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7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7화
27화. 암운곡의 최강자
"이야. 간만에 이쪽으로 오니까 감회가 새롭네. 킥킥. 안 그러냐?"
사백 동굴 2구역.
암운곡 4년차 5명이 찬찬히 주위를 구경하며 1구역으로 향했다. 그들의 등장에 후배들은 몸을 사리며 재빨리 그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졌다.
괜히 이들에게 걸렸다가 꼬투리 잡히면 며칠 몸이 성치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진한 미소를 머금는 무리.
"풉. 그러게. 어이 너희들. 오늘은 니들에게 힘 뺄 생각 없으니까, 어여 훈련들 해."
"훈련은 무슨. 아까 보니까 완전 햇병아리들이더만."
"인정. 아까 칼 휘두르는 거 봤는데 존나 별 볼일 없더라. 큭큭."
"어휴. 여기가 이 정도니 1구역은 어떨지 상상도 안 되네."
사백동굴은 크게 4구역으로 나뉜다.
체력단련을 위한 1구역부터 해서, 대련과 무기수련을 위한 2구역, 보법과 경공을 위한 3구역.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 심법훈련과 무공 연마를 위한 4구역까지.
일반적으로 4년차부터는 4구역에 틀어박혀 잘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4년차 최강자 무리인 소운과 그 패거리가 이 시간에 나오는 일은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이 바로 그날.
그로인해 사백동굴은 마치 한겨울의 들판과 같은 서늘함이 내려앉아, 바람소리와 물소리만이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초아년 없는 거 확실하지?"
"어. 지금 교관이랑 조교들 다 동굴 밖에 모여 있어. 오려면 좀 걸릴 듯."
"자자. 그럼 빨리 가자고. 그 잘난 1년차 놈 구경하러."
껄렁껄렁 걸음을 옮겨 1구역으로 들어선다. 그러자 훈련을 하고 있는 2-3년차 몇몇과 1년차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한 곳에 모여 있는 200여명의 무리에게 다가갔다.
"흠흠! 너희들이 이번에 들어 왔다는 1년차들이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들을 돌아보는 아이들.
한 눈에 봐도 그들보다 선배다. 먼젓번에 3년차들의 횡포를 본 아이들은 트집 잡히지 않기 위해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잡도리를 하기 위해 온 그들에겐 부질없는 짓이었다.
"허? 이것들 보게? 아주 예의가 건방져. 허리를 완전히 숙여야지 고개를 까딱? 야. 너희들 내가 누군 줄 모르냐?"
아이들이 고개를 젓는다.
그들이 뭘 알겠는가? 암운곡에 온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거늘.
"누구야?"
"유명한 사람인가?"
"나도 몰라."
그런 그들을 한쪽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는 2-3년차들.
4년차 소운 패거리는 암운곡에서 악랄하기로 유명하다. 그들 때문에 자살한 이들의 숫자가 상당할 정도로.
그중 제일은 소운. 그 아비가 마두인 까닭에 그는 1년차 때부터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아마 오늘 신입들 중 반수 이상은 잠도 제대로 못자고 시름시름 앓으리라.
그리고 그 악덕한 행위가 이제 막 시작됐다.
"야, 너희들. 다 대가리 박아."
"예?"
"선배 말이 말 같지 않아? 박으라면 박아, 이것들아!"
소운을 포함 험악한 얼굴로 눈을 부라리는 다섯 명.
그러나 주춤할 뿐 움직이진 않는다. 이미 천강과 조교 소용을 통해 선배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말아도 됨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다섯 명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이것들이 다 죽고 싶나?"
"그…… 조교님이 선배들 말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안 따르겠다?"
소운이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을 빼들었다. 아이들이 깜짝 놀라 후다닥 뒤로 물러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카, 칼?!"
"으아악! 피해!"
그런데 그때, 한 아이가 반대로 앞으로 나아왔다.
"넌 뭐냐?"
그녀는 연화였다.
"아직 우리 이곳에 온지 일주일도 안됐거든? 그래서 선배가 누구인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몰라. 그러니 며칠간은 이곳 분위기 파악할 시간은 좀 주는 건 어때?"
"하? 이년이 미쳤나?"
소운이 들고 있던 칼을 연화의 목에 들이민다. 그러나 연화,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호오. 이년 보게?
"쪼그마한 게 제법 배포가 있네? 어디 배때기에 구멍 나도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나 볼까?"
"감당할 자신은 있고?"
"뭐? 아하! 너희 부모가 좀 대단한가봐? 응? 그렇지? 그러고 보니 이번에 마두의 자제가 둘 있다더니…… 그중 하나가 너였나 보네? 그런데 꼬마야."
검날을 목에 가져다 대며 소운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당돌한 건 좋은데, 상황 봐서 까불어야 오래 산다? 지금 이곳에 네 그 잘난 부모가 있을 것 같아? 넌 진짜 마두 자제 아니었으면 진즉에 목 날아갔어. 알겠어? 대답해. 알겠냐고?"
