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4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42화
42화. 지천뇌공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학 어르신."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그래그래."
무진을 업은 채 천강이 허리를 숙였다. 무진 또한 예를 갖췄다.
"불편하겠지만 포기하지 말고 힘내거라."
무진이의 증상은 혈맥이 뚫리면서 기형적으로 다량의 기운이 흡수되는 것이다. 그에 대한 처방으로 노인은 무진에게 점혈을 했다. 즉, 기의 통로를 차단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움직이긴 해야 했기에 완벽하게 틀어막진 않았고, 그로 인해 열두 시진에 걸쳐 서서히 풀리는 상태가 되었다.
지금 천강이 무진을 업은 것은, 험한 절벽을 내려갈 만큼 두 다리를 원활히 움직일 수 없기에 그런 것이었다.
천강이 발걸음을 떼자 노인이 깜빡했다는 듯 묻는다.
"그러고 보니 그게 무엇인지 알아냈느냐?"
"아, 예."
이틀 전. 정신을 차린 후, 내기를 하나로 모으는데 집중하던 천강.
그런데 돌연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다.
'이게 뭐지?'
어떤 한 기운이 정수리와 임맥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던 것. 마치 말을 안 듣는 그 행태가 독기와 같아, 천강은 그걸 뱅글뱅글 돌려보았다.
그러자 서서히 중화되더니 스르륵 임맥에 합류를 한다. 천강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독기를 흡수한 적이 있던가? 아니면 혹시 자고 있을 때 어르신이?'
그러나 사학 어르신에게 물어도 고개를 흔들고, 현경의 사내나 그 부하들 또한 독공과는 전혀 연계가 없었다.
'그렇다면 무진이 기운을 흡수할 때 들어왔다는 건데…….'
천강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무공 익힌지 얼마나 됐다고 무진이의 몸에 독기가 있단 말인가?
"독이긴 독인데……. 어디서 흡수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뭘 잘못 먹은 모양입니다."
"끌끌. 혹시나 암살자가 독침을 쏜 걸지도 모르지. 늘 조심하거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흑철마괴와 현경의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복면을 쓰고 있는 사내는 천강에게 슥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저번에 네가 해준 말은 내게 큰 깨달음이 되었다. 이기고자 하는 의지라……. 다음에 또 손을 섞어볼 기회가 있음 좋겠군."
"가끔 할 일이 없으면 찾아오겠습니다."
"그냥 흑영대에 들어오는 건 어떤가? 속세와 끊겨서 그렇지, 이곳 생활도 꽤 할 만하다. 실력들도 모두 뛰어나고."
"사양하겠습니다."
"거참. 조금도 고민을 안하는구만. 하핫."
"그럼 이만 갈까요, 교관님?"
그렇게 그들은 천산의 보고에서 일을 잘 마치고 복귀할 수 있었다.
비록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진 못했지만, 그 덕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게 된 천강과 무진이었다.
늦은 저녁.
연화네 숙소로 들어선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두 여인이 반겨온다. 특히 연화의 경우에는 단숨에 뛰어 천강에게 매달렸다.
"천가아아앙! 무진아아아!"
"어. 우리 갔다 왔다."
"진짜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이틀간 나 혼자 다니느라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아?!"
"혼자 다녀? 초아누님 있잖아."
"아, 이 언니랑 난 안 맞는다고!"
"나도 너랑 함께 다니긴 싫거든? 혼자 돌아다니는 게 불쌍해서 함께해줬더니, 쪼그마한 게 어디서……."
"흥. 메롱이다."
그러나 말은 그리 해도 제법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었다. 물론, 5살 더 많은 초아가 져 주고 있는 게 분명할 테지만.
아무튼 인사가 끝나자, 흑철마괴가 천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네 동생에게는 어떤 무공을 가르칠 생각이지? 너와 같은 무공을 가르칠 셈인가?"
"아뇨."
북명신공을 가르칠 수는 없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기운이 차고 넘치는 무진에게는 독이나 다름없으니까.
"안 그래도 스승을 찾아야하는데…… 고민입니다. 혹시 괜찮은 교관 있습니까?"
"그럼 내 무공을 배워보는 건 어떠냐?"
초아가 깜짝 놀라 소리친다.
"에에? 흑철마괴님 무공이요? 흑철마괴님은 제자를 안 만드실 거라 하셨잖아요?"
그러나 천강은 교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북명신공과 너무 안 맞아서 망정이지, 만약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였다면 당장 천강 또한 무진을 제자로 들이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무진아. 네 생각은 어떠냐?"
