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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7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0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72화

72화. 천마의 제안

 

 

여울나무 총책임자 사무실.

암운곡 쪽 간자(間者)들이 보내온 정보를 적삼혈마가 보고받고 있었다.

"……하여 한동안은 교관 선정에 차질을 빚을 예정이랍니다."

"그렇군요. 그게 끝인가요?"

적삼혈마의 질문에 보고를 올리던 이가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이야기가 남았습니다만, 워낙 얼토당토않는 이야기라……."

"무엇입니까?"

"2개월 뒤 열릴 쥐 굴에, 진짜 소교주가 숨어들 거란 소식입니다."

적삼혈마의 실눈이 작게 뜨였다.

"진짜 소교주……?"

 

***

 

"교주님, 이제는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흠……."

천마가 거주하는 천산의 신전.

흑철마괴의 재촉에 교주가 미간을 좁힌다. 그는 한참을 고심 또 고심하다가 나직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래. 결정을 해야지. 이제 쥐 굴 개방까지 십 일도 안 남았으니."

일 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정파 세력을 끌어들인 것을 빌미로 여울나무의 재정을 감축하고, 연이어 기경만회에 승리를 거두면서 추가타격을 먹이고.

여기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단번에 틀어져 버렸다.

마교의 배신자들과 외부 세력. 두 집단의 만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고발자가 나타났는데, 그걸 이용해 적의 세력을 견제하려다 도리어 암운곡 교관들이 단체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야 만 것이다.

그것은 교주 쪽 진영에 매우 큰 타격이었다.

"후우. 교관들은 어떻게 됐지?"

"없습니다. 믿을 만한 이들은 이미 다 마교 내에서 중요직을 맡고 있는 상황이라……."

"결국 검증이 안 된 이들을 배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하아. 아직은 더 미루고 싶네만."

"안됩니다, 교주님. 더는 위험합니다. 놈들이 거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그랬다. 여울나무 놈들이 어떻게 알아챈 건진 몰라도 최근 한 달 간 소교주가 지내는 은신처가 연이어 급습을 당했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제일 안전한 곳이 쥐 굴입니다."

"그러나 새 교관들 중에 놈들의 끄나풀이 있기라도 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런 교주의 마음을 아는지 흑철마괴가 조심스레 제안했다.

"교주님. 그럼 그 소년에게 부탁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제 한 몸 지킬 수 있을 때까지 만이라도 화살받이가 되어달라고 하는 겁니다."

"흠. 이전에도 물은 질문이네만, 그 아이가 정말 응하겠는가? 사지(死地)에 들어서는 일인데?"

달콤한 제안도 어디까지나 자신의 목숨이 안전할 때 응하는 법이다. 죽음 앞에선 이생의 일이 다 부질없으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니, 그냥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네만."

그러나 흑철마괴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충분한 보상을 준다면 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 만약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미연에 방지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소년을 데려오게. 일단 이야기를 나눠보고 설득 가능한지 확인해 보겠네."

 

***

 

소년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는 찬찬히 눈앞의 사내를 살핀다.

현 무림에는 열 명의 절대강자가 존재한다.

산을 부수고 바다를 가르며, 인간의 경지를 아득히 넘어섰다는 존재들.

그들을 가리켜 세간에선 5존(尊) 5왕(王)이라 일컫는다.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황제조차도 무림에 이런저런 간섭을 하지 못했고. 근 30년간 이들의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정파 사파, 즉 중원 내에서의 이야기이고. 이들과 비견되는 몇몇 존재들은 있었다.

중원의 북쪽에 자리한 북해빙궁의 궁주.

남쪽에 자리한 남만왕.

그리고 서쪽에 자리한 천마신교의 교주 천마가 그러했다.

'분명 그랬을 것인데…….'

소년의 눈빛에 의아함이 어렸다.

눈앞에 자리한 인물은 아무리 봐도 그 정도의 실력자로 보기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왠지 천강은 알 것만 같았다.

'이제야 내가 환생했다는 게 실감이 나는구만.'

