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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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7화
7화. 새로운 동료
"여어. 우리 아우. 잘 지냈어?"
"예."
"그것 참 다행이네. 나 너 걱정 많이 했다. 내가 66번 패는 것까진 좋았는데, 암실 들어가는 순간 여기 남겨진 네가 생각났지 뭐야. 누가 막 너 때리진 않고?"
"하핫. 실은……."
머리를 긁적이며 운을 떼는 98번. 그런데 그때 두 사람 옆으로 한 아이가 끼어들었다.
"네가 99번이구나?"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소녀 한 명이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천강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천강은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리며 몸을 앞으로 수그리고는 몸을 긴장시켰다.
'이 년 대체……?'
"넌 뭐냐?"
"나? 1번."
"1번?"
"응."
쥐 굴에는 강호출신만 오는 게 아니다. 마인들의 자제들도 들어온다.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상위 숫자에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1번 같은 경우엔 다르다. 1번은 쥐 굴에 들어오기로 한 인물들 중 가장 강한 아이에게 준다.
즉, 이 아이가 이곳 쥐 굴에서 명실상부 최강자란 뜻.
그리고 한 눈에도 자신감과 기세가 장난이 아닌 게, 천강은 그녀가 최소 마두의 자녀일 것이라 짐작했다.
"나랑 98번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꼭 할 말이 있어야 해?"
"난생 처음 본 사람이 접근하면 보통은 할 말이 있는 거지."
"나 너 처음 보는 거 아닌데?"
"응?"
과거 이 몸 주인과 몇 번 이야기라도 주고받았던 사이인가? 아니면 설마…… 이 녀석도 66번 패거리?
"오고가며 몇 번 봤어. 뭐 나도 직접 대화해 보는 건 처음이지만!"
아, 씨……. 깜짝이야. 순간 얘랑 싸워야 하는 줄 알았네.
천강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육체는 아직 이 정도 괴물과 싸워 이길 만큼 단련되지 않았다.
제 아무리 경험과 기교가 많다 해도, 3년 넘게 전문적으로 단련을 해온 이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었다.
"움? 99번. 어디 안 좋아? 갑자기 표정이 굉장히 안 좋은데."
"……아우야. 가자."
"예? 예, 형님."
천강은 1번의 질문을 무시하고는 98번 아우를 데리고 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야, 어디가! 나도 같이 가!"
그리고 1번은 그 둘을 바로 뒤따라갔다.
그들은 곧바로 수많은 아이들의 집중적인 시선을 받게 되었고, 금세 유명해지게 되었다. 2번 패거리나 마인 자제들 무리보다도 더.
***
"그러니까 네가 위험에 처했을 때, 여기 1번이 널 구해줬다 이 말이지?"
"예, 형님."
"그 뒤로 같이 다니게 된 거고."
"예."
고개를 돌린다. 한 소녀가 해맑게 웃고 있다.
과연 이곳의 최강자가 맞긴 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밝아 천강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 내면에 자리한 자신감은 명실공히 강자의 기운이었다.
소녀가 물었다.
"그럼 이야기도 다 들었겠다, 이제 나도 앞으로 너희랑 함께 다녀도 되지?"
"왜 굳이 우리랑 다니려는데?"
"글쎄……. 왠지 너희 둘이랑 다니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좀 불안한데…….
천강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이 눈치 없는 여자애는 그저 싱글벙글 웃을 뿐이다.
"안 돼?"
"그런 건 아니다만……."
98번이 천강을 돌아본다.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그에 천강은 고민하고 고민하다, 결국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는 속에 있는 것을 드러냈다.
"혹시 너 말 많냐?"
"응? 나 말 많냐고?"
"어."
말 많은 건 질색인 천강이 매서운 눈초리로 묻자, 1번이 어수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 그래도 말 하는 시간보단 말 안 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
그 한마디에 곧바로 터져 나오는 답변.
"좋아. 그럼 합격."
"와아!"
말만 적다면야 함께 다녀도 되겠지.
상대의 강하고 약함보다는 그저 정신건강에 이로운 동료를 뽑는 천강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무리들 속 천강의 패거리 또한 완성되었다.
***
"다시. 더 개처럼 달려들어 봐."
"네, 형님!"
하루 반 시진 있는 대련 시간.
교관이 지켜보는 아래, 아이들이 저마다 짝을 이뤄 싸움을 하고 있다.
천강은 허리를 숙여 몸을 웅크리고는 98번의 공격을 이리저리 맞아주었다. 적당히 맞아주며 맷집을 기르고, 아직 고통에 적응이 덜 되어 있는 감각들을 조금씩 다스리는 중이었다.
겸사겸사 98번 아우 또한 도와주는 중.
"아우야. 그런 식으로 때리면 내가 아프겠니?"
