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6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63화
63화. 두전성이
어둠 속. 촛불 몇 개가 피어오르고 있는 작은 방.
한 사내가 의관을 정돈하고 있다.
그때 홀연히 바람이 분다 싶더니, 그의 뒤로 누군가 부복했다.
"그래. 보고하거라."
"마교 놈들과 만남을 갖기 위해 떠났고, 그 일행으로 모용진이 함께했습니다."
"모용진이면…… 얼마 전 현경을 달았던 애송이였던가?"
"그렇습니다."
"그렇군. 확실히 그 정도 실력이면 방해하는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 수 있겠지."
현경도 현경이지만, 모용세가의 절기는 바로 이화접목(移花接木). 그러니 상대가 어떤 부류인지 파악하는 데에는 그만한 인물도 없을 것이리라.
물론, 실력에 비해 생환율도 높은 이점도 있고.
"아무튼 결과가 나오는 즉시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
한 차례 태풍이라도 지나간 듯, 쓰러진 나무들이 산해를 이루는 곳에서 두 존재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이립(而立)즈음 되어 보이는 사내가 소년을 향해 비웃음을 짓더니, 툭 도발을 날렸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그런데 가능하겠나? 화경 나부랭이께서?"
"왜 그리 자신만만하나 했더니, 현경이라고 눈에 뵈는 게 없었구나?"
신수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그제야 상대의 수준이 눈에 들어온 천강.
나무에서 내려와 좌우로 목을 푼다. 그 앞에 선 모용진은 왼손을 뒷짐 진 채 칼을 밑으로 늘어뜨렸다.
"잘됐네. 안 그래도 현경하고 한 번 붙고 싶었거든."
완성된 북명신공이 어느 정도일지 시험하고 싶어졌다고 할까?
딱히 주변에 맞붙을 이가 없었는데 알아서 나타나 주다니. 천강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올라왔다.
"하. 어린 놈이 정말 거만하구나. 아니, 분수를 모른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
"길고 짧은 건 늘 대봐야 하는 법이다."
"그거야 경지가 같을 때 이야기 아닌가? 넌 화경, 난 현경. 네놈과 나는 격이 다르다."
"응, 그래. 일각(一刻) 이후에도 어디 동일하게 말할 수 있는지 보자고."
천강이 자세를 낮춘다. 그에 반해 모용진은 여전히 허리를 꼿꼿이 펴고 여유로운 자세를 유지한다.
멀찍이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총책임자가 옆의 사내에게 물었다.
"자네가 보기엔 어떻게 될 것 같나?"
"승패를 말하는 것이오?"
"이미 승패는 모용진으로 정해져 있지 않나? 내 말은 몇 합에 끝이 날 거냐 그 말일세."
"글쎄올시다. 화경이라 했으니 대략 열 합에는 끝나지 않겠소?"
"열 합이라……. 그럼 난 다섯 합에 걸겠네."
"하핫. 내기입니까? 그거 좋지요."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용진이 움직였다.
츠팟.
갑자기 사방에서 강풍이 인다.
시야를 가릴 만큼의 급한 기류.
촘촘하게 그물망을 형성한 그것은 바닥에 쌓인 흙먼지와 낙엽들을 위로 크게 털어내며 모여들었고, 이내 사위에서 소년을 향해 강하게 짓쳐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모용진의 검이 있었다.
성광추혼검. 연(連)!
쿠콰콰콰콰-
맹렬한 태풍이 몰아치며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움직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걸 마주하는 소년은 가만히 있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거센 흐름을 그저 지그시 바라보는 소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그 모습은 마치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총책임자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소리쳤다.
"하핫. 이거 한 합에 끝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
그뿐 아니라 모두가 그리 생각한 그 때였다.
소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온다. 그리고 그 순간 벌어진 말도 안 되는 현상.
"어…… 어?"
사방에서 짓쳐들던 거센 흐름이 한낱 미풍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쏘아져 나가던 모용진의 검은 소년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뭘 그리 놀라고 그래, 현경 나리?"
"이, 이게 대체 어떻게?"
"음. 글쎄. 이름이 모용진이라고? 굳이 그쪽 가문 무공으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두전성이(斗轉星移)라 할 수 있겠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두전성이는 모용세가의 비기 중의 비기다.
