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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5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3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53화

53화. 싸움의 승자

 

 

양 주먹에 검은 기운을 응축한 연화가 쏟아지는 음공을 와해시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청청은 그런 그녀를 향해 끊임없이 칼날과 같은 바람을 날려 보냈다.

"네 공격은 나에게 통하지 않아, 청청! 포기해!"

그러나 대답 대신 더욱 손을 분주히 놀리는 외발 소녀.

청청의 눈은 마치 깊은 심연과 같이 착 가라앉아 있었다. 조금의 동요도 흔들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은 아냐. 조금만. 조금만 더.'

연화가 내기를 응축시켜 음공을 파훼할 것은 이미 예상했다. 그런 뒤 자신만만하게 달려들 것도.

처음부터 지금의 상황을 노리고 기다리고 있던 청청이었다. 지금껏 내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약한 공격만 날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단 한 방. 딱 한 합에 끝을 보기 위해서.

'그게 연화도 덜 고통스러울 테니까.'

연화가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어느덧 두 사람의 거리는 10보 안팎.

'사거리 내에 들어온 순간, 일격에 끝낸다!'

청청의 하단전에 자리한 기운이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놀림도 더욱 분주해졌다.

신병이기(神兵利器)를 사용하면 한 단계 위 경지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

현재 청청은 일류의 깨달음에 도달한 상태. 그녀의 손에 쥐어진 이 고금과 함께라면, 그녀는 능히 절정과 같은 실력을 낼 수 있단 의미였다.

"청청!"

웅크리며 다가오던 연화가 번쩍 뛰어올랐다. 청청은 단전의 기운을 모조리 쏟아, 양 손 끝으로 밀어 보냈다.

우웅.

그 기운을 느끼고는 공명을 토해내는 칠현금 구소환패(九霄環佩)!

푸른 기운이 넘실거린다. 청청의 손이 위로 쳐들린다.

모든 시간의 흐름이 점점 느려지고.

그 기이한 흐름 속에서 오직 그녀만이 이탈해 홀로 움직였다.

그런 그때였다.

"소요절기 제 삼……."

내려치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나는 그 순간에 한 소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리에 없었던. 그토록 싸우기 싫었지만 그녀가 싸워야만 했던 이유가 되었던 소년이.

"아……."

멈추었던 흐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는 관중석의 사람들도, 볼을 간질이며 지나가는 미풍의 흐름도.

그리고 그녀 자신에게 짓쳐드는 한 소녀의 거센 움직임까지.

"청청!!"

콰앙.

흙먼지가 일었다. 일순 관중석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내 큰 환호성이 하늘 위로 울려 퍼졌다. 승패가 갈린 것이다.

"자, 장외패! 승자는 암운곡 연화입니다!"

우와아아아-

청청이 움직임을 멈춘 순간, 빠르게 쇄도해온 연화가 힘껏 바닥을 내려치면서 그 기운에 밀려 경기장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게 된 것이었다.

"청청! 청청!"

"연화! 연화!"

멋진 경기를 보여준 두 소녀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뒤를 든든히 받치는 갈채.

그렇게 이번 기경만회는 암운곡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

 

암운곡의 축제 분위기와는 달리, 여울나무 위로는 짙은 그늘이 내려앉았다.

한 인물, 마교 서열 1위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

적삼혈마가 다른 이들을 손짓으로 내보낸다. 그런 뒤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투파창귀님.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응당 이길 거라 생각한 5년차 결투에서 패배했다.

그거로도 모자라,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청청이 멈칫한 걸 본 그는 곧바로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았고. 납치되어 있어야 할 무진이란 아이가 관중석에 떡 하니 앉아 있는 걸 보고는 무영삼귀가 임무에 실패한 것을 깨달았다.

즉, 그가 모든 계획을 다 망쳤단 의미였다.

"실패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아니다. 이번 일을 통해 사냥개의 능력을 확인했고, 그 재능이 남다르단 걸 보았으니 이번 기경만회는 충분히 이득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흥. 내 사냥개가 나섰는데도 졌다. 그 누가 계획해도 못 이겼을 거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라. 그리고 내년 재정의 일부를 영약 구입으로 돌린다."

"그러면 저희 전력이……."