"모르겠는데?"
"이년이 진짜……!"
소운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 그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
"어떤 정신 나간 새끼가……."
소운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린다. 서늘하다 못해 한기가 풀풀 날리는 매서운 눈빛이 그를 노려보고 있다.
두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두 발이 얼어붙고 오금이 저릴 정도의 고수.
소운은 곧바로 그녀에게 예를 갖추었다.
"누, 누구십니까?"
"……화정마녀다. 지금부터 우리 아가씨 목에 칼을 들이민 이유를 설명해라. 합당치 않으면 지금 이 자리서 네 목은 날아간다."
화, 화정마녀?
화정마녀. 마교에서 차기 마두 중 하나로 지목되는 고수 중 하나.
가녀린 두 주먹으로 무당파의 장로와 싸워 이긴 화경급 고수.
성격이 불같아 암운곡 시절부터 선배들의 턱주가리를 깨고 다닌 걸로 유명한 그녀의 등장에, 사백동굴은 떠들썩해졌다.
"저분이 그 수많은 여마인들의 귀감을 산다는……!"
"꺄악. 상상한 것보다 더 멋져요, 언니!"
암운곡에 있다 보면 교관과 조교로부터 마교 내 유명 인사들에 대해 전해 듣게 되는데, 말로만 듣던 여마인들의 존경 후보 1위가 등장하자…… 1구역은 순식간에 몰려든 아이들로 인해 붐비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등장에 모두가 환호하는 건 아니었다. 소운과 함께 온 네 명의 얼굴은 단번에 파리해졌다.
"야. 저분이 아가씨라고 부르면…… 한 명 밖에 없지 않나?"
'……씨발 좆 됐네.'
소운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힌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그의 아비 또한 마두 아닌가?
"마교 서열 89위 일휘혈마가 제 아버지입니다."
"네 아비가 누군지 묻지 않았어. 질문에나 똑바로 대답해."
"그게 중요한 가요? 이제 제가 누구인지 아셨으니 쉽사리 손 못 대실 텐데. 일 크게 만드실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일개 마인인 그녀는 그에게 손찌검을 할 수 없으리라. 그랬다간 일이 커져, 마두들간의 싸움으로까지 번질 테니까.
쉽게 말해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는단 의미.
그러나 뒤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에 소운은 완전히 좆됐음을 직감했다.
"아, 네놈이 그 쭉정이 놈 아들이었냐?"
고개를 돌린다. 9척은 족히 되는 거구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어르신."
그 앞에 몸을 숙이는 화정마녀. 그걸 통해 그가 누구인지 확신을 얻은 소운의 등줄기엔 또르르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권광투마님. 소운이라 하옵니다."
권광투마. 마교 서열 17위의 고수.
두 주먹을 사용해 수많은 무림인들과 마인들을 굴복시킨 괴물 중의 괴물.
그가 씨익 미소 지으며 묻는다.
"오냐. 근데 뭐 하나만 묻지. 왜 내 딸에게 칼을 겨누고 있던 거냐?"
"저, 저기 그게……."
말을 쉽사리 못한다. 까딱 잘못했다간 저 주먹에 피떡이 되어 이승을 떠야 하기에.
권광투마는 상대가 약한지 강한지, 혹은 상황이 불리한지 유리한지 따지지 않는 성품이었다.
그래도 살고자 필사의 머리를 굴리자, 곧 소운은 적절한 핑계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것들이 선배인 제 말을 듣지 않아 그랬습니다."
"흠. 암운곡 규율에 그런 규칙이 있었던가?"
"없습니다, 어르신. 그냥 이 녀석의 목을 이 자리서 뽑아내겠습니다."
그러고는 목을 움켜쥐는 걸, 소운이 재빨리 몸을 수그리며 외쳤다.
"권광투마님! 마교는 힘의 논리 아닙니까?"
"그래. 그렇지."
"전 강자의 논리에 따라, 이들에게 제 지시를 따를 것을 지시한 것뿐입니다. 제가 이곳 암운곡에서 제일 강자라면 그래도 되는 것 아닙니까?"
권광투마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네가 이곳에서 제일 강하다?"
"그렇습니다!"
개인 무력으로 치면 암운곡에서는 자신의 상대가 없다 자부하는 소운이었다. 심지어 조교 중에서도 그를 이길 자는 오로지 초아 년뿐.
"특히 이건 암운곡 내에서의 일. 권광투마님께서 끼어들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래? 내 딸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는데도 그래야 한다?"
"암운곡은 철저히 외부세력과 단절되어야 하는 게 규칙입니다. 그 점 어르신도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희끼리 해결할 수 있게 하여주십시오."
