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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64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9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64화

64화. 현경조차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독

 

 

고오오-

어둠 속으로 세 존재가 덩그러니 서 있다.

시체들 사이로 허수아비마냥 일절 미동이 없던 그들은 구름에 가려진 달빛이 비추는 순간, 찬찬히 고개를 옆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붉게 물든 눈으로 암운곡의 교관들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라기 보단 맹수의 그것과 흡사한 눈이었다.

"저것들은 대체···. 인간의 눈이 아닌데?"

"혹 혈강시?"

"그렇다고 하기엔 이렇다 할 내기가 전혀 없는 게 마음에 걸리는군. 사기(死氣)라도 존재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적과의 조우에 암운곡 교관들의 표정이 미약하게 굳었다. 그러면서도 실력자들답게 싸울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에 따라 두 집단 사이로 흐르는 무거운 침묵.

폭풍 전야의 고요가 대지를 휘감는다. 고요하지만 물밀 듯 서로에 대한 견제가 오고간다.

그러다 그 흐름을 먼저 깬 것은 복면인들이었다.

사사삭-

빠른 속도로 접근해 와, 단숨에 검을 날려 오는 미지의 적들. 그런데 그 초식이 굉장히 눈에 익었다.

"이것은 남궁?"

"이놈들! 여울나무 쪽 놈들이었구나!"

여울나무 세력은 정파에서 흘러들어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싸우다 보면 종종 정파의 기술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공격만 할 줄 알았지, 치고 빠지는 전술은 배우지 못했나 보구나!"

세 사람이 놈들의 공격을 방어하고, 다른 다섯이 그 틈에 일격을 먹인다.

세 명의 적을 향해 단숨에 짓쳐드는 날붙이들!

그렇게 간단하게 놈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어?"

"이 새끼들 이거 뭐야?"

"강기가 먹히질 않아···?"

암운곡 교관들의 입에서 당혹스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니, 강기를 막아내다니. 이 무슨···?'

그러건 어쩌건 놈들은 공격을 지속했다. 방어 따윈 하지 않고 오로지 공격일변도로 일관해 몸을 움직인다.

"큿. 정신 차리고 다시 제대로 해봐!"

"급소를 노려!"

세 사람이 다시 방어를 하고, 다섯이서 그 사이 공격을 재시도 한다.

다섯 교관은 서로를 한 번씩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일심으로 신체의 부위 중 절대 단단할 수 없는 접합부를 노렸다.

겨드랑이, 오금, 항문 등.

그러나 결과는 조금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미친?!"

"강기가 조금도 파고들지 못한다고?"

"너희들, 대체 정체가 뭐냐?"

칼을 맞대고 있는 검술교관의 질문에, 복면인이 나직이 대답한다.

"···우리는 어둠을 삼키는 어둠. 무림인들을 처단할 사신."

"뭔 개소리를 지껄이는 게냐!"

뒤에 있던 곤술 교관이 양손으로 철퇴를 힘껏 내려쳤다. 그것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위에서부터 내려오더니, 가차 없이 복면인의 정수리를 내려쳤다.

그러나 그런 맹공에도 그저 자신의 할 말을 이어 나가는 녀석.

"모든 무림인은 우리에게 죽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

철퇴가 흘러내린다. 맞은 자리엔 아무런 상처도 없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곤술 교관.

그때 지금껏 검술 교관만을 집요하게 노리던 녀석이 재빨리 검을 회수해 뒤로 찌르기를 날렸다.

"커헉···."

사신의 검이 곤술 교관의 심장을 관통한다. 그는 붉은 핏물로 도색된 검을 빼들며 나직이 말했다.

"무림인들은 쓰레기다. 우리는 그러한 쓰레기들을 처단하는 천명을 받은 사신들."

세 복면인의 기세가 확 달라진다. 그들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날뛰기 시작했다.

"오늘, 네놈들의 쓰레기 같은 삶에 종지부를 찍어주겠다."

