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3화
3화. 암실
98번이 짱돌 맞은 참새마냥 벙찐 표정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방금 일어난 일이 너무 꿈만 같아 아직 어안이 벙벙한 탓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누가 괴롭히면 말하고. 내가 아주 혼꾸멍을 내줄 테니까."
"으응. 알겠어. 아, 아니. 알겠습니다, 형님."
소년이 달려와 넙죽 절한다. 기본은 된 녀석인 것 같다. 그러나 이내 깜짝 놀라더니, 후다닥 일어나 팔을 잡아끌고는 하는 말.
"형님, 근데 일단 여기부터 벗어납시다!"
"음? 왜?"
"왜냐니! 그야……."
그러나 천강을 잡아끌던 소년이 돌연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66번의 비명 소리를 듣고는 막 현장에 교관이 들이닥친 것이다.
얼굴이 흉터로 가득한 교관이 세 소년을 바라봤다. 그는 특히 바닥에 엎어져 꿈틀거리는 66번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99번. 이건 네가 한 짓인가?"
"그렇다면?"
"왜 그랬지?"
"그동안 받은 게 많아서 되돌려 줬어."
교관이 침묵한다. 그는 가만히 99번을 바라보았다. 그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시선으로 지그시. 그러자 그걸 똑바로 마주하는 소년.
'흥미롭군. 이곳 쥐 굴에서 내 시선을 받아낼 인물은 끽해야 두 명뿐일 텐데.'
그의 얼굴은 다 큰 성인이라 할지라도 마주하면 한 번은 움찔할 만큼 굉장히 더러운 인상이었다. 얼굴로는 능히 마두에 들 수 있을 거라며 주위에서 놀려댈 정도로.
이곳에 있는 애들 대부분은 나이가 10살 안팎. 그래서 아직 그 앞에선 대답조차 제대로 못하는 애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날 똑바로 쳐다보고 대답한다고?'
교관의 눈에 흥미가 일었다.
99번. 현재 남은 인원 281명 중, 사실상 281번째라 불러도 될 정도로 나약한 몸과 부진한 성적을 가진 인물.
대부분의 교관들은 다음 낙오자로 이 소년을 지목했다. 몇몇은 언제 죽을지 내기하자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50위권 안에 드는, 자신보다 체구가 훨씬 큰 녀석을 죽였단다.
"즉, 복수를 했다 이 말이로군. 훌륭하다. 이곳 마교야 말로 은원관계는 확실시해야 하는 곳이지."
교관의 말에 천강이 고개를 주억였다. 50년이 지나도 기본 교리들은 변하지 않은 듯했다.
'문제는 쥐 굴의 규칙이 여전히 유효하냐는 건데.'
천강이 고개를 든다. 교관이 그에게 다가와 서늘한 기운을 잔뜩 풍겨댄다. 딱 봐도 기를 죽일 목적으로 하는 행동. 천강은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흘러감을 느꼈다.
"대신. 이곳 쥐 굴에서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하거나 죽이면 5일간 암실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들었을 것이다."
역시나. 천강은 미소를 감춘 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건방진 새끼돼지 녀석 따위 적당히 급소 피하면서 괴롭혀 줄 수도 있었지만, 교관이 말한 저 암실에 갇히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것이었으니까.
교관은 사람을 불러 천강을 암실로 보내고, 98번에게 싸움 당시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그런 뒤 혼자 현장에 남아, 바닥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며 감탄했다.
'호오……. 99번 이 자식, 싹수가 보이는데?'
이번 천산 쥐 굴 기수엔 쟁쟁한 녀석들이 많이 있었다.
두 마두의 자녀.
그 외에 여러 마인의 아이들.
강호에서 데려온 평균 이상의 체격 좋은 일반 고아들까지.
그 쟁쟁한 이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아이였다. 지금 바닥에 쓰러져 벌레마냥 파들거리는 저 66번은 말이다.
그런 녀석이 주먹 한 번 못 때려보고 쓰러졌다라…….
'재미있군.'
천산 쥐 굴의 교관 흑철마괴의 입에 즐거운 미소가 걸렸다.
***
보통 한 기수의 쥐 굴에는 세 교관이 배정된다. 그리고 그를 도울 세 조교도.
천강은 앞서가는 여조교를 따라 찬찬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천강이 익히 아는 길을 통해 암실로 그를 인도했다.
