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7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7화
17화. 매타작
암운곡 위, 무리 사이로 큰 술렁임이 일었다.
한눈에 봐도 족히 백 명은 가뿐히 넘는 인원.
2년차들의 눈이 하나같이 휘둥그레진다.
"아, 아니……. 이번 신입들이 대단한 건가? 이 많은 인원이 그 절벽을 넘어서 왔다고?"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혹시나 싶어 의심의 눈초리로 아이들을 살펴봤으나, 몰골들이 다들 안 좋으면서도 눈빛은 모두 형형히 살아있는 게 거짓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것은 의지가 깃든 눈들이었다.
'분골쇄신해서 이번에 받은 은혜를 어떻게든 갚고 말겠어!'
'반드시 강해져서 99번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말거야!'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본 2번 패거리는 크게 놀라 서로 쑥덕거렸다.
"말도 안 돼! 그 절벽을 넘어서 오는 애들이 있다고?"
"하, 한두 명이 아닌데?"
"분명 줄을 잘랐는데…… 어떻게?"
그때 제일 선두에 서있던 천강이 걸음을 멈추고는 씨익 미소 지었다.
"여어. 2번 친구들 오랜만이야. 다시 만나니 굉장히 반갑네? 특히 너. 66번."
섬뜩함이 느껴지는 천강의 미소에 2번 패거리가 주춤하며 물러섰다. 천강은 그들에게 한발 한발 나아가며 말을 이었다.
"내가 오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 그동안 내가 보아온 2번은 절대 절벽의 밧줄을 자르는 그런 짓을 할 위인이 못되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밧줄을 잘라?"
마교 자제들은 뭘 몰라 가만히 있고, 1년 전 절벽을 올라본 적이 있는 2년차들은 눈을 크게 뜨고는 2번 패거리를 돌아본다.
그 시선에 마른침을 삼키며 시선을 회피하는 아이들.
2년차들의 얼굴에 하나 같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올라왔다.
"와아……. 진짜로 줄을 자른 거야?"
"이번 기수는 여러모로 역대급이네."
"아니, 어떤 식으로 살아와야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지?"
사람은 강한 이에게 끌린다.
2번 패거리는 이번 졸업관문에서 처음으로 도착했다.
그에 경쟁자로서 의식을 하면서도 호감을 가지고 이것저것 챙겨주었던 2년차들의 얼굴엔 곧바로 실망감이 피어올랐다.
"이번 기수 상위권은 인성이 글러먹었네."
"힘이 있으면 뭐하나. 최소 선은 있어야지."
"이런 게 후배라니……."
갑자기 쌀쌀맞게 변한 그들의 태도에 2번 패거리들의 기세가 확 꺾였다.
그걸 확인한 천강은 멈추었던 말을 다시 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번 일에 2번은 연관이 없는 것 같더라고. 그러니 2번은 넘어가 줄게. 대신 나머진 알지? 덤벼라. 한 놈 한 놈 상대하기 귀찮으니까 한꺼번에 들어와."
"자, 잠깐."
"안 오면 내가 들어간다."
그때 눈치 없이 끼어드는 13번.
"야, 99번! 넌 나랑도 한 판 떠야지? 이번엔 이런 저런 핑계 대며 내빼지 마라."
"아, 그래. 너도 있었지. 그럼 어때. 너부터 덤빌래?"
그러나 평소 약삭빠르게 행동하던 녀석답게 고개를 젓는다.
"아니. 걔들이 더 급해 보이는데 걔들이랑 먼저 싸워."
천강이 2번 패거리와 싸운 뒤 체력이 떨어지거나 부상을 입으면 그때 손쉽게 처리하려는 속셈이었다.
심지어 여기까지 오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것이다. 각종 난관에 몸은 지쳤을 것이고.
'그에 반해, 난 먹을 것도 넉넉히 먹고 휴식도 충분히 취한 상태.'
이건 바로 기회다. 내 명성을 뒤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러나 그걸 다른 이들이 알아채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건 아마 그 자신뿐이니라.
"풉. 쫄았네. 기회주의자 새끼."
"저 새끼 저거 쥐 굴에서부터 그랬잖아."