권광투마의 얼굴에 고심이 올라왔다. 확실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암운곡은 외부인사가 힘을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어르신.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목을 움켜쥔 손아귀에 힘을 주는 화정마녀.
그로 인한 고통에 작게 몸부림치면서도 소운은 권광투마의 얼굴을 보고 확신했다. 자신의 변명이 제대로 먹혀들어갔음을.
권광투마는 제멋대로여도 마교의 규칙을 존중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지금껏 수많은 사고를 쳐왔음에도, 대다수 마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었고.
"그 말이 맞다. 외부인사가 낄 자리가 아니다."
"어르신!"
"아빠! 다짜고짜 와서, 허리 숙이고 인사 안 했다고 머리 박으라고 한 놈이야? 그걸 따라야 한다고?"
딸아이의 거센 항의에 권광투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힘 있는 자가 규칙을 만들면 그걸 따라야 하는 게 마교다. 만약 그 규칙이 마음에 안 든다면, 연화 네가 암운곡 최강자가 되면 될 일이다."
"그치만……!"
"열심히 훈련하거라. 율아, 이쪽으로 오거라. 우린 이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승자의 미소가 소운의 입가에 떠오른다. 그는 곧바로 강자로서의 권리를 사용했다.
"들었지? 나랑 싸워서 이길 자신 없으면 내 말 따라라. 다들 머리 박아."
1년차 아이들이 서로 눈치를 본다. 그리곤 1번과 2번을 바라본다.
그러나 연화나 묵현에게도 이렇다 할 방도가 없었다.
3년의 벽은 큰 법이다.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어려서부터 꾸준히 훈련받아 기감이 발달한 두 사람은 느낄 수 있었다. 눈앞에 선배가 얼마나 강한 지를.
'정말로 머리를 박아야 하는 거야? 그것도 아빠가 보는 앞에서?'
저런 놈의 말을 따라야만 하는 거야?
자존심이 상하는지 연화가 주먹을 쥐고는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사실 소운이 노린 것도 그 부분이었다. 일단 권광투마가 지켜보는 자리인 만큼 그냥 적당히 혼을 내고 물러나도 됐지만, 그는 힘이 생기면 그걸 마구 휘두르는 성품이었다.
표정이 구겨진 화정마녀를 보며 작게 코웃음 친 소운이 다시금 소리친다.
"다들 머리 박아!"
새삼 힘이 없음에 울분이 터져 나오는 연화. 그때였다.
"형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따르지 않는다."
"예?"
2번 묵현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는 사백동굴에 있는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그리고 그걸 들은 소운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묵현의 앞에 섰다.
"어이. 뭐라고 했냐?"
"네 말을 따를 수 없다고 했다."
"하아? 그건 죽고 싶단 뜻?"
"죽고 싶은 건 아니다. 내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어이, 후배님. 그럼 머리 박으세요. 응?"
소운이 검지로 묵현의 이마를 꾹꾹 눌러댄다. 그러나 표정변화 없는 소년은 묵묵히 그걸 받아내며 나직이 말했다.
"난…… 누군가에게 허리를 숙일 수 없는 몸이다. 그러니 네 앞에 머리를 박을 일은 절대 없다."
"하하핫. 그 이야긴…… 한 판 붙잔 소리네!!"
소운이 수도를 내지른다. 묵현은 재빨리 신법을 사용, 아슬아슬하게 그 공격을 피해 밖으로 벗어났다.
그러나 그걸 가만 놔둘 소운이 아니었다.
내공을 두 다리에 크게 실어, 순수하게 내공 양으로 속도를 증진, 따라붙는다.
사삭. 사사삭.
파바바박.
순식간에 따라잡힌 2번.
소운이 묵현을 구석으로 몰고는 살격을 내질렀다.
"어디서 건방지게! 네놈이 황제라도 되는 줄 아냐?! 따르기 싫으면 죽어랏!!"
좌우 그 어디로도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그때 누군가 그의 옆에서 튀어나와 몸통박치기를 시전 했다.
퍽.
"큭. 웬 놈이냐!"
땅바닥을 한 번 구르고는 자세를 다잡는다. 웬 소년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다.
그를 본 모두의 눈이 크게 뜨였다.
연화와 무진은 반가움에, 그 외에 아이들은 이 상황을 타개할 구원의 희망에, 그리고 권광투마와 화정마녀는…….
"크하하핫. 대단하구나! 저 나이에 저 정도의 내공 양이라니? 하하하핫!"
"마, 말도 안 됩니다. 저 어린 나이에 어떻게 초절정 수준의 내공을?"
소년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는 2번 묵현에게 손을 내밀며 왈.
"역시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니까. 야, 2번. 너 진짜 그렇게 말하는 거 고쳐라. 앞으로는 그런 말 하지 말고 그냥 음……. 말을 씹어. 응. 무시해. 그게 더 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