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6화
6화. 1번과 2번의 정체
"야, 너!"
"……."
"대답 안 해?"
"……예."
천강은 암실로 가던 중, 조교에게 붙잡혀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뭐 이리될 건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지만, 정작 여자에게 잔소리를 듣기 시작하니 오늘의 선택에 급 후회가 드는 천강이었다.
"너 말이야. 왜 나한테는 존댓말을 쓰면서 교관에게는 안 쓰는 거야?"
그거야 너한텐 안 쓰면 한참을 떽떽거릴 것 같으니까 그렇지.
그러나 천강은 말을 아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반성을 하고 있다 여겼는지 여인의 얼굴이 누그러졌다.
"앞으로는 교관님에게는 꼭 존댓말 하도록 해. 알았어?"
"예."
"꼭이야. 꼭!"
여인이 천강을 안았다. 의도치 않은 젖가슴의 습격에 불만이 조금 사그라지는 것도 같고.
천강은 생각보다 그녀와 가까워졌음을 깨닫고는, 이왕 친해진 거 그녀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얻어 보기로 했다.
"근데 이곳에서 100일간 훈련하면 끝인 건가요?"
"아냐. 그러고 시험을 칠 거야. 그중 통과하는 사람만 다음 훈련을 받을 수 있어."
"어디서요?"
"그건 아직 몰라도 돼."
쳇. 친해져 본들 쓸모가 없구만.
천강의 얼굴에 불만이 올라오자, 그걸 감지한 그녀가 그의 이마를 검지로 톡 때렸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설마 나 못 볼까 봐 그런 거야?"
누가? 내가? 하……. 어이가 없네. 확 다시 말을 씹어버릴까 보다.
그런 천강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여인이 앞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걸로 너무 실망하지 마. 아마 다음 지역에서도 날 볼 수 있을 테니까~"
"에에?"
……망했다. 이 말 많은 년을 다음 지역에서도 또?
천강의 입이 떡 벌어지자 그걸 오해한 여인이 깔깔 웃었다. 천강은 제발 다음 담당자가 바뀌길 간절히 기도했다.
***
"애새끼들, 왜 이렇게 안 와?"
"똥통에 빠진 거 아냐? 큭큭."
2번의 눈치를 보며 두 소년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들은 일명 2번 패거리로, 현재 쥐 굴에 있는 수많은 무리들 중 제일 강한 무리였다.
숫자는 모두 합해 일곱 명뿐이었으나 한 명 한 명이 모두 체격이 좋고 싸움 좀 하는 아이들이었다.
비록 얼마 전 66번이 진료실로 가면서 여섯 명으로 줄었지만, 이곳 쥐 굴에서 그들의 위세는 여전히 강대했다.
그때 그들에게 한 소년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33번? 야. 다른 두 명은 어쩌고 너 혼자 와?"
"헉. 허억……. 그…… 9, 99번이……."
"99번이 뭐? 아. 그러고 보니 녀석 오늘이 나오는 날이었지? 이 새끼 오늘 뒈졌다. 야, 너도 같이 가자."
"알았어."
그러고 일어나는데, 33번이 두 사람을 갑자기 막아선다. 그리곤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뭐해? 비켜."
"후욱. 후욱. 아, 안 돼. 가면 안 돼."
"33번, 너 갑자기 왜 그래?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그러나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느라 말을 못 하는 33번. 그에 무시하고 가려는 순간, 말쑥한 차림의 교관이 조교와 함께 나타났다.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두 사람.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아이들. 교관의 목소리가 공동에 나직이 울려 퍼진다.
"오늘 나오기로 한 99번은 46번, 38번에게 부상을 입혀 다시 암실에 갇히게 됐다. 두 사람은 진료실에서 치료받고 있으니, 그리 알도록."
아이들의 눈이 하나같이 번쩍 뜨인다.
솔직히 저번에 2번 패거리가 억지를 부리긴 했지만, 굳이 그게 아니어도 66번 사건은 운으로 이기지 않았을까 생각해온 아이들이었다.
