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8화
8화. 나날이 높아져 가는 명성
"여어. 오랜만이야, 돼지."
"윽……."
"너무 겁낼 필요 없어. 그때 빚은 분명 청산했으니까. 나나 여기 98번을 먼저 건드리지 않는 한 내가 나설 일은 없을 거야. 너희 둘도 마찬가지."
"99번? 그럼 나는?"
1번의 질문에 천강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한다.
"넌 네가 알아서 지켜! 나보다 센 주제에 뭔 도움을 받으려 그래?
"나 화낸다."
"화내서…… 뭐?"
"너 힘껏 때릴 지도 몰라."
"허…….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꼭 잘난 것들이 더한다니까. 알았다 알았어. 너도 포함. 됐지?"
그렇게 1번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고, 천강을 포함 66번 패거리의 얼굴은 잔뜩 구겨졌다.
세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앉아있는 천강 패거리를 옆으로 비켜갔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13번이 그들을 불러 세웠다.
"너희 셋 잠깐."
최근 체력단련을 하며 천강이 진짜 별 볼일 없다는 걸 깨달은 마교 자제들.
방금 전의 소동으로 깜짝 놀라 잠깐 주저했으나, 66번이 천강 앞에서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는 자신감을 회복해 그를 불러 세운 것이었다.
그런 그를 돌아보며 낮게 으르렁대는 66번.
"씨발. 뭐냐?"
"얘를 장난감으로 삼겠다는 말은 취소해줬으면 좋겠는데?"
"싫다면?"
"싫다면…… 한 가지밖에 더 있나? 강한 놈의 말이 법인 마교에서 누가 더 강한지 가려내는 수밖에. 한 판 붙자."
"하……!"
개나 소나 내가 99번에게 졌다고 달려드는 꼴이구만. 이참에 나 66번이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
그에 66번,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왈.
"씨발. 좋다."
***
"1번, 심판 좀 봐줘!"
"맡겨만 주시라~"
전에 1번이 2번 패거리와 싸우는 걸 보고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13번은 그녀에게 심판을 부탁했다.
그렇게 싸우게 된 두 사람. 13번, 66번.
아이들이 그들을 뱅 둘러 원형 경기장을 만든다.
딱 천강이 앉은 자리에서 멈춘 무리들. 의도치 않게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 천강은 옆으로 누워 그들의 싸움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디…… 요새 애들은 얼마나 잘 싸우나 볼까?"
조교 초아를 통해, 대략 이번 세대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절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지 않을까 짐작하던 천강이었다.
그녀의 옷에 수놓아져 있던 일류 표식. 그럼에도 겨우 열여섯밖에 되지 않은 나이가 그 증거였다.
'보통 조교는 막 암운곡을 졸업한 애들이 하는 경우가 많아. 설령 마두의 자식이라 가정해도 수준이 너무 높단 말이지.'
그리고 마두의 자식이면 더 말이 안 되는 게, 그들 대부분은 조교 활동을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지켜보면 곧 나오는 결과.'
천강이 눕고. 뒤이어 다른 아이들도 모두 자리를 잡자, 13번과 66번이 자세를 취했다.
1번이 그 가운데로 다가선다. 그리고는 두 사람을 한 번씩 돌아보며 말했다.
"한 쪽이 먼저 기권 하거나 전투불능, 제압 되었다 판단되면 싸움을 멈출 거야. 내가 심판 보는 거에 불만 있으면 미리 이야기 해."
"불만 없어."
"나도."
이미 1번이 보통 내기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1번이 손을 머리 위로 쳐든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왈.
"그럼 셋 세고 시작한다. 셋, 둘, 하나. 시작!"
"하아압!"
선공은 13번이었다.
재빨리 사각으로 이동해 하단에 발차기를 가하는 소년.
'호리호리한 것 답게 역시 속도가 빠르군.'
그러면서도 자세가 굉장히 안정적이다. 아마 체내의 기를 사용한 것이리라. 천강이 13번의 발차기를 보고는 고개를 주억였다.