"저런 약아빠진 것도 마교 자제라고."
"뭐! 이 씨발 것들아. 아니면 너희들도 나랑 붙어 볼래? 엉?"
그걸 들은 13번, 곧바로 버럭 화를 내며 소리치나…… 아이들의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 인상을 쓰고는 단체로 덤벼들 기세를 취한다.
그에 도리어 주춤하는 13번.
그 행동에 픽 웃음을 흘린 천강이 중재에 나섰다.
"진짜 꼴값을 떨고 있네. 야. 너 이따 도망가거나 발뺌하지나 마라."
"하! 도망? 내가 왜 도망을 가냐? 걱정 마라. 99번 너나 다음으로 미루자고 하지 마. 이번엔 절대 안 무를 테니."
그렇게 싸움 순서는 정해졌다.
2번 패거리 먼저 손 보고, 곧바로 그 다음은 13번을 봐주기로.
천강이 2번 녀석들에게 손짓했다.
"와라."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혼자 앞으로 나오는 66번.
"음? 뭐냐, 너희들?"
"99번. 넌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하……. 자신감이 대단한데? 복날에 개 처맞듯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은 걸 그새 잊었나봐?"
그러나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 돼지.
사실 그가 이리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약 세 시진 전.
66번이 밥을 먹고 볼일을 보기 위해 숲으로 들어갈 때였다.
"네가 66번이지?"
고개를 돌린다.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남자가 나무 옆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 제가 맞습니다만…… 누구신지?"
"난 백귀라 한다. 얼마 전 쥐 굴에 입원했을 때, 노인 한 분이 널 치료해줬을 거야. 난 그분 제자란다."
"아……. 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꾸벅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소년에게 백귀가 웃으며 다가왔다. 그리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시 넌 진짜 죽을 뻔 했다. 머리에 피가 몰려 가만 놔뒀다면 그대로 뇌사에 빠질 뻔했지. 그래서 스승님이 널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술을 해야만 했단다."
"시술이요……?"
"그래. 난 그것에 대해 말해주기 위해 지금 네게 찾아온 것이다."
그러며 설명을 시작하는 남자.
모든 걸 전해들은 66번의 눈이 보름달마냥 휘둥그레졌다.
"그, 그러니까…… 제 몸 곳곳을 개조해, 보통 인간보다 두세 배는 튼튼한 몸이 되었단 건가요?"
"그래. 아마 동기들 중에서 네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이는 끽해야 두 명 뿐."
그 이야기를 들은 소년의 가슴은 실로 웅장해졌다.
위기는 기회라고. 죽을 고비를 넘기니 기연을 만나 단숨에 쥐 굴 내 최강자들과 나란히 어깨를 하게 된 것이었다.
'어쩐지 이상했어.'
99번과 싸울 때는 한 대 한 대가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13번과 싸울 때는 마기가 실린 발차기나 주먹에 맞아도 하나도 않았다. 그런데 거기에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니!
"1위부터 50까지 안에 들어온 이들은 교관을 배정받을 수 있다. 그때 넌 거기 있는 교관들 말고 내 이름을 말하거라. 그럼 내가 네게 맞는 마공을 가르쳐 주겠다."
"그걸 배우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금보다 더욱 단단해져 몸이 강철과도 같게 될 것이다."
"꿀꺽……."
대신 살이 좀 뒤룩뒤룩 찌겠지만.
그러나 백귀는 뒷말을 생략했다. 굳이 꿈에 부푼 아이의 망상을 깰 필요는 없었기에.
그 덕에 66번은 1년, 2년…… 그리고 10년 뒤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마교와 강호에서 이름을 휘날리며 수많은 여자들을 후리고 다니는 그러한 모습을.
'하. 그냥 밧줄 자르지 말걸. 99번 그 새끼도 이 몸으로 속 시원히 밟아주는 건데.'
그런데 그 기회가 오고야 말았다.
전에 당했던 치욕을 씻고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오. 돼지. 얼굴이 아주 자신만만해?"
"99번.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를 거다. 이전의 날 떠올리고 상대했다간 아주 큰 코 다칠 걸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래? 그것 참 흥미롭네."
