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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0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09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05화

 

* * *

 

공손백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창문을 바라보았다.

“외곽의 장원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싸움의 주인공 중 하나가 장천운이란 말이지?”

“예, 주군.”

“부상을 당했고?”

“그렇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소식이군.”

“장천운은 동이 튼 후에야 성 안으로 들어왔는데, 옷이 찢어지고 몸 곳곳에 피가 묻어있었다고 합니다.”

“제법 심하게 당했나 보군.”

“상당히 심해서 며칠 요상을 해야 할 거라고 합니다.”

“그래?”

웃음기를 띠고 있던 공손백의 눈가에 살얼음이 얼었다.

출정을 하루 앞두고 있다. 이대로 떠난다면 뒤통수가 얼마나 가렵겠는가.

마침 장천운이 심한 부상을 당해서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는 상태. 어쩌면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내가 없는 상황에서 사마경이 쓰러진다면 누구도 나를 탓하진 못할 거다.”

공손백의 말뜻을 짐작한 종리성학이 입꼬리를 비틀며 고개를 숙였다.

“누가 감히 주군께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처리할 수 있겠느냐?”

“맡겨주신다면……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좋다. 사람은 네가 알아서 써라. 누구든.”

“예, 주군.”

“그리고 장천운이 싸웠다는 장원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해보도록.”

“소식을 듣자마자 귀혼객을 보냈습니다만, 장원이 텅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뒤가 구린 구석이 있으니 피했을 것이다. 어떤 놈들인지 궁금하군.”

종리성학은 공손백의 표정을 슬쩍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공손백의 기분이 나쁜 것 같지 않자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주군, 아시다시피 장천운은 강합니다.”

공손백의 이마에 주름이 죽 그어졌다. 인정하긴 싫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래, 아주 강한 놈이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고 싶을 만큼.”

“그런 놈이 심각한 부상을 당할 정도의 싸움이라면 외곽의 경비들이 몰랐을 리 만무합니다.”

공손백의 이마에 그어진 주름의 골이 깊어졌다.

“경비들이 몰랐다는 건 보이지 않는 막이 눈과 귀를 가렸다고 봐야할 거다.”

“그 정도 힘을 지닌 자들이 누구겠습니까.”

종리성학이 그 말을 하고 입을 닫았다.

공손백이 이마를 두어 번 꿈틀거리더니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면 장천운이 그들의 꼬리를 잡았을지도 모르겠군.”

그들. 굳이 정체를 말하지 않아도 종리성학은 ‘그들’이 누구를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잘하면 일이 엉뚱한 곳에서 풀릴지 모르겠어.”

공손백은 하얀 미소를 지으며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댔다.

상황을 잘 이용하기만 하면 침체된 상황을 멋지게 반전시킬 수 있을 듯했다.

‘진짜 싸움은 사마경을 끌어내린 후부터 시작되겠군.’

 

 

84장: 농담과 진담 사이

 

 

장천운이 부상당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몇 사람의 표정이 환해졌다.

특히 장로 몇 사람은 대소를 금치 못했다.

 

“하하하하, 꼴좋군, 그놈.”

“후후후, 옆구리에 칼침을 맞았다는데, 누군지 아예 내장을 토막 내 버릴 것이지…….”

“그 어린 놈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는데, 백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것 같군.”

 

물론 속이 시원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우문각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걱정되지도 않았지만.

앞에서 빤히 쳐다보는 저놈을 누가 심각한 부상을 입은 놈으로 보겠는가 말이다. 얼굴이 약간 창백한 것만 아니라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너에게 심한 부상을 입힐 정도로 강한 자들이 구천성 외곽 마을에 숨어 있었단 말이지?”

장천운은 다 식은 차를 한입에 후르륵 털어 넣고 대답했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머물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이가 없군.”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최근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오래전부터 있었단다.

구천성에 귀머거리와 장님들만 모였나?

“혹시 그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비령각에서는 외곽마을을 한 번도 조사해보지 않은 모양이군요.”

“조사야…….”

“비령각에서 조사를 제대로 했다면 총사께서 모를 리 있겠습니까?”

