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1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8화
“이제 제법 무사다운 표가 나는구나. 아주 마음에 들게 컸어.”
총사 우문각이 장천운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천운에 대해서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보고를 받았다.
유진생과 시끌벅적한 일을 벌인 것도 알고 있었고, 동겸과의 일도 알고 있었다.
뇌옥에 갇혔다 나온 후에는 은인자중하며 조용히 지냈다는 것도.
보고를 받은 우문각은 자신이 사람을 잘못보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대가 지나치게 세면 꺾이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장천운은 줄다리기를 해야 할 때와 물러설 때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어른이라 해도 쉽지 않은 일.
게다가 정식으로 무공을 배우는 것이 처음이었는데도 다른 수련생들과 비교해서 크게 뒤지지도 않았다.
삼년 차에 경혼당주의 아들인 동겸을 이겼을 정도라면 머리뿐만이 아니라 신체능력까지 뛰어나다는 뜻.
쓸모가 많은 놈이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오 년에 걸친 수련을 마쳤으니 기념으로 선물을 하나 주려고 불렀다.”
선물?
장천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우문각이 탁자 아래쪽에서 검은색 검집에 든 검을 꺼내 내밀었다.
“보검이라 할 수는 없다만 아주 쓸 만한 검이니라. 너를 보니 잘 어울릴 것 같다.”
주는 걸 마다할 장천운이 아니었다.
검을 받아든 그는 검병을 잡고 천천히 뽑았다.
좌우는 물론 천장에서도 차가운 기운이 밀려들었다. 총사를 지키는 호위무사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었다.
장천운은 개의치 않고 검을 절반가량 뽑았다.
“좋군요.”
수련용 철검만 대하다가 출곡 할 때가 되어서야 검다운 검을 지급받은 그다.
솔직히 검의 품질을 판단할 만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다만 느낌이 좋았을 뿐.
손에 착 감기는 검병의 느낌도 좋았고, 조금은 칙칙하게 느껴지는 검신도 마치 자신을 닮은 것 같아서 좋았다.
“현월(玄月)이라는 놈이다. 삼 년 전에 구한 거지. 이제부터 네 친구로 삼도록 해라.”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흑월이나 현월이나.
“감사합니다.”
“네 친구들도 이 년 전에 수련을 마치고 나왔다.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들이더구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잖아도 기회가 되면 알아보려고 했는데.
그때 우문각이 지금까지와 달리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소성주의 호위무사로 키운 것은 호위무사로 쓸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시면 하시지요.”
우문각은 장천운의 빠른 눈치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먼저 허공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내 허락이 있을 때까지 아무도 이곳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
곧 좌우와 천장에서 미약한 기의 움직임이 일었다.
장천운은 묵묵히 서서 우문각의 입이 열리기만 기다렸다.
우문각은 잠시 기다린 후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자세한 설명을 할 순 없지만, 최근 들어서 성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거든, 네 모든 것을 걸고 소성주를 지켜라.”
장천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누가 소성주를 해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우문각은 말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서 장천운의 질문에 대답했다.
‘제기랄. 여차하면 똥물에 빠질 지도 모르겠군.’
구천성에 암중으로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강련곡에서도 그 정도 소문은 들었으니까.
그런데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심각한 듯했다.
장천운이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혹시 소성주가 여자이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까?”
순간적으로 우문각의 눈에서 묘한 빛이 번뜩였다.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어떠냐, 최악의 경우 너를 던져서라도 소성주를 지키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느냐?”
“결국 소성주 대신 죽으라는 말씀이군요.”
“죽으라고는 안 했느니라. 기왕이면 살아서 지켜라.”
장천운은 어깨를 슬쩍 으쓱 추켜올리고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쩝, 어쨌든 흑도 새끼건달 주제에 대 구천성의 정예무사가 될 수 있도록 해줬으니 그 신세는 갚아야겠죠. 좋습니다. 약속하죠. 까짓 거, 죽어봐야 한번밖에 더 죽겠습니까?”
짐짓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하는 장천운을 보고 우문각의 입술 끝이 비틀어졌다.