상대의 힘과 공격을 흘려서 고스란히 맞받아치는 모용세가의 절기라 할 수 있었다. 그 완성도가 얼마나 뛰어나면, 타 세가들조차 독자적으로 개발을 시도하다 포기하고는 탐을 낼 정도로.
그런데 그걸 따라했다고?
"헛소리!"
그러나 그 다음 벌어진 일로 인해 모용진의 눈은 크게 뜨일 수밖에 없었다.
천강이 검을 쥔 손을 놓는다. 그러면서 심심할 때마다 무진이를 보며 따라하던 무공을 사용한다.
지천뇌공.
파아아앙-
"큭?!"
그 어떤 형(形)도 움직임도 없었는데 이런 파괴력이라고……?
지천뇌공을 얻어맞은 검이 크게 튕겨져 나가며 모용진의 상체가 훤히 드러났다. 천강은 그 안으로 파고들며 소리쳤다.
"자! 그럼 어디 제대로 힘 좀 내보라고, 현경 나리!"
***
"무언가 시끄럽군."
숲의 저편에서 이는 큰 폭음에 암운곡 교관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딱 봐도 싸움이 일어난 듯한데, 전혀 짐작 가는 데가 없다.
"저 방향이면 외부의 적들이 나아간 방향이 틀림없는데."
"우리 외에도 투입되기로 계획된 이들이 있었나?"
"아니. 없었다."
"그렇다면 저건 대체……?"
"누구인지는 몰라도 우리로서는 기회인 셈. 마교의 배신자들을 지금 처단하도록 한다."
사사삭-
암운곡 교관들의 신형이 바람같이 움직인다. 그들은 단숨에 검은 해일이 되어, 마교로 복귀 중인 배신자들에게 들이닥쳤다.
"무, 뭐냐?!"
"모조리 죽여라!"
순식간에 짓쳐들어 적들을 무참히 도륙하는 교관들.
단 한 합에 그렇게 숙청이 되어 끝이 나는 듯했다. 그러나 몸을 돌렸을 때,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8명의 적 중, 세 명이 멀쩡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칼이 얕게 들어갔나?"
"그럴 리가. 좀 단단한 느낌은 있었어도 베는 감각은 정확히 느껴졌는데?"
복면을 써 얼굴을 알 수 없는 세 존재가 그들을 돌아본다. 왠지 모르게 피부를 싸하게 만드는 그들의 존재감에 교관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상하군. 이상해. 나만 놈들의 기운이 안 느껴지나?"
"나도 마찬가지다. 마치 송장마냥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군."
"흥. 그저 내기를 잘 숨기는 놈들인 줄 알았더니, 이번엔 실력자들을 끼워 보냈다는 거로구만."
교관들이 다시 자세를 잡는다. 적들 또한 일제히 검을 뽑아든다.
양 진영 사이로 일순 폭풍전야의 고요가 내려앉았다.
***
모용의 제일검.
장문인을 넘어선 모용세가의 최강자.
현경에 다다른 고수.
호사가(好事家)들에 따르면, 능히 정파 내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고수. 그게 바로 모용진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늘 더욱 강해지기를 힘써왔고, 그 덕에 수많은 전투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런 그였으나, 지금의 상황은 그 모든 경험치가 무색해질 정도로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야. 뭐하냐? 제대로 안 하냐?"
소년이 주먹을 내지른다. 모용진은 강기에 둘린 그 주먹에 검을 가져다 대고는, 수만 번도 더 연습한 모용세가의 비기를 사용했다.
두전성이(斗轉星移).
검이 팽그르르 회전한다.
'궤적과 흐름은 정확하다. 찔러 들어오는 주먹의 흐름도 예측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 검의 움직임에 따라 옆으로 선회하는 흐름이 나와야할 터. 못해도 잠깐이라도 멈춰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튀어나왔다.
주먹이 그대로 일직선으로 나아온 것이다. 소년의 주먹은 검을 뚫고 안으로 들어왔고, 이내 모용진의 얼굴에 닿는 순간 팡!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크허억……."
마, 말도 안 돼! 분명 두전성이가 발동이 돼, 적의 공격을 그대로 되돌려줘야 하거늘. 발동 자체가 안 된다고?!