은근히 비꼬는 장천운의 말뜻을 우문각이 왜 모를까.

‘이 자식이……!’

우문각은 속으로 욕을 하며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임에도 장천운은 표정 한 점 변하지 않았다. 약간 창백한 안색 때문인지 더 변화가 없는 듯했다.

“비령각의 정보망은 백 리 안의 쥐새끼가 몇 마리인지도 파악하고 있다던데, 제가 잘못 알았나 보군요.”

우문각은 인내심을 발휘해서 목소리를 최대한 누그러뜨렸다.

“정보망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어찌 쥐새끼 숫자까지 파악할 수 있겠느냐? 너는 우리 비령각이 세상 모든 것을 아는 줄 아나 보구나.”

“농담 한번 해봤을 뿐인데, 심각하게 받아들이시기는…….”

“…….”

우문각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불꽃이 튀었다. 말갈기처럼 하얀 머리카락이 꼿꼿이 서고, 치켜뜬 두 눈에서도 불꽃이 솟구치는 듯했다.

장천운이야 신경도 쓰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그럼 일수귀견 하노두에 대해선 아십니까?”

“일수귀견 하노두? 당가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암기 고수 말이냐?”

“그가 어제 저녁에 저를 암습한 후 그 장원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쫓아갔던 거냐?”

“그곳에 갔더니 생각지도 못한 고수들이 있더군요.”

“누군지 알아봤느냐?”

장천운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정체를 알아내진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저를 공격한 사람 중 하나가 절대 경지의 고수라는 것. 그리고 이름이 일절 알려지지 않은 자라는 것.”

우문각이 서서히 냉정을 되찾았다.

“으음, 그거 참 괴이하군. 천하에 그런 고수가 알려지지 않았다니.”

“정말 누군지 모르십니까?”

“모른다고 했잖느냐?”

장천운은 신경질적으로 부인하는 우문각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거짓말하지 마시죠.’라며 다그치는 듯했다.

우문각의 식어가던 머리에서 다시 열이 나기 시작했다. 머리 중심의 하얀 머리카락이 올올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장천운, 너 정말…….”

“하긴 총사께서 그런 일로 저에게 거짓말할 리는 없겠지요.”

당연하지!

이를 악다문 우문각은 폭발하기 직전의 분노를 겨우 진정시켰다.

“나는 너에게 거짓말할 이유도 없고,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행이군요. 그럼 서로 곤란해질지 모르는데.”

왠지 느낌이 이상한 말투였다.

‘서로’라는 단어가 꼭 ‘당신’처럼 느껴졌다.

저놈과 오래 있어본들 그나마 남은 검은 머리카락마저 하얗게 변할 것만 같았다.

“더 할 말 있느냐? 없다면 그만 가봐라. 그자들에 대해서는 비령각의 힘을 총동원해서 철저히 조사해볼 테니까.”

그거야 비령각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장천운은 그 말에 눈곱만큼도 감격하지 않았다. 모용예와 고완을 잡을 수 있다면야 또 모르겠지만.

“저,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뭘 말이냐?”

설마 저번처럼 ‘왜 혼자 사냐?’고 묻는 건 아니겠지?

만약 또 그렇게 묻는다면 이번에는 결단코 참지 않으리라!

다행히 장천운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만약에, 무척 아름다운 여자가 총사께 독을 먹였다면, 그 여자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왜 그딴 걸 물어?

설마 그 여자가 소성주는 아니겠지?

우문각은 의심의 눈초리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장천운은 대답을 더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 문제에 대해서 대답을 바란 제가 그렇죠 뭐. 치마만 걸치면 다 여자처럼 보이는 나이인데…….”

“……!”

‘이 새끼가 진짜!’

“그럼 총사님을 믿고 가보겠습니다.

 

* * *

 

청목이 돌아온 것은 태양이 서산 위로 곤두박질치던 유시 초였다. 그는 장천운과 함께 있는 위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품속에서 접어놓은 초상을 꺼냈다.

“이 자는 비혈검 이적상입니다.”

