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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5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2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58화

58화. 일석이조

 

 

또옥. 또옥.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어둠 속을 고요히 울린다.

그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 위를 나직이 덮어나갔다.

"무림인이란 무를 숭상하고 힘을 추구하며, 그것을 휘두르는 자들이다. 겉으로는 고귀한 가치를 따르는 것 마냥 떠들어대나, 실상은 욕심과 힘에 취해 자신보다 약자를 짓밟는 놈들이지."

"……."

"그리고 넌 그런 그들을 징벌할 유일한 존재인 사신."

어둠 속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의 작은 신음소리만 들려올 뿐.

"반드시 기억해라. 네 존재 의의를."

그때 그 공간에 누군가 나타났다.

"흑귀."

"무슨 일이지?"

"이번에 외부와 회합을 갖기로 했다. 그런데 밑의 것들만 내보냈더니 영 방해가 심해서 말이야. 어떻게…… 준비한 것들 쓸 수 있겠나?"

"물론. 언제든지 가능하다. 방금 막 화경을 상대로 검증 끝냈고, 손상 부위 하나도 없이 상대를 제압했다."

"독에 대한 방비는?"

"만독불침까진 아니어도 천독불침 수준은 된다. 독공 고수나 당가의 장문인이 나서는 게 아니라면 문제없을 거다."

"좋군. 그럼 이번에 그 성과를 한 번 톡톡히 보자고."

홀연히 나타난 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스르륵 사라진다. 말하는 이는 조용히 어둠 속을 응시하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사신이여. 그대들의 뜻을 펼칠 때가 도래했도다. 어서 일어나라."

 

***

 

한 차례 소소한 사건이 있었지만 잘 마무리되고.

각각의 관리자는 아이들 앞에 서서 그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설명에 들어갔다.

"지금 이곳은 풍미관의 중심이다. 이곳을 기준으로 서쪽. 즉 천산 밑자락까지가 암운곡이 담당할 토지, 그 반대편은 여울나무지. 정확히 크기는 반반이다. 앞으로 2주간 일을 할 것이고, 더 빨리 마감을 하는 곳에는 그만큼의 혜택을 있을 것이다."

"그 혜택이란 게 뭔가요?"

"마교 내에서 해당 진영의 명성이 올라갈 것이고. 겨울 내내 고기가 추가 보급되는 건 물론, 겨울기간 중 제설작업에서도 제외시켜 준다."

"고기?!"

연화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어제 오늘, 양질의 고기를 맛본 다른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

응당 같은 고기가 보급될 리 없건만, 아직 어리다 보니 다들 생각이 단순한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과는 달리 천강은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오호. 제설작업 제외라고?'

마교는 천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폭설이 내리게 되면, 외부 도시와 길이 끊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제설작업 또한 마교에서 도맡아했는데. 이게 문제인 게, 눈이 많이 내리는 경우엔 겨울 기간의 반 이상을 제설작업만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해당 진영은 제외라고?'

그것 참 솔깃한 보상 아닌가?

시범에 들어가는 관리자들.

"이런 식으로 밑을 잘라서, 각 진영의 토지 중앙에 보면 거대한 창고가 하나씩 세워져 있다. 그곳으로 가져가면 된다. 적어도 이 밑으로 잘라 주었으면 좋겠구나."

벼 아랫부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설명은 끝났다.

이젠 실전만이 남은 상황.

두 관리자가 아이들을 내보낸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럼 지금부터 추수를 시작하겠다. 모두 시작!"

"달려달려!"

"서둘러!"

"저쪽 보다 먼저 일을 끝내야 돼!"

정신없이 움직이는 아이들.

경쟁심을 부추겨서 그럴까? 내기까지 사용해 일에 착수한다.

그런데 그때 여울나무 쪽에서 큰 환호성이 울렸다.

일을 하던 암운곡 아이들의 고개가 그쪽으로 향한다.

한 아이. 나무로 된 의족을 찬 외발 소녀가 바닥에 앉아 있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고금이 놓여 있고, 그 위에서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이리저리 춤을 춘다.

푸른 기운이 손끝에 실리길 잠시, 전방으로 쏘아져 나가는 칼날 바람.

"소요절기 제 1식 칼바람."

그것들은 단숨에 선형(扇形)으로 퍼져 나가, 대략 50보 근처의 곡식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우오오오-

환호성을 내지르며 그것들을 주우러 가는 여울나무 진영.