'잘 배웠네. 같은 체급이면 제법 아프겠는데? 뭐 저런 돼지한테는 타격 먹이기가 쉽지 않겠지만.'
팡!
살과 살이 맞부딪치며 한 차례 큰 소음이 인다. 소리만으로도 꽤 묵직하게 들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타격을 준 13번의 얼굴 또한 바로 자신만만. 그러나…….
"흥! 겨우 그딴 걸 발차기라고 하는 거냐!"
후웅. 66번이 손을 휘두른다. 13번이 내지른 발차기보다 더욱 위협적인 소리가 발생했다.
13번은 깜짝 놀라 그 공격을 피하고는 거리를 슥 벌렸다.
"하……. 쥐새끼 같은 새끼."
"네가 느린 거다, 돼지야."
“뭐 느린 건 인정한다만, 아까와 같은 물렁한 발차기로는 백날 때려도 난 끄떡없다.”
"큭……."
사실 굳이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방금 접점으로 13번의 기세는 확 꺾인 상황이었다.
선공에 사각지대로 재빨리 이동, 타격까지 완벽했다. 얼마나 열심히 훈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정작 66번에겐 별 큰 타격이 없었다.
천강은 66번이 맞은 다리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흠. 희한하군. 그래도 명색이 기를 실은 일격인데 떨림도 거의 없다니. 그럼 진짜로 피해가 거의 없었단 이야기인데…….'
아무리 급소가 아니라도 그렇지, 저렇게 완벽한 발차기에 멀쩡하다고?
천강은 30일 전 자신이 싸운 그 돼지가 맞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더 지켜보지, 뭐.'
다시 둘의 격돌이 이어졌다. 이번 선공도 역시나 13번이었다.
'전력을 다해 아주 혼을 빼주마!'
13번이 빠르게 접근해, 66번 주위를 돌며 급소에 타격을 가했다.
처음 당해보는 이라면 재빠른 그를 따라잡지 못해 우왕좌왕하다 급소를 두들겨 맞아 쓰러질 수밖에 없는 기술.
그러나 소용없었다.
"어딜!"
66번이 완벽하게 방어를 했기 때문이다. 그걸 당하는 66번의 입가엔 진한 미소가 걸렸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난 다르다……!'
한 달 전. 천강에게 급소란 급소는 사정없이 가격당하며 치욕스레 패배한 66번.
좀 아둔하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머리가 좋은 그는 당시 천강이 때렸던 부위들을 모조리 기억했고, 진료실에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이후로는 같은 방법에 당하지 않는 법을 구상하고 또 연구했다.
그랬던 그에게 천강보다 한참 아래인 13번이 펼치는 빙글빙글 급소 때리기 전법은 대응하기 너무도 쉬운 기술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내 이 기술을 다 막아낸다고?!'
13번의 눈이 점점 크게 뜨인다. 그러나 그 속내를 알 리 없는 아이들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미, 미친!"
"와아. 속도 봐. 66번이 꼼짝을 못하는데?"
"역시 13번! 아무리 덩치가 커도 속도가 느리면 안 되지!"
그러나 실력 좀 있는 이들의 반응은 다르니…….
"이거…… 13번이 지겠는데?"
"원래 저 돼지가 저리 강했었나?"
"5번. 이 싸움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어쩌면 우리처럼 마교 출신 일지도 몰라."
마교 자제들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그걸 하품하며 지켜보던 천강이 98번에게 물었다.
"아우야. 네가 보기엔 누가 이길 것 같냐?"
"제 생각엔…… 66번이 이길 것 같습니다."
"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도 될까?"
천강이 미소를 띠고 묻자, 자신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주위 아이들을 의식해서인지 98번이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는 대답했다.
"전에 형님이 그러셨잖아요. 상대에게 타격을 주지 못하면 공격하는 사람이 불리하다고. 더 빨리 지친다고. 지금 13번은 상당히 지친 상태입니다. 그런데 66번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이야. 역시 우리 아우! 내가 시간을 내서 가르친 보람이 있구만?"