청목이 초상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적상의 내력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십여 년 전 모습을 감춘 비혈검은 절정고수로 알려진 자다. 수혼대에 있었던 장천운이나 사밀령의 일령주라면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장천운도 이적상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얼굴을 몰라서 알아보지 못했을 뿐.

“성깔 사나운 노인이 이적상이었군.”

청목이 이적상 옆의 초상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이 자는 이적문이라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가 이적상과 형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적문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다.

“이적상과 형제라고?”

“예, 대주. 그런데 그자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장천운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왜 그런가?”

위곤이 물었다. 그도 이적문의 이름은 알지 못했다.

“제가 상대했던 그자는 이적상보다 강했습니다. 그런 자의 정보가 구천성 첩밀각에 없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구천성 첩밀각은 강호에서 활동하는 절정 경지의 고수를 모두 조사해놓았다. 심지어 일류고수 중에서도 유명한 자는 여지없이 강호인명록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물론 빠진 자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에 나타난 고수라면 아직 모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비혈검 이적상은 십여 년 전까지 절정고수로 활동한 자다. 그의 형제라면 빠졌다는 사실부터가 의문이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데다 이적상과 형제고, 실력은 이적상보다 강하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군.”

“그만큼 철저히 자신을 숨겨야만 할 이유가 있었겠지요.”

장천운은 나직이 말하며 마지막 초상을 노려보았다.

손우곤. 바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자.

손우곤의 초상을 노려보는 장천운의 눈에서 한광이 번뜩였다.

‘멀리 가진 않았을 거다.’

그자들이 찾아낼 수 있을까?

고완과 모용예가 손우곤의 행방을 알아서 알려주겠다고 했다.

선의로 알려주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편하기 위해서였다.

‘흥, 나를 부려먹고 싶은가 본데, 마음대로 되진 않을 거다.’

문득 자신에게 독을 먹인 모용예의 얄미운 얼굴이 떠올랐다. 살짝 웃던 그 모습이 더욱 얄미웠다.

‘언젠가는 내가 복용한 독보다 세 배는 더 독한 독을 선물로 주마.’

물론 강제로 먹일 작정이었다.

그래야 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알겠지.

‘그래, 혈시독이 좋겠어.’

혈시독은 얼굴이 빨갛게 변한 후 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죽는다고 했다.

‘그 계집의 얼굴이 불에 달구어진 가재 껍질처럼 빨갛게 변하면 볼만할 거야.’

속으로 모용예의 입에 독을 한주먹 먹인 그는 고개를 돌려서 위곤을 바라보았다.

“일령주, 비영곡 쪽에선 아직 들어온 소식 없습니까?”

사밀령의 이개 령이 지금도 비영곡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 일은 사밀령과 흑월대만의 비밀이었다.

“계곡의 기문진 안에서 꼼짝도 안하고 있네.”

“그럼 철수하라 하십시오.”

의외라 생각했는지 위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장천운이 차갑고 무심한 눈빛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갇혀 있던 쥐새끼도 구멍을 터줘야 움직이는 법이지요. 차라리 이 기회에 모두 밖으로 불러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 알았네, 그렇게 하지.”

 

* * *

 

어둠이 짙어질 무렵, 황초불이 타오르는 천혼전 내실.

백리호와 백리우진이 마주 앉아 있었다. 잔뜩 긴장한 표정, 나직한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는 탁자 주위 다섯 자 이내를 벗어나지 못했다.

“종리성학에게 모종의 임무가 떨어진 것 같다.”

“모종의 임무라 하시면……?”

“출정할 사람이 비밀리에 내릴만한 명령이 무엇이겠느냐?”

“혹시……?”

“게다가 장천운의 부상마저 심각하다면 이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을 거다.”

백리우진은 짙은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제기랄, 그때 시도해볼 걸 그랬어.’

장천운의 부상이 짐작한 것보다 심각한 듯했다. 그 독한 놈이 요상을 위해서 사마경의 곁을 며칠이나 비운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백리호가 몸을 앞으로 수그리며 말했다.

“이 좋은 기회를 그놈에게 그냥 넘겨주고 싶지 않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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