어느 누구도 자신 앞에서 저런 식으로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제 겨우 스무 살 넘은 말단 호위무사 주제에 조금도 두려움 없이 말한다.
정말 마음에 드는 놈이었다.
“좋아. 네 말을 믿겠다. 그리고 이걸 받아라. 네가 약속한 대가다.”
우문각이 이번에는 가로세로 두 치밖에 안 되는 작은 나무함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소성주를 제대로 지키려면 지금보다 강해져야한다. 이것이라면 너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게 뭔데……?”
“용설단(龍雪丹)이다.”
“약입니까? 설마 독약은 아니겠죠?”
직설적인 장천운의 말에 우문각이 끝내 ‘훗’ 소리를 내며 실소를 지었다.
아마 그 모습을 남들이 봤다면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세상에! 냉혈군자 우문각이 저런 웃음을 짓다니!’ 하면서.
“걱정마라. 독약이나 먹이려고 오 년간 키운 것이 아니니까. 복용하고 기운을 제대로 받아들이면 내공증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야.”
장천운은 그제야 용설단을 주는 이유를 알고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럼 그게 전설 속의 영단이란 말씀입니까?”
“전설 속의 영단은 아니지만, 천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것임은 분명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복용해라. 당장.”
장천운은 서슴없이 손을 뻗어서 함을 받았다.
향긋한 냄새가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함 안에는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단환이 들어 있었다.
‘이걸 먹으면 내공이 늘어난단 말이지?’
그는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럽게 단환을 꺼내고는 우문각을 바라보았다.
“그냥 복용하면 됩니까?”
“복용하고 이곳에서 운공조식을 해라. 어차피 약기운을 다 내공으로 승화시키려면 닷새 정도 걸린다. 그러니 일단 소주천을 해서 약기운을 받아들이는 일에만 전념해라.”
장천운은 망설이지 않고 용설단을 입안에 털어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이런 것은 줄 때 먹어야 돼. 나중에 되돌려달라고 하기 전에.’
그런데 겁나게 썼다.
맛이 좋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써도 너무 써서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참자, 참아.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잖아?’
얼굴이 일그러진 그는 억지로 용설단을 삼키고는, 우문각이 보든 말든 한쪽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운공조식을 시작했다.
한 시진 후.
비령각을 나서는 장천운의 옆구리에는 현월이 꽂혀 있었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제법 괜찮은 약 같아.’
기분이 좋은 한편으로, 목숨을 건 약속을 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어디까지 날 이용하려고 할진 모르지만,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요, 총사 나리.’
***
소성주는 판에 박힌 생활을 반복했다.
아침에 성주를 찾아가 함께 식사하고, 돌아오면 지하수련실로 가서 수련하고,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공부에 열중했다.
어떤 날은 말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고, 어떤 날은 전각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한 번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임무시간이 오후인 삼조는 그럴 경우 저녁식사 시간 전까지 전각 안에서만 지내야 했다.
장천운은 그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임무를 수행하는 와중에도 몽중무와 환귀자가 남긴 환술의 구결을 암송했다.
몽중무는 아무래도 꿈속에서 들었던 구결을 떠올린 것이어서 구결의 완벽함을 자신할 수 없었다. 암송을 하다보면 오류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환술의 구결은, 그 안에서 뭔가를 찾아내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얼토당토않은 그 구결에 집착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으니까.
쓸 만한 내용도 없진 않았고.
임무를 시작한 지 열흘째.
봄비가 올 것처럼 회색구름이 잔뜩 낀 그날도 장천운은 구결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암송하며 회랑을 서성거렸다.
‘용설단이라는 약이 효과가 있긴 있군. 공력이 제법 많이 늘었단 말이야. 흐흐흐흐.’
용설단의 약기운은 이미 몸속에 완전히 녹아든 상태였다.
공력도 제법 늘어서 이제는 혼천수라권을 오성 경지까지 펼칠 수 있을 듯했다.
‘하나 더 달라고 하면 줄까? 그렇게 쪼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
장천운이 헛된 욕심을 부리며 총사를 저울질 하고 있을 때였다.
아래층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응? 뭐지?’
그는 즉시 계단 쪽에 서서 청각을 집중했다.
