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1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11화
86장: 독령귀혼단
나름 몸과 복장을 손보고 들어갔는데도 사마경은 귀신처럼 눈치챈 모양이었다.
쓱, 장천운을 위아래를 훑어본 그녀의 눈초리가 역팔자로 치켜 올라가는가 싶더니, 우려했던 대로 잔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야, 또 다쳤어?”
“큰 부상은 아닙니다.”
“크건 작건! 도대체가 하루도 멀쩡한 날이 없네.”
장천운은 눈길을 허공에 두고 대꾸하지 않았다.
자신이 뭐 다치고 싶어서 다쳤나?
아마 그렇게 말하면 모닥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악다구니가 소나기처럼 쏟아질 것이었다.
“나를 지키려면 몸이 완벽해야할 거 아냐? 며칠 쉬면서 몸이나 요상하라고 했더니, 오히려 또 다쳐? 하여간…….”
혀 차는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그래도 일절 말대꾸하지 않고, 거미가 천장 구석진 곳에 줄을 치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저런 줄을 만들지?’
사마경은 그런 장천운을 째려보았다.
“그래도 미안한 줄은 아나보네.”
‘누가 미안해서 이러나? 잔소리 듣기 싫어서 이러지.’
물론 그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잘 벼린 칼날 같은 눈빛으로 누군가를 흘겨보는 사람은 사마경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소연추가 전음으로 물으며 구양명을 흘겨보았다. 사마경의 눈초리보다 더 매서웠다.
<방에서 쉬고 있는데, 장천운이 어디 좀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 왔소.>
구양명은 장천운을 끌어들었다. 모든 책임이 장천운에게 있다는 듯. 어쨌든 사실이 그랬으니까.
소연추는 장천운을 사납게 흘겨본 후 다시 구양명을 바라보았다. 매섭던 눈초리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몸은 괜찮아요?>
<심하지 않으니 너무 걱정 마시오.>
누군가가 자신을 진심으로 염려해주면, 그것도 좋아하는 여자가 그러면 외로움에 지쳐봤던 남자는 감동하는 법이다.
구양명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미소를 건넸다.
그러다 소연추에게 한 소리 들었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그런 고수들을 상대하러 가면서 달랑 둘만 가다니. 도대체 정신이 있어요, 없어요?>
<…….>
<장 대주가 그러자고 하면 구양 대협이라도 말려야죠!>
구양명이 찍소리도 못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사마경이 그를 구해주었다.
“그건 그렇고,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어, 천운?”
그제야 장천운이 상황을 설명했다.
“손우곤이란 자와 이적상 형제가 살아남은 자들을 데리고 도주했습니다.”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라면 자부심이 대단할 텐데, 두 번이나 집에서 쫓겨났으니 화가 단단히 났겠군.”
“그럴 겁니다.”
분노가 앞서면 실수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장천운도, 사마경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자들이 어디로 갔을 거라고 봐?”
“나온 곳으로 돌아갔겠죠.”
사마경이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장천운의 의견에 동의했다.
“맞아, 그럴 거야. 그리고 상한 자존심을 만회하려고 하겠지.”
“그러다 보면 빈틈을 드러낼 가능성이 커질 겁니다.”
“옳은 생각이야. 그런데 그렇게 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이 왜 단둘이 가서 피를 보고 와?”
“그래야 저들이 안심하고 너구리굴로 돌아갈 테니까요.”
말이나 못하면!
사마경은 그런 뜻이 담긴 눈빛으로 장천운을 흘겨보았다.
“꼬리를 잡을 수 있겠어?”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 놓았습니다. 최소한 범위는 줄어들 겁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환마 우곡이 손우곤의 뒤를 추적하고 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환마 우곡과 관련된 일은 사마경에게조차 비밀이었다.
‘솔직히, 우 노선배가 나를 조사처럼 여긴다고 하면 뭐라고 하겠어?’
그때 사마경이 장천운을 향해서 오른손을 불쑥 내밀었다. 그녀의 손 위에는 거무튀튀한 색깔의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이거 받아.”
“그게 뭡니까?”
“약.”
“정말입니까? 냄새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장천운은 상자를 바로 받아들지 않고, 코를 들이대는 시늉을 하며 킁킁 댔다.
사마경이 그를 다시 째려보았다.
저녁 무렵, 비고에 들어간 그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약이 있는 곳을 뒤져보았다.
수련을 하다 보면 공력에 손상을 입을 때가 있어 그때를 대비해 많은 약이 상시 보관되어 있었다.
그 많은 약 중에 공력 증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영약 정도는 있지 않겠는가.
대보신단처럼 엄청난 영약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있으면 더 좋고.
그녀는 기대감을 품고 약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장천운은 무공에 대한 깨달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공력이 약했다. 이번에 부상을 당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었다.
장천운은 자신의 호위무사. 자신을 위해서라도 더 강해져야 한다.
아니, 다른 모든 이유를 다 떠나서…… 그가 다른 사람에게 다치는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약고 안의 약들을 거의 다 살펴보았을 때였다. 맨 아래쪽 구석에 거무튀튀한 작은 상자 하나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크기는 가로세로 두 치 오 푼 정도. 손바닥보다 작았다.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은 듯 상자 위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고, 고리부분은 녹이 슬어서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상자를 들어서 고리를 강제로 풀고 뚜껑을 열어보았다.
“크으으!”
뚜껑이 열린 순간, 악취에 가까운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얼마나 독한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잔뜩 인상을 쓴 그녀는 상자 안을 바라보았다. 글자가 적힌 누런 천이 뭔가를 덮고 있었다.
