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5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5화
25화. 역대 최단 기록 갱신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돼.'
팔다리를 바삐 움직여, 물을 거슬러 앞으로 쭉쭉 나아간다.
그런 천강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연화. 거리는 어느새 다섯 보로 좁혀졌다.
"너어! 잡히면 죽었어!"
어후. 체력 좋은 거 보소.
다른 건 몰라도, 연화 쟤는 체력만큼은 압도적으로 훌륭하다. 암운곡 3년차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리라.
그 사이 3보까지 좁혀든 거리. 그때 천강이 방향을 옆으로 훅 틀었다.
"헷. 바보 녀석! 옆으로 가면 내가 따라갈 줄 알아? 이제 내가 다시 1등이다!"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연화와, 지하수로 왼편에서 반대편인 오른편으로 이동하는 천강.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반대편에 도착한 순간, 천강이 갑자기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우는 게 아닌가?
종아리 언저리에 닿아있는 수면을 본 연화의 얼굴엔 황당함이 올라왔다.
"야! 너 뭐야?!"
"그냥 날 따라오지 그랬어? 내가 늘 말하잖냐. 나만 따라오면 손해는 안 본다고~"
"이익! 너어……! 거기서!"
그제야 뒤늦게 따라오는 연화. 그 사이 천강은 발을 놀렸다.
지금부터 뚫려있는 지하수로는 뱀 마냥 길이 꾸불꾸불 나 있다. 통로도 좁아서 물이 급류가 되어 흐르기 때문에, 단순히 수영해서 올라가기엔 어마어마한 체력을 필요로 한다.
그게 무슨 뜻이냐?
사실상 요 구간에서 시간을 다 잡아먹는단 의미다.
그러나 5년간 이곳을 지나다닌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길이 꾸불거린다는 건 곧 바깥쪽 물살은 세고 깊이가 깊어도, 그 안쪽은 평온하고 얕다는 뜻.'
파바박.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는 물살이 다시 세지고 깊이가 점점 깊어지는 게 느껴지는 순간, 도움닫기를 해 단숨에 통로 반대편으로 몸을 날린다.
첨벙.
따라오던 연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강이 내려 선 자리에서 다시 몸을 일으키는데, 그곳 또한 물이 무릎에도 안 닿았기 때문이다.
"후에엥?!"
머리로 이해가 안 되는지 한참을 멍 때리는 아이.
"안 따라오면 놓고 간다?"
"아, 알았어!"
슬쩍 뒤를 본다. 자신과 연화를 보고 그대로 뒤따라오는 2번과 5번의 모습이 보인다. 천강은 다시 발을 분주히 놀렸다.
***
"자넨 누가 1등할 것 같은가?"
한겨울의 고드름을 연상시키는 뾰족한 돌이 위아래로 자리하고, 그 밑으로는 오랜 시간 세월의 풍파에 깎이고 깎여 평평한 바닥이 깔려있는 곳.
이곳은 바로 사백동굴. 암운곡에 거주하는 이들의 훈련장소다.
여기 한쪽 바닥에는 암운곡에서처럼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근처에서 교관들이 모여 다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
"당연히 권광투마님의 여식이 1위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계집의 몸. 육체적 역량의 차이 또한 무시할 순 없지. 난 흑선마희님의 자제가 맨 처음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구만."
의견이 다소 분분하나, 결국엔 1번 아니면 2번 중 한 명이 1등을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결론이 나오자, 이야기의 흐름은 자연스레 그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그럼 이번에 최단 기록이 갱신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들 생각하나?"
사람들이 저마다 고민에 잠긴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고개를 내젓는다.
"역시 불가능하겠지."
"아무래도……."
현재 최단기록을 달성한 이는 묵범귀영이란 자다.
120년 전 사람으로, 강호는 물론 마교 내에서도 기록의 거의 전무한 인물이다.
다만 그의 기이한 행적과 뛰어난 능력은 종종 마교 곳곳에서 발견되곤 했는데, 약 5년 전에도 그의 흔적으로 보이는 게 새로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그가 아직도 살아있다고 믿고 있었다.
흑살마신처럼 천마를 은밀히 보필하고 있지 않을까 판단하는 이들이 대다수.
