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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화

2화. 천산 쥐 굴

 

 

흑살마신의 철칙.

받은 건 돌려주기.

그중 맞은 건 배로 갚아주기.

내가 직접 맞은 건 아니었지만, 이제부터 내가 쓸 몸이니 은원관계부터 확실히 해야겠지. 이왕 새 출발 하는 거 깨끗하게 시작하는 게 좋지 않겠어?

"야, 잠깐만 멈춰봐! 진정 좀 해! 걔들 숫자가 몇인 줄 알고 이러는 거야?"

"몇 인데?"

솔직히 쥐 굴 출신이 뭉쳐본들 거기서 거기인터라 딱히 걱정은 안됐으나, 들어서 손해 볼 건 없으니 일단 들어두기로 했다.

천강의 질문에 소년이 잔뜩 위축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7명이야."

"7명이라. 거뜬하네. 가자."

"자, 잠깐. 걔들 다 덩치도 크고……."

"응. 가면서 이야기해."

"그 중 한 명은 마공도 사용할 줄 안다고!"

응? 마공? 그건 좀 문제가 되는데.

7대1이 거뜬하다한 건, 어디까지나 기운용이 불가능하단 전제 하에 한 말. 전생에 쥐 굴 졸업 당시, 300명 중 살아남은 인원 82명. 그 가운데 단전에 기를 쌓은 애들이 겨우 43명인 걸 감안하면 꽤 강한 편이라 할 수 있었다.

"우리 여기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이제 40일 즈음 됐을 걸?"

그럼 대략 여기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란 소리로군.

천강은 자신의 몸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말라깽이의 나약한 몸뚱어리다.

'용케도 안 죽고 여태 살아있었네.'

40일이나 지났는데 이 상태면, 사실상 무리 중 최약체라 여겨도 될 것이다.

천강이 자리에 우뚝 서서 생각에 잠기자 그제야 98번의 얼굴이 확 펴졌다. 갑자기 분위기가 변한 것도 적응이 안 되는데, 다짜고짜 녀석들에게 찾아가 싸운다고 하니 어찌 아니 그럴까.

아니 근데…….

"99번 너도 알고 있는 사실을 왜 나한테 묻는 거야?"

"아. 혹시 나 뒤통수 까였나?"

"그렇지?"

"그래서인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

"그런……."

불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소년. 별다른 의심은 안한다. 그걸 보며 천강은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걸로 밀고 가기로 결정했다. 뭐 죽다 살아나면 사람이 달라진다고들 하지 않던가?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야. 지, 진짜로 갈 거야? 난 여기서 좀 더 쉬고 싶은데……."

"형님이 이길 테니 걱정 말아라."

"누가 형님이야? 내가 너보다 나이 한 살 많은데!"

"그래?"

소년이 고개를 끄덕인다.

"넌 10살. 난 11살."

"근데 왜 처맞고 다녀?"

그랬다. 소년의 몸 곳곳은 멍으로 가득했다. 그것은 수련 중 입은 상처라기 보단 일방적으로 얻어맞을 때 생긴 부위가 대부분이었다.

소년이 눈을 피한다.

"그, 그건…….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하. 보니까 이 녀석, 나랑 같이 맞고 다니는 동기였구만?

천강이 씩 미소 짓는다. 그 미소에 98번 소년은 뭔가 불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그럼 이건 어때? 내가 66번이랑 싸워서 이기면 넌 날 형님으로 모시는 거야. 너는 내 아우가 되는 거고."

"에엑? 그런 게 어딨어!"

"나랑 의형제 맺기 싫어?"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그럼 생각은 있단 소리네. 그럼 우리 중 66번과 먼저 싸워 이긴 사람을 형님으로 모시기, 어때?"

98번이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어보였다.

"그래. 알겠어. 대신 지금은 아니야. 괜히 걔들 성질 돋우면 우리만 손해라구."

"98번 꼬맹아. 공자님이 뭐라 말씀하셨는지 아냐?"

98번은 자신을 꼬맹이라 부르는 천강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대꾸하기도 지치는지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뭐라…… 하셨는데?"

"하늘의 순리에 순응하는 자는 살고, 하늘의 순리에 거역하는 자는 죽는다."

"그게 뭔 소리야? 어려워. 쉽게 좀 이야기 해줘봐."

"하늘이 나의 죽음을 원치 않으니, 내 앞길을 막는 놈들은 모두 죽는단 뜻이다."

사람이 죽는 건 천명이다. 하늘이 정한 뜻이니 거스를 수 없단 이야기다. 그런데 난 죽지 않고 살았다. 그게 무슨 뜻이겠나?

'이번 생은 한 번 잘 살아보란 뜻이지!'

"으으……. 너 오늘 뭔가 굉장히 이상한 거 알아? 좀……."

"좀 뭐? 미쳤다고?"

"……아니. 늙은이 같아."