"형님. 전 아직 뭐가 뭔지 잘 몰라서……."
"그래. 그렇겠지."
천강이 말없이 교관을 돌아본다. 그 의미를 깨달은 흑철마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내 무공을 직접 보고 결정하거라."
흑철마괴를 따라 암운곡 밑으로 내려간 천강 일행.
홀로 수로로 들어선 그가 천강과 무진을 돌아본다. 천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교관이 물이 흘러내려오는 상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쥐며, 권(拳).
"단 일격에 천지가 무너지고 요동을 치니."
지천뇌공.
파아앙-
지하수로의 물이 흑철마괴를 기준으로 사방으로 터져 나간다. 특히 주먹을 내지른 곳은 순간적으로 수로 바닥이 내보일 정도였다.
쿠콰콰콰콰.
역류했던 물이 다시 순리를 따라 밑으로 흘러내려온다. 그때 흑철마괴가 이번에는 손을 털듯 가볍게 손목을 움직였다.
파앙-
다시금 상류로 역류하는 물의 흐름.
천강을 제외한 모두의 눈이 단번에 휘둥그레졌다. 흑철마괴는 천강과 무진에게 다가와 자신의 무공을 배워야할 이유를 설명했다.
"내 무공은 한 번 한 번의 공격이 일격필살이다. 그렇기에 많은 내공을 필요로 한다. 그런 면에선 그 체질과 꽤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아이들과는 달리 기의 흐름을 유심히 살펴본 천강 또한 긍정을 표했다. 흑철마괴의 공격들은 정말이지 과도하다 할 만큼 많은 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게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강점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그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고 하니, 설령 천강이 북명신공을 펼친다 해도 그 기운을 다 흡수하지 못하고 밀려날 정도였으니까.
"무진아, 네 생각은 어떠냐?"
"형님, 어떤 것 같습니까?"
"교관님 말씀이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결정은 너 스스로가 해야 하는 법이다. 네 인생 아니냐?"
고민에 잠긴 무진. 요란한 소음에 몰려든 아이들이 백 명이 넘을 때쯤,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배우겠습니다. 아니…… 배우고 싶습니다, 흑철마괴님."
"미리 말하지만 훈련이 아주 고통스러울 거다. 방금과 같은 일격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몸이 버텨줘야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자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무진.
"걱정 마십시오. 천강 형님 정도는 아니어도, 저 또한 살아오면서 나름 독하단 소리는 많이 들었으니까요."
그렇게 무진은 흑철마괴의 무공 지천뇌공을 익히게 되었다.
***
천강과 무진의 숙소.
고요함 속에서 한 소년이 가만히 눈을 감는다. 천강은 가부좌를 취한 채, 찬찬히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여러 사람의 기운을 흡수해 100명분을 채우는 것.
- 처음에는 꼬박 하루가 걸리지만…… 백 사람의 기를 섞으면 조화를 이루는데 일각이면 충분하며. 천 사람의 기를 섞으면 적의 기를 내 것으로 하는데 거리낄 것이 없다.
현재 천강이 다른 사람의 기운을 하나로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진. 즉, 누군가의 내공을 흡수하면 필히 한 시진은 쉬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건 어떤 면에선 굉장한 약점이기에, 빨리 백 명을 채워 일각으로 시간을 단축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다.
'어떻게든 여러 사람과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해.'
그래야 무진 때와 같은 무기력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융합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일각이었다면, 그제처럼 무리하게 강행돌파 하는 무리수를 두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고개를 돌리자, 무진이 꾸벅 인사를 해왔다.
"사색 중이셨습니까?"
"그래. 슬슬 점혈할 시간이 됐지?"
"예, 형님."
그걸 증명하듯, 무진의 몸 주위로 와류가 형성되고 있었다. 점혈이 풀리고 자연의 기운이 빠르게 흡입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자리를 잡거라."
"네."
무진의 몸에 손을 댄다. 정수리를 제외하고 온몸으로 자연의 기운을 흡수하는 형세가 낱낱이 느껴진다.
'그렇군. 비급에서 말하는 기의 통로가 이 부분을 이야기한 것이었나?'
단순히 비급서 만으로는 난해해 하던 차에, 아우 무진의 일이 벌어지면서 자연스레 깨달음을 얻게 된 천강이었다.
무진의 혈을 빠르게 짚어주고는 가만히 눈을 감는다. 방금 전 느꼈던 그 흐름을 떠올리며 그대로 재현해냈다.