'전체적으로 수준이 올라갔군.'
아까 교관도 그렇고, 지금 조교도 그렇고. 50년 전과 비교해 수준이 한참 뛰어났다.
전에는 이류 실력을 가진 이들을 조교로 사용했었는데, 지금 눈앞에 여인은 나이도 고작 열여섯 정도 밖에 안 되었으면서 벌써 일류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옷자락에 수놓아진 별이 그 증거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무공이 더 발전한 건지도 모르지.'
어찌됐든 50년이란 세월은 많은 게 변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
"들어가."
고개를 든다. 기다란 복도 좌우로 10개의 굴이 자리하고 있다. 굴 안으로 보이는 건, 오로지 칠흑 같은 어둠 뿐.
여인은 가장 가까이 있는 굴을 톡톡 두드리며 어서 들어가라고 고갯짓했다. 그러나 천강은 그를 무시하고 복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야, 너!"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그러나 계속 나아간다. 그러다 복도 제일 끝에 다다랐을 때, 천강은 좌측에 위치한 굴에 슥 발을 들이밀었다. 그리곤 그대로 그 안으로 사라졌다.
"하……. 뭐야? 저 미친 새끼는?"
2년 조교인생 중 이런 놈은 또 처음이네. 심지어 은근 무시하는 듯한 행동에 조교 초아는 씩씩대며 그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는 굴속에 있을 꼬맹이에게 왈.
"좋은 말로 할 때 나와라."
"……."
하. 쪼그만 놈이 건방지게 내 말을 씹어?
순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열불이 치솟았으나, 지금 이게 9번째 굴이란 걸 상기한 초아는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암실 중에서도 이 자리는 꽤 특별했기에.
"그래. 그럼 5일 후에 보자고."
굴속에 음식이 든 보따리를 던진 그녀는 장치를 작동시켜 굴의 입구를 완전히 봉쇄했다.
'고생 좀 해봐라, 건방진 꼬맹이.'
초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
빛 한 점 없는 지독한 어둠 속.
시간이 지나도 윤곽마저 보이지 않는 암실.
천강은 능숙하게 보따리를 집어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익은 감자 15개. 수통 하나. 하하……. 이것까지 50년 전이랑 똑같네. 마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풀이하는 듯한 기분이다.
'당시엔 하루하루가 악몽이었지만.'
본래 이곳엔 아이들을 잘 가두지 않는다. 다른 암실은 미약하게나마 빛이 들어오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칠흑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또한 공간도 다른 곳에 족히 5배는 돼, 어둠 속에서 5일간 헤맨 아이들은 태반이 미쳐버리곤 했다.
그러나 이곳이 처음이 아닌 천강은 느긋하게 벽에 기대, 감자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리곤 공복을 채우며 현 상황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갔다.
'일단 아직까지 지켜본 바에 의하면 환생을 한 것 같긴 하단 말이지.'
마인이 된 뒤 임무를 위해 강호에 나가다 보면 좀 더 확실해지겠지만, 아마 거의 맞지 않을까 싶다.
제일 확실한 건, 당시 소교주였던 지금의 천마에게 물어보면 되는 것이나…….
어……. 음. 교주를 만나려면 최소 마두는 되어야 한다. 즉, 한동안은 증명할 방법이 없단 뜻이다. 그에 천강은 그냥 환생했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새 인생이 주어졌단 이야기인데…….'
새 삶엔 새 목표가 필요한 법이지.
그에 이번 생은 뭐하며 살까를 아주 잠깐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일평생 살기 위해 죽어라 달려온 까닭일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끙……. 그건 천천히 생각해 볼까?'
천강은 머리를 긁적이며 일단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들을 떠올렸다. 여러 비급을 통해, 그리고 사람을 통해 얻게 된 여러 무공들을.
그런 뒤 무엇을 익힐까 고민하였는데,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림 내 최강의 무공 중 하나를.
'북명신공.'
마교 내 최강의 무공이라 일컬어지는 천마신공에 버금가는 무공.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역대 마교 교주들이 북명신공의 비급을 은밀히 숨겨왔던 건.
'둘 중 뭐가 우위인지는 모르겠으나, 교주들 입장에선 정통성을 띠는 천마신공을 소교주에게 가르쳐주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천강은 이번 생은 북명신공을 익히기로 결정했다. 다행이도 현재 자신의 몸은 단전이 만들어지기 전. 북명진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 수 있는 상태였다.