진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기는 여기에 맡겨주시지요.”
“허어, 너는 우리가 누군 줄 모르는 모양이구나?”
“성주께서 오셨다고 해도 같은 말씀을 드렸을 겁니다.”
“뭐야? 이거 참…….”
아마도 누군가가 무기를 지니고 들어오려다가 원리원칙에 충실한 진구에게 막힌 듯했다.
‘누군지 몰라도 진구의 고집을 꺾지는 못할 걸?’
장천운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진구는 무뚝뚝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피곤할 정도로 원리원칙을 준수했다.
교관들조차 진구의 그 성격에는 두 손을 들 정도였다.
한번은 한여름에 너무 더워서 양태악이 수련을 중단하려고 했다.
그런데 진구가 물어보았다.
“교관님, 이 정도 날씨면 수련을 멈추는 것이 원칙입니까?”
“그건 아니다. 하지만 너무 더워서 수련해봐야 역효과만 날 것 같으니 쉬었다 하자.”
“그럼 계속 하죠. 한번 원칙을 훼손하면 또 그럴 거 아닙니까? 교관님은 누군가를 호위할 때 덥다고 임무를 포기하실 겁니까?”
수련생들은 원망이 가득한 눈초리로 진구를 째려봤지만, 진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날 수련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그날은 정말 땀을 많이 흘렸지.’
그때 몇 사람이 계단을 올라오는 게 보였다.
모두 셋. 처음 보는 자들이었다.
장천운은 구천성 인물편에 적혀 있던 내용을 재빨리 더듬어서 올라오는 자들과 일치하는 이름을 찾아냈다.
세 사람이 계단을 거의 다 올라올 즈음, 그는 두 사람의 이름을 찾아냈다.
주름이 거의 없어 피부가 탱탱한 초로인은 장로인 옥마수(玉魔手) 남조연.
마른 몸매의 초로인도 장로인데 귀월비검(鬼月飛劍) 가유덕이란 자였다.
‘근데 한 사람은 누구지?’
청색무복을 입은 중년인의 나이는 두 사람보다 적을 듯했다.
그러나 대 구천성의 장로와 동행할 정도라면 낮은 지위는 아니라는 말이었다.
“이 친구도 이번에 보강된 무사인가 보군.”
옥마수 남조연이 장천운을 쓱 훑어보고 말했다. 아래쪽의 일로 심기가 상한 듯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장천운이 태연히 대답하고는 방문 이유를 물어보았다.
“소성주를 만나 뵈러 왔다. 비켜서라.”
“방문목적과 성함을 말씀해 주시지요.”
“아래쪽에서 이미 다 말해주었다.”
“잘 아시겠지만, 아래에서 대답했다 해도 위에 올라오시면 다시 말씀해주시는 게 원칙입니다.”
“원칙?”
남조연이 눈을 치켜떴다. 마치 원칙이라는 말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그때 관철양이 계단 쪽으로 다가와서 그들을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청의중년인이 그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새로 보강된 호위무사들이 제법 깐깐하군.”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별 일은 아니네. 원리원칙에 대해서 몇 마디 들었을 뿐이야.”
“소성주를 위한 일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우리도 바쁜 몸이야. 소성주를 뵙고자 하니 안에 기별을 올리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장천운, 이분들은 내가 맡겠다.”
관철양은 그렇게만 말하고 돌아서서 소성주의 방으로 향했다.
장로전의 장로 스물여덟 명은 은연중 성주와 장로원주인 대장로 마제(魔帝) 나극의 사람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남조연과 가유덕은 장로 중에서도 성주 쪽 사람이었다.
특히 남조연은 소성주의 외숙부였고.
그들이 관철양을 따라 소성주의 방으로 향할 때 장천운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제 생각났군. 저 자는 구절도(九絶刀) 육선기야.’
사십대 후반의 나이. 인물편에 적힌 바에 의하면, 그는 열여덟 명의 호법 중에서도 성주의 최측근을 칭하는 구천팔위(九天八衛) 중 한 명이었다.
천하에서 도의 고수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초절정고수.
‘무슨 일로 온 거지?’
장로와 호법 셋이 동시에 몰려온 것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