등 쪽으로 스르륵 흘러 들어와, 임맥에 잠깐 거류한 뒤 흩어지는 대자연의 기운.
'좋았어. 이 기세를 몰아, 다른 데도 모두 길을 뚫어놓자고.'
그렇게 4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
"좋은 아침! 잘 잤어, 꼬맹이들?"
"예, 초아 누님은 잘 주무셨습니까?"
"그래~"
암운곡 바닥. 지하수로 앞.
수백의 아이들이 몸을 풀고 있다. 훈련지역으로 가기 위해 준비 중인 것이다.
하나둘 출발하는 아이들. 천강 또한 일행들과 함께 지하수로로 들어섰다. 그때 나뭇잎을 밟으며 초아가 천강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전에 물어본 거 생각 좀 해봤어?"
"아직 고민 중입니다."
"치이……. 뭘 그리 오래 고민하는 거야."
3일 전. 천산의 보고에 갔다 온 이후, 따로 이야기 좀 하자던 게 생각난 천강은 그녀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한소리를 들어야 했으니.
"야! 그런 기쁜 일이 있으면 나에게는 꼭 말해줘야 하는 거 아냐?"
"아니 그게……."
"솔직히 좀 속상해! 천강 너는 내가 업어 키우다시피 했는데!"
"……."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는 알았다. 이건 전생에 수많은 여마인들을 상대하며 습득한 일종의 경험치였다.
"죄송합니다."
"너 말이야! 응? 넌 진짜 나한테 그러면 안 되는……."
말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래도 사과로 시작했으니, 아마 잔소리 시간이 얼추 9할은 줄었을 거라 확신한다.
그렇게 한참을 듣고 있는 그 때였다. 갑자기 초아가 천강의 눈치를 살살 본다.
"그래서 그런데…… 이번에 같이 안 갈래?"
"네?"
방금 무슨 이야기를 했었지? 딴 생각하고 있느라 듣지를 못했다. 천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초아가 볼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전년도 수석 졸업자라, 이번 여울나무 숲과의 대회에 아는 사람을 데려갈 수 있거든."
"우와. 초아 누님. 수석 졸업자셨어요? 대단해요!"
"그, 그래? 고, 고마워."
수석졸업자는 모두 뛰어나다. 그 대부분이 마두의 위치에까지 올라간다. 말 그대로 미래에 마교를 짊어질 핵심 기둥이란 의미다.
천강의 눈에서 빛이 반짝반짝 일자, 그걸 마주한 초아가 볼을 붉게 물들이며 손부채질을 해댔다. 그리고는 왈.
"그래서 그런데……. 나랑 함께 가지 않을래?"
"에? 저요?"
"응."
당시엔 워낙 갑작스레 받은 제안이라 생각해본다했으나, 가만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았다. 그곳에 가면 전생에는 없었던 여울나무 숲이란 곳에 대해 파악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에 옆에서 낙엽을 밟으며 나아가는 초아에게 질문.
"가면 며칠이나 걸리나요?"
"대략 칠 일 정도?"
"생각 외로 오래 걸리네요."
"좀 그렇긴 하지. 왜? 같이 갈 생각이 좀 들어?"
초아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천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런데 누님도 알잖아요. 무진이에게 하루에 한 번 점혈해 줘야 하는 거."
"아……. 그랬지."
"그래서 그런데 무진이도 함께 가면 안 되나요?"
초아의 얼굴에 고뇌가 떠오른다.
'힝. 이번 기회를 삼아 작업 좀 해보려 했는데!'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무진이 있다고 못할 건 또 뭐란 말인가? 초아의 얼굴에 방긋 미소가 올라왔다.
"그래. 그럼 무진이도 데려가자."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연화가 가만있을 리 없으니….
"나도나도나도!"
"안 돼."
"왜!"
"원래는 천강만 데려갈 생각이었어. 더는 힘들어."
물론, 전혀 힘들지 않으나 상대가 경쟁 상대인 연화라 절대 안 됨을 표명하는 초아였다.
그러자 연화가 후다닥 교관에게 뛰어간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왈.
"1년차 중에는 제가 참가하겠습니다!"
여울나무 숲과의 대회에 4, 5년차를 제외한 기수는 딱 한 명씩만 참여할 수 있는데, 거기에 지원한 것이었다.
"좋다. 그럼 1년차에선 연화가 나가기로 한다."
"야호오!"
"쳇."
신나서 방방 뛰는 연화와 혀를 차는 초아.
그렇게 천강과 그 일행은 마교 연례행사인 천산 기경만회(技競萬會)에 모두 참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