 노는 거 아냐?

그러길 잠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어쩌면 내가 너무 어렵게만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이전에 요 무저갱 위에서, 이곳에 오르내릴 좋은 방법이 없냐고 물었을 때 녀석은 이리 대답했다.

『신체가 벽에 닿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면서 내 눈앞에서 팔랑팔랑 날아다녔지.'

그런데 이번에는 땅에 닿지만 않으면 된단다. 천강은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신발을 신고 있음에도 내기운용을 어지럽히는 저주받은 땅. 하지만…….

손을 펼친다. 그러자 바닥에 톡 떨어지는 비급서.

천해지경이 뒤늦게 날갯짓을 하며 위로 날아오르며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천강이 그 위에 슥 올라선 것이다.

"오. 진짜 효과가 있네?"

파닥파닥- 파닥파닥-

"아, 좀만 참아보십시오. 여기서 후학이 죽기를 원치 않으실 것 아닙니까?"

몸속에 파고들어 내기운용을 어지럽히던 기운이 빠르게 사라져간다. 체내에 자리한 진기가 그것들을 몰아내고 몸을 되찾는다.

천강은 곧바로 낙엽을 날려 그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파들파들 떨며 날아오르는 비급서를 챙겨 굴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워어어어-

간발의 차로 천강을 놓친 괴물들이 팔을 뻗으며 비명을 내지른다.

천강은 위로 쭉 올라가는 척 하며 온몸을 암운신공으로 감싸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놈들을 가만히 주시했다.

그르륵-

녀석들의 표정이 구겨진다. 마치 식사거리를 놓친 게 너무도 아쉽다는 얼굴들이다.

'빨리 내려가라. 나도 천령초 챙기고 돌아가게.'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천강을 포기하고는 하나둘 아래로 내려가는 녀석들. 놈들은 내려가는 와중에도 쉬지 않고 입맛을 다셨다.

그런 그 때 내려가던 몇몇이 특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어어- 첩첩.

갑자기 천령초를 뜯어서 본인 입에 집어넣는 게 아닌가?

'뭐지? 아니, 날 못 잡아먹었다고 독초를 먹어?'

그리 배가 고픈가? 아니면 일종의 와신상담?

더 특이한 건, 그러고는 배를 부여잡더니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천강은 호기심을 갖고 조용히 무저갱 밑바닥으로 내려가 보았다.

뜨거운 열기. 울퉁불퉁 고르지 못한 땅 바닥. 그 곳곳에 자리한 용암.

그 위에 뿌연 증기와 유황 냄새까지 더해지니, 영락없는 지옥의 모습이다.

천강은 주변을 슥 훑어보았다.

생각보다 넓다. 구멍 자체도 굉장히 넓었지만, 흥미롭게도 암운곡의 지하수로처럼 한 쪽에 거대한 굴이 자리해 다른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슥 눈에 힘을 실어 봐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굴.

단순히 옆으로 나 있는 굴이 아니다. 지하 깊은 곳으로 파여 있다.

그워어어-

절벽에서 내려선 괴물들은 느릿느릿 몸을 움직여 그 안쪽으로 사라졌다. 천강은 그것들에서 시선을 떼, 바닥을 나뒹구는 놈들에게로 옮겼다.

배를 잡고는 이리저리 뒹구는 괴물들. 상당히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그 순간, 천강의 눈이 부릅 뜨였다. 갑자기 놈들의 신체에 변화가 생긴 걸 본 것이다.

'뭐지? 피부가 단단해지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잇몸이나 근육, 그리고 그 위에 자리한 날카로운 이빨도 한층 더 단단해지는 게 보였다.

문득 사학 어르신의 말이 떠오른다.

- 끌끌. 그러나 독도 잘 쓰면 보약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보약……!

무언가 깨달음이 온 천강은 곧바로 절벽 위로 올라가 천령초 하나 앞에 섰다. 소년의 가슴은 심히 쿵쿵 뛰고 있었다.