'저것이 바로 전설의 무구라 불리는 칠현금 구소환패(九霄環佩)…!'

초아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이번이 처음 보는 것이 아님에도, 그 위력에 그녀는 피부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저 하나만으로도 저런 위력인데, 저런 걸 여러 개 들고 다니는 투파창귀는 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러다 무언가를 깨달은 초아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초아의 두 눈이 좌우를 정신없이 살핀다. 암운곡 아이들의 의욕과 사기가 확 꺾인 게 한눈에 들어온다.

'아, 이대로는 안 좋은데…….'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곧바로 움직임이 굼떠지는 아이들.

"야야. 그냥 대충 하자. 이미 고기는 물 건너 간 것 같네."

"어휴. 진짜…… 신병이기를 들고 왔을 줄이야."

"애들아! 그래도 아직 포기하긴 일러. 해보기 전엔 모르는 거라고!"

아이들 사이에서 연화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소리쳤다. 그러나 그 말엔 수긍을 하면서도 애들 행동엔 변화가 없었다.

나이가 어리긴 해도, 현실을 볼 수 있는 수준의 눈은 달려있기 때문이었다.

방중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표로 말한다.

"그렇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이길 것 같진 않다. 일단 우리 후배님부터가 제대로 할 줄 모르잖냐."

방중의 시선이 밑으로 내려간다. 연화의 고개도 따라 내려간다.

연화의 두 주먹에 벼가 붙들려 있다. 그런데 밑이 아닌 모가지를 잡아 뜯었는지, 손아귀엔 이삭이 잡혀 낱알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후엥?"

힘내라며 어깨를 툭툭 때려주는 방중.

"그, 그래도! 이건 처음이니까 그런 거고, 금세 잘할 수 있어! 쟤들보다 더 빨리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이미 꺾인 세를 돌려놓기란 불가능했다. 무진이 힘내라고 연화의 등을 두드려주고, 그렇게 싸움이 흐지부지 되려던 그때였다.

"방중 선배. 소운 선배. 그리고 애들아."

바닥에 드러누워 여울나무 진영을 관찰하던 한 소년이 슥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흙먼지를 털며 왈.

"만약 내게 이길 방도가 있다면, 다들 어떻게 할래?"

"뭐? 정말이야?"

"천강, 진짜 방법이 있어?"

의기소침한 연화의 고개가 천강에게로 홱 돌아갔다. 어깨가 축 쳐져 있던 다른 아이들 또한 천강 앞으로 모여들었다.

"내가 누구야? 나 천강이야. 묵범귀영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깬 천강! 내가 머리가 좋은 건 아니어도, 잔머리는 좀 굴러가잖아?"

아이들이 웃으며 긍정을 표했다. 확실히 천강은 똑똑한 편은 아니어도, 대범하고 허를 찌르는 그런 부분은 있었다.

"자자, 이리와 봐. 내 생각은 이거야."

천강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아이들. 설명을 들은 아이들의 눈은 금세 동그래졌다.

 

***

 

"응? 야, 저기 봐봐."

"재들 뭐해?"

"글쎄?"

볏단을 나르던 여울나무 아이들이 걸음을 멈추고는 암운곡 쪽을 바라본다. 암운곡 애들이 기다란 나무를 잘라다 한쪽으로 나르고 있다.

"……단체로 돈 건가?"

 

***

 

반 시진 전, 아이들을 앞에 선 천강.

"방중 선배. 암운곡 담당 창고에서부터 제일 먼 밭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지?"

"음. 확실한 건 아니지만, 대략 이동하는 시간만 반 시진 정도 걸린다고 봐야겠지?"

흠. 그렇단 말이지?

"자자. 그럼 지금부터 지시를 내릴게. 일단 길이가 40척 정도 되어 보이는 나무들 있지? 가서 베어와. 너무 두꺼우면 무거우니까 적당히 이 정도 둘레로."

"뭐하려고?"

"일단 가져와봐. 소운 선배가 돌아다니면서 자르는 것 좀 도와줘."

"그래, 알겠다."

시키는 대로 가져오는 아이들.

그 사이 천강 또한 나무를 베어다, 손가락 마디 정도의 두께로 잘라냈다.

그리고는 애들이 가져온 통나무를 두 개씩 일렬로 세운다. 그 위에 얇게 자른 나무판자를 촘촘히 올린다.

'이런 뒤, 못 대신 적당히 나뭇가지를 박아 고정하면…….'

