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3화
23화. 흑이끼
그녀의 태도가 못마땅한 두 소녀가 곧바로 열불을 토했다.
"저런 쌍년이 건방지게……!"
"조교라고 막말하는 게 정말 기본도 안 된 아줌마네!"
천강은 초아를 한 번, 그리고 소용이 사라진 곳을 한 번 돌아보았다. 싹퉁머리 없는 조교와 제법 친분이 있는 관계인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역시 여자들 사이엔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다니까.'
지금 그에게 딱 붙어있는 두 여자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원수마냥 싸울 땐 언제고, 죽마고우마냥 화답하며 함께 욕을 해대는 걸 보면 말이다.
"내가 매번 이기니까, 한번은 저년이 치사하게 배가 아파 화장실을 가려는데 그 순간에 맞춰 결투를 신청하지 뭐야?"
"정말요? 와아…….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음흉한 아줌마였네."
"심지어 한 달 전에는……."
쉴 새 없이 주절주절 떠드는 두 사람. 천강은 양쪽에서 짹짹 거리는 두 참새를 조용히 시켰다.
"잡소리들 그만 하고. 누님. 그런데 10위까지의 보상이 뭐길래 그런 겁니까?"
"아, 그거? 영약이야."
"영약이요?"
"어. 마교에서 만든 최하급 영약. 효과는 미비하긴 한데, 아무래도 다들 내공이 없을 때라 그 조금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차이가 클 수밖에 없잖아?"
"어떤 종류인데요?"
"산삼으로 알고 있어."
영약을 먹어 흡수하면 내공이 증진되는 효과가 있다. 때로는 저항력을 올려주기고 하고.
"왜? 너도 먹고 싶어? 내가 좀 구해줄까?"
"그래도 돼요?"
"뭐 안 될 것도 없긴 하지? 나도 몇 개 가지고 있거든."
"누님 드셔야지요."
"오구오구, 우리 동생! 누님 생각도 다하고! 난 그거 먹어도 간의 기별도 안 가. 그러니 원하면 몇 개 줄게."
"그래도 모이면 꽤 도움이 될 텐데요."
"난 체질이 영약과는 영 안 맞아서 말이야. 쓰나 안 쓰나 별반 차이가 없어."
사람마다 영약을 흡수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 그걸 경험으로 실력으로 늘릴 수는 있으나, 태생적으로 흡수율이 1할도 안 되는 이 또한 존재한다. 초아는 자신이 그런 부류라 했다.
"그럼 두 개만 구해주세요."
"하나씩 가져다줄게. 아직 몸이 어려서 한꺼번에 흡수하긴 쉽지 않을 걸?"
"그게 아니고, 얘네들 주려고요."
"에? 그럼 너는?"
"전 영약 흡수 못하는 몸이에요."
이해를 못하겠단 얼굴로 천강을 바라보는 세 사람.
물론 거짓말이다. 다른 사람의 기도 흡수하는데 왜 흡수를 못할까? 그저 동료들에게 강해질 기회를 주고 싶어 둘러댄 변명이었다.
현재 천강에게 있어서 내공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 사람의 기운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계산상 천 명분의 기운을 흡수할 때쯤엔 이미 화경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일 터.
그 이후엔 따로 융합할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이 흡수하는 족족 자신의 것이 될 테니, 내기를 얼마나 증진시키는지는 천강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셈이었다.
'이번 생엔 잘하면 현경에 오를 수 있겠구만.'
그때 초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지금 바로 가져다줄게. 그래야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 온전히 흡수하지."
"감사합니다, 누님."
"어허! 초아 누나라 친근하게 부르렴. 우리 사이에 누님은 무슨……!"
그러자 옆에 있던 연화가 천강의 등 뒤로 달라붙는다. 아까 초아가 이러고 있는 게 꽤나 부러웠던 모양이다.
"아줌마. 어여 가. 늦게 갔다 오면 아줌마만 손해다~ 우리끼리 저녁 먹으러 갈 거야."
"건방진 꼬맹이. 너 한 번만 더 아줌마라 부르면 네 건 없을 줄 알아!"
"쳇. 알았어."
초아가 사라지고. 천강, 연화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왈.
"누님도 갔으니까 이제 그만 내려오지?"
"싫은뎅? 아까 저 아줌마가 이렇게 해주니 너 기분 굉장히 좋아 보이더라?"
그야 나도 남자니까 어쩔 수 없어서 그러지. 등 뒤로 뭉클한 감각이 느껴지니 아니 그럴까?
근데 넌 아냐. 그냥 마른 뼈다귀를 업은 것 같은 느낌이다.
"어서 내려와."
"진짜 내려와?"
"어."
