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59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59화
59화. 협상
"야, 근데 저건 좀 치사한 거 아닐까?"
천강이 사라지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아이들. 그중 여울나무 방향을 바라보던 한 아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굳이 저렇게까지 안 해도, 열심히 하면 충분히 이길 것 같은데."
그도 그럴 게,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건 추수 일하고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 않은가? 아직 어려 선의의 경쟁 이런 걸 생각하는 애들이었다.
그러나 의외의 곳에서 옹호하는 발언이 튀어나왔다.
지나가다 그 이야기를 들은 13번 왈.
"선배. 싸움에 치사한 게 어딨습니까? 본래 인생은 전투입니다. 막말로 전설의 무기 들고 온 저쪽이 더 치사한 거 아닙니까?"
"하긴. 듣고 보니 그러네."
이건 뭐…… 애들 뒷골목에서 하는 전쟁놀이에, 진검을 들고 참가한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곧바로 고개를 주억이며 수긍하는 아이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던 소운이 거기에 한마디 더했다.
"그리고 씨발 아니꼬우면 한 판 붙자 해. 어차피 마교는 힘이 센 놈이 장땡이야!"
그렇게 한땐 적이었던 이들까지도 완벽하게 아군으로 포섭해 변호 받게 된 천강이었다.
그 시각 천강은 여울나무 쪽 수풀 사이에 숨어 조용히 적들의 움직임을 염탐하고 있었다.
고개만 빼꼼 내밀고는 좌우를 살피는 소년. 그런데 얼굴 표정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킁. 문제네. 어떻게 접근하지? 생각보다 숫자가 많아서 작업하기가 힘든데.'
유동인구가 거의 500명 가까이 되다보니,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것.
그래도 가만히 기회를 노리자, 적절한 순간이 포착됐다. 한 소년이 볼일을 보겠다며 한쪽으로 빠진 것이다.
"으으. 시원하다."
몸을 부르르 떨며 소변을 누는 소년에게 접근한다. 긴장감이 한창 풀리는 도중인지, 아이는 천강이 바로 뒤로 접근할 때까지 그 어떤 낌새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바지를 올리고는 옷매무새를 점검하는 소년.
"그럼 어디 다시 움직여볼……."
퍽. 뒷목을 강타하는 타격에 소년의 신형이 쓰러진다.
천강은 아이의 내기를 쪽 빨아들이고는, 한쪽 땅 위에 드러눕혔다. 그리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볏단을 두터이 덮어주었다.
"오늘 오전에 일하느라 힘들었지? 동료들 믿고 내일까지 푹 쉬라고."
밤새 따뜻하게 잘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천강이었다.
'자, 그럼 어디 이번에는…… 그래. 좋아. 너로 정했다!'
***
"청청?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어? 암운곡에서 뭔가 하는 게 보여?"
"아, 아무것도 아냐."
소녀가 양팔을 내저으며 작게 웃는다. 차마 무진이 있나 찾고 있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어, 청청은 미소로 대충 얼버무렸다.
"싱겁기는. 근데 뭐지? 아까부터 만덕이가 안 보이는 것 같은데?"
"나도. 아까 잠깐 휴식 취할 때도 못 본 것 같아."
사실 만덕이 뿐만 아니라 몇몇 선배들도 안 보였지만, 선배들의 경우에는 농땡이 피우는 것일 수도 있기에 조금도 의심을 않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천강의 북명신공을 완성하기 위한 움직임은 그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은 채 은밀히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 그 시각. 풍미관 사무실.
발칵 뒤집어지다 못해 비상이다.
"그러니까…… 소교주의 소문이 사실이고, 우리에게 제대로 된 숙소를 내어줄 걸 당당히 요구한 게 바로 그 소교주라 이 말이지?"
"예, 예. 그렇습니다요, 대방 어르신."
배불뚝이 중년 남자가 이마를 짚고는 의자에 쓰러졌다. 종사가 그의 뒤로 다가가, 두 어깨를 꾹꾹 주물렀다.
"흑살마신 일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이번에는 교주의 아들이라니…….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냥 확 무시하는 게 좋겠지? 괜히 대접했다가 투파창귀님 귀에 들어가면……."