'자, 일단 채취부터 해야겠지?'

양손을 공손히 모아 말한다.

"무제(武帝)의 사념님 죄송합니다."

팔랑?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곧바로 품속에 있는 천해지경을 끄집어낸 소년. 천강은 그것으로 천령초를 잡아 뽑아냈다.

파다다닥- 파닥파닥-

"아, 조금만 참으십시오. 이게 다 후학의 무한한 성장을 위한 것이니까요."

성공적으로 채취한 천령초.

천강은 그것을 들고, 검은 암석과 붉은 암석의 경계 지역에 있던 굴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번엔 비급서를 바닥에 깔고 올라섰다.

파다닥-

"크흑. 후학을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 잊지 않겠습니다."

역시 천해지경을 깔고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군.

손에 들린 독초를 가만 바라보는 소년.

조그마한 풀에서 짙은 사기(死氣)가 은은히 풍겨져 나온다. 딱 봐도 느껴지는 양이 심상치 않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이걸 먹으면 죽는다고?'

왜 죽는지는 알 것 같다. 이 정도 농축된 사기(死氣)를 집어삼키면, 제 아무리 영기가 넘치는 영물이라도 두통에 시달리다 골로 가리라.

살짝 걱정이 되긴 하지만 나름 믿는 구석이 있는 천강은 그것의 이파리 하나를 똑 뜯어냈다.

'전에 백호가 내게 말했지. 자신의 혼이 함께하는 한, 내 마음과 정신력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사기(死氣)의 대표적인 특성은 정신착란이다. 천강은 이파리를 입에 쏙 집어넣었다.

씹을 때마다 화악- 입안에서 퍼져나가는 쓰디쓴 식감. 윽. 풀떼기를 생으로 씹은 것 같은 맛이다.

천강은 잠시 망설이다 꿀꺽 목구멍 뒤로 넘겼다. 그리고는 곧바로 입을 활짝 벌렸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뱉어내야 해.'

뱃속에서 서서히 퍼져나가는 기이한 기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폭발하듯 퍼져 나가는 극렬한 감각.

천강의 눈이 번쩍 뜨였다.

 

***

 

천산의 보고 0층.

누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다.

"선배님."

"음? 아, 자네 왔구먼."

사내의 등장에 노인이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주변을 슥 둘러보더니 노인에게 물었다.

"들었습니다. 천강이란 소년이 이곳에 자유롭게 드나들기로 했다면서요?"

"허허. 몸이 근질근질한가 보구나."

"예. 제법 하는 아이 아닙니까."

화경인 주제에 현경인 그 자신과 순간적으로 대등하게 싸웠다. 흥미가 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저번에 못 다한 싸움, 마무리는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끌끌. 그래야 무인이지."

"근데 그 아이는 어디 갔답니까?"

노인이 수염을 쓸며 말했다.

"그 아이는 지금 무저갱에 갔느니라."

"예? 무저갱을요? 아니…… 잠깐잠깐. 설마 천령초를 캐오라 시키신 것입니까?"

남자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도 그동안 수차례 천령초를 캐와 본 적이 있는 만큼,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 소년에겐 너무 이른 거 아닙니까? 아직 몸도 채 자라지 않았잖습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노인은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딱히 대답이 돌아올 것 같지 않음을 느낀 사내는 머리를 긁적이며 화제를 바꾸었다.

"근데 선배님. 저 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만."

"말하거라."

"대체 선계에서는 그걸 왜 먹는답니까? 딱 봐도 몸에도 안 좋은 거."

천령초는 선계에서 요구해올 때마다 구하러 간다. 듣기로는 복용 용도로 쓴다고 했는데, 사내 입장에서는 그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일개 독초일 뿐이지 않습니까? 뭐 특별한 맛이라도 난답니까? 죽음이 느껴지는 그런 맛이라던가?"

