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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5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1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5화

5화. 3 대 1

 

 

"어이. 싹퉁머리 없는 꼬맹아."

"……."

"계속 누님 말 씹을래? 응?"

그러나 묵묵부답이다. 그에 조교 초아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홧김에라도 머리통을 세게 후려 갈겼을 테지만, 얼마 전 교관으로부터 들은 말이 있어 자제하는 그녀였다.

- 몰래 잘 지켜봐라. 99번. 그놈 크게 될 놈이다.

대체 어딜 봐서 크게 될 놈인 건지…….

몸에 근육은 제법 있는 것 같아도, 기도 없고 체격도 작다. 교관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쥐 굴 졸업 관문도 간신히 넘을 것 같은데.

"야, 너 진짜 내 말에 한마디도 대답 안 할 거야?"

계속 씹어대니 울컥한 초아가 소리쳤다. 그런 그녀를 흘끗 쳐다보며 천강 또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미친년. 진짜 더럽게 꽁알꽁알 대네.'

사실 천강이 그녀에게 말대꾸를 안 해준 것엔 이유가 있었다. 한 번 대답을 해주면 그 이후부터는 계속 대답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깐 지켜본 바에 의하면 저년 말 되게 많다. 천강은 말 많고 참견 많은 여자를 질색한다.

'그런 인연은 홍랑 하나로 충분해.'

천강은 과거의 악연을 떠올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번 생은 되도록 그런 여자는 피하리라.

그리고 사실 그 외에 대답을 하지 말아야 할 진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오늘 암실에 한 번 더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지!'

아마 지금쯤이면 소문이 쫙 퍼졌을 것이다. 99번이 66번 돼지새끼를 처발랐다고. 그런 상황에 무리로 돌아가면 볼 것도 없이 보복이 들어올 터.

다른 소년들이야 상관없지만, 지금 몸뚱어리로는 마공을 사용할 줄 아는 애를 상대로 이기는 걸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니 졸개 한 놈 더 조져서 힘을 키울 생각이었다.

'암실 9번방에 들어가려면 아직은 좀 더 뻔뻔스러운 게 좋겠지.'

그러나 이 눈치 없는 여자, 입구까지 데려다줬으면 됐지 계속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야, 합류 안 하고 뭐해?"

천강은 고민에 빠졌다.

원래대로라면 조교는 이쯤에서 아이를 떨궈 놓고 제 시간을 보내러 간다. 지금까지 쥐 굴 경험에 따르면 그러했다.

그리고 천강은 그 틈에 화장실로 가서 대기. 오고가는 애들을 통해 66번 패거리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한 놈 새로 조질 참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 도통 움직일 생각이 없다.

'어떡하지. 그냥 대답을 해야 하나?'

대답도 않고 가만 서있자, 결국 부아가 치미는지 조교의 눈 끝이 매섭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결국 천강은 선택을 했다.

"야! 너 진짜 끝까지 대답……."

"갑자기 배가 아파서."

"아하? 배가 아프시다? 근데 너 이 씨발 새끼. 내가 지금까지 수차례 이것저것 물었는데, 너 필요한 때만 입을 열고. 내가 그리 만만해 보ㅇ……."

"미안해요, 예쁜 누나."

"……응?"

괜히 조교에게 찍힐 필욘 없겠지. 가까운 시일 내에 어떤 식으로든 볼 건데. 이왕 포문이 열린 거 천강은 본격적으로 아부를 털었다.

"예쁜…… 누나?"

"네, 예쁜 누나. 그동안 대답을 안 한 건 누나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랬어요……. 그 얼굴 마주보기도 좀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조교의 얼굴이 확 펴진다.

사실 눈앞에 조교는 못생긴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예쁜 축에 속했다.

그러나 마교에 있어보면 알겠지만, 아무래도 마교의 험악하고 무자비한 여인보다는 중원의 청순하고 가련한 느낌의 여인들이 더욱 끌리는 법이다.

그리고 이건 비단 내 생각만은 아니었다. 50년 전 마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마교 내 여자랑 결혼하느니 평생 혼자 살겠다고 한 녀석들도 꽤 많았지.'

즉, 눈앞에 여인은 얼굴이 제법 반반해도 그에 따른 칭찬이나 호감을 받아본 적은 거의 없었을 거란 이야기.

천강의 입 발린 말에 여인의 얼굴에 홍조가 띤다. 10살짜리 아이에게 받은 칭찬이라도 좋긴 좋은 모양이다.

"호호호. 그럼 내가 이해해줘야지. 어떻게 화장실은 알아서 갈 수 있겠어?"

"네."

"그래. 그럼 어서 갔다오렴!"