그러나 종사의 생각은 좀 다른 듯했다.
"대방님. 그냥 숙소 제대로 된 걸 내어주십시오. 그게 낫습니다."
"왜?"
"소교주가 요구했고 저희가 그 부탁을 들어준다면, 이후에 교주 쪽이 마교를 장악하는 일이 벌어져도 저희에게 일말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오!"
"거기다 원래라면 여울나무와 동등하게 숙소를 내줬어야 하는 게 원칙. 우린 그걸 내어준 것뿐입니다. 문제가 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과연! 그 말이 참으로 옳도다! 네가 있어 정말 든든하구나! 하하핫."
그러나 말은 그리했어도 진짜 그래야 할 이유는 따로 있었다.
풍문에 따르면 현재 소교주의 실력은 초절정이다. 그런데 이곳 풍미관에서 제일 강한 자는 절정이다.
즉, 만약 소교주가 자신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성질을 낸다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이곳 풍미관 내엔 아무도 없단 뜻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 종사는 어떻게든 대방이 소교주에게 극진히 대접하도록 선택을 유도했다.
"그런데 종사야."
"예, 어르신."
"우리 풍미관에 500명이 묵을 만한 좋은 숙소가 있던가?"
분명 소교주는 말했다. 제일 좋은 숙소로 내달라고.
그것이 떠오른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
"자, 오늘 일은 여기까지 한다. 이만 파해라."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일을 마치고 숙소로 향하는 아이들. 하나 같이 녹초가 된 상태다. 서로를 향해 으르렁댈 힘도 없다.
여울나무와 암운곡은 일렬로 쭉 나아가다가, 갈림길에서 좌우로 슥 갈라섰다.
그리고는 그대로 헤어지려는 그 순간, 여울나무 관리자와 추밀이 의미심장한 말을 뱉었다.
"너희들 숙소 옮겨졌다. 이쪽으로 와라."
눈이 휘둥그레져 서로를 쳐다보는 암운곡 아이들. 그런데 새 숙소에 도착하는 순간, 더욱 눈이 커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울나무와 한 숙소였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무순님! 왜 갑자기 암운곡 놈들이 저희랑……."
"사정이 그렇게 되었다. 그러니 다섯이서 하나 쓰던 방을 열 명이서 쓰도록 한다. 암운곡 또한 마찬가지."
"무순님!"
말을 마친 여울나무 관리자가 도망치듯 사라진다. 흘끗 천강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며 사라지는 무순에게, 천강은 잘했다며 손을 한 번 들어주었다.
그렇게 약 100보 거리를 두고 세워진 두 건물 중, 한쪽엔 여울나무 숲이, 다른 한쪽엔 암운곡이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숙소 문제가 해결이 되자, 다른 새로운 문제가 천강에게 들이닥쳤다. 그것은 바로…….
"오늘부터 불침번을 세우도록 한다."
"불침번? 왜?"
"왜긴. 적이 코앞에 있는데 그냥 잘 순 없잖아? 불안하게."
그랬다. 여울나무도 암운곡도 양측 모두 불침번을 세우게 된 것!
창은 잠그고 자기에 들어설 수 없고, 하나밖에 없는 입구에는 4인1조로 특별감시가 이루어지에 되었다.
'아. 밤에도 몰래 숙소에 잠입해 내기를 뺏을 생각이었는데!'
제 아무리 천강이라도 문 앞에 자리한 네 쌍의 눈을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
'뭔가 방법이 없을까?'
낮에는 탁 트인 공간에 보는 눈이 많아 작업이 힘들다. 그러니 어떻게든 밤에 최대한 많이 뽑아내야 했다.
'제발 떠올라라. 불침번들을 피해 은밀히 숨어들어갈 방법이…….'
그 순간 번뜩 떠오르는 한 인물.
'넌 모르겠지만, 마공 중엔 몸의 기척을 완전히 숨겨주는 것도 있거든.'
'짙은 어둠. 옷자락 소리나 머리털의 잔음조차도 들리지 않는 검은 구름과 같다 하여 일명…….'
암운신공!
천강은 후다닥 초아에게 달려갔다.
***
수많은 사람들을 보아왔다.
그리고 벼리별 인간을 다 마주했다.
