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3화
13화. 식량
"야, 거기 거기! 그쪽으로 간다!"
"알았어!"
우연찮게 토끼를 발견해 사냥 중인 아이들.
그들은 기어이 녀석을 한쪽으로 몰아넣더니, 놈을 잡는데 성공했다.
"이야. 토끼를 맨손으로 잡을 줄이야!"
"큭큭. 그러게."
"어여 불 피워서 구워 먹자고."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으니…… 동원된 인원은 약 스무 명 가까이 되는데, 토끼는 고작 한 마리였던 것.
토끼를 구우며 그 주위에 모여 있던 8명이 서로 의논했다.
"야, 입이 너무 많은데 그냥 우리끼리 갖고 튀어서 먹을래?"
"……그러자."
"그래."
결국 그들은 다른 십여 명의 눈을 피해 토끼를 들고 날랐다.
"어어? 야, 거기서! 토끼 갖고 튄다."
"뭐? 씨발. 거기 안 서?"
"야, 다들 쫓아! 잡아!"
***
"뒤쪽은 정말 시끄럽네요."
"뭐 슬슬 때가 됐잖아?"
마교 자제들은 꼼꼼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전에 이리 될 것을 알고 있던 그들은 미리 약속해 놓은 장소에 음식을 마련해 놓게 했고, 지금 그것을 찾기 위해 이리 뒤지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이쯤이라 하지 않았나?"
"여기! 찾았다. 오…… 정말로 표식이 있네."
나무 표식을 발견하고는 그 아래를 뒤져본다.
흙을 파헤치자 보따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는 삶은 고기와 야채, 그리고 수통이 들어있었다.
"그럼 인원수에 맞게 정량으로 배분하겠다."
"잠깐. 그래도 이건 우리 아빠가 힘쓴 건데 날 더 챙겨줘야지 않을까?"
13번의 의견에 5번이 다른 이들을 돌아본다. 어떠냐는 듯.
"그렇게 해. 뭐 틀린 말도 아니고."
"참네. 남자가 돼서 쪼잔하게……. 알았어."
"5번 네 마음대로 해."
동료들의 동의를 얻은 5번이 13번을 바라봤다.
"그럼 13번 네게 고기 두 덩이를 주지. 어떤가?"
"어. 그 정도면 나도 만족."
13번의 입 끝이 귓가에 걸린다.
그리고 그 시각, 모든 무리 중 제일 선두에 있는 2번 패거리.
쿵.
2번이 바닥에 무언가를 떨군다.
그 즉시 육중한 소리가 하늘을, 잔 진동이 바닥을 울린다.
"대, 대박……. 형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역시 형님……!"
"형님은 이제 쉬십시오. 나머지는 저희가 다 하겠습니다!"
2번 패거리는 재빨리 불을 피워 토막 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들의 옆에는 멧돼지 한 마리가 쓰러진 채 피를 흘려대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애들보고 잠깐 휴식 명령을 내리고 사라진 2번이 멧돼지를 잡아온 것이었다.
'비록 온전한 성체는 아니어도 멧돼지를 일대일로 잡아 오시다니!'
2번이 피로 얼룩진 날붙이를 깨끗이 정돈한다. 그리고는 팔 안쪽으로 슥 감춘다.
"……얼마나 걸리지?"
"화력이 약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걸릴 겁니다. 다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쉬고 계십시오, 형님."
"그래."
그렇게 졸업관문을 치르는 모두는 저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누구는 사냥을 하고, 누구는 식물 채취를, 또 어느 누군가는 인맥을 동원해, 모두가 부리나케 움직였다.
그러나 딱 한 무리. 그런 그들과는 다른 이들이 있었으니…….
"형님. 이거 진짜 맛있네요."
"더 먹고 싶으면 말해. 많이 있으니까."
천강 일행이 편히 바닥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육포를 씹었다.
마교에서 원정 가는 이들을 위해 신경 써 준비한 만큼 식감도 맛도 꽤 뛰어나, 한 달 가량 먹었던 천강의 입에도 아직 먹을 만했다.
"근데 웬일로 1번이 조용하네요."