천강은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자리를 옮겼다. 그리곤 한참을 이동한 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빨리 힘부터 키워야지 원.'

 

***

 

냄새가 나지 않는 곳에 앉아 사람이 오길 기다린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곧 인기척이 들려왔다. 천강은 조용히 그늘 속으로 몸을 숨기고는 누군지 지켜보았다.

'음? 여자아이?'

꽤나 급한지 헐레벌떡 뛰어 지나가는 여아. 천강은 잠깐 고민하다 그녀를 지나보냈다. 굳이 남자애도 많은데 여자애를 붙잡아 놓고 추궁할 필요는 없겠지.

이곳 마교에는 남녀 화장실이 따로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 쥐 굴과 그 다음 훈련지역인 암운곡에는 남녀 구분이 없었다.

똑같이 훈련하고 차별 없이 같은 취급을 받는다. 암운곡을 졸업하는 약 5년간은 말이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마인 취급을 받으니, 사실상 본격적인 마교 생활은 암운곡 이후부터라 할 수 있었다. 즉, 그전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후우. 20년간 고생한 걸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니…….'

그래도 강해지는 게 느껴진다는 건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성장은 높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디어진다. 한숨을 내쉬고는 있지만 천강은 지금 이 상황을 꽤 즐기고 있었다.

'이번 생에 난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 거지?'

나이 서른에 마교 서열 11위가 되었다.

죽기 직전엔 아류인 흡성대법으로 마교 서열 1-10위와 싸워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원류인 북명신공의 비결이 머릿속에 있다. 20년간 구르며 쌓아온 전투지식과 기교도.

'……뭘 할지는 찬찬히 생각해보자.'

천강은 들뜨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 때 새 기척이 들려왔다.

이번엔 제법 근골이 좋은 남자아이였다. 내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얼굴이 상당히 악하게 생겼는데, 행태나 걸음걸이, 자세가 66번과 흡사한 걸 본 천강은 묘한 확신을 가지고 당당히 그 앞으로 나아갔다.

"아 씨발. 오줌 개 마려운데 끝까지 다 해야 보내주다니. 진짜 오줌보 터지겠……. 응? 넌 99번?"

"여어. 오랜만이야."

"너, 너 이 새끼……! 안 그래도 손 좀 봐주고 싶었는데 잘 만났다!"

반응만 봐도 알겠군. 내게 적대적인 태도와 깔보는 듯한 말투. 그리고 바로 어깨 위로 올라가는 손까지.

천강은 놈이 66번과 한 패거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니어도 크게 상관없었다. 어차피 암실에만 들어갈 수 있다면야……. 복수는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아서라. 너 그러다 66번 꼴 난다."

명백한 경고성 발언.

그러나 지금껏 기분 풀이로 밟아오던 좆밥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는 도발이 되는 법이다. 녀석은 곧바로 천강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씨방새가!"

거친 욕설과 함께 훅 들어오는 공격. 꽤나 재빠른 움직임이다. 그러나 그런 속도와는 달리 공격은 지극히 평이했다.

천강은 일직선으로 들어오는 주먹을 상체만 살짝 비틀어 피했다. 그리고는 옆구리를 스치는 순간 양팔로 단단히 붙들었다.

"어어?"

소년의 입에서 당혹감이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설마 자신의 공격을 피할 거라 생각 못한 것이다.

그에 잡아당기려 하나 꼼짝도 않는다. 도리어 팔이 한 바퀴 돌아가면서, 어? 관절이 꺾인…….

그러나 천강이 녀석의 관절을 박살내려는 순간, 옆에서 누군가 튀어나와 천강에게 날아 차기를 시도했다.

천강은 재빨리 팔로 막고는 낙법을 취해, 바닥을 두 바퀴 구르며 물러났다.

"야. 괜찮냐?"

"큿. 당연하지. 근데 왜 끼어들었어? 안 그래도 내가 이길 수 있는데."

"하. 그러셔? 그러기엔 상당히 위험해 보이던데?"

숫자는 둘… 아니, 셋인가?

뒤늦게 한 명이 추가로 도착하며 의도치 않게 3대1이 되어버린 상황. 그러나 천강의 얼굴엔 미소가 걸렸다.

"안 그래도 애들과 일대일로 싸운다는 게 영 찜찜했는데…. 잘됐네. 한꺼번에 덤벼라."

"뭐?"

"하아?"

"이 새끼가 돌았나?"

천강은 편한 자세로 서서 놈들을 향해 손짓했다.

"미친 건 잘 모르겠고, 빨랑빨랑 덤벼라. 말로 싸울 거면 고추 떼던가."

"이익! 죽어엇!"

결국 도발에 걸려든 소년들이 달려든다. 천강은 몸을 뒤로 빼며, 놈들이 순차적으로 달려오게끔 만들었다.