그에 눈을 감고는, 찬찬히 전생에 익힌 흡성대법과 죽기 전 보았던 북명신공을 비교해 보았다. 두 심법의 겉모습은 굉장히 유사했으나 그 원리엔 매우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흡성대법의 경우엔 단전을 비워 기압차를 이용, 적의 기를 강제로 빨아들이는 형식이야. 그래서 강탈당한 기는 반발을 하고, 결국 이종진기라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거지.'
천강도 그의 스승도 그놈의 이종진기로 인해 죽게 되었다. 무려 10년을 스승의 철저한 관리 하에 준비했음에도, 그 시한부 인생을 피하지 못해 결국 5년 만에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북명신공은 모든 물줄기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일종의 거대한 바다. 반발이 아닌 서로 조화를 이루니, 이종진기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천강은 북명신공의 첫 번째 구절을 떠올렸다. 그리곤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기를 감지해 검지로 찬찬히 빨아들였다.
미약한 기운이 엄지를 타고 들어온다. 엄지를 타고 쭉 위로 올라온…….
"젠장. 공기 중에 기가 너무 옅은데?"
이대론 길만 다지는데 한 세월이 걸리게 생겼다.
'하아.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내공을 갖춘 이에게 지속적으로 기를 방출해 줄 것을 부탁하는 것이겠지만, 지금은 그런 개인적인 부탁을 할 만한 인물이 마땅히 없었다.
그나마 도움이 될 만한 98번 아우도 아직 단전도 못 만든 상태였다.
'별 수 없지. 일단은 체력 단련 위주로 하는 수밖에.'
북명신공은 어차피 일찍 익히건 늦게 익히건 큰 차이가 없다. 그저 너무 늦지 않게만 익히면 된다.
천강은 일단 문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더듬더듬 벽과 바닥을 더듬으며 50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50년 전, 아니. 정확히 말하면 70년 전에 이곳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리곤 이곳에서 탈출한다고 아등바등 돌아다니다가 천운으로 장치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는데…….
"분명 이 즈음……."
딸깍.
"아, 됐다."
벽에 있던 바위가 들어가며 쇳소리가 살짝 울린다.
천강은 다시 걸음을 재개했다. 그리고는 벽을 타고 쭉 기어가 이번엔 바닥을 눌렀다.
끼기긱.
'이제 마지막 하나.'
벽에서 떨어져 바닥을 매만지며 암실의 중앙으로 이동한다. 당시 수백 번 가까이 해보며 익힌 지리들이 손바닥을 통해 선명히 되살아났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을 때, 천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심호흡 후 있는 힘껏 뛰어올랐다.
폴짝.
'아, 젠장! 이 녀석 키가 왜 이리 작아? 욕 나오네.'
이제 천정 벽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키가 너무 작고 힘도 없어 손끝이 겨우 닿는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지. 다시. 다시. 또 다시……!
"헉. 허억……. 씨발."
그그극.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간 장치들.
천강은 호흡을 고르고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반 시진이 지나도록 천강은 땀만 열심히 빼야 했다.
'진짜 더럽네. 왜 하필 저 높은데다가 장치를 만들어둬서.'
어른들에게는 허리도 못 펼 만큼 낮은 지형이지만, 이곳 천산 쥐 굴에 들어서는 10살짜리 어린애들에게는 확실히 높은 천정.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잘못하면 이대로 5일이 지나버릴 것 같은데.'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봐도 답은 안 나오고. 도리어 반 시진 동안 폴짝폴짝 뛰었다고 배만 고프다. 그에 감자를 집는 순간, 천강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래. 이거다!'
감자를 입에 물고 먹으며 다시 장치를 하나씩 작동시킨다. 벽에 하나. 그리고 바닥에 하나. 마지막으로…….
13개의 감자와 수통이 든 자루를 바짝 조여 맨 뒤, 있는 힘껏 뛰어오르며 머리위로 번쩍 들어올린다.
'닿아랏!'
꾹. 감자가 찌부러지는 게 느껴진다.
아, 내 소중한 감자…….
그러나 천강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천정이 살짝 올라가며 기계음이 들린 것이다.
그그그그극.
한쪽 벽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진다.
감자 자루를 챙겨든 천강은 바닥을 더듬으며 그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는 소년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굴로 몸을 들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