"하. 그깟 몇십 놈 덜 받는 게 뭐 어땠다고? 적삼혈마. 솔직히 너 같은 거 서른 놈이 덤빈다고,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

"도라지 백 뿌리보다 산삼 하나가 더 나은 것이다. 사냥개의 능력과 투지를 확인했으니, 이젠 그걸 받쳐서 키우도록 한다. 더 이상의 이견은 받지 않겠다."

"예. 알겠습니다."

 

***

 

"연화. 연화!"

널찍한 공간에 음식상이 차려져 있었고, 그 안에서 백여 명이 넘는 인원이 먹고 즐기며 기경만회 마지막 날 경기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을 드높였다.

방중은 천강에게 다가와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했다.

"네 덕분이다. 네 가르침이 정말 큰 깨달음이 되었어."

"내가 뭐 한 게 있나? 선배가 평소 봉술 연습을 피나게 한 결과지."

"하하핫. 그래도 정말 고맙다, 천강."

"별 말씀을. 아무튼 축하해, 수석 졸업자가 된 거."

미숙한 실력에 수석 졸업자가 되었다는 말이 부끄러운지, 방중이 손사래를 치며 물러난다. 그리고 그때에 맞춰 음식을 집어먹던 무진이 천강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형님. 오전에 갔다 오신 일은 잘 해결되셨습니까?"

"뭐 그렇지."

오히려 너무 잘 처리돼서 문제였다.

오늘 오전.

마을 어귀 숲에서 일귀를 따라 절을 올리며 예를 표하는 이귀, 삼귀.

"주군으로 모실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군!"

그러지 않아도 된다 해도 끝끝내 형님 혹은 주군으로 모시고 싶다기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 천강이었다.

'그래도 뭐…… 형님보다야 주군 소리가 조금은 더 듣기에 낫겠지.'

아무튼 졸지에 세 똘마니를 얻게 된 천강. 그런 그에게 일귀가 다가와 보고한다.

"이번 일의 의뢰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맞다. 그러고 보니 제일 중요한 걸 안 들었었네. 대체 누구야? 날 죽이라고 사주한 게?"

"일단 마교가 크게 두 세력인 것은 아십니까?"

"응. 그런 것 같더라고.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난 암운곡과 여울나무, 각각의 뒷배들 아냐?"

"맞습니다. 그중 여울나무 쪽 투파창귀의 세력입니다."

투파창귀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천강의 그런 표정을 읽은 그가 그에 대한 정보를 줄줄이 뱉어냈다.

"투파창귀는 현 마교 서열 1위입니다. 음공을 주로 쓰고 소요악사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요악사라. 간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

50년 전에도 살아있던 늙은이였는데,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건가?

"경지는?"

"현경입니다."

"……강하네."

"그렇습니다. 그 뿐 아니라 신병이기를 여러 개 들고 다닙니다. 물론, 그 대부분이 보잘 것 없는 기문병기이긴 하나……. 그래도 남다른 힘이 내재되어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 그런 대단한 인물이 날 죽이라 시켰다? 대체 왜?"

"아니 그야 당연히…… 주군께서 소교주이시기에 그렇지요."

아, 그랬지. 순간순간 까먹는다. 놈들이 날 소교주로 오해하고 있다는 걸.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기도 좀 뭐한데.'

날 천마의 아들로 생각하고 죽이려 드는 놈이 있다면, 반대로 지키려고 하는 놈들도 있을 터.

지금 이 상황에서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본들, 운이 없으면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을 수 있었다.

물론, 회유를 들어올 가능성도 농후하지만…… 당장 오해의 소지 대상인 흡공에 대해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괜히 흑살마신과 연계된 게 들통이라도 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전생에 워낙 사고를 많이 쳤어야지.

'그냥 숨기자.'

그에 한동안은 천마의 소교주 행세를 하기로 결정한 천강이었다. 그때 그들의 눈앞으로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영삼귀를 돌아보며 천강 왈.

"임무도 실패해서 쫓겨 다닐 텐데. 어디 갈 데는 있고?"

"모르겠습니다. 한 번 찾아봐야죠. 뭐 그동안도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으니, 어떻게든 될 겁니다."

흠. 천강의 시선이 세 사람을 훑는다.

'세 명 다 화경. 그중 첫째인 일귀는 화경의 끝자락. 이미 내기에는 욕심이 없는 수준들이란 말이지.'