내기를 담아 쾅 내려친다. 젓가락 두께의 나뭇가지가 나무판자를 꿰뚫고 그 밑 통나무에 내려가 박혔다.

그렇게 완성된 짐 나르는 가마들!

우오오오-

아이들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제야 천강의 의도를 이해한 것이다.

"과연! 이거면 왔다 갔다 하는 횟수를 크게 단축시킬 수 있겠구나!"

"그러게! 이 들것에 실으면, 각기 나르는 양에 능히 다섯 곱절은 가능하겠는 걸?"

"애들아. 다섯 곱절이 뭐야? 스무 곱절도 충분히 가능해!"

"오오오오오!"

살짝 말린 볏단은 가벼운 것에 반해 부피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짊어지고 나르는 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성인 신장에 가깝게 성장한 5년차들이라면 모를까, 아직 어린 1년차들은 팔도 짧아서 더 적게 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이러면 다르지.'

이미 단전에 내기도 있고, 기운용도 할 줄 아는 아이들이다.

통나무 무게가 솔직히 조금 걱정이긴 한데, 중간중간 쉬었다 가는 한이 있더라도 반 시진이나 되는 거리를 스무 번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리라.

"자. 그러면 도구도 완성했으니, 우리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볼까?"

 

***

 

"선배들 힘내십시오!"

"힘내십쇼!"

소운과 검을 지닌 4-5년차 이십 여명이 자세를 잡는다. 그들은 황금빛으로 물든 곡식들 앞에 서서, 아까 천강이 한 이야기를 가만 떠올렸다.

"우선 소운 선배는 검 다루는 이들을 선발해서 베는 역할만 해줘."

"근데 겨우 이 숫자만으로 될까? 저쪽에 비하면 한참 느릴 텐데?"

"걱정 마. 선배 기억해봐. 저기…… 베는 속도보다 나르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느려. 아까도 설명했듯, 이 대결은 누가 빨리 베느냐가 아니야. 누가누가 더 빨리 나르느냐지."

가만 생각해 보니 그랬다. 여울나무 쪽은 드러누운 곡식들은 많은데, 그에 비해 나르는 인력은 턱 없이 부족했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소운이 좌우에 선 이들을 한 번씩 돌아본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외치며 검을 횡으로 휘두른다.

"그동안 질리게 해봤지? 밑으로 깊게 휘두르는 거야! 애들아, 가자!"

"오오!"

앞으로 전진 하며 벼를 베어나가는 아이들.

그 뒤를 다른 이들이 따라붙으며 재빨리 벼를 수확한다. 한 움큼씩 들어다, 미리 만들어둔 들것 위에 쌓아 올린다.

"천강! 하나 다 쌓았어!"

"잘했어. 바로 다음 것 쌓아. 준비한 들것의 반 이상이 쌓이면 그때부터 하나씩 이동한다."

그래야 뜨거운 태양 아래 수분이 날아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가벼워지지.

그러고 한 시진이 지나자, 80개의 들것 중 40개가 가득 찼다. 천강은 볏단을 쌓아올리는 인원을 순차적으로 돌려, 짐 가마를 나를 것을 지시했다.

"아까 나눈 4인1조 기억하지? 자, 첫 번째 조 출발!"

하나둘 편성된 조가 출발한다. 조금 있으니 갔던 아이들이 되돌아온다.

오. 한 번 체계를 잡아놓으니 알아서 척척 잘 굴러가는구만.

'그렇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진짜 작전을 수행할 때.'

천강이 몸을 돌려 여울나무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을 우연히 본 연화가 빽 소리쳤다.

"야, 천강! 지휘하다 말고 어디가?!"

들것을 막 어깨에 올리며 외치는 연화의 목소리에, 천강이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아주 중요한 일! 이번 작전을 성공하려면 꼭 필요한 일을 하러 간다."

"후엥?"

상대보다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싸움에서 확실히 이기려면, 상대의 능률을 떨어뜨리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다.

'녀석들의 내기를 다 흡수한 다음, 조금 더 강제로 빨아내면…… 아마 빼앗긴 생기를 복구한다고 골골 대느라 하루는 꼼짝 못할 거야.'

그러면 적의 능률도 떨어지고, 겸사겸사 난 북명신공을 완성하고. 말 그대로 일석이조!

"자, 그러면 어디…… 여울나무 애들의 내기를 맛보러 가보실까?"

천강의 입가에 악당과 같은 미소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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