"그러게. 어디 화장실 갔나?"
그때 귓가를 울리는 이상한 음색.
"우움? 므라고? 내 이으기 해쓰? (뭐라고? 내 이야기 했어?)"
천강과 98번이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봤다.
1번이 입 안 가득 육포를 넣고는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가 보면 3일 밤낮은 굶은 줄 알리라.
'어휴. 이러니 누가 얠 쥐 굴 최강자라 생각할까?'
새삼 쥐 굴 아이들이 천강 자신을 대장으로 생각하는 이유를 좀 알 것 같은 부분이었다.
"야. 여자가 돼서 진짜……. 안 뺏어 먹으니까 천천히 좀 먹어. 침 흐른다."
"오물오물……. 알게써어."
"자, 여기 받아. 너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나서 돌려줘."
그러자 누가 뺏어갈 새라 육포주머니를 품에 꼬옥 안고는 왈.
"히힛. 고마워어!"
그러나 그 다음날.
간밤에 생각 없이 한 행동을 후회한다. 천강은 손을 슥 내밀어 1번에게 말했다.
"너 압수. 이리 내."
"싫어! 네가 나 먹고 싶은 만큼 먹은 다음에 돌려줘도 된다고 했잖아!"
"그거야 네가 적당히 먹을 거라 생각한 거고. 어떻게 하루 분량을 한 끼에 먹어 치우냐?"
예쁘장하고 여리여리하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식탐이 대단한 1번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그거로 그치지 않고, 마치 나들이라도 나온 것 마냥 산을 오르며 쉬지 않고 육포를 먹어대고 있었다.
"진짜 쥐 굴에서 감자 하나로 어떻게 버텨낸 지 의문이네."
"그,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아무튼 이대로 놔뒀다가는 얼마 못 버티고 끝날 지도 모르는 상황. 천강이 손을 다시 내밀었다.
"어서 이리 내."
"싫어. 더 먹을 거야. 냠냠."
"아……."
절대 안 주겠다는 듯 상의를 슬쩍 열어 그 안에 쏙 숨기는 그녀.
결국 보다 못한 천강은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너 자꾸 그렇게 먹어대면, 살 쪄서 나중에 시집 못 간다."
"후엥?"
1번의 눈이 동그래졌다. 입에 물고 있던 육포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는 슥 도로 나오는 육포주머니.
"세상에……. 형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천강은 육포 주머니를 슥 들어보였다.
가볍다. 진짜 어지간히도 먹어댔나 보네.
"후우. 그럼 다시 걸음을 옮겨볼까?"
***
천산 끝자락.
녹음이 우거지고 따스한 기운이 완연한 어느 산기슭.
천강 일행이 투닥투닥 거리며 제일 후미에서 조금씩 산을 오르고 있을 때,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하늘 높이 솟아있는 나무 꼭대기 위로 홀연히 서 있는 두 인영.
잎사귀 하나에 온 체중을 실고 있는 걸 보면 분명 보통 고수는 아니니라.
그들은 아이들이 멀어질 만하면 조금씩 따라붙으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정말 저대로 놔둬도 괜찮을까요?"
"……."
질문을 받은 남자가 아무 말 않자, 여자가 다시 입을 열어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한다.
"어르신. 가만히 서서 여유로운 태도를 보일 때가 아닙니다. 지금 아가씨께서 쥐 굴 전체 인원 중 꼴등이라고요, 꼴등!"
"알고 있다."
"저희가 손을 써야 하는 거 아닙니까? 혹시나 규칙이 마음에 걸리시면, 제가 은밀히 다가가서 왜 빨리 오르지 않는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시간이 아직 남았으니……. 연화도 다 생각이 있겠지."
마교 서열 17위. 두 주먹으로 수많은 마인들을 굴복시킨 그는 가만히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그의 입김이면 시험에 떨어졌다 해도 딸을 살리는 건 매우 쉬운 일.
그런 까닭에 그는 그녀가 시험에 떨어지는 것 따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뭐 중요한가?
그러나 지금 그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으니…….
