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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6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1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68화

68화. 신수 백호

 

 

"흑귀, 어떻게 됐나?"

어둠 속으로 울려 퍼지는 다급한 음성. 살짝은 주저하는 듯하더니, 흑귀가 찬찬히 대답했다.

"떠도는 소문대로다. 이번 회동의 총책임자는 물론, 모용제일검인 모용진과 내 사신들 모두 사망한 채 발견됐다."

"아니, 그게 말이 돼? 들어간 재료가 있는데!"

모용진은 그럴 수 있다. 애초에 흡공은 달라붙어 쓰는 만큼 두전성이를 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저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에게 들어간 재료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내력의 대부분을 차단하는 성질이 있다 하지 않았나?"

"맞다. 그런데 환부를 보면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 것이다. 안면의 같은 부위를 수백··· 아니, 수천 번을 내려친 것 같더군. 얼굴이 뭉개져 죽을 때까지 계속 내려친 모양이다."

"그런 무식한···."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조금은 침착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흑살마신이 정말이지 계속 걸림돌이 되는군."

"한 번 날 잡아서 쳐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겠지. 흑귀. 일단 넌 그때까지 사신들의 숫자를 늘리는데 더욱 집중해라. 때가 되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

 

'후우. 시간 날 때마다 체력단련도 종종 해야지.'

지천뇌공. 생각 없이 천 번 넘게 사용했다가 진짜 온몸이 아파 죽는 줄 알았다.

몸에 주는 부담감이 이리 큰 무공이라니.

화경이라 딱히 체력단련이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하루 반 시진 정도 금나수를 연습하며 몸을 단련하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천강이었다.

'그건 그렇고, 어디 보자. 분명 아직 요 근처에 있는 것 같긴 한데 말이야.'

바닥을 훑으며 걸음을 옮기는 소년.

차마 신수를 포기할 수 없던 천강은 놈을 다시 만나기 위해 늦은 밤 다시 수색에 나섰다. 정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나선 것으로, 사실 큰 기대를 가진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약 두 시진 정도 바닥을 뒤지고 다니자, 천강은 의미 있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있다! 얼마 안 된 흔적이야!'

새하얀 털과 발자국. 천강은 그곳에서부터 시작해,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며 놈의 흔적을 추적해 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놈의 뒤를 쫓았을까.

사삭- 사사삭-

무언가 날쌘 움직임이 벼들 사이로 이루어졌다. 천강은 전력으로 그것을 뒤쫓았다.

암운행보.

곡식들의 머리를 밟고는 빠르게 뛰어간다.

어둠 속. 달빛이 은은히 내려앉은 들판에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수풀을 가르고 이곳저곳으로 정신없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찾았다!'

아직 이곳에 있었구나!

천강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 몸을 뒤로 활처럼 휘었다. 그리고는 녀석이 나아가는 방향을 예측해 단숨에 쏘아져 나갔다.

궁신탄영(弓身彈影).

핑- 한 발의 화살이 되어 빠르게 쇄도해 나가는 천강. 그러나 놈이 잠깐 멈칫 하더니, 방향을 홱 튼다.

"아앗!"

천강 또한 암운행보로 급하게 방향을 비트나, 멈춰야 할 지점에서 한참을 쭉 밀려나가고. 그사이 녀석은 저 멀리 도망쳤다.

"젠장."

잽싸게 그 꽁무니를 뒤쫓으나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의 빛. 천강은 푹 한숨을 내쉬고는 숙소로 복귀했다.

"아니, 뭔 움직임이 그리 매끄러워?"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다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다니···. 마치 처음부터 옆으로 달리고 있었다 해도 믿길 정도다.

'앞으로는 쫓는데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궁신탄영 같은 건 자제를 해야겠어.'

최대한 방향 전환이 용이하게 몸을 낮추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후우. 아무튼 급하지 말자.