 

***

 

'이, 이대로 끝날 순 없어!'

자신이 누구인가.

모용세가에서 제일가는 무인 아닌가? 그런데 이깟 현경도 못 단 애송이에게 꼴사납게 당한다고?

"난 모용진이다! 모용세가의 제일검!!"

모용진이 최후의 발악으로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에 따라 천강과 모용진 주위로 엄청난 광풍이 몰아쳤다.

그 엄청난 기세에, 천강의 등에 검을 꽂았던 이는 기운을 다 빨리자마자 튕겨져 날아갔고. 나무에 부딪치며 목이 부러져 죽었다.

"오오. 역시 현경은 다르구만? 마지막조차도 화려해. 이런 걸 보고 회광반조(回光返照)라 하는 건가?"

"헛소리! 나는 반드시 네놈을 쓰러뜨려···."

"흐응~ 쓰러뜨려?"

그러나 말을 하던 모용진의 표정이 이내 딱딱하게 굳는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마, 말도 안 돼. 이 많은 기운을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그대로 흡수한다고? 뭐 이런 사기 같은!"

"너 말이야. 아까부터 자꾸 사기사기 거리는데···."

천강이 얄미운 미소를 짓는다.

"사기 맞아. 내가 봐도 내 무공은 지상 최고로 사기인 듯!"

그리고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천강은 모용진의 단전에 남은 기운을 쪽 빨아들였다.

내기를 다 빼앗겨 빈껍데기만 남은 모용진의 신형이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털썩.

"아, 아아?"

"어때? 화경에게 탈탈 털린 기분이?"

아무 말도 못한다. 자신이 졌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이래서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한다니깐. 격이 다르다더니 정말로 다르긴 하네. 현경치고는 이렇게 별 볼일 없을 줄이야."

물론 천강 본인이 강해진 부분도 있지만, 천산의 보고에 있었던 현경에 비하면 요 녀석은 햇병아리 같은 느낌이 강했다.

"이놈! 날 능욕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죽여라."

"오호?"

내기는 다 빼앗겨도 입을 나불댈 힘은 남아있는 걸 보면 역시 현경은 현경일세?

모용진을 보고는 천강이 해맑게 미소 짓는다. 그리고는 갑자기 주위를 막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바닥을 훑고 돌아다니는 소년.

"뭐하는 거지? 설마 아까 찾던 걸 찾는 건가?"

"아. 그러고 보니 그 일도 있었네?"

쭈그려 앉아 있던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의 손에는 기다란 막대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모용진은 오싹한 기분이 드는 걸 느꼈다.

"자, 잠깐. 그걸로 뭘 하려는 거지?"

"뭘 하긴. 그냥 적당히 기분 풀이 좀 하려고."

"기분 풀이라니. 설마···. 아니지? 전투불능이 된 사람을 무자비하게 패고 하는 그런 몰상식한··· 아악!

"맞아. 내가 좀 못 배웠거든. 그러니 깨달음이 고상한 네가 이해 좀 해줘."

천강의 팔이 위에서 아래로 사정없이 움직인다.

내기를 다 뺏긴 탓에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모용진은 그 매질을 고스란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악. 아악! 자, 잠깐만! 잠깐 할 이야기가··· 으아악!"

"응. 일단 좀 맞고 이야기하자."

"어, 언제까지 맞아야. 끅. 컥···."

"내 화가 좀 풀릴 때까지. 네놈 때문에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가 날아가 버렸거든."

영물도 아니고 무려 신수다. 전설 속에나 나온다는 존재. 그런데 이깟 놈 때문에 그런 존재와의 만남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천강의 손속에는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퍽.

"아악!"

퍽퍽.

"자, 잠깐! 거기는 남자의···."

퍽퍽퍽.

"바, 발바닥 멈춰! 악! 발가락 맞았어! 새끼발가락 맞았다고!"

퍽퍽퍽퍽퍽.

달밤에 숲 위로 쩌렁쩌렁 울리는 몽둥이찜질 소리.