한 소년이 딸과 말다툼을 한다. 그러는가 하면 뭐라 중얼 거리더니 거침없이 어깨동무를 한다. 심지어 중간중간 딱밤까지.
"흠……!"
그것이 못내 불편한 남자는 거침 숨소리를 토해냈다.
'대체 뭐하는 놈이지?'
***
"헉. 허억……."
"조금만 더 힘내라. 곧 도착이다."
"예……!"
쥐 굴 전체 무리 중 제일 선두에 위치한 2번 패거리.
그들은 거침없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하나 같이 체력도 좋고, 몸 쓰는 일에 자신이 있던 이들에겐 이런 산행은 식은 죽 먹기였다.
심지어 간밤에 고기를 먹고 푹 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이들은 오히려 평소보다 더욱 힘이 샘솟는 상태였다.
"아자!"
"이대로 끝까지 가버리자!"
그렇게 모두가 자신감을 가지고 고갯마루로 올라섰을 때였다.
"어……?"
"저거 뭐야?"
"허……. 씨발. 설마 저걸 오르라는 건 아니지?"
거대한 절벽. 위에서부터 늘어진 수많은 밧줄들. 그리고 양측으로 자리한 날선 벼랑.
좌우를 살펴본다.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오로지 줄을 타고 위로 오르는 길뿐.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올라갈 것이다. 다들 쉬어라."
그들은 여기부터가 본격적인 관문의 시작임을 직감했다.
***
슥.
"왜 그러십니까, 형님?"
"……아니다."
아까부터 뒤통수를 꿰뚫는 듯한 시선을 느낀 천강.
뒤를 찬찬히 살펴봤지만, 딱히 특이할 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흠……. 뭐지? 기분 탓인가?'
마치 감시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그것은 마교에서 구르고 구르며 얻은 일종의 감. 천강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굉장히 지속적이고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걸 보면, 단순히 졸업 관문을 지켜보는 감시자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이제야 쥐꼬리만 한 내공을 얻은 천강이다. 그에겐 자신을 염탐하는 이가 누구인지 밝혀낼 능력도 재간도 아직 없었다.
결국 찜찜한 기분을 가진 채 천강은 고개를 다시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때, 천강의 시야로 1번의 의기소침한 모습이 보였다.
"야, 너 왜 그래? 육포도 안 먹고. 어디 아파?"
"……아냐. 괜찮아."
그러나 눈치가 빠른 천강이 왜 그런지 모를 리 없다. 그는 간밤의 일을 떠올리고는 1번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야야. 어제는 그냥 내가 홧김에 한 말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아냐. 사실…… 나 그 이야기 처음 듣는 말은 아니거든."
"나 말고 누가 또 그런 이야기를 한 거야?"
"응. 사형이. 남자들은 잘 먹는 여자를 그다지 안 좋아한다고……. 그리 잘 먹다간 나중에 시집 못 간다고……."
물론 이해 못할 건 아니었다. 저 조그만 몸에 어지간한 대식가 그 이상이니 충분히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하나 저토록 풀이 죽어서야 어찌 시험을 치룰까. 천강은 딱한 마음에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에이. 그건 다 컸을 때 이야기고. 어릴 땐 잘 먹어도 돼."
그러나 여전히 힘을 못 낸다. 왜 그런가 하여 들어본즉,
"난 이미 다 컸는걸."
참네. 아직은 한참 꼬맹이인 주제에.
'뭐 여자애들이 좀 일찍 조숙해지긴 하지.'
그에 뭐라 위로해야 할까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천강은 대충 한마디 던져주었다.
"야. 너 나중에 시집 못가면 나라도 데려갈 테니까 어여 그거 먹어. 배고프면 더 줄 테니 말하고."
"저, 정말? 정말이지, 99번!"
뭐야. 곧 죽어갈 시체 마냥 비실대던 녀석이 갑자기 왜 이리 활력이 넘쳐?
그래도 축 처진 것보다는 보기 좋은 모습에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여 준다.
"어어, 그래. 그러니까 좀 먹어라. 너답지 않게 축 처져 있지 말고."
"오물오물. 알아써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