자고로 큰 물고기를 낚을 때도 우선 힘부터 빼는 법이다. 내일은 놈이 지칠 때까지 쫓아다녀 보도록 하자.

'혹시 내일 안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다음 날.

다행이 전날의 기우는 그저 기우로 그쳤다. 오히려 첫날보다 더욱 흔적을 빨리 찾을 수 있었다.

거의 보란 듯이 새져져 있는 흔적들. 순간 함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천강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잡으면 그만이지!'

그러나 전혀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헉. 허억. 이런 미친?"

자시(子時)부터 시작한 추격전.

무려 세 시진을 뒤쫓았다. 그런데 뛰어도 뛰어도 도저히 지칠 기세가 보이질 않는다.

반대로 천강이 숨이 차 쓰러질 지경.

새벽녘이 밝아오는 걸 보고서야 천강은 자신의 전략이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젠장. 놈이 신수라는 걸 깜빡했어.'

스승이랑 잡았던 만년화리의 경우에도 낚싯대를 들고 무려 두 시진을 뛰어다녔었다. 그런데 무려 영물 중에서도 제일이라는 사대신수 중 하나에게 체력 싸움을 걸다니. 내가 미쳤지.

'하아. 어떻게든 그 몸에 손만 대도 인정해 줄 것 같은데 말이야.'

새벽마다 쫓아다니는데도 도망 안 가고 여기 눌러 앉아 있다는 건, 어떤 모종의 이유가 있거나 혹은 녀석도 천강 자신과의 놀음을 즐기고 있다는 뜻.

아마 놈을 잡는 순간, 혹자가 말한 그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천강이었다.

그러나 녀석을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암운곡 복귀로의 날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천강은 마음이 조급해지는 걸 느꼈다.

'생각해, 천강.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스승님은 그러셨다.

간절히 원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못 이룰 게 없다고. 만약 그러고도 이루지 못한다면 그건 하늘의 뜻이 아니라고.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이 있을지 몰라.'

매복, 함정, 음식, 뇌물(?), 협박(?)까진 해봤다. 두발로 뛰고, 네발로 달리기도 해보고.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괜찮은 방법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떠오르지 않는 방법.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천강의 안광이 번뜩였다.

 

***

 

싸아아-

은은한 달빛이 내려앉은 밤.

풀벌레들의 합창 소리가 즐거이 울려 퍼지는 들판에서, 한 거대한 존재가 앉아있다.

백색 털의 바탕에 일정한 물결 형태의 문양을 가진 그것은 포식자 중 단연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범의 형상이었으나, 흥미롭게도 사람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발톱으로 자신의 턱을 쓸며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안 오는 건가?'

얼마 전 그는 한 소년을 유인해 풍미관 북쪽으로 이끌었다. 신수는 인간의 일에 직접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것은 금지된 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로 인해 그는 소년에게 빚을 지게 되었으니, 지금 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그 보상이었다.

'그런데 이번 인간도 날 잡기엔 역부족인 것 같군.'

하긴. 지금껏 단 한 번도 그의 시험을 통과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오죽하면 그의 동료들이 그에게 한마디씩 할 정도였다.

"백호. 기준을 낮춰라. 과연 인간 중에 네 마음에 들 만한 이가 나올지 의문이다."

"그냥 나처럼 적당히 괜찮은 애 만나면 힘을 실어 줘. 뭘 그리 까다롭게 굴어?"

"야야. 그냥 내비 둬. 내가 볼 땐 그냥 주기 싫은 거야."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비록 일부이긴 해도, 사대신수 중 하나인 자신의 힘을 갖는 인간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 생각해온 백호였다.

'그러나 이번 인간도 그다지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는군.'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 멀리서 그의 흔적을 추격해오는 소년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백호의 신형이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그렇게 재개된 달밤의 추격전.

백호는 앞으로 내달리며 뒤를 슬쩍 쳐다보았다. 어린 소년이 그를 바짝 뒤따라오며 추격해오고 있다.