그도 그럴 게, 체격부터가 차이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키는 물론이오, 66번의 두툼한 살집을 뚫고 타격을 줬다는 게 상상이 안 간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두 명 또한 부상을 입혔단다. 교관은 말을 하지 않았으나 2대1의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상황이었다.
"대, 대박……. 대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해?"
"혹시 교관이 거짓말한 거 아닐까? 직접 손을 쓰고 99번이 한 것처럼 포장한 거지. 솔직히 2번 패거리 요새 너무 횡포가 심하잖아."
"어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말을! 교관이 굳이?"
"왜 말이 안 돼? 솔직히 99번이 세 명하고 싸워서 이기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응? 그, 그것도 그러긴 하네……?"
교관은 바로 사라졌으나 무리 내로는 한동안 큰 소동이 일었다.
그리고는 이내 한쪽을 바라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곳은 이젠 네 명으로 줄어버린 2번 패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몇몇 아이들의 눈에 적대적인 감정이 내비친다. 그것은 그동안 그들에게 이유 없는 분풀이와 횡포를 당하며 쌓이게 된 울분이었다. 그러나…….
"뭘 그리들 꼬나보지?"
2번의 눈빛 한방에 바로 눈을 내리까는 아이들.
그의 차가운 눈을 마주하는 순간,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는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장내의 소란은 바로 가라앉고 무거운 침묵만이 무겁게 맴돌았다.
***
"다녀왔어요, 흑철마괴님."
"그래, 수고했다."
"그런데 이대로 놔둬도 괜찮을까요?"
초아의 물음에 흉터가 빼곡히 자리한 남자가 고개를 돌린다.
"그게 무슨 뜻이지? 99번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나?"
"그건 아니고요. 걔가 손본 애들 패거리의 우두머리가 그 2번이잖아요."
아이들끼리는 모르겠지만, 이번 쥐 굴 기수엔 두 마두의 아이가 참가해 있다.
바로 1번과 2번.
일반 마인의 자식들도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시킨 탓에 하나하나가 무시 못 할 힘을 가지고 있는 판국이다. 그런데 무려 마두의 자녀다.
마교 서열 100위 안에 드는 강자들이 낳은 자식들. 그러니 얼마나 강하겠는가?
"가만 놔뒀다가는 이러다 2번이 직접 나설지도 몰라요."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지."
"에엑? 아니 흑철마괴님. 5일 전에는 저보고 잘 지켜보고 챙겨주라 했잖아요?"
"그랬지."
교관이 고개를 주억인다.
"그러나 운이 있고 없고도 결국 실력이다. 그 정도 후폭풍을 생각하지 않고 일을 벌였다면, 그래서 죽는다면……. 뭐 그것밖에 안 되는 놈이겠지. 그러니 너무 마음 주지 말거라."
"네에~"
그러나 대답은 그리해도 초아의 입가엔 미소가 걸렸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뚱한 눈으로 쳐다보던 소년을 떠올렸다.
'죄송하지만 걘 제가 찜했걸랑요. 잘 키워서 잡아먹을 건데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죠.'
***
칠흑 같은 어둠 속. 천강이 작게 한숨을 토해낸다.
'후우. 그래도 말 많이 들어준 보람은 있네.'
물을 어떻게 더 구할 수 없을까 걱정이었는데, 이야기하니 수통을 무려 다섯 개나 챙겨주었다.
이곳 쥐 굴의 돌아가는 상황을 익히 아는 천강으로서는 그게 얼마나 호의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긴. 세상사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법이지.'
마치 음양의 원리처럼.
천강은 벽과 바닥을 더듬으며 장치를 작동시켰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비밀통로 입구를 열어, 그곳에 숨겨둔 육포 주머니를 꺼냈다.
앞으로 훈련기간은 5일.
쥐굴에서 남은 기간은 55일.
'마교는 강한 자를 원한다. 육체도 정신도 모두 강한 자를.'
이곳을 졸업하는 데에는 다른 건 필요 없다. 오로지 강한 정신력뿐.