그런데 살다살다 이런 뻔뻔한 애는 처음 봤다.
"초아누나. 저 암운신공 그냥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초아는 이마에 손을 짚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 사문 들어오면 가르쳐 줄게."
"아, 누나. 제발요~"
"흥. 이럴 때만 누나지? 응?"
소년이 두 손을 모으고는 눈을 초롱초롱 빛낸다. 그러나 그 전략에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할쏘냐!
나 초아는 그리 쉬운 여자가 아니라고.
"누나. 진짜 안 돼요?"
"응, 안 돼."
"소원 하나 더 들어줄게요!"
"응. 그래도 안 돼."
그러자 소년의 미간이 좁혀졌다.
초아의 입가엔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후훗. 그냥 포기하고 우리 사문 들어와. 이 누나가 우리 천강 아주 잘 가르쳐 줄게! 우리 사문이 이래봬도 마교 내에서는 꽤 인기가 높거든. 들어오고 싶다고 아무나 다 들어올 수 있는 게 아니야. 너니까 특별히……."
"소원 세 개."
"응?"
초아가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묻고, 소년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한다.
"소원 세 개 더 들어준다고요."
순간 쉼 없이 주절거리던 초아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러나 곧바로 이성을 되찾고는 고개를 내젓는 그녀.
"안 돼. 사문 외에 사람에게 무공을 전수하는 건 절대 금기시해야 할 일이라고. 그냥 우리 사문에 들어……."
"그럼 소원 다섯 개요."
다섯 개? 초아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본인은 모르고 있으나, 초아의 두 눈동자는 의지를 벗어나 좌우로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타, 탐나지만……. 안 돼. 정신 차려, 초아! 너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잖아!
"떽! 내가 겨우 소원 다섯 개에 넘어갈 만큼 쉬운 여자로 보이니? 내가 이래봬도 신교에서 향후 제일 미녀마두로 지목되는 수석졸업자 초아……."
"그럼 열 개요."
"여, 여, 열 개?!"
"거기에다가 내일 밤 단둘이서 산보까지, 추가."
뚜둔!
초아의 손이 전광석화로 움직였다. 환영이 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녀의 손은 소년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
"……거짓말 아니지?"
"제가 거짓말을 왜 해요? 저 누님 좋아한다니깐요?"
"정말로?"
그렇게 입 발린 말에 냉큼 넘어간 초아는 천강에게 암운신공을 가르쳐 주게 되었다.
***
팔락. 팔락.
거대한 신전에 서책 넘기는 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진다.
이립(而立) 즈음 되어 보이는 사내가 자리에 앉아 여러 서책을 쌓아두고 둘러보고 있다.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한 음성이 들려왔다.
- 괴기나한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한 노인.
머리는 반들반들하고 수염은 덥수룩한, 마치 야차와 같이 생긴 노인이 다가와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한다.
"신교의 하늘을 뵙습니다."
"그래. 어서오시게. 이 시간엔 무슨 일인가?"
"그자에게서 또 쪽지와 왔습니다."
"다시 말인가?"
"예."
약 3개월 전부터 맹익의 앞으로 한 쪽지가 전달되어 왔다.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저 그곳에는 매번 특정 장소와 시간이 적혀 있었다.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하여 그 시간에 직접 움직여본 맹익. 그때 그는 볼 수 있었다. 외부세력과 접촉하는 내부의 배신자 무리들을.
"이번에도 쪽지를 전달한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는가?"
"예. 저번과 같은 방법으로 전해 왔습니다."
그는 늘 동물을 통해 전달해왔다.
맹익이 잠깐 바람을 쐬러 나오는 그 순간을 노려 건네주고 돌아갔고. 매번 전해주는 동물의 종류도 달라, 누가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인지 전혀 특정할 수가 없었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아니면 또 다른 세력인지를.
"어떻게 할까요, 교주님?"
"일단 치도록 하지. 계속 그러다 보면, 위기를 느끼고는 수습하러 나아오겠지."
설령 그러지 않아도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인 상황.
'이번에는 좀 큰 놈이 걸렸으면 좋겠군.'
노인이 다가와 천마에게 쪽지를 건넨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닷새 후 자시(子時). 풍미관 북쪽 경계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