모용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독자적으로 두전성이의 묘리를 완성시켰단 말인가?'
그것도 본가보다 더욱 완벽하게?!
물론 여기엔 천강의 장난질이 있었다.
주먹을 내뻗으면서 강기가 맞닿는 순간엔 북명신공을 운용, 적의 내기를 쪽 빨아들이고. 타격을 가하는 순간엔 지천뇌공을 사용해 결정타를 먹인 것이었다.
그러니 반격을 가할 수가 있을까? 반격을 위해 운용한 기가 그대로 고스란히 천강에게 빨려들어 갔는데?
물론 현경인 만큼 그 원인이 흡공임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으나, 첫 격돌 때 천강이 두전성이와 같은 기술이라며 입을 놀려 놓은 탓에 차마 그 진실에 깨달음이 닿지 못하고 있는 모용진이었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잖아? 적의 기운을 흡수해 그대로 되돌려주는 거니까, 말 그대로 두전성이지!'
천강의 얼굴에 개구쟁이 같은 표정이 올라왔다.
"여어. 모용세가 나리. 어때? 내 두전성이의 맛이? 매번 본인이 쓰다가 직접 맞아보니 기분이 묘~한가?"
"대체 어떻게……."
"뭘 어떻게야. 열심히 하니 된 거지. 자, 다시 간다. 이번엔 꼭 막아봐라?"
"이이익!"
천강의 주먹이 다시 쇄도한다. 남자가 검을 움직인다.
"어이. 너희 세가의 자랑인 반격 안 하냐? 응? 안 해?"
"흐아앗!"
그러나 몇 번을 해도 변하지 않는 결과.
모용진이 비틀거렸다. 그의 얼굴은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부어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 이대로라면 내가 먼저 뒈질지도 모른다.'
소년의 범상치 않음을 그제야 깨달은 모용진은 사태 파악에 들어갔다.
'아까 몸놀림으로 봐서는 절대 도망칠 수 없다.'
심지어 화를 제대로 돋우어 놓았기에 용서를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단전에 남아있는 내기를 모두 끌어 모은다. 그런 뒤 단숨에 소년을 향해 돌진한다.
성광추혼검. 연(連)!
거세게 휘몰아치는 태풍. 그 중심에서 모용진은 검을 일직선으로 세워 소년에게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는 소년이 검을 잡는 순간, 검을 버리고 소년의 목을 움켜쥐었다.
"오? 내력 싸움을 거는 거야?"
"이러면 그놈의 두전성이도 쓰지를 못하겠지!"
"흐응. 글쎄?"
소년이 방긋 미소 짓는다. 그 순간 모용진은 느꼈다. 자신의 선택이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고.
소년의 손이 올라와 모용진의 손목을 움켜쥔다. 모용진의 입은 열리다 못해 턱이 빠질 정도로 떡 벌어졌다.
"이, 이게……?"
"미안하게 됐네. 난 이 상태에서도 쓸 수 있거든."
"말도 안 돼! 이럴 순 없어!"
모용진의 기운이 천강에게로 빨려 들어간다.
그는 당황을 했는지, 아직까지도 천강의 무공이 흡공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이 내력 싸움을 위해 내공을 밀어 넣은 탓이라 생각할 따름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판단한 걸까? 모용진이 큰 소리로 외쳤다.
"도와주시오! 어서 이놈 뒤에서 칼을 꽂으시오!"
총책임자와 중년 사내가 서로를 쳐다본다.
"뭐하는 것입니까! 지금 이 소년을 죽이지 않으면 모두 죽습니다! 두전성이는 한 번에 두 개의 공격은 막지 못하니, 타격을 주려면 지금이 유일합니다!!"
그제야 중년 사내가 몸을 움직였다. 날렵하게 다가와 검을 빼들고는 천강의 등에 검을 꽂는다. 그러나…….
"끄아아악!"
"미안. 난 한 번에 여러 개 공격도 흡수 가능해."
"흡수 가능하다니? 서, 설마 흡공?!"
"아, 이런 실수. 정체를 들켜버리고 말았네?"
모용진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으아아악! 이 사기꾼 새끼가아아아!!"
"그럼 잘 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