미쳤다고 말했으면 한 대 쥐어박으려고 했더니. 촉은 좋네, 자식.

천강은 가지 않으려는 소년을 이끌고 곧바로 훈련장으로 향했다.

 

***

 

천산 쥐 굴 제2훈련장.

사실 말이 훈련장이지 그저 넓은 공동에 불과한 곳이다. 이곳에서 하루 두 시진, 일수론 100일간 아이들은 단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교관이 휴식 명령을 내리고 사라진 잠깐의 시간. 300명이 살짝 못 되는 아이들이 저마다 붙어 떠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중엔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66번 또한 있었다.

"야들아. 나 화장실 좀 갔다 온다."

"어후. 큰 거냐?"

코를 잡고는 냄새 난다는 듯 손을 흔들어대는 동료에게, 66번은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아니거든? 암튼 나 갔다 온다."

66번이 발걸음을 옮긴다. 녀석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자 그 앞에 있던 애들은 허겁지겁 좌우로 비켜섰다. 그걸 마치 즐기듯 놈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으스댔다.

'하······. 아쉽네. 조금 손속에 사정을 뒀어야 했는데.'

하필 공격이 머리에 맞아버려서…….

'끙. 죽었으려나?'

뒤늦게 후회가 밀려온다.

이곳 쥐 굴에서는 교관 앞에서 치러지는 공식적인 결투가 아닐 경우,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하거나 죽이게 되면 5일간 암실에 갇혀 있어야 했다.

먹을 것도 나오고 해서 딱히 어려운 것은 아닌데, 빛 한 점 없는 지독한 어둠 속에서 무려 5일간을 훈련도 못 받고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게 여러모로 굉장히 안 좋았다.

'씨발. 죽었으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다음부터는 좀 조심하자. 그럼 어디보자. 이번엔 누구를 가지고 기술 연마를 해볼까…….'

66번이 고개를 돌리며 새 장난감을 찾는다. 그의 시선을 받은 아이들이 몸을 한껏 움츠렸다.

'큭큭. 나약한 녀석들. 벌써부터 미래가 보이는구만.'

저것들은 이곳 마교에서 잔심부름이나 할 잔챙이들. 그리고 난 마교를 지탱하는 마두가 될 몸. 응당 이 몸의 성장을 위한 제물이 되는 걸 기뻐해야 할 것이다.

66번은 한 남자아이의 얼굴을 기억하고는 훈련장을 나섰다. 오늘부터 새 장난감은 저 녀석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은 번쩍 뜨였으니……. 그 앞으로 익숙한 두 얼굴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그 중 작은 체구의 소년을 보며 그는 매우 반색했다.

"오오오! 99번! 깨어났구나!"

 

***

 

'제2훈련장은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인가 보군.'

천산 쥐 굴. 이곳이 쥐 굴이라 불린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마치 쥐가 파놓은 것처럼 꾸불꾸불 굴로 길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천강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굴을 보며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느꼈다.

'아마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고 봐도 되겠지.'

98번을 따라 횃불로 밝혀진 굴을 걸어가길 잠시, 곧 천강은 한 소년을 마주칠 수 있었다. 녀석은 그들을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99번! 깨어났구나! 난 네가 이번에 꼼짝 없이 죽는 줄 알았지 뭐야?"

웬 놈이지. 요 98번 꼬맹이처럼 날 아는 놈인가?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여 놈을 파악한다. 열 살배기 아이치고는 거대한 체구.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배가 많이 나왔지만 전체적으로 두툼한 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건 없다. 그저 한 가지 생각만 들 뿐.

'역시 어릴 적엔 뭐니뭐니해도 체급이 다지.'

내가 저 정도 체격만 갖췄어도 바로 여길 접수해 버렸을 텐데.

새삼 자신의 빈약한 몸뚱어리에 절로 한숨이 나오는 천강이었다.

그런 천강에게 바짝 다가와 내려다보는 녀석. 66번의 신장은 천강보다 두 뼘은 족히 더 컸다.

"정말이지 한방에 뻗어버리다니! 그래서 내가 좀 반성을 했어. 다음부터 얼굴은 때리지 않기로. 그래야 나랑 더 오래 놀지, 안 그래? 낄낄낄. 어때? 나 좆나 착하지 않냐?"

그러면서 천강을 툭툭 친다. 명백히 시비다. 천강은 놈의 건들거리는 언행을 가만 받아주면서, 녀석의 행동과 속도, 근육량 정도를 파악했다. 그리곤 물었다.

"넌 뭐냐? 건방지게."

"응……?"

눈을 끔벅거리는 아이. 이내 천강 뒤에 서있는 98번을 바라보며 물었다.

"야, 98번. 얘 왜 이러냐. 아까 머리를 맞더니 돌았냐?"

"그, 그게……."

