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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66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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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66화

장문인인 청현자가 왼팔이 잘린 채 돌아오자 점창 무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자격이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구룡의 결정을 안 순간 남아 있던 청면자와 청우자를 비롯해서 점창의 전 문도는 이를 악문 채 뜨거운 눈물을 흘려냈다.

무림을 위해 희생한 것이 잘못이었단 말인가.

참으로 어이없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반박하기엔 현실이 너무 각박했다.

백날 말로 따져 봐야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점창 무인들을 슬프게 만들었다.

길고 긴 침묵.

그러나 그 침묵은 그리 길지 않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전 문도가 스스로 내린 결정은 미친 듯 수련에 빠져 드는 것이었다.

장문인이 한 팔을 소림에 남기며 구룡에게 선언했다는 약속을 그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때가 되었을 때 구룡을 하나씩 찾아가서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 원한을 갚겠다는 약속.

그들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검귀의 길로 접어들었다.

세 달 전 점창으로 돌아온 운호는 가장 먼저 운문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자석처럼 붙어 다니던 운상과 운여마저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에 운문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기조원(五氣朝元)을 통과한 운호의 몸은 천룡무상심법을 운용할 때마다 점점 부양되는 높이가 높아져 최근에는 일 장까지 떠올랐다.

신체에 남아 있던 공청석유의 약효를 완전히 몸으로 흡수함에 따라 몸에서 빠져나온 용들은 선명함을 넘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노닐며 마음껏 선음을 뿜어내었다.

기경.

오기조원에도 그 성취에 따라 경지가 다른데 운호의 내공은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제 남아 있는 무공의 경지는 오직 등봉조극(登峯造極)뿐이었다.

그 옛날 후예사일을 완성해서 태양을 베었다는 만천자조차 오르지 못했다는 전설 속의 경지.

등봉조극에 이르면 신선으로 진입할 수 있는데, 도인들이 추구하는 꿈의 경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운호가 운문으로 들어와 전력을 다해 수련한 것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후예사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잠이 들기까지 그의 뇌리 속에서 움직인 것은 오직 후예사일을 관조하는 것뿐이었다.

후예사일은 깨달음의 검법이었다.

깨달음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검을 꺼낼 의미조차 사라지게 된다는 뜻이다.

강호를 종횡하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후예사일을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십오천강과의 싸움에서 상처조차 입치 않는 악전고투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육 성에 달한 후예사일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대적불가의 검.

그토록 무서운 기세를 뿜어내던 절대의 고수들이 아직 완성조차 되지 않은 후예사일을 버텨내지 못하고 검하의 고혼이 되어 쓰러져 갔다.

쓰러진 그들을 보며 몸을 떨고 말았다.

과연 이 검을 익혀야 되는가란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 강한 검법이었다.

점창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한동안 수련을 중지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멸의 검을 익힌다는 것은 진정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천하는 정복을 원하는 무서운 세력의 암계에 걸려들어 피를 흘리기 시작했고 구룡 회복을 원하던 점창은 피눈물을 흘리며 장문인의 팔을 소림에 남겨둔 채 돌아와야 했다.

강해져야 했다.

누구도 대적하지 못할 정도로 강해져야 산하에 흐르는 피를 멈출 수 있다는 차가운 현실이 운호로 하여금 후예사일을 관조토록 강요하고 있었다.

 

점창의 장문인이 머무는 상청관에 장로들이 모여든 것은 천하통일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난 후였다.

신응들이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천하는 반으로 나뉘어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천하통일전을 다른 말로 쟁패동서전이라 부르게 된 배경에는 서쪽 무림의 무인들이 대거 천왕성 쪽에 가담하며 무림맹에 대적의 깃발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강대 세력들이 모두 빠져나간 서쪽 무림은 천왕성이 진입하자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전투의 선봉에 서기를 자청했다.

힘없는 자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

보호막이 걷혀진 상태에서 불나방처럼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것이니 가족들과 소속된 무인들의 안위를 위해 그들은 천왕성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의협은 개나 줘야 할 일이었다.

이런 전쟁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의와 협이 아니라 생과 사였다.

또 한 가지,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떤 놈이 천하를 가진다 해도 똑같은 결과가 올 것이란 편협한 생각 때문이었다.

삼십팔세가 패주를 자처하며 지역을 다스릴 때도 그들은 눈치를 보면서 수시로 공물을 보냈고 패주의 행패에 찍소리도 못 한 채 패면 패는 대로 맞아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랬기 때문에 차라리 천왕성이 무림을 통일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어리석은 생각이 그들의 머리를 지배했던 것이다.

중소 문파의 무인들과 낭인들이 천왕성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외에도 숱하게 많았다.

천왕성은 중소 문파와 싸움에 참전하는 낭인들에게 막대한 재물을 나눠 주었다.

그 재물들은 근거를 버리고 떠났거나 패망한 문파들에게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천왕성은 재물을 탐하지 않았고 자신들에게 협력한 무인이라면 아낌없이 뿌려댔다.

환호작약(歡呼雀躍).

어려운 삶을 살아가던 낭인들과 중소 문파의 무인들의 입에서 천왕성에 대한 칭송이 끊이지 않았다.

어차피 죽는 인생. 한평생 실컷 써보고 죽는다면 그것도 괜찮은 삶 아니겠는가.

소문은 소문을 낳았고 그런 소문은 동쪽 무림의 낭인들까지 천왕성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현재 천왕성의 병력은 삼만을 훌쩍 넘어섰다.

직속 병력 칠천에 무림에 뿌려놓았던 예하 세력의 병력이 칠천이었으니 전쟁 초기 천왕성의 병력은 만 사천이었으나 불과 개전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그보다 배가 넘는 병력으로 늘어났다.