"껄껄. 독도 잘 쓰면 보약이 되는 법 아니겠느냐? 듣기로는, 그것을 먹으면 신체는 바위처럼 단단하여지고 힘은 태산을 들어 올릴 만 하여진다 하더군."

"네에? 허. 그런 비밀이……! 그럼 저도 당장 가서 몇 뿌리 좀 뽑아먹어야겠군요."

"끌끌. 그것도 좋지. 대신 그것의 사기(死氣)와 독을 어찌하지 못한다면 그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윽. 그럼 포기해야겠군요. 독은 어떻게 해도, 사기(死氣)는 방법이 없으니."

사내가 아쉬워하자, 노인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말거라. 인간 중에는 그걸 먹을 수 있는 자가 그 누가 있겠느냐. 끌끌."

 

***

 

"와아. 이 무슨……?"

갑자기 온몸에 힘이 샘솟는 게 느껴졌다. 내기가 충만해져 느껴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그건 그렇고, 이 녀석…… 독도 결코 평범하진 않네."

그동안 여러 차례 경험하며 느낀 게 있다.

활동적이고 성질이 급한 독은 이렇다 할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몸 밖으로 자연스레 배출된다.

하지만 몇몇 독…… 체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런 종류의 독들은 임의로 해소를 해주어야만 했는데, 지금 천강이 섭취한 독도 대략 그러한 부류였다.

중심부로부터 몸 곳곳으로 퍼져나가려 애쓰는 독 기운을 한데 모은다. 그리고는 뱅글뱅글 돌린다.

'북명신공이 완성되서인지는 몰라도 금세 되는구만.'

그렇게 독을 완전히 중화시킨 천강은 낙엽 위로 올라섰다. 이제부턴 몸보신할 시간이다.

쭈글쭈글해진 천해지경을 집어 들고는 바로 밖으로 이동하며 왈.

"우리 딱 하루만 이곳에서 놀다 갑시다. 괜찮지요?"

파르르-

마치 겁에 질린 듯 떨어대는 천해지경. 그러나 천강은 그런 그를 무시한 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벽 곳곳을 돌아다니며 천령초를 빠르게 채취한다. 그런 뒤, 동굴로 들어가 입 안에 탈탈 털어 넣는다.

그렇게 몇 시진이 지나자, 안 그래도 삭막하던 무저갱 절벽이 더욱 삭막해졌다. 천강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올라왔다.

'와아. 태어나서 뭔가를 이리 많은 먹은 건 처음일지도.'

온통 풀떼기만 먹어 이따 볼일 볼 때가 조금은 걱정이 되긴 하지만, 당장은 매우 만족스러운 천강이었다.

"흠. 이제 더는 없는 것 같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제(武帝)의 사념님?"

…….

질문에도 반응이 없는 천해지경.

죽었나 싶어 만져보니 그렇진 않다. 아무래도 사기(死氣)에 과다 노출되면서 기력이 쇠진한 모양이다.

'자, 그럼 이제 돌아가야겠지?'

다만 그전에…….

천강은 낙엽 위에서 내려와 바닥에 발을 붙여보았다. 찌리릿- 기이한 기운이 발바닥에서부터 파고들어와 온몸의 내기운용을 봉쇄한다.

소년은 그대로 쭉 걸음을 옮겨 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절벽에 매달려 보았다.

'쉽군.'

굉장히 쉽다. 벽을 타고 오르는데 힘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스무 살까지 외공 수련만 해도, 과연 이 정도의 힘을 쌓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어? 여기 하나 더 있네."

돌 틈 사이로 숨어 있는 천령초 하나.

파르르르- 기절한 줄 알았던 천해지경이 바로 몸을 떨어댄다. 천강은 걱정 말라며 손으로 그걸 뽑아 입에 가져다댔다.

그런데 그 순간 잊고 있던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아,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천산의 보고 의뢰 완수해야지.

이제는 거의 텅 비어버린 보따리 안에 천령초를 집어넣은 천강은 위로 다시 쭉쭉 올라갔다.

그런 소년의 움직임에는 거칠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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