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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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15화
자신이 떠나면 사마경의 호위에 구멍이 생긴다.
구양명과 철무가 있긴 하나 구천성 안에 있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사마경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내 걱정 말고.”
“하지만…….”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 닥쳐도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어. 걱정 마.”
생각을 바꿀 마음이 아예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뜻대로 해주는 수밖에.
아직 사마경은 모르지만, 환마 우곡이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 사마경이 위험해지면 그가 나설 것이다. 교왕 둔가부야 어쩔 수 없이 따라서 움직일 것이고.
“어느 정도 뒤집어 놓으면 됩니까?”
“최대한. 철기보 무사들의 한이 풀릴 정도로.”
한기 풀풀 날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 내뱉은 사마경이 고개를 돌려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다치지 마.”
* * *
철기보의 무림맹은 구천성 출정군이 정양에서 걸음을 멈췄다는 소식을 듣고 늦은 밤인데도 회의를 소집했다.
“아미타불, 구천성의 본진이 정양에 진을 쳤소이다. 그들이 합류하기 전에 각산의 철기보 잔당을 청소하는 게 어떻겠소이까?”
안색이 거무스름한 노승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가 바로 소림무불 원공대사다.
원공대사의 앞에는 모두 일곱 사람이 앉아 있었다. 개중에는 도인도 둘이나 있었고, 속가의 노인과 중년인도 있었고, 갓 서른이 될까 말까한 청년승도 있었다.
“너무 위험합니다, 대사. 자칫하면 저들의 술수에 말려들 수 있습니다.”
눈매가 칼날처럼 날카롭게 뻗은 중년인이 말했다.
제갈세가에서 삼뇌로 불리는 병법의 대가 중 한 사람인 제갈승조였다.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상책은 아니네.”
하늘빛 청의를 입은 노인은 제갈승조의 의견보다 원공대사의 의견이 더 끌렸다.
청년승도 마찬가지 마음이었다.
“아미타불, 저 역시 원공 사숙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군사. 지켜보기만 하다가는 아까운 시간만 낭비할지도 모릅니다.”
그 자리가 무림맹 간부들의 회의장소인 것을 생각하면 청년승의 합석은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좌중의 누구 하나 그를 못마땅한 눈으로 보지 않았다.
천년 소림에서 근 백수십 년 만에 배출한 절대기재. 무림십룡 중 하나로 꼽히는 젊은 고수 대운(大云)이 바로 그였다.
제갈승조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상책은 아닐지 몰라도 하책 또한 아니네. 그리고 나는 무작정 기다리자는 것이 아니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날래고 강한 고수 백 명 정도를 뽑아서 은밀하게 움직일 생각이네. 그 정도면 저들의 눈을 피하기도 쉽고, 설령 들킨다 해도 크게 경계를 하지 않을 거네.”
제갈승조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도인 하나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이 철기보 잔당을 무찌를 수 있다고 보나? 빈도가 알기로는 각산에 풍운산장 무사들도 있다고 하던데.”
몸은 물론이고 얼굴까지 빼빼 말라서 강퍅하게 느껴지는 노도인, 그는 화산파의 장로인 영무자였다.
제갈승조가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전멸을 시키고자 보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도장.”
“그러면?”
“최대한 피해를 준 후 물러서면 됩니다. 멀쩡한 사람도 다리 하나가 부서지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 법이지요. 철기보 잔당과 풍운산장이 큰 피해를 입으면, 구천성도 철기보의 본 맹 무사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봐야 적의 공격을 잠시 차단하는 정도의 효과밖에 더 있나?”
“그 시간이면 본 맹의 본진이 도착할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공격은 그 이후에 해도 됩니다.”
제갈승조가 냉정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입을 닫았다.
원공대사는 이마를 좁히고 잠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제갈승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전체가 움직이면 구천성의 눈을 피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지고, 자신들의 계획을 눈치 채면 정양의 구천성 본진이 움직일 것이었다.
눈치 채는 시간이 한 시진만 빨라도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 분명했다.
“아미타불…….”