"싫어."
그럼 대체 왜 물은 거야?
천강은 홧김에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우왁!"
가만히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한다. 아까부터 머릿속을 간질이는 무언가를.
'뭔가 생각이 날 듯한데……. 뭐지?'
굉장히 중요한 정보였던 것 같은 기분. 분명 조교와 영약 이야기를 하다가 딱 하고 떠올랐는데…….
그때 뇌리를 번뜩이는 무언가. 천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맞다.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약 70년 전. 암운곡 지하수로.
"아, 개 추워."
"그러니까. 하아……. 진짜 그깟 사고 좀 쳤다고 이런 벌을 내리냐? 땡추, 살아있냐?"
"사, 살아있습니다."
세 소년이 바들바들 떨며 목 아래까지 물속에 푹 담그고 있다. 그들은 짙은 어둠 속에서, 물 밖을 바라보며 어서 빨리 시간이 흘러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아, 그러게 내가 뭐랬어? 하지 말자고 했잖아!"
"야. 내가 누구야? 나 천강이야! 내 계획은 완벽했어."
모든 게 계획대로만 움직여졌다면, 지금쯤 그들은 한 사람당 영약 30개씩은 챙겨들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결과는 실패였다.
"이건 중간에 네가 들켜서 그렇다고! 완벽하게 은신을 구사할 수 있다더니…… 은신은 개뿔."
"야. 솔직히 땡추 녀석이 진법 해제를 좆 같이 해서 그런 거 아냐? 난 진짜 자신 있었다니까?"
"큭……. 서, 선배님들 다 제 잘못입니다. 역시 전 죽어야……."
두 선배들 싸움에 맹익이 물속에 머리를 집어넣는다. 천강과 주태가 양쪽에서 후다닥 달려와 그를 잡고는 끄집어 올린다.
"얌마. 죽지 마라. 어디서 혼자 편히 가려고 그래?"
"너 죽으면 화장실 청소 우리 둘이 해야 하거든? 죽고 싶으면 그 이후에 해라."
그러나 도로 물속으로 들어가는 녀석. 그로 인해 천강과 주태 또한 덩달아 자빠졌다.
"아, 씨! 땡추! 너 맞을래?!"
"이것이 요새 덜 맞았나?"
"잠깐만요! 제가 선배님들 말씀을 안 따르려던 게 아니고, 요 깊은 곳 안쪽에 뭔가 있습니다요! 순간 그걸 밟으니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뭔 개 소리야? 너 지금 빠져나가려고 변명하는 거지?"
매섭게 노려보자, 바들바들 떨면서도 정말이라며 꿋꿋이 말하는 맹익.
"너 없기만 해?"
"아주 궁둥이에서 불나게 해줄 테니까!"
천강과 주태는 물속으로 들어가 바닥을 뒤지기 시작했다.
뭔가 후배의 트집을 잡기보단 이렇게라도 움직여야 몸에서 열기 나기 때문이었다. 그때 두 사람의 손에 무언가 잡혔다.
"푸하아……. 야, 진짜로 있는데?"
"나도. 이거 말하는 거지?"
서로 손을 내밀어 각자 채취한 것을 보여주는 두 사람. 그것은 흑요석 빛이 나는 이끼였다.
'정말 우연히 발견한 거였었지.'
과거를 회상한 천강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암운곡 지하수로. 빛이 닿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는 특이한 미끼가 살고 있었다.
이름은 모른다. 그저 우연찮게 발견한 것으로, 천강과 주태, 맹익 이렇게 세 명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당시 영약 창고를 털겠다며 사고를 쳤다가 걸린 세 소년은 차가운 물속에서 목까지 담그고 여섯 시진동안 있으라는 벌을 받았었는데…….
밥도 안 준 탓에 배가 고팠던 그들은 그때 채취한 이끼를 별 생각 없이 먹었고, 진짜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곧바로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몸에 냉기에 대한 내성이 생겨났었지.'
암운곡 수련 시간의 절반은 물속에서 이루어진다.
덕분에 그들은 추위에 고통 받던 다른 아이들과 달리 조금은 편안히 훈련을 즐길 수 있었다.
그걸 떠올린 천강은 바로 방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 어디가?"
"형님?"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천강을 뒤따라가는 두 사람.
"몸 풀러."
천강은 재빨리 암운곡 밑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신발을 벗고 지하수로 앞에 섰다.
스스스. 피부에 와 닿는 서늘한 한기.
아직 물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몸에 오소소 닭살이 돋는다.
천강은 발만 물에 담그고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응?"
"?"
그의 왼편으로 똑같이 한 여자아이가 몸을 풀고 있다.
"99번?"