"말 더듬지 말고 새끼야. 콱! 얘 상태 왜 이래? 왜 병신이 됐어?"

그러나 잔뜩 얼어붙어 말을 못하고. 마치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 때리는 족족 얻어맞는 98번 꼬맹이를 보며, 천강은 바로 이놈이 그 문제의 66번임을 알아차렸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마지막으로 자신을 흘끗 거리는 소년에게 놈을 고갯짓하며 질문.

"얘가 66번이야?"

……끄덕.

그렇단 말이지?

"98번 이 새끼가? 내 말이 말 같지 않냐! 씨발. 내 말엔. 퍽. 대답을 안 하고!“

퍽퍽.

“이런 병신 같은 99번 새끼 말은 듣고, 엉?”

퍽퍽퍽…….

98번 소년을 발로 차 넘어뜨리고는 사정없이 밟아대는 녀석. 꽤 화가 많이 난 건지 아니면 본래 손 속에 자비를 두는 성격은 아닌지, 놈의 발길질은 가차 없었다.

그러나 녀석의 일방적인 폭력행사는 곧 끝을 맺었으니.

"스읍……!"

어느새 녀석 뒤에 자리 잡은 천강은 즉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는……. 냅다 놈의 낭심을 걷어찼다.

퍼억!

"꾸에엑!"

"얼쑤. 소리 좋고."

천강은 몸을 수그리는 놈의 머리를 붙잡고는, 있는 힘껏 눈 아래 뼈를 머리로 들이받았다.

"켁."

그것으로 66번의 전투력은 상실됐다. 눈 아래쪽 급소를 맞으면서 순간적으로 시야가 새하얘져 앞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66번이 왼손으로 고간을 부여잡고는 천강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천강, 가볍게 피한다.

다시 휘두른다.

그러나 이번에도 허공을 휘저을 뿐이다.

천강은 놈을 가지고 놀며 간간히 급소를 한 대씩 때려주었다.

퍽.

"끄악. 읏. 너 이 씨발 새끼, 잡히기만 하면 진짜 가만 안둔……!"

퍽퍽.

"제, 젠장! 뭔 놈이 쥐새끼 마냥 이리 재빠르……."

퍽퍽퍽.

"씨발!!"

퍽퍽퍽퍽.

"윽. 으윽……. 자, 잠깐……."

퍽퍽퍽퍽퍽퍽퍽.

"내, 내가 잘못했……. 꾸에엑……."

연이은 급소 공격에 66번이 자빠졌다. 그 뒤로는 무차별적인 구타만이 이루어졌다. 놈은 제발 살려 달라 외쳤으나 그에 대한 대답은 가차 없는 발길질로 되돌아왔다.

"끄으으……."

"후우. 좀 숨이 차는군."

그래도 꽤 만족스러웠어. 첨엔 걱정이 좀 들었는데, 몸이 비리비리한 것에 비해 훈련은 충실히 잘 받았는지 지구력은 꽤 있었다.

천강은 호흡을 고르며 66번을 내려다보았다. 벌레가 바닥을 기듯, 돼지 한 마리가 바닥에 엎어진 채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사, 살려줘……."

"살고 싶어?"

돼지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나도 너처럼 새로 익힌 기술을 한번만 연습해 보자. 어때?"

"내, 내 몸에?"

"왜? 싫어?"

흑살마신의 철칙.

받은 건 돌려주기. 그중 맞은 건 배로 갚아주기.

내 뒤통수를 죽일 각오로 갈겼으니, 그 배는 받아야 하지 않겠어?

천강이 매섭게 노려보자 녀석이 재빨리 입을 움직였다.

"아, 아냐. 해……."

"그럼 이건 상호 동의하에 하는 거다. 미리 경고하는데 절대 피하지 마. 크게 다치기 싫으면. 알겠어?"

"아, 알았다."

놈의 대답이 나옴과 동시에, 천강은 곧바로 발을 놀려 벽을 짚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갑자기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당황하며 위를 올려다보는 녀석.

이내 높이 떠 있는 천강을 보고는 깜짝 놀라 회피한다. 아니,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녀석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급소를 흠씬 두들겨 맞아 힘이 완전히 풀려버린 것이다.

왜? 왜 몸이……!?

"그럼 간닷!"

"자, 잠깐. 잠깐만……!"

그러나 천강의 몸은 중력을 받아 그대로 낙하하고. 그 발이 정확히 놈의 뒤통수에 떨어지면서 66번은 그대로 졸도했다.

"후우. 진짜 어린애라 봐줬다. 그러나 다음에는 국물도 없으니까 까불지 마라."

입에서 게거품이 흘러나오는 녀석을 한번 흘겨보고는 천강이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을 받은 소년이 몸을 움찔 떤다.

"봤지, 98번?"

"에? 아아……. 으응……."

"그럼 내가 이겼으니 이제부터 우린 의형제다. 내가 형님, 넌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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