그 섬뜩한 광경과 음성에 총책임자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품 안에 손을 넣었다.

'이대로 있다간 나도 저 꼴이 난다. 그 전에 이걸 사용해야만 한다.'

그의 눈은 마치 중대한 결심을 한 것처럼 결연한 빛이 어렸다. 그는 한 달 전 이 물건을 넘겨받을 때를 떠올렸다.

 

***

 

한 달 전.

"준조."

"예, 태감(太監)."

"천산 쪽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네가 나 대신 그곳에 가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와줘야겠다."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래. 그리고 혹시 모르니 이것을 가져가라."

준조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손에 놓인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안에는 잘게 빻은 어떤 가루가 들어있는지, 무게는 가벼우면서도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촉감은 부들부들했다.

"태감(太監). 이게 무엇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준조. 넌 오랜 기간 내 곁에서 내 이런저런 일을 도와줬었지. 난 그런 네가 죽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위험한 상황에 처하거든 지체 말고 쓰거라."

"헙! 서, 설마. 그럼 이것은···."

준조의 손이 쉴 새 없이 떨렸다.

손바닥 위로 놓인 이 가벼운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기억해라. 어중간하게 쓰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태워야 한다면, 한 번에 다 태우거라."

 

***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총책임자 준조는 품안에서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그것의 가치를 아는 그의 손은 수전증에 걸린 사람마냥 계속 떨어댔다.

'태감(太監). 감사합니다! 뛰어나신 선견지명 덕분에 제가 살아 돌아갈 수 있을 듯합니다!'

고개를 든다. 저 멀리서 매질을 당하고 있는 한 사내가 보인다.

하핫. 정파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고수라며 칭송이 자자한 모용세가의 제일검 모용진이 일개 소년에게 저리 개처럼 맞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아마 무림 전체가 발칵 뒤집어지리라.

준조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화섭자(火攝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후후 불을 붙였다.

'성공만 한다면 제 아무리 화경, 아니 현경이라도 죽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었다, 이 가루는.

무려 무림 정벌을 위해 비밀리에 제작한 독성물질.

사실 이것 자체만으로는 인체에 무해하나, 특성 물질과 만나면 희대의 극독을 만들어내는 성질이 있었다. 즉, 사람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촉매제의 역할을 한단 의미였다.

준조의 손이 분주해진다. 재빨리 주변에서 낙엽과 마른 나뭇가지들을 끌어 모아 불을 키운다.

그러자 활활 타오르는 불길.

그러나 너무 불길이 강했던 걸까?

"응? 너 뭐하냐?"

현경의 고수를 막대기로 신나게 매질하던 소년이 관심을 표한다. 준조는 재빨리 주머니를 불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뿌연 연기.

준조의 얼굴에 미소가 완연해졌다.

"하하핫. 이미 연기는 피어올랐다. 넌 이젠 끝이야!"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갑자기 천강의 발밑에서 엎어져 있던 모용진이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컥. 커헉···."

마치 숨을 못 쉬겠는 것처럼 양손으로 제 목을 움켜잡는 녀석.

이내 모든 구멍이란 구멍에서 붉은 물줄기를 줄줄 쏟아내더니, 부르르 떨다 그대로 숨을 거둔다.

"······."

그것은 정말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곧바로 무거운 침묵이 그곳에 내려앉았다.

'이게 대체 무슨?'

아니, 아무리 내기를 한 번 쪽 빨렸다손 치더라도 명색이 현경인데···. 이렇게 급사한다고?

"하하핫. 봤느냐? 이젠 네 차례다! 내기가 많아 당장은 버틸지는 모르나, 곧 네놈 또한 네 발밑의 녀석처럼 온몸으로 피를 토해 죽게 될 것이다!"

너의 끝은 이미 정해졌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사망 선고를 날리는 준조. 그 말을 듣자 왠지 천강은 목이 따끔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매운 것 같기도 하고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음? 설마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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