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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5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3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56화

56화. 권력은 없어도, 힘이랑 이름이 있네

 

 

"나 업고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도와줘서 고마워."

"아냐. 내가 오히려 더 고맙지. 덕분에 너와 같이 이런 좋은 방도 쓰고."

동기의 말에 청청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코끝으로 은은한 나무향이 느껴지고, 변색되지 아니한 선명한 갈색 빛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단조로우면서도 멋이 나는 공간.

청청은 몸의 중심을 뒤로 이동시켜 침대 위에 엉덩이를 붙여보았다.

푹신한 감촉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고작 그 사람의 제자가 되었을 뿐인데, 많은 게 변했네.'

3개월 전, 기경만회에서 실력을 선보인 게 다일 뿐인데 대우가 달라졌다. 마교 내에서도, 그리고 동기들 사이에서도.

그것을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슬퍼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청청이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예, 들어오세요."

"인사드립니다. 풍미관을 총괄하는 대방이라고 합니다."

눈치 빠른 동기가 재빨리 자리를 비우고, 배가 두둑이 나온 남자가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묻는다.

"어떻게 방은 마음에 드십니까?"

"예. 아주 마음에 들어요. 올해 만드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완공한지 한 달 정도 되었습니다. 이곳에 모실 수 있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영광은요, 무슨."

청청이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남자는 더욱 허리를 깊이 숙였다.

"오실 때 혹여나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

"아뇨. 길을 잘 닦아 놓으셔서 전혀 불편함을 못 느꼈어요."

"다행이군요. 아, 맞다. 시장하시지요? 금방 음식을 내오겠습니다. 만약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바로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보름간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예를 올리고 방에서 나가던 대방, 잠시 멈추더니 살짝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리고 그…… 투파창귀님에게는 말씀 좀 잘……."

"알겠어요. 받은 대우 잘 전해드릴 터이니 너무 염려마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방을 나선 남자가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염려하던 것과는 달리, 성격이 온화한 편이라 천만다행이구만.'

자식뻘에게 허리를 숙이는 것만으로도 수치심이 가득한데, 성품마저 떽떽거리고 오만했다면 정말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투파창귀님의 뒤를 이으실 분이니, 성심을 다해 모시도록 하자.'

그런다면 언젠가 암운곡과 교주세력을 몰아내고 마교를 집어삼켰을 때, 그 자신에게도 무언가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겠는가?

그런 미래의 달콤함을 상상하며 1층으로 내려가는 그때였다.

"대방님!"

"뭔데 그리 호들갑이냐?"

한 관리자가 헐레벌떡 뛰어와 그의 앞에서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는 한참을 그리 숨을 헐떡댄 이후에야 말을 꺼냈다.

"대, 대방님."

"그래. 음식이 다 돼서 보고를 하러 온 것이냐?"

"그게 말입니다요."

남자가 이곳까지 전력으로 뛰어온 이유를 설명한다. 보고 받은 대방의 눈이 단번에 휘둥그레진다.

"아니, 그 무슨 해괴한 소리더냐! 흑살마신의 등장이라니?!"

 

***

 

약 한 시진 전. 여울나무 숙소 앞.

두 인영이 우거진 곡식들 사이로 몸을 숨긴 채 건물을 찬찬히 살피고 있다. 그런데 여자 쪽이 화를 참기 힘든지, 씩씩 거리며 거친 숨소리를 뿜어댄다.

"와아. 어떻게 건물 차이가 이리 차이 나? 여긴 올해 막 지은 것 같은데? 여기에 비하면 우리 숙소는 완전 돼지우리야!"

"그러게."

솔직히 돼지우리도 지금 암운곡이 배정받은 숙소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최소 무너질 염려는 없지 않은가?

그에 반해 눈앞에 건물은 겉면이 반들반들하고 색이 선명한 게, 어떻게 보면 얼마 전 기경만회 때 묵었던 숙소보다도 더 좋아 보였다.