발이 제일 빠른 녀석이 선두로 앞으로 나아온다. 천강은 녀석의 안으로 파고들며 주먹을 피한 뒤, 목을 가격했다.

"커헉."

고통에 몸을 움츠리는 녀석. 그런 놈을 방패삼아 다른 두 아이의 공격을 방어한다. 두 아이의 주먹이 목을 잡고는 켁켁 거리는 소년의 몸을 후려친다.

"꾸에엑."

일단 한 놈은 끝.

"46번! 미, 미안!"

"이런 씨발…!"

천강은 당황해 하는 두 소년 중 오른편을 향해 달려들었다. 갑작스런 그의 돌진에 아이는 깜짝 놀라 주춤했고, 천강은 주먹으로 그 고간을 때려주었다.

"끄아악!"

"후우. 이제 하나 남은 건가?"

바닥을 뒹구는 둘.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고는 주춤주춤 물러나는 소년 하나.

녀석이 천강과 자신의 동료들을 번갈아 쳐다본다. 그리고는 홱 몸을 돌리더니 냅다 도망가기 시작했다. 천강은 그 아이를 쫓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에 대해 알려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앞으로 귀찮게 덤벼드는 애들이 없겠지.

천강은 가랑이를 붙잡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 발로 얼굴을 후려쳤다. 그리고는 손가락 하나를 잡아 확 뒤로 꺾었다. 섬뜩한 소리가 굴 내로 울려 퍼진다.

"끄아아악…!"

덜렁거리는 손가락을 보고는 곧바로 기절하는 녀석. 그걸 지켜 본 다른 한 녀석이 바들바들 떨며 애원했다.

"히익?! 제, 제발 용서해줘…. 99번…!"

그러나 딴 생각 중인지, 멍한 얼굴로 다가와 후려치고는 똑같이 손가락을 그대로 꺾어버리는 천강. 손을 탁탁 털며 나직이 중얼거린다.

"음…. 그러고 보니 98번 아우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괜히 나 때문에 맞고 다니는 건 아닌가 몰라.

"킁. 손보기 전에 물어볼 걸."

손가락을 부여잡은 채 기절한 두 아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살짝 후회하는 천강이었다.

 

***

 

'저 새끼 뭐하는 놈이지?'

천강을 몰래 지켜보던 조교 초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나이에 맞지 않게 재빠르고 유연한 움직임은 그렇다 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손가락을 부러뜨려 버리다니…….

보통 저 정도 수준이 되려면 암운곡에서 2년 차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손가락을 아작 냈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천강의 모습에 초아는 오소소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설마……. 어디 살수의 후계자?'

그런 엉뚱한 생각이 초아의 머리에 스칠 때, 그녀의 뒤에서 교관이 나타났다. 그는 그녀를 지나쳐 소년에게 찬찬히 다가갔다.

"99번. 오늘은 무슨 일이지? 이번에도 은원관계인가?"

"음? 아,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소년이 별 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이것들이 다짜고짜 먼저 싸움을 걸어와서 말이야."

"저게 지금 교관에게 반말을? 야! 너 지금 이분이 누군지 알아? 엉?"

"초아 그만. 뒤로 물러서 있어라."

"……예."

초아가 세 발 뒤로 물러선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사냥감을 눈앞에 둔 범 마냥 매섭게 번뜩였다.

그 눈빛에 천강은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왕 연기한 거, 저 조교보다 강해지기 전에는 끝까지 부끄러운 척 연기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을 흥미롭게 쳐다보는 교관.

그리고 조교 초아.

교관이 그녀에게 손짓한다.

"잠깐 물러나 있어라. 아무래도 네가 있으면 대화가 진행이 안 될 것 같다."

"……알겠습니다."

토라진 애 마냥 몸을 홱 돌려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여인. 천강은 자신이 선택한 이 전략이 맞는지 조금 후회가 들었다.

교관이 그를 내려다보며 다시금 묻는다.

"그래도 네 실력이라면 굳이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뭐 그렇긴 한데……. 이왕 손을 쓰려면 제대로 쓰자는 주의여서 말이야. 괜히 어중간하게 혼내면 파리 마냥 귀찮게 달려들기만 한다고."

"좋군. 아주 마교에 어울리는 자세다. 그러나 그 책임을 져야 함은 알고 있겠지?"

"물론."

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교를 불러 그를 다시 암실에 가둘 것을 지시했다.

'아직 열 살 밖에 안 된 주제에 손가락을 이리 가차 없이 부러뜨려버리다니…….'

크게 될 놈이다. 어쩌면 마교 출신의 자제 7명보다도 더.

'재미있겠군.'

흑철마괴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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