그 말인즉슨, 영약에 관심이 없다는 뜻. 그렇다면…….

"영 뭐하면 내 안식처에서 지낼래?"

"안식처요?"

"어. 오고가는 이가 없어서 살만 할 거야. 일주일에 한 번쯤 집을 관리하러 오는 이가 있는데, 아마 그때만 피해 숨기만 하면 문제없을 거야."

"주, 주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격한 감사함에 넙죽 엎드려 절하는 무영삼귀. 그렇게 자리를 비울 동안 집 지킬 개(?) 세 마리를 구하게 된 천강이었다.

그러니 잘 되도 너무도 잘 해결된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 천강의 귓가로 일귀의 음성이 들려왔다.

- 위험한 인물이 왔습니다. 내기를 꼭꼭 숨기십시오.

음? 누군가 건물 안으로 들어온다.

한 소녀와 불혹 즈음 되어 보이는 중년 남자였다. 그중 남자 쪽은 신기하게도 온몸에 주렁주렁 악기를 달고 있었는데, 그걸 통해 천강은 한눈에 그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마교 서열 1위 투파창귀.

"어? 청청?"

"연화야, 무진아. 그리고 천강. 그…… 떠나기 전에 인사하러 왔어."

"아니, 벌써? 아직 하루 이틀은 더 묵을 수 있잖아?"

절뚝거리며 다가와 밝게 웃는 아이. 천강 일행 또한 그녀에게 다가가 웃으며 작별 인사를 나눈다.

그러나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천강과 투파창귀 사이로는 말로 형언 못할 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서로를 조용히 탐색하는 두 사람. 이내 중년 사내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간다.

'애새끼치곤 제법이군. 초절정이라.'

'속이는데 성공했군. 내 몸에 손을 안 댄 게 천만다행이야.'

흉흉한 기운을 내포한 마교 서열 1위를 보며, 천강은 지금보다 더욱 더 강해져야 할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럼 나 이만 갈게!"

"잘 가!"

인사하는 천강 일행, 그리고 암운곡 무리.

대략 청청과 무진 사이의 일을 전해들은 암운곡 아이들은 그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씩 건네주며 환송해주었다.

 

***

 

그 시각. 여울나무 숲 숙소.

의기소침한 분위기 속 아이들이 각자 음식을 먹고 있다. 그때 한 쪽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예? 아니, 영달 선배. 그런 일이 있었다면 말을 하시지 그랬습니까!"

"쪽팔리게 어떻게 말하냐? 한 명에게 5년차 전부가 탈탈 털린 걸, 응?"

"아니, 그래도……. 하."

무휘가 화가 나는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영달은 알고 있었다.

지금 무휘가 저러는 건, 어디까지나 보이기 위한 모습에 불과하다는 것.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선배. 설마 복수도 안 하고 이대로 끝낼 생각은 아니죠?"

흥. 우리 5년차들도 못했던 걸, 본인들이 해결해 윗선에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

음흉한 속마음은 알지만, 그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기 위해 영달 또한 연기했다.

"글쎄다. 어차피 다시 가본들 깨지기밖에 더 하겠냐?"

"선배. 그건 모르는 겁니다? 우리 2차전 합시다. 은원관계는 확실히 청산해야 하는 게 강호의 도리 아닙니까. 이번에는 저희 4년차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는 4년차 무리. 영달과 5년차들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고는 그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대면하게 된 여울나무 숲 전체와 천강 일행.

무휘가 목을 좌우로 풀며 강하게 윽박지른다.

"야. 너희들이 우리 선배들을 개 패듯 패고 다녔다며? 그것도 고작 꼬치 하나 때문에."

"왜? 너도 맞고 싶냐?"

연화의 눈빛이 날카롭게 선다. 아직 그날의 울분이 안 가신 그녀였다.

"하. 이 나이도 어린 것들이 진짜 단체로 돌았나? 나 무휘를 뭐로 보……."

그러나 그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연화가 단번에 뛰어와, 그 얼굴에 다짜고짜 주먹을 내리꽂았기 때문이다.

"문답무용 선수필승! 죽어랏, 과일 꼬치 원수의 동료!"

"꾸에엑."

그 이후엔 뭐 설명할 필요도 없는 난전이 벌어지고. 여울나무 역사상 처음으로 대패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고작 암운곡 1년차 세 명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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