다만 제아무리 정신력이 뛰어나다 한들 쥐 굴의 졸업 관문을 넘어서기 위해선 체력도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불과 5일 전만 해도 천강의 몸은 이곳에 있는 아이들 중 사실상 최하위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부지런히 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죽기 싫다면 말이다.
'70년 전, 300명 중 살아남은 건 고작 82명.'
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체력 단련을 시작했다. 그는 계속 먹고, 마시고, 훈련하고, 쉬기만을 꾸준히 반복했다.
그렇게 5일이 흘렀다.
***
"씨발 새끼들."
건들거리며 돌아다니는 다섯 아이들을 보며 2번 패거리가 작게 투덜거린다. 그들은 5명의 무리를 못마땅하단 얼굴로 쳐다봤다.
"애들이 그리 허무하게 다치지만 않았어도 이런 상황이 오진 않았을 텐데."
"그러니까."
요 근래 5일간 쥐 굴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66번이 다치고. 그 뒤로 38번, 46번마저 99번에게 당하면서 2번 패거리의 입지는 크게 위축되게 되었다. 그러자 자연스레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끼리끼리 뭉친 아이들이었는데……. 사실 그래서 그 대부분은 크게 걱정할 필요 없었다. 숫자만 많지 실속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딱 하나의 세력은 꽤 신경이 쓰였다. 그게 바로 저들이었다.
"야야.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야. 이렇게 해야지."
"야, 너. 나랑 대련 한번 안 할래?"
소년 넷에 소녀 하나로 이루어진 집단.
마교 마인들의 자제들이었다.
마인들은 서로의 자식들을 인사시키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래서 서로의 출신을 모르는 이들은 자신의 힘을 숨기고 조용히 지내고 있었고, 2번 패거리가 횡포 부리는 꼴을 가만 보고 있어야만 했다.
아직 다들 어리고, 쥐 굴에서의 훈련이 그저 체력단련 위주인 만큼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예측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번 패거리는 사실 2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저 그런 강호 동네 꼬맹이 출신들이었다.
그저 길바닥에서 쌈질을 좀 할 줄 알뿐 무공에 대해 배운 게 없는 이들의 허세는 99번을 통해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것은 마인들의 자제들로 하여금 자신감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심지어 같은 공통점까지 있으니…….
"우리 아버지가 여기 마교 출신인데."
"어? 정말? 나도."
"난 엄마."
이들 다섯은 빠르게 친해지게 되었고, 곧 쥐 굴 내에서 가장 강력한 무리가 될 수 있었다. 그에 이곳저곳 훈수도 놓고 건들거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보다는……. 내가 한 수 가르쳐 줄게. 들어와 봐."
"이, 이렇게?"
"아니, 거기서는 손을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효과적이야."
그래도 기존의 2번 패거리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그들과는 다르게 여러 아이들을 도와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기저에는 내가 이곳에 있는 다른 애들보다 훨씬 강하니 한 수 가르쳐준다는 게 깔린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때 갑자기 아이들이 한쪽을 바라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99번 왔다."
"어디? 어디?"
"저기 입구."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의 고개가 공동 입구로 향한다. 그곳에는 지금 이곳 쥐 굴 상황을 통째로 뒤바꾼 한 소년이 서 있었다.
***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천강은 공동 안에 있는 아이들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이게 쥐 굴 분위기라고? 50년간 뭔가 변한 건가?'
과거 직접 겪었던, 그리고 종종 지나가면서 보고 들었던 쥐 굴과는 다른 밝은 분위기에 천강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주위를 슥슥 살피기 시작했다.
보통 이곳에서 아이들 분위기는 대체로 무겁다.
그도 그럴 게, 출신이 대부분이 고아 혹은 팔려 온 이들이다. 이곳에 끌려올 정도의 고아들이라면 원래 분위기가 험악하고, 팔려 온 이들도 그 비참한 현실에 밝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마교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싸움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하루에 반 시진씩 가르치기 때문에, 진짜 몇몇을 제외하곤 대다수 분위기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거의 나들이 나온 수준인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넘어 살짝 걱정이 드는 순간, 누군가 다가온다. 그는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 천강이 아는 얼굴이었다.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