"윽……."
"지금 넌 하도 맞아봐서 맞는 건 잘하는데, 영 때리는 것이 시원찮아. 싸움을 이기려면 때릴 줄도 알아야지. 좀 더 이를 악물고 적극적으로 덤벼봐."
"아, 알겠습니다, 형님!"
98번이 달려와 주먹을 내지른다. 천강은 그보다 한 박자 빠르게 튀어나가, 찰싹 달라붙어 주먹질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그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천강을 내려치나 타격은 극히 미비한 수준.
"혀, 형님. 그렇게 붙으시면 때릴 수가……."
"상대가 그럼 네 주먹을 그냥 맞아주겠냐? 무기가 없는 싸움은 대부분 이런 식이라고. 이런 상황에 효율적으로 공격할 방도를 찾아!"
"네, 넵!"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을 딱 붙어 공격과 방어를 해댔다. 98번이 녹초가 된 얼굴로 쓰러졌다.
"와아……. 형님. 때린다는 게 엄청 힘든 거네요."
"타격을 못 주면 공격은 체력소모가 엄청나. 그에 반해 방어는 성공만 해도 체력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지."
"역시. 2번 패거리 세 명을 제압한 게 운이 아니셨군요."
"세상에 운이 어딨어? 그것도 다 실력이야."
그때 그 둘을 향해 다가오는 1번.
"너희들 진짜 재미있게 싸우더라. 난 몇 분 대련도 못하고 끝나버렸는데."
그럴 만하지. 너 같은 괴물을 여기서 상대할 수 있는 애들이 어딨어?
"그러니 다음번엔 우리 상대 바꾸자. 나 99번 너랑 싸워보고 싶어. 나도 주먹질 좀 해볼래!"
"넌 안 돼. 금지."
"아 왜!"
왜긴. 네 주먹에 맞으면 골로 갈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아까 한 말은 번복이다. 운 따윈 없다는 말. 이런 애가 운이 좋은 애다. 일명 부모 잘 만난 빨!
그렇게 대련 시간에는 적당히 실력을 숨기며 즐기는 천강이었다. 그러나…….
"후욱. 후욱. 진짜 더럽게 힘들어. 체력이 너무 떨어지긴 하네."
체력단련. 달리기 시간.
앞서 쭉쭉 달려 나가는 꼬맹이들을 보며 천강은 입술을 짓씹었다. 현재 천강은 약 280명의 아이들 중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것 아닌가 싶어도, 그의 강한 정신력을 감안하면 아직도 체력은 하위권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졸업 관문까지 50일 밖에 안 남았는데 이 정도라면 정말 꽤나 심각한 상황이었다.
"야! 98번, 99번! 빨리 좀 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고개를 든다. 저 앞에서 1번이 손을 흔들고 있다. 헉헉대며 열심히 뛰는 아이들 사이로, 뒤돌아 폴짝폴짝 장난을 치고 있다.
저런 식으로 뛰는 애조차 따라잡지 못하고 있단 현실에 허탈한 마음도 잠시, 천강은 마음을 다잡고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의 온몸이 크게 비명을 질러댄다.
"아우야. 조금만 더 힘내자."
"후욱. 후욱. 예, 형님."
***
"와아. 99번 진짜 독하다."
"저번에 뛸 때 꼴등이지 않았나?"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귓가로 들려온다.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천강은 그 말에 조금 힘이 나는 걸 느꼈다.
'설마 진짜로 꼴등이었다니. 그러면 나름 장족의 발전인가?'
그가 들어온 순번은 143번.
암실에서 먹고 자고 마시며 전력으로 단련을 한 게 과연 도움이 되긴 한 모양이다.
"형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저보다 빨리……."
옆에서 감탄사를 터뜨리는 98번. 참고로 그의 순위는 144위였다.
"무슨 특별한 비결이라도 가지고 계신 겁니까?"
어린 아이치고는 조숙한 말투에 천강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밥 먹을 시간이지? 나 화장실 갔다 올 테니까 내거 감자 받아놔."
"앗. 네."
찬찬히 걸음을 옮긴다. 화장실을 지나쳐 쭉쭉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뒤 혹시 다가오는 이가 없나 잘 살핀 천강은 슥 옆으로 꺾어 암실들이 자리한 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그 끝에 자리한 9번 암실로 들어가 육포를 꺼내들었다.
'있긴 있지, 비결.'
그것은 바로 잘 먹는 것!
똑같이 훈련하나, 나 혼자만 고기로 배부르게 배를 채울 수 있다면 그 성장은 가히 폭발적이라 볼 수 있으리라.
'흠. 애들 것 좀 챙길까?'
순간 1번과 98번에게도 나누어줄까 고민한 천강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비밀은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게 좋다. 제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강호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법.'