천강이 손목을 풀며 찬찬히 움직인다. 66번 또한 제자리서 폴짝폴짝 뛰며 몸을 푼다.
그러다 딱 멈춰선 두 사람.
"그럼 두 달 간 얼마나 달라졌는지 한 번 볼까!"
천강이 몸을 날렵히 움직였다. 66번은 방어 자세를 취하고는 들어오는 공격에 대비했다.
미끄러지듯 66번의 옆을 스쳐지나간 천강.
곧바로 돼지의 주위를 빙빙 돌며 빠르게 주먹으로 급소를 가격한다. 사각지대를 잡으며 급소를 한 대씩 때리는 일명 뱅글뱅글 전법!
그러나 그걸 본 아이들의 얼굴에 걱정이 떠올랐다. 전에 13번이 이 수법을 썼다가 그대로 역전 당했었기 때문이다.
"괘, 괜찮을까? 저 방법을 써도?"
"끙. 돼지 녀석. 침착하게 다 막아내는데……."
"이대로는 위험해. 저러다 먼저 지치겠어!"
66번의 입가에 미소가 올라온다.
그는 천강을 따라 몸을 돌리며, 체력을 최대한 비축했다.
'크크큭. 네놈은 끝났다. 이제 네놈이 내지르는 주먹 따윈 물주머니에 불과하다고!'
권격이 들어오나 겨우 모기가 날아와 부딪치는 수준.
그래도 실력은 확실히 좋긴 한가 보다. 13번보다 속도는 떨어져도 한 방 한 방 들어오는 공격들이 가히 섬뜩한 걸 보면 말이다.
그러나 맞아도 타격이 전혀 없다면 이미 끝난 대결.
'이번 싸움은 나의 승리다!'
그런 그 때, 그는 볼 수 있었다.
자신을 보며 섬뜩하리만치 진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99번의 얼굴을.
"여어. 돼지. 끝이다."
"뭔 헛소리를……. 컥?! 어, 어째서……?"
66번의 눈이 크게 뜨인다.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강한 통증에 돼지 녀석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공황상태가 되었다.
'아, 아프다고……?'
분명 백귀라는 자는 말했다. 현재 동기들 중에 66번 자신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건 단 둘 뿐일 거라고.
'설마…… 그 한 명이 이 녀석이었어?'
그러나 그건 오해였다.
시술 이후로 66번의 몸 곳곳에는 마기가 자리해 몸을 보호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그보다 내력이 많아야 했는데, 그런 이라고는 마두의 자녀인 1번, 2번뿐이니 두 명이라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천강은 그 둘보다 내공도 더 많을뿐더러, 그가 익힌 무공은 적의 진기를 흡수하는 북명신공.
살과 살이 맞부딪칠 때마다 체내 진기를 빼앗아버리니, 66번에겐 말 그대로 최악의 상성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방어형 진기를 다 빼앗겨 버린 그에게 남은 건 단 하나.
"자, 그럼…… 어디 쌓인 것 좀 풀어볼까?"
지옥이 시작됐다. 아니, 재현됐다.
천강이 본격적으로 매타작을 시작한 것이다.
퍽. 퍽. 퍽퍽퍽퍽.
"컥. 커억. 자, 잠깐……! 끅. 끄윽. 멈추……. 꾸에엑……."
급소마다 느껴지는 통증에 66번이 무릎을 꿇었다.
허리가 절로 수그러지고,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주인의 의지를 벗어나 몸이 그대로 바닥에 납작 엎드러진다.
결국 바닥에 패대기쳐진 개구리마냥 대짜로 뻗어버린 녀석.
싸움이 시작된 지 채 1분도 안 돼 일어난 일이었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99번이…… 이겼어?"
"대, 대박……."
결과에 놀라는 수많은 아이들.
그중 제일 놀란 건 13번이었다.
같은 전법을 썼으나, 그 자신은 처참히 밟힌 데 반해 99번은 반대로 이겼으니까.
천강이 고개를 좌우를 뚜둑뚜둑 풀고는 말한다.
"13번. 너 도망가지 말고 거기서 똑바로 대기해라. 돼지 매질 끝나고 나면 바로 네 차례니까."
"히끅……."
소년은 생각 없이 그를 도발한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