나직이 불호를 왼 원공대사는 결정을 내렸다.
“대운, 네가 가라.”
“예, 사숙.”
“군사는 출발할 수 있는 무사들을 선정하게.”
“알겠습니다, 대사.”
“이동은 은밀하게 하고 공격은 최대한 강력하게 해야 할 것이네. 적의 피해가 클수록 제자들의 피가 적어질 것인 즉……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시를 내린 원공대사가 눈을 감으며 불호를 외었다.
그때 영무자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현오, 너도 따라가라.”
“예, 사숙.”
사십대 중반 정도 나이의 도인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화산파의 매화오검 중 하나로, 차대 화산파 장문인이 유력한 현오자였다.
그런데 제갈승조는 대운과 현오자의 동행이 달갑지 않았다.
두 사람은 소림사와 화산파에서 가장 촉망받는 고수들이다. 문제는 둘을 동시에 보내려하는 밑바탕에 순수한 협의지심 보다 고질적인 문제점인 호승지심이 깔려 있다는 것이었다.
‘안 좋은 현상이야.’
제갈승조의 눈빛이 깊어졌다.
아무래도 대책을 마련해놓아야 할 듯했다.
‘할 수 없지. 정 안되겠다 싶으면 마지막 패를 쓰는 수밖에…….’
* * *
절정고수가 진기소모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한 시진 동안 평지를 달리면 최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같은 조건으로 이백 리를 달린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그것이 궁금하다면 지금 흑월대의 속도를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어차피 어둠은 그들에게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구름 사이로 비친 달빛은 그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횃불이나 다름없었다.
축시가 되었을 때, 그들은 철기보에서 남쪽으로 오십여 리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각산조차 멀찌감치 돌아서 지나쳤다.
한 시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백오십 리 정도를 달려온 것이었다. 상태를 보니 오십 리 정도는 큰 탈 없이 더 달릴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장천운은 흑월대원들을 멈춰 세웠다.
“일각 동안 휴식을 취한 후 출발할 거요. 더 이상의 휴식은 없으니 소모된 진기를 최대한 회복하도록 하시오.”
두세 시진 쉬지도 않고 두들겨 맞으면서 수련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흑월대다운 수련이라 할 수 있었다.
젠장! 그게 뭐 자랑거리일까 마는, 그런 수련을 받았기 때문에 한 시진 넘게 달렸는데도 버틸 만했다.
“씨발, 철기보에 있는 새끼들, 지옥사자가 찾아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잠을 퍼자고 있겠군.”
막소광이 욕설을 섞어가며 한마디 하자, 수은귀가 입술 끝을 비틀었다.
“훗, 지옥사자가 다 굶어 뒈졌나보네. 막형이 지옥사자면 나는 염왕이게?”
둘 다 얼굴로는 한몫했다. 분위기야 지옥문을 지키는 문지기밖에 안 됐지만.
“뭐? 그럼 네가 내 상전이란 말이냐?”
“최소한 얼굴은 내가 막 형보다 보기 좋잖소?”
등평이 어이가 없는지 나직하게 웃어댔다.
“크크크, 내 머리에서 오십보백보라는 훌륭한 단어가 떠오를 줄은 생각도 못했군.”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대화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들을 가치가 없었다. 그들에게 신경 쓰느니 소모된 진기를 일푼이라도 더 회복하는 게 나았다.
장천운은 그들이 실없는 농담을 나눌 때 뒷짐을 진 채 북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왜 그런지 몰라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었다.
불길함이라면 차라리 그에 대한 대처를 할 수 있을 텐데, 딱히 그런 느낌도 아니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축축함, 막막함, 가슴이 아린 그런 느낌?
‘좋지 않아.’
더구나 본격적인 전쟁을 앞둔 상황이다 보니 더 답답했다.
“대주, 공격 계획에 대해서는 하실 말씀 없소?”
사공명신이 질문을 던져서 장천운의 상념을 깼다.
‘후우,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지. 언제는 편했나?’
장천운은 고민을 털어버리고 돌아섰다.