특히 마교는 더더욱.
그래도 졸업 관문 때는 좀 챙겨줄 생각이다.
천강은 암실 복도 입구에 서서 질겅질겅 육포를 씹으며 다가올 미래를 가만히 준비했다.
***
"어이. 2번 친구들. 너희들도 뭣 하면 껴. 내가 한 수 가르쳐 줄게."
"됐거든?"
"꺼져."
7번의 미소 띤 낯에 24번과 71번은 낮게 으르렁거렸다.
"뭐 싫으면 말고."
"7번. 그냥 재들 상대하지 마."
"그래그래."
쥐 굴 생활 80일 차.
최근 들어 마교 출신 자제들의 지지도가 급상승하면서 그들은 노골적으로 2번 패거리를 와해시키려 하고 있었다.
다른 애들보다 압도적으로 앞선 만큼 여유가 넘치는 그들은 대련 시간 이후엔 아이들의 이런 저런 상담과 훈련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대체로 그걸 통해 2번 패거리들 또한 유혹해왔다.
"33번, 씨발 새끼."
같은 일행이었다가 저들에게 넘어가 함께 어울리고 있는 33번 놈의 행태를 보니 괜스레 열이 받는지 71번이 한차례 욕을 지껄인다. 24번은 그를 진정시켰다.
"어차피 애들 곧 돌아와. 그럼 끝날 일이야."
"그건 그렇긴 한데……. 형님, 우리도 저런 것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2번이 두 사람을 돌아본다. 그리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얼굴로 말한다.
"당장은 필요 없는 짓이다."
"예?"
"……다음 지역에 가면 자연스레 알게 될 터."
"설마…… 형님도 마교 출신이십니까?"
조심스레 묻는 질문에 2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눈을 뜬 건, 저 멀리 입구로 세 사람이 등장할 때였다. 그곳엔 부상으로 진료실행 했던 2번 패거리 세 명이 서 있었다.
그 중 다른 두 아이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아이가 우렁차게 외친다.
"형님! 저희 왔습니다……!"
***
갑자기 쥐 굴 분위기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흩어졌던 2번 패거리가 모두 모였기 때문이다.
일단 체급만은 하나 같이 모두 건장했고. 특히 66번의 경우에는 거의 성인 여성에 준하는 신장인 만큼, 아직 눈에 현혹되기 쉬운 어린 아이들은 몸을 잔뜩 움츠러뜨렸다.
그나마 좀 덜한 이들이 있다면, 최근 마교 자제들을 열성적으로 따라다닌 아이들. 그들은 지나가는 66번과 다른 두 명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야유를 퍼부었다.
"저것들 안 죽고 살아 돌아왔네."
"왜 이렇게 빨리 나왔데?"
"또 횡포가 시작되려나?"
"걱정 안 해도 돼. 그래봤자 99번에게 맞고 실려 간 애들이야. 겉보기만 그렇지 실력은 형편없다고. 특히 66번 저놈은 그냥 돼지새끼일 뿐이야."
그때 66번이 발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는 그 말을 한 아이를 머리 위로 집어 들어 냅다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 엄청난 기세에 갑자기 조용해진 무리.
"바, 방금 들어서 던져버렸어?"
"미친……."
"99번이 저런 괴물을 싸워 이겼다고?"
세 사람이 막 등장했을 때보다 더욱 술렁임이 심해진다. 66번은 그들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뒈지고 싶지 않으면 욕은 내 귀에 안 들리게 해라. 그리고 너! 넌 오늘부터 내 장난감이다."
"히익?!"
바닥에 쓰러져 등을 만지던 아이가 66번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비명을 질렀다. 그는 주변을 슥슥 둘러보더니, 마교 자제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5번, 7번, 8번, 11번, 13번! 제, 제발 나 좀 도와줘!"
"하……. 걔들이 뭐라도 돼? 실컷 도움 요청해 봐라. 널 도와줄 수 있나."
바닥에 쓰러진 애를 포함, 아이가 손을 내뻗는 다른 다섯 명에게도 비웃음을 실컷 날린 66번과 그 일행. 그들은 다시 발걸음을 뗐다.
그때 그들의 앞을 누군가 막아섰다.
정확히는 막아선 게 아니고 그들의 길 앞에서 안 비킨 것뿐이지만.
그런 그들에게 윽박을 지르려는 66번. 그런데…….
"이 새끼들이 정신머리가 나갔나? 안 비켜서고……. 어……?"
그들 중 한 소년을 본 순간, 66번만이 아니라 다른 두 사람의 얼굴까지 뻣뻣이 굳어버렸다. 그는 바로 99번 천강 패거리였던 것이다.
고개를 삐딱하니 든 천강이 방긋 웃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