[독령귀혼단(毒靈歸魂丹)은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 단, 주재료인 독령의 독기가 천하제일이어서, 숨이 끊어지고 혼이 저승의 경계에 한쪽 발을 딛지 않은 상태로 복용한다면 몸이 한줌 핏물로 녹을 것이다.]
독이라고? 그것도 천하제일의 극독?
다른 사람이었다면 놀라서 후다닥 뚜껑을 닫은 후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사마경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였다.
“흠, 천하제일의 독이란 말이지?”
독왕의 실험 대상이 되었던 사람이 장천운이다. 자신은 독왕이 만든 극독 중의 극독을 장천운이 복용하고 해독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 말도 안 되는 실험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장천운 아닌가.
독령귀혼단이 다른 사람에게는 천하제일의 극독일지 몰라도, 장천운에게는 목숨을 구하는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녀는 냄새가 퍼지지 않도록 상자를 확실하게 닫은 후 비고를 나섰다.
‘나는 그렇게 저를 생각해서 갖고 나왔는데, 냄새가 좀 난다고 표정이 저게 뭐야?’
이해 못할 건 없었다. 장천운이 독령귀혼단을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어쩌겠어? 소성주가 주는 건데.
사마경은 장천운을 째려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냄새가 독한 거야 당연하지. 극독으로 만든 약이 들어 있거든.”
그 말에 소연추와 구양명이 흠칫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장천운은 눈빛이 달라졌다. 사마경이 기대했던 대로였다.
“독으로 만든 약이요?”
“그래. 이름은 독령귀혼단인데, 죽기 전에는 복용하지 말라고 써져 있어. 너무 독해서 잘못 복용하면 핏물로 녹아버린데.”
소연추와 구양명은 눈만 껌벅였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럼 죽은 후에 복용하란 말인가? 저걸 복용하면 정말로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건가?
그런데 뭐? 극독? 잘못 복용하면 핏물로 녹아버려?
그걸 왜 장천운에게 주는 거지? 설마 진짜로 복용하라고 주는 건 아니겠지?
”받아. 팔 떨어지겠어.”
사마경이 재촉했다. 상자를 받아든 장천운은 조심스럽게 녹슨 고리를 당기고 뚜껑을 열어보았다.
고약한 악취에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너무 오래 되어서 썩은 거 아닙니까?”
“썩었든 안 썩었든, 어차피 독으로 만든 약이잖아.”
“하긴…….”
독이 썩으면 더 독해질까? 아니면 거꾸로 독기가 약해져?
독기가 강해지거나 약해지면 약효도 변할까? 약효가 변해서 살아날 수 있는 상태인데도 죽는 거 아냐?
자신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다. 독왕이라면 알지도…….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장천운은 편하게 생각하기로 하고 단점보다 장점에 집중했다.
‘소성주의 말이 사실이라면,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한번쯤은 삶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겠군.’
그것만 해도 어딘가?
* * *
우곡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손우곤의 뒤를 쫓았다.
손우곤은 그림자 하나가 뒤따르는 것도 모르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이 각쯤 지났을 때, 그들은 깊은 산 속 분지에 있는 장원에 도착했다.
겉으로만 보면 평범한 장원이나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절대경지에 진입한 우곡의 눈에는 결코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영혼을 짓누르는 웅혼한 기운이 장원 전체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곡의 움켜쥔 손안에 땀이 차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도대체 누가 있기에 저런 거대한 기운이 장원 전체를 감싸고 있단 말인가!
천중십마의 한 사람으로서 가졌던 자부심이 장원 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좋아, 누군지 몰라도 얼굴 한 번 보자!’
이를 악다문 그는 이전까지의 자존심을 한쪽 구석에 처박아 놓고 장원 안으로 몸을 날렸다.
장원은 모두 다섯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안의 인원은 오십여 명 정도 될 듯했다.
우곡은 그 중 가장 큰 건물인 금선전의 지붕 위에 내려섰다.
장원 내에 경비는 삼엄하지 않았다. 두 명씩 조를 이룬 자들이 사방을 오가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우곡은 본능적으로 최대한 조심했다. 발자국소리는 물론이고,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마저 제어했다. 심지어 기운마저 외부로 발산되지 않도록 갈무리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장원 안을 탐색해보았다. 특히 손우곤이 들어간 곳. 바로 자신이 밟고 서 있는 건물의 내부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손우곤의 위치조차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공력을 좀 더 끌어올려서 청각에 집중시켰다.
그제야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를 질책하는 듯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어리석은…… 그렇게 조심하라고…… 이제 곧 저들도…….”
소리가 워낙 작아서 정확한 내용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위치까지는 알아냈다.
그는 쾌재를 부르며 소리가 들린 쪽으로 이동했다.
실수는 거의 없었다. 굳이 실수라 한다면 목소리가 들린 곳에 가깝게 다가갔다는 것뿐.
그런데 목소리가 들린 곳 위에 멈춰선 순간, 오싹 소름이 돋았다.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든 우곡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서 그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자리를 피한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어서 지붕을 박차고 담장 근처의 거대한 암석 뒤로 날아갔다.
그때였다.
고오오오오…….
온몸에 소름을 돋게 하는 거대한 기운이 그를 향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순간적으로 환마의 자존심이 꿈틀거렸다.
천중십마로 추앙받는 자신이 상대의 얼굴도 보지 않고 도망치듯 피해야 하다니!
그는 돌아가는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천하의 환마가 기세에 눌려서 도망칠 수는 없지!
주먹을 불끈 쥔 그는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장천운이 신신당부하던 말이 떠올랐다.
“최대한 들키지 않아야 합니다. 불필요한 접전을 피하십시오. 그래야 놈들이 근거지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젠장!’
그는 바위를 박차고 다시 신형을 날려서 담장을 넘어갔다.
그때였다.
퍽!
뒤쪽에서 나직한 폭음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