'하아. 이거 보면, 애들 더욱 주눅 들겠는데.'

환영식도 제대로 못 가져서 안 그래도 힘 빠진 아이들이다. 그런데 숙소 차이까지 이리 차이난다면, 진짜 일할 맛도 안 날 것이다.

'심지어 이게 전부일 리 없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차이가 날 거야. 먹을 것, 씻는 것, 도구 등등.'

갑자기 여울나무 자식들에게 자격지심을 느낄 암운곡 아이들의 모습이 훤히 그려진다.

소년은 마음에 불이 이는 걸 느꼈다. 3개월 간 상담 좀 해줬다고, 그새 암운곡 인원들과 정이 좀 든 천강이었다.

'흠. 좋아. 북명신공을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간단히 우리 애들 기 좀 살려줘 볼까?'

하지만 어떻게?

건물을 부숴버릴까? 아냐. 그건 너무 우리 쪽인 게 티가 나. 좀 암운곡하고 연관이 없는 걸 건드려야 돼. 예를 들면…….

그때 더는 분노가 조절이 안 되는지 연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되겠어! 당장 대방인지 뭔지 하는 돼지 새끼한테 가서 따져야겠어!"

"야. 진정해. 말한다고 해결될 거 같냐?"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할게. 넌 망이나 봐줭!"

어쭈. 얘 왜 이렇게 자신만만해?

그에 궁금해서 물어본즉,

"화정 언니가 그랬어. 이곳에 나보다 센 놈은 없으니까, 마음에 안 들면 주먹으로 해결하라고."

"하아?"

그 무슨……. 참 좋은 걸 가르쳐 주십니다요.

하지만 연화의 대답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천강.

현재 이곳에는 교관들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듣기로는 훈련생들이 추수하는 요 보름간 그들은 휴가 기간이라고 했다.

거기다 이곳엔 제대로 무력을 갖춘 마인들이 없다. 애초에 싸움 좀 할 줄 안다면 이런 곳에 지원을 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훈련생들을 인도해온 조교들보다도 더 약하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

씨익.

'그렇단 말이지?'

고작 절정 수준인 연화가 설치고 다닐 수 있는 무대.

비리가 판칠 만큼 외부와 단절된 공간.

그리고 화경인 나.

'이거…… 권력은 없어도, 힘이랑 이름이 있네?'

천강은 곧바로 연화를 데리고 암운곡 숙소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대충 땅바닥에 주저앉아 투덜거리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역시나…… 음식은 형편없었다.

"와아. 진짜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천산의 식량창고에 와서 먹는 게 고작 보리밥이 전부라고?"

"아서라. 감자 아닌 게 어디냐."

"에에? 선배님, 감자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습니까?"

2년차의 물음에 5년차가 씁쓸하게 웃으며 답한다.

"있었지. 진짜 그땐 대박이었어. 너희들은 상상도 못할 거야. 그치, 방중?"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무릉도원이지. 암."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방중 선배."

전 암운곡 최강자였던 소운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불만을 드러냈다. 다른 이들 또한 말만 안 했을 뿐 동일한 생각이었다.

"근데 어쩌겠냐. 이곳에선 저들이 황제인 걸."

매년 꼬박꼬박 할당량을 채우고, 대신 외부에서 일체 참견과 간섭을 안 받는 지역. 그게 이곳 풍미관이었다.

그에 마두의 자녀인 소운조차도 그저 불만을 토해내는 게 전부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한 소년이 소운과 방중 사이로 끼어들어 스윽 어깨동무를 했다.

"방중 선배, 소운 선배. 잠깐 나랑 일 하나 하지 않을래?"

"천강?"

"일? 지금 이런 거 먹고 일할 맛 나겠냐?"

그러자 천강이 웃으며 답한다.

"일할 맛 날 거야. 그거 안 먹고도."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천강을 바라보는 두 사람.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오른다.