“공격 계획은 간단하오. 담을 넘으면 일직선으로 관통해서 반대편으로 빠져나갈 거요. 몇 번 그러다 보면 저들은 공격에 투입된 무사가 몇 명이나 되는지 감을 잡기가 힘들 거요. 그 사이 우리는 최대한 타격을 준 후 유유히 떠나면 끝나는 거요.”
“정말 무…… 간단한 계획이군.”
무식한 계획이라고 하려다 순화시켰다.
장천운 역시 자신이 말하고도 조금은 어이없다는 생각이었다. 하물며 누구에게 뭐라고 하랴.
“다른 방법 있소?”
사공명신은 어깨를 으쓱 추켜올리고 돌아섰다.
“뭐, 그렇게 나쁜 계획 같진 않군.”
그들을 맨 처음 본 사람은 두양양이었다.
여자는 소변을 보기 위해서 아무래도 남자보다 더 구석진 곳을 찾기 마련이다.
휴식을 취하던 곳에서는 수풀에 가려져 볼 수 없었던 광경이 구석진 곳에서는 보였다.
볼일을 보고 일어선 두양양은 이질적인 움직임을 감지하고 이마를 찌푸렸다.
‘뭐지?’
어둠 속 저편에서 뭔가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처음에는 짐승 무리가 이동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곧 짐승의 무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두 발로 달리는 짐승은 흔치 않으니까.
“대주, 저쪽 숲속에서 상당한 숫자가 움직이고 있어요.”
수풀에서 나온 두양양이 나직하게 말할 즈음에는 장천운도 기의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얼마나 되는 인원이며,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모를 뿐.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백 장이 조금 넘는 거리에요.”
“어느 쪽으로 움직이죠?”
“남쪽으로 가고 있어요. 인원이 최소 사오십 명은 될 것 같아요. 어쩌면 더 될지도 모르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고 있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흩어져 있던 흑월대원들이 두 사람 대화를 듣고 모여들었다.
남쪽으로 간다면 이창 쪽에서 각산 쪽으로 간다는 말이었다.
무공을 익힌 자들 수십 명이 뭐 하러 각산으로 가겠는가. 그것도 자정이 넘은 한밤중에.
장천운의 눈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군.”
“그럼 어떻게 할 건가?”
곁으로 다가온 혁련기가 물었다.
장천운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일단 눈앞의 고기부터 잡고 보죠.”
88장: 꿩 대신 닭
“정지!”
상승의 경공술인 초상비를 펼치며 풀잎 위를 스치듯 나아가던 현오자가 손을 들었다.
그의 뒤를 따라가던 무인 오십여 명이 일제히 걸음을 멈추었다. 복장은 각양각색이지만 절제된 움직임은 그들 모두가 고수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현오자 선배?”
바로 뒤에 서 있던 무사 중 하나가 물었다.
현오자는 전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높다란 수풀이 벽처럼 둘러서 있는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이 완만하게 굽어지는 곳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거리는 십오륙 장 정도.
“여기서 각산까지 얼마나 되는가?”
“삼십 리 정도 남았습니다.”
“그럼 철기보 무리는 아니라고 봐야겠군.”
“예?”
그 사이 청년승 대운이 현오자의 뒤로 다가왔다. 그 역시 현오자에게 뒤지지 않는 고수다. 수풀 속의 기운을 눈치 챈 그는 눈빛을 빛냈다..
“아미타불, 소승이 생각해도 철기보 무리는 아닌 듯합니다.”
“상대가 누구든 적이라고 봐야겠지. 모두 경계심을 풀지 말게나.”
현오자가 뒤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바람소리만 들릴 뿐 새소리도, 벌레 울음소리도 없는 봄밤이었다. 혼잣말처럼 작은 목소리였음에도 진기가 실려서 맨 뒤에까지 전달되었고, 무림맹 무사들은 적을 상대할 수 있는 진형을 갖추기 위해 좌우로 퍼졌다.
그리고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전면의 컴컴한 수풀 속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제법 많은 사람이 나타나는 데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 사이 거리가 십여 장으로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