아무튼 그의 능력 검정 기록은 이각(二刻). 120년간 아직 그의 기록을 뛰어넘은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1번 2번이 마두의 자녀라 한들, 그 부모가 서열 10위권 안에 드는 고수는 아니지 않은가? 아무래도 힘들다 봐야겠지."
"5년 전 초아가 그나마 갱신 가능성이 있었는데 말이오. 아쉽게 탈락했었지?"
한 교관의 질문에 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차 두 잔 마실 정도 늦었어요."
"참으로 아까워."
"그런데 이번엔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저보다 대단한 애가 들어왔거든요!"
초아의 말에 몇몇은 한숨을, 또 어떤 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가 누굴 말하는지 짐작한 탓이다.
"아아. 요새 네가 푹 빠져있다는 그 꼬맹이?"
"얼레? 어떻게 아셨어요?"
"야. 벌써 소문 쫙 놨어. 아마 마교에서 그 사실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걸?"
"아잉. 참……. 이거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겠네요~"
그때 한 차례 물소리가 들려왔다.
"어? 조교들 왔구만."
소용을 포함 조교 세 명이 물 밖으로 나와 젖은 옷을 꾹꾹 쥐어짜낸다. 그리고는 몸을 정돈하더니, 이내 교관들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그래그래. 수고했다. 너희들이 보기엔 어떠냐? 누가 1등을 할 것 같으냐?"
아이들과 거리가 멀어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봤던 구도에서 1번이 선두였던 걸 기억한 그들은 입을 모아 1번을 지목했다.
"저희 생각엔 아무래도 1번이……."
"역시 권광투마님의 여식인 건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마음에 안 든 초아가 궁시렁 거렸다.
"내가 볼 땐 천강이 1등 확실한데…."
그걸 들은 소용이 코웃음 쳤다.
"얼씨구. 네가 그 애 좋아하는 건 이제 나도 알거든? 사심은 좀 빼시지?"
"사심이 아니라 사실이거든?"
"풉. 확실해? 내가 봤을 땐 제일 꼴등에 있었는데?"
소용이 봤을 때 천강은 아직 제자리서 출발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가 1등이라니?
비웃음밖에 안 나오는 소용이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물소리가 났다.
어……?
"교, 교관님! 누군가 들어왔습니다!"
물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2년차 한 명이 큰 소리로 외친다. 모두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간다.
복식을 보아하니 암운곡 수련생.
사람들의 눈이 단번에 휘둥그레졌다.
"마, 말도 안 돼."
"아니…… 조교들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허, 허허허. 이거 권광투마께서 엄청난 딸아이를 낳으셨구먼!"
그러나 물에서 나온 이가 고개를 드는 순간, 그들의 놀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1등으로 예상되었던 1번도, 2번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천강이 후욱후욱 거친 숨을 내뱉고는 미소 짓는다. 초아가 폴짝 뛰며 그에게 달려가 안긴다.
"그래서 제 기록은 어떻게 됩니까?"
***
"자네. 그 이야기 들었는가?"
"무슨 이야기?"
"아니 글쎄……. 이번에 암운곡에서 묵범귀영의 기록을 깬 이가 나타났다지 뭔가?"
"그게 정말인가?!"
묵범귀영이 누구인가?
마교가 생성된 이래, 그 역사에서 손꼽이는 10대 고수 중 하나 아니던가?
그는 어릴 적부터 같은 또래에선 비교할 이가 없을 정도로 매우 뛰어났고. 그가 암운곡 신입 시절 세웠던 그 기록은 수많은 천마들조차 넘지 못한 거대한 벽이었다.
그런데 방금 그게 무너졌단 소리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컸다.
"대체 누구인가 그게? 혹시 권광투마님의 여식인가?"
"아이네. 쥐장수들이 데려온 아이라더군."
"허?! 허허헛. 이거 정말…… 엄청난 인재가 들어왔구만! 발 재주가 꽤 뛰어난가 보이!"
"심지어 그게 다가 아닐세."
"아니, 그거 말고도 놀랄 일이 또 있는가?"
남자가 눈을 빛내고는 호기심을 띄우자, 그 동료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풍문으로는 두 마두의 자녀와도 싸워서 이겼다고 하더라고."
"세상에. 그 이야긴……."
"그렇지. 단순히 발재간만 뛰어난 게 아니란 이야기네. 듣기론 흑선마희님의 아드님을 단 일격에 쓰러뜨렸다더군. 손 하나 까딱 못할 정도로 말이야."