"우리 여울나무 쪽 저녁식사, 털어오자."

"그게 무슨……."

"아까 연화랑 오면서 봤는데, 고기 냄새가 장난 아니더라고. 아무래도 여울나무는 오늘 저녁 고기를 뜯을 모양인가 봐."

그 한마디에 소운이 비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것은 마치 하늘의 뜻을 따르는 정의로운 일이라도 되듯, 아이들에게 이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잘 들어라. 여기는 마교다. 마교는 힘의 논리다. 분명 올해 기경만회는 우리가 이겼다. 그건 곧 우리가 더 강하다는 뜻! 그런데 우리에게 진 녀석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애들아. 그 고기는 마땅히 우리의 것이다! 가자!"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난다. 큰 소리를 외치며 환호한다.

"옳소!"

"고기를 가지러 가자!"

"가자!"

역시 무리를 한 번 이끌어본 녀석이라 다르구만.

주둥이 놀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소운의 연설에 감탄하길 잠시, 방중이 다가와 묻는다.

"천강. 계획은 있는 거지?"

"물론이지, 선배. 나만 믿어. 내가 누구라고?"

"하핫. 알지! 묵범귀영의 기록을 깬 천강!"

"맞아. 내 말만 따르면, 우리 모두 제대로 된 고기를 뜯을 수 있을 거야. 암운곡에서 먹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고기를!"

작전은 간단했다. 조리가 이루어지는 건물 근처까지 수풀 사이로 숨어 이동한다.

그리고는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이용해, 수풀과 건물 사이에 간단한 시야 가리기용 진법을 설치한다.

"와아. 이런 건 언제 배운 거야?"

"그냥 어릴 적 어느 할아버지가 하는 걸 어깨 너머로 봤어요."

"어쩜! 우리 천강, 정말 못하는 게 없구나!"

망을 보는 초아가 어머어머 거리며 감탄사를 터뜨린다. 그런 방해공작에도 천강은 능숙하게 진법을 완성시키고는 곧바로 뒷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한창 고기 썰기를 마무리하고 있는 남자를 제압, 단전에 자리한 쥐꼬리만 한 내기를 쪽 빨아먹고는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자자. 다들 알지? 순서대로 빠르게 들어와서 양손으로 챙겨가는 거야!"

 

***

 

그러고 이각(二刻) 후.

"자자, 서둘러. 빨리! 시간 얼마 없어! 막구는 어딨지?"

찌는 가마 속처럼 후끈 열이 달아오르고 습기가 자욱한 공간.

"아마 삶은 것들 마무리 하고 있을 겁니다."

그 속에서 몇몇 사람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저녁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외부에서 사람들이 들어와 그들에게 물었다.

"준비가 다 되었는지 확인하러 왔네. 어떤가? 아직인가?"

"아닙니다. 딱 맞춰 오셨습니다. 마무리 중이니 순차적으로 들고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수고 많았네. 인도해 주게."

"이쪽으로 오시죠."

앞서 나가는 주방장. 자랑이라도 하듯 입을 속사포로 놀린다.

"귀한 분께서 행차하셨다하여 특별히 힘 좀 썼습니다. 귀한 재료를 넣고 수육을 거하게 했으니, 분명 좋아라 하실 겁니다요. 양도 두둑이 했고요."

"잘했네. 정말 잘했구만! 내 자네의 공은 잊지 않고 대방님께 반드시 보고를 올리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자, 여기서 이제 가져가시면 됩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그리고는 준비한 음식들을 들고 나가려는데…….

"어?"

뭘까. 분명 먹기 좋게 분리시킨 고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 어딜 봐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텅 빈 조리대 위로 큼지막한 돌덩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암운곡 후배들 밥 먹는 걸 보니 너무 불쌍해서 좀 가져간다. 한동안 지켜볼 테니 알아서 잘 처신하도록 - 흑살마신』

 

"흐, 흑살마신?!"

그 즉시 풍미관은 발칵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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