"어. 천강이라고 해. 넌 7번이지?"
"응. 난 매화. 너도 들어가려고?"
천강이 팔을 둥글게 돌리며 대답했다.
"그냥 방에서 가만히 대기하고 있으려니 찌부둥해서."
"생긴 거하고는 다르게 의외로 남자답네?"
"내 생긴 게 어때서?"
"솔직히 너 기생오라비처럼 생겼어."
누가 들으면 남자 좀 만나본 것처럼 이야기하네. 이제 고작 열 살인 주제에.
그래도 어찌됐든 칭찬을 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천강은 별 말 없이 한 번 웃어 주었다. 그리고는 단번에 지하수로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피부를 찢을 듯한 통증이 느껴지고, 살갗을 뚫고 냉기가 몸 안으로 침투한다.
'어후. 진짜 여기는 매번 들어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장난 아니네.'
마치 한겨울에 물속에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천강은 발로 바닥을 훑으며 찬찬히 나아갔다. 그 이끼는 굉장히 미끌 거리기 때문에 혹여나 발에 걸리면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들어가도 들어가도 느껴지지 않는 감촉.
'설마……. 소문이 나서 벌써 다 채취해 가버린 건가?'
어느덧 목 가까이 차오른 수면에, 천강은 더 깊이 들어가는 대신 옆으로 이동하며 바닥을 찬찬히 훑었다. 그러나 없기는 매한가지다.
'하긴. 50년이면 이래저래 소문이 퍼져 다 긁어갔어도 이상하진 않지.'
당시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이에겐 절대 비밀로 하자며 셋이서 약속을 했으나, 자신의 자식들이나 제자들에게까진 비밀 엄수를 했을 것 같진 않았다.
지금 천강 자신만 봐도 그러지 아니한가? 천강은 물속에 따라 들어오려는 연화와 무진을 만류했다.
"너희들은 들어오지 말고 거기서 대기하고 있어."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물 위로 펄쩍 뛰어오른 연화.
"꺄아아!"
첨벙. 천강이 물벼락을 피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정말이지 말 더럽게 안 듣는 다니깐.
그런 그 때, 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어?'
매화가 지하수로 안쪽에서 유유히 헤엄을 쳐 물 밖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가슴팍 사이로 눈에 익은 흑색 식물이 보이는 게 아닌가?
오호라?
'그러고 보니 마교 자제 다섯 명 중 한 명이 비밀통로를 알고 있었지. 설마 땡추 녀석과 관련이 있는 아이였나?'
진법과 기계식 쪽엔 인력이 많지 않다. 그래서 그곳은 서로 간에 정이 매우 돈독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무래도 맹익 녀석이 이 사실을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정보가 몇 차례 건너 저 아이한테도 간 것이고 말이야.'
대략의 위치도 알았겠다, 헤엄을 쳐 지하수로 안쪽 깊이 들어간다.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그런 뒤 호흡을 크게 들이키고는 손으로 바닥을 찬찬히 훑으며 나아간다. 그러자 채 일각이 지나기 전에 천강은 그것들을 찾을 수 있었다.
바늘로 찌르듯 피부를 괴롭히는 이곳 지하수보다도 조금 더 차가운, 냉기를 머금고 있는 식물.
천강은 그것들을 가슴팍 양쪽으로 두둑이 챙겼다. 그리고는 물 밖으로 조심스레 헤엄쳐 나왔다.
"이야아아!"
"아, 씨발 개차가워! 그만! 그만 뿌려!"
"푸하하핫."
왜인지는 몰라도 잠깐 사이에 개판이 되어있는 지하수로.
쥐 굴 동기들이 너도나도 들어와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천강은 그 사이에서 제일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연화를 불러들였다.
"연화야, 가자."
"잠깐만! 나 조금만 더 놀고!"
이게 지금 놀러왔나?
"빨리 안 나와?"
"우하핫. 먼저 가!"
천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는 애로구만.
"무진아 가자."
"예, 형님."
괜히 같이 있다 조교들에게 걸리면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으니, 재빨리 자리를 이탈한다. 그러나 그런 두 사람의 앞길을 한 여자아이가 막아섰다.
그녀는 7번 매화였다.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뭘?"
"지금 네 가슴팍에 숨긴 거 말이야. 설마 날 지켜본 거야?"
"아니. 그냥 헤엄치는데 바닥에 뭔가 있길래 한 번 먹어보려고 가지고 나왔어."
"정말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소녀.
천강은 정말이라며 방긋 한 번 웃어보이고는 재빨리 숙소로 뛰어 올라갔다.
매화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그의 뒷모습을 가만 뒤쫓는다.
"수상해……. 한 번 할아버지에게 물어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