처음 쥐 굴에서 깨어나, 무진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아는 이들의 이름이 들려오고,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전생의 어릴 적과 똑 닮은 걸 볼 때에도 사실 확신이 없었다.

그저 우연이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현 천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천강은 확신할 수 있었다.

'환골탈태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생긴 게 똑같네.'

그랬다. 그는 천강이 죽기 전 보았던, 당시 그 자신에게 북명신공의 비급서를 건네주었던 그 소교주의 얼굴과 똑같았다.

'전대 교주로부터 제대로 된 무공도 전수받지 못했을 텐데……. 용케도 자리를 지켜냈구만.'

교주의 인사에도 천강이 가만히 서서 침묵을 유지하자, 곁에 서있던 흑철마괴가 헛기침을 한다.

천강은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천강입니다."

"그래. 차 한 잔 하겠느냐?"

"아뇨. 괜찮습니다. 그다지 여유로운 성격은 아니어서 말입니다."

천마가 고개를 주억인다. 그는 잠시 천강을 물끄러미 살펴보다 나직이 운을 뗐다.

"내가 자넬 왜 부른지 짐작 가는 부분이 있는가?"

"글쎄요."

소년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겠지.'

교주는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지는 상황에,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어, 소년을 자연스레 설득의 분위기로 인도하려 했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지는 말에, 할 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부르신 이유는 몰라도 한 가지 의문은 있죠. 왜 절 아들이라고 안 부르시나요, 교주님?"

소년은 이미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 주군.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무영삼귀가 순차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일귀에게 선발적으로 몇몇 정보를 전해 들으면서 최근에 천강이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교주 세력이 자신을 이용해 먹고 있단 것이었다.

'분명해. 벌써 1년이나 지났고, 소문이 쫙 퍼져 마교 내에서는 내가 소교주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어.'

그런데 교주가 가만히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에 언제고 만나면 이용해 먹은 그 대가를 톡톡히 받아내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 기회가 이제야 찾아오네?

"왜 절 아들이라고 안 부르시나요, 교주님?"

천강의 한마디에 교주도 흑철마괴도 바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저 열한 살짜리 어린애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그들로서는 이런 상황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에 침묵하길 잠시, 천마가 이내 크게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핫!"

그는 한참을 그리 웃더니,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묵범귀영의 기록을 깨뜨렸다더니…… 과연 예리하구나. 언제 알았느냐?"

"좀 됐습니다."

여유롭던 천마의 얼굴에 고민이 올라왔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좋아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분간이 서질 않았다.

'그래도 크게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걸로 봐선, 협상의 여지가 있을 지도.'

천마가 입을 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한다. 의도치 않게 불똥이 전혀 상관없는 네게 튀게 되었구나. 그래서 그런데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되겠느냐?"

"어떤 제안입니까?"

"내 아이가 제 한 몸 지킬 정도로 성장할 때까지 네가 소교주인 것처럼 활동해 준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겠다."

"화살받이가 되어달란 말씀이십니까?"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 돌려 말할 필요는 없겠지.

교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나쁘게 들릴 진 모르겠으나, 정확하다. 대신 그에 대한 보상은 확실히 해주겠다."

감정 없던 천강의 눈에 살짝 이채가 돌았다.

"보상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우리 소교주, 아들께서는 아비에게 어떤 보상을 원하지?"

어떤 보상이냐라.

지금 천강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현경에 대한 깨달음. 그에 천마로부터 현경에 대한 가르침을 달라고 말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순간 한 가지 우려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마교는 힘의 논리야. 가장 강한 자가 교주가 되는 곳이지.'

현재 교주는 현경이다. 즉, 같은 현경이라면 어느 누가 됐든 교주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후보란 의미다.

그런 상황에서 현경에 대한 깨달음을 줄까?

'도리어 죽이겠다고 안 달려들면 다행이지.'

그에 천강은 그 차선으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천산의 보고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흑철마괴의 눈이 부릅 뜨였다.

"뭣?! 자네 지금 대체……."