"그런……! 자네 방금 한 말 모두 사실이겠지?"
"내가 거짓말해서 뭐하나? 암운곡에 가 있는 조교에게 직접 들은 걸세!"
그러자 남자가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동료가 의아한 얼굴로 묻는다.
"아니 근데 자네…… 갑자기 어딜 그리 급히 가나?"
"이 사실을 다른 이들보다 빨리 알리면 술이라도 한 잔 얻어먹지 않겠는가?"
"그, 그렇군! 나도 바삐 움직여야겠구만!"
소문은 삽시간에 마교 전체로 퍼져나갔다. 평범한 마인들을 넘어, 마교의 큰 기둥들인 마두들에게까지.
"우리 아들이 단 일격에 패배했다고……?"
"예, 대모."
"……어떤 애인지 자세히 알아오도록."
"명을 받듭니다."
2번 묵현의 어머니인 흑선마희부터 해서.
"그으래? 그때 그놈이 그랬단 말이지?"
"예. 당시 연화님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순위권에 들기보단, 일종의 강자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 붙어계셨던 거죠."
"하하핫. 재미있군. 내 그놈을 한 번 직접 만나봐야겠다."
1번 연화의 아버지인 권광투마까지.
천강은 수많은 마인들의 호기심을 한눈에 받게 되었다. 그러나 좋은 시선만 받은 건 아니었다.
"이번 1년차가 아주 대단하다던데?"
"어느 정돈데?"
"능력 검정 있지? 그거 최단 기록을 갱신했다더라고."
"……농담이지?"
"야, 내가 너한테 그런 농담을 하겠냐?"
졸업반인 5년차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암운곡의 실권을 쥐고 있는 4년차 최강자 소운.
동기의 말에 그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럼 우리 신입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보러 갈까? 지금쯤이면 기세등등해져 있을 테니, 그 교만함을 일찍 꺾어주는 것도 선배의 도리 아니겠어?"
"크크큭. 정말 좋은 생각이야!"
그리고 마지막. 마교의 그늘.
그 은밀한 곳에서도 천강의 이야기가 오고갔다.
"들었나?"
"뭘?"
"드디어 나타났어."
"누구?"
"천마의 자식."
"오오. 드디어……!"
"묵범귀영의 기록을 깨뜨렸다더군. 더 놔두면 귀찮아질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어떡하긴 어떡해? 죽여야지."
"그래. 큭큭큭."
어둠 속으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졌다.
***
"형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너…… 진짜 대단하네."
무진이와 연화가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뱉는다.
둘 뿐만 아니라, 그들 주위로 200여명의 아이들 또한 천강을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역시……. 난 처음부터 천강이 한 건 할 줄 알았어."
"나도. 본래 인품이 뛰어난 자가 실력도 두루 갖추고 있다고 하잖아?"
"처음부터 될 인물이었던 거지."
그때 누군가 천강에게 다가온다.
그들은 흑철마괴와 조교 초아였다.
"99번. 아니 천강. 초아에게 들었다. 기록을 갱신했다고?"
"예.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잘했다. 받아라. 하급 영약이다."
그에게서 주머니를 받아 열어본다. 기존에 받았던 최하급 영약하고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건 뭐로 만든 겁니까?"
"똑같이 산삼이다. 다만 백년 묵은 것이지. 최하급하고는 달리 내력증진에 분명 도움이 될 거다. 50배는 족히 더 효과가 있다 말할 수 있겠군."
마교에 오래 있었음에도 천강에겐 다소 생소한 영약들.
암운곡 시절에는 영약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고, 졸업한 이후에는 스승으로부터 진귀한 것만 먹었던 터라 마교 내 영약이나 환단에 대해서는 지식이 전무 한 천강이었다.
천강은 그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반으로 갈라 초아에게 건넸다.
"이거 무진이랑 연화가 반씩 흡수하는데 좀 도와주세요."
"괜찮겠어?"
"저야…… 딱히 내공이 필요하진 않아서요."
무슨 뜻인지 알았다며 초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초아 넌 이곳에 남아서 걔들 둘 도와주고, 천강 너는 날 따라오도록."
"어디를 가는 겁니까?"
"천산의 보고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