천강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타격을 주지 못하는 공격은 안하느니만 못하다.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는 순간, 체력 소모와 함께 자신감 또한 떨어지거든. 그러면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또 다시 움직일 거고. 자신감과 체력은 계속 떨어지게 되는 거지. 그러다가……."
"꿀꺽. 그러다가요?"
싸움보다도 천강의 입에 귀를 기울이는 주변 아이들.
이래서 훈수꾼들이 바둑 두기보단 쉴 새 없이 떠드는 거로구만. 천강은 그리 생각하며 입을 뗐다.
"그 체력이 거의 다 소진돼, 도망갈 체력마저 없어지게 되면, 승부는 끝난 거지. 봐봐. 이제 곧 시작한다."
천강의 신호에 아이들이 다시 경기에 집중한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13번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느낀 66번이 앞으로 훅 치고 나갔다.
곰과 같이 매서운 돌진에 13번이 재빨리 회피한다. 그러나 힘이 빠져버린 그의 몸은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았고, 결국 66번의 손아귀에 옷이 붙들리고 말았다.
"어디 지금도 그 잘난 발로 도망갈 수 있는지 보자고!"
"큿. 젠자아아앙!"
66번이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있는 힘껏 주먹으로 그를 내리쳤다.
퍽. 퍽. 퍽.
홱홱 돌아가는 고개. 힘이 무지막지하다.
단 세 방 만에 13번의 몸은 축 늘어졌다. 그리고 그 때, 1번이 손을 들어 66번을 제지시켰다.
"그만. 여기까지. 66번 네 승리야."
"후욱. 후욱."
성난 짐승처럼 눈을 포악하게 뜨고는 13번을 들어 올린 팔을 내려놓지 않는 녀석. 심판인 1번을 노려본다. 1번이 픽 웃는다.
"왜, 66번? 불만 있어?"
"……."
"치열한 싸움에 흥분한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불만 있으면 나랑도 한 판 뜨던가?"
그때 지금껏 저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던 2번이 입을 열었다.
"66번. 그만하고 와라. 너 또한 동의한 심판이다."
"……예, 형님."
그렇게 두 무리를 대표하는 이들의 싸움은 66번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리고 이날의 예상치 못한 싸움의 결과로 인해 쥐 굴 내 상황은 다시 한 차례 크게 뒤바뀌게 되었다.
그 가장 큰 혜택을 본 건 천강이었다. 그는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마교 자제 5명보다 강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99번 천강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 갔다.
***
"스승님."
"뭐 인마."
"얼마 전 퇴원한 소년 있잖습니까."
"아, 그 돼지 새끼? 걔가 왜."
"왜 그 애에게 그런 시술을 해준 겁니까?"
백발괴의가 별거 아니라며 대답했다.
"그냥 심심해서?"
그의 제자는 정말 못 말린단 얼굴로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니, 무슨…… 설마 당사자 동의도 구하지 않고 한 건 아니시죠? 막 기절해 있는 애 데려다가 한 거 아니죠?"
"흠. 흠흠!"
"스승님……?"
"괜찮아. 이번 건 치명적인 부작용은 없으니까. 그저 좀 식욕이 과해져서 조금 더 뚱뚱해질 뿐이야."
제자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스승을 혼을 낸다.
"아, 스승님! 당사자 동의 없는 실험은 절대 금지라는 거 잊으셨습니까? 위에서 또 무슨 잔소리를 들으시려고요!"
"아, 몰라! 요새 것들은 강해지려는 욕구가 약해졌는지 자발적으로 실험에 참가들을 안 한다고! 에잉. 쯧쯧.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스승님!"
"나 잠깐 마실 나갔다 온다! 찾지 마~"
"스승님!!"
진료실에 혼자 남은 남자. 그는 푹 한숨을 내쉬곤 작게 투덜댔다.
"꼭 이러고 사고 나면 수습은 나 혼자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