교주가 흑철마괴를 재빨리 진정시킨다. 그리고는 살살 타이르듯 답을 주었다.

"미안하지만 불가능하다. 한…… 세 번 정도라면 모를까, 아무리 나라도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들어준다면 밑에서 반발이 일 것이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마교는 힘의 논리고 암운곡은 마교의 축소판인 만큼, 최강자가 규칙을 세우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요."

천강은 작년에 소운이 했던 말을 응용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실제로 저 또한 비록 작지만 암운곡에서 제 마음대로 하고 삽니다. 눈치 하나도 안 보고 말이죠. 그런데 신교의 최강자인 교주께서 눈치 볼 게 뭐 있으시죠?"

"그런 건방진……!"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남자가 천강을 윽박질렀다. 그러나 그 순간, 교주의 웃음소리가 신전을 가득 메웠다.

"하하하하핫!"

감정을 내비치던 흑철마괴가 제자리로 가 선다. 천마는 한참을 그리 웃은 뒤에야 천강에게 대답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암. 응당 마교의 최강자라면 그리 해야 하는 게 맞지.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큰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다."

"욕심을 부려도 될 만큼 강해지면 됩니다."

"재미있는 말이로군."

"제 스승님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지요."

스승님은 늘 말씀하셨다. 뭐가 됐든 내가 강하면 된다고.

일단 강해지면, 어떤 뜻을 품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그래서 늘 뜻을 포기하지 말고 대신 노력하라 하셨지.'

어찌됐든 천강은 한 발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동안 자신을 이용해 먹은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 생각하는 천강이었다.

그런 소년의 태도에 천마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난 건방진 이를 싫어한다. 아니, 혐오하지. 하지만 너와의 대화는 유쾌했다."

음. 성공인가?

"본디라면 그 무례한 언행에 단번에 목을 쳤을 것이나, 그걸 감안해 용서해주도록 하지. 아무튼 내가 해줄 수 있는 제안은 천산의 보고 세 번 이용이다. 만약 그것에 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말하거라."

"제 요구사항은 동일합니다. 아무래도 협상은 결렬인 것 같군요."

천강은 예를 표하고는 그곳을 벗어났다.

천강이 사라지고 신전에 남은 두 사람. 흑철마괴가 걱정이 된다는 듯 이야기한다.

"교주님. 가만 놔둬도 되겠습니까?"

"뭘 말인가?"

"혹시나 저 아이가 자신이 소교주가 아니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네."

천마가 탁자 위에 올린 찻잔을 들어올린다. 그 향과 맛을 한 차례 음미한 그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잠깐 대화를 나눠보았지만 똑똑하고 현명하더군. 그러니 아마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네."

"어째서 그리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런다한들 변하는 게 없기 때문이네. 이미 파다하게 번진 소문을 일개 소년이 말한다고 바뀔 리도 없거니와……. 암운곡 출신은 곧 나의 세력. 정이 든 동기도 선배도 다 날 따르고 여울나무와 척을 세우는데, 혼자만 따로 움직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자신이 소교주가 아닌 걸 밝히려 했다면 진즉에 그랬을 것이다.

'아무튼 당장은 협상이 결렬된 게 오히려 잘 된 것인지도 모른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먼저 협상자리에서 물러난 건 소년. 다음번에 찾아올 때에는 그만큼 주도권을 잡을 수 있으리라.

뭐 다신 찾아오지 않아도, 지금처럼 계속 이용해 먹을 수 있으니 그것도 상관없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람은 붙여놓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소교주는 이번에 쥐 굴로 데려온다. 은밀히 진행하도록."

"명을 받듭니다."

 

***

 

새하얀 구름이 머무는 산 정상아래.

천산을 내려가는 소년의 발걸음이 매우 가볍다.

그대로 암운곡 지하수로로 들어서자, 미리 대기하고 있었는지 삼귀가 스르륵 그 앞으로 나아왔다.

"인사드립니다, 주군. 가신 일은 잘 처리되었습니까?"

"그래. 그래서 그런데 너희들이 해줘야 할 일이 생겼다."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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