'일단 직선거리에서의 속도는 나쁘지 않지만.'

서서히 좁혀지는 거리를 확인하고는 왼쪽으로 홱 방향을 튼다. 그 자리서 바로 방향전환이 되는 자신과는 달리, 소년의 몸은 옆으로 주르륵 밀려났다.

'시험은 끝났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팡.

'응?'

갑자기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각. 고개를 돌린다. 웬 돌멩이 하나가 그의 몸에서 떨어져나간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건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방향을 트는 순간, 소년이 들고 있던 돌멩이에 강기를 실어 던진 것이었다.

'이런 건방진!!'

백호가 뜀박질을 멈추고는 몸을 돌려세웠다.

 

***

 

'워. 이거 아주 단단히 열 받았나 본데?'

족히 20척은 되어 보이는 신장. 쫓을 땐 몰랐는데 덩치가 상당하다. 인간마냥 두 다리로 선 행태는 마치 거대한 곰을 보는 듯도 했다.

달빛 아래 너울너울 굽이치는 털들은 그 주인의 분노를 대변하는 듯했다.

'이미 돌멩이는 던져졌어. 할 건 마저 해야겠지?'

천강은 마른침을 삼키며 팔을 뒤로 젖혔다. 그리고는 팔을 힘껏 휘둘렀다.

소년의 손에서 돌멩이가 날아가 신수의 이마를 톡 때린다. 그 행태에, 애써 분노를 삭이며 그냥 시험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백호의 이성이 뚝 끊겼다.

"크어어어!"

그는 고함을 내지르며 천강에게 팔을 휘둘렀다.

"어이쿠."

재빨리 암운행보를 사용해 회피하는 천강.

백호의 팔이 매섭게 움직인다. 팔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공간이 갈리는 건 물론, 거센 바람이 일고 강기가 쏘아져 나간다.

그러나 천강의 얼굴엔 여유가 그득했다.

'좋아. 모든 건 계획대로!'

한 나절 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천강은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자신은 절대 백호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인간이 신수를 속도로 따라잡는다는 게 어불성설이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천강은 추격에 영 소질이 없었다.

'그래서 전생에 매번 암살자들에게 당하기만 했지.'

끽해야 천강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당하는 척 하며 반격을 먹이는 것 뿐.

'그러나 이런 상황이라면 다르지!'

쫓는 건 몰라도 피하고 방어하는 덴 자신이 있는 천강이었다.

쿵. 쿠구구구-

지축이 흔들리고 하늘 위로는 거친 폭음이 인다. 신수의 분노를 보여주듯, 땅이 갈라지고 하늘에선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암운행보와 북명신공을 통해 신수의 맹공을 필사적으로 피하는 소년.

'이런 쥐새끼 같은 놈이!'

백호가 팔을 치켜든다. 그리고는 힘껏 땅바닥을 내리친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땅덩어리들. 하나하나에 신적인 기운이 어려 매우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위기의 순간에도 천강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아니, 도리어 눈에는 이채가 띠었다.

암운신공.

천강의 몸이 검은 어둠으로 뒤덮인다. 그 상태로 회피 기동하며 흙먼지 속으로 파고든다.

'어딜!'

백호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사위로 칼날 같은 강기의 바람이 쏘아져 나갔다.

'기운이 안 느껴지는군. 맞고 멀리 날아간 건가?'

잠깐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백호가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하늘 위로 쳐들었다.

그의 머리 위로, 기이한 검은 안개가 떨어져 내리고 있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검은 덩어리. 그러나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백호의 눈은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이놈!'

빠르게 위로 올라오는 발톱.

그러나 소년이 조금 더 빨랐다.

"잡았다!"

떨어지는 검은 안개에 가속도가 붙더니 그 안에서 불쑥 손이 튀어나왔다.

그 손은 정확히 백호의 이마를 짚었고 이내 강하게 흡입하기 시작했다.

북명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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