무림맹으로서는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이었다.

천왕성의 세력 자체가 막강해도 천하가 하나의 뜻으로 뭉치면 충분히 꺾을 수 있을 거란 판단을 하고 있었는데 전쟁의 양상은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장문인, 결정하신 게요?”

“그렇습니다.”

불러놓고 말이 없는 청현자를 향해 차를 한 모금 입에 대었던 청면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물음에 지체 없이 흘러나온 청현자의 대답은 한동안의 침묵 속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뜻밖이었다.

“어쩌실 요량이오.”

“천왕성과 무림맹은 현재 사투를 펼치고 있으나 차츰 무림맹이 밀리는 형국입니다. 속절없이 불어나는 천왕성의 병력 때문에 무림맹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요?”

“무림맹은 수시로 무림첩을 보내며 정의를 위해 싸워달라는 격문을 제문파에 보내고 있는 상탭니다. 구룡에 원한이 있으나 우리 점창은 의와 협을 숭상하며 유구한 역사 속에서 면면히 전통을 이어왔으니 그냥 있을 수는 없지요.”

“그럼 예전에 말한 것처럼 풍운대만 보낼 생각이오?”

“그렇습니다.”

“자칫 무림의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소이다.”

“절대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오, 그럴 것이오. 풍운대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점창 본력이 움직이지 않는 한 천하는 점창의 비겁함을 비웃을 것이오.”

청현자의 대답에 청면자가 무거운 한숨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청허자가 영면에 든 후 현재 점창의 최고 어른은 청면자로 바뀌어 있었다.

위치가 누르는 압박감.

한 문파의 최고 어른으로서 점창이 내려야 할 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 청면자는 청현자의 말을 들은 후 복잡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당연히 현명한 장문인의 뜻을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

점창이 쇠퇴의 길을 걸으면서 구룡과 수많은 문파에 업신여김을 당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천하통일전의 불참을 걱정하는 것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점창의 명예가 손상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지 장문인을 믿지 못하기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장로들도 마찬가지였다.

죽음과도 바꿀 수 없는 명예.

그 옛날 천왕성의 침략에 당당히 맞서 그들의 야욕을 꺾어버린 선조들의 패기.

후손들로서 어찌 그들의 명예를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장로들이 청면자와 비슷하게 눈을 감은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입을 열어 청면자의 뜻에 동의를 표하지 않았다.

명예를 지키다가 쇠락의 길을 걸었던 사문의 고통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당했으니 가슴은 불편했으나 장로들은 섣불리 참전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결국 또다시 입을 연 것은 청현자였다.

“사형들의 뜻이 참으로 깊습니다. 저 역시 점창의 장문인으로 어찌 사문이 오욕의 길로 들어서는 걸 원하겠습니까. 하나 저는 실리를 우선으로 둘 생각입니다. 그 옛날처럼 무모한 싸움으로 사문 전체가 몰살당하는 그런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문인!”

“제 말은… 참전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뜻이오?”

“참전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풍운대를 내려보내 일단 명분을 세운 후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그때 참전코자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이라면?”

“구룡이 머리를 숙여 참전해 달라고 부탁하는 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때가 되면 전쟁이 막바지에 달하게 되겠지요.”

청현자의 한마디에 되물었던 청우자는 물론 모든 사람이 눈을 커다랗게 부릅떴다.

명분과 실리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뜻이다.

최대한 전력을 보존하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서서 승패를 결정하게 되면 천하는 점창의 도움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구룡에 대한 복수도 담겨 있다.

천왕성과의 일전은 악전고투일 것이니 구룡은 결국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점창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 것이 분명했다.

그 대쪽 같은 자존심을 버리고 말이다.

현재로써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했으나 아직도 문제는 많이 남아 있었기에 그동안 가만히 앉아 있던 청문자의 입이 스르륵 열렸다.

“장문인의 뜻은 충분히 알겠소. 그러나 현재 서쪽 무림에서 천왕성의 세력권에 남아 있는 문파는 우리와 당문뿐이오. 그나마 당문은 나은 형편이오.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버리지 못하고 버티고 있으나 전선과 거의 인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공격을 받더라도 무림맹의 지원을 받을 수 있소. 하지만 우리는 다르오. 천왕성이 우릴 공격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고립된 우리로서는 꽤나 어려운 싸움을 해야 될 터이니 그에 대한 방책이 필요하오.”

“그자들은 우리를 쉽게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전력을 전선에서 빼내야 될 터이니 당문을 공격하는 것보다 우릴 공격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허어!”

“그리고 만에 하나 그들이 공격을 해오면 산하의 문도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산문을 틀어막을 생각입니다.”

“그리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때가 될 때까지 버틸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세워놓은 결론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하오. 점창은 정말 훌륭한 장문인을 두었구려.”

여간해서는 칭찬을 하지 않던 청문자의 입에서 감탄에 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전략을 수립한 채 청현자는 장로들을 불러 모았던 모양이었다.

점창산의 산세는 그 어떤 산보다 험악해서 산문을 틀어막고 방어선을 치게 되면 뚫어낼 방법이 없다.

그것은 어떤 절대고수가 와도 마찬가지였다.

풍운대를 내려보낸다 해도 청무자와 청문자, 운풍이 이미 절대의 경지로 진입해 있었고 청면과 청우자는 물론 과거 전대 십삼검의 무력도 계속해서 상승을 걸어 초절정의 단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점창 무인들은 칠절문과의 결전 이후 분광과 회풍을 수련하면서 일당백의 전사로 재탄생해 왔다.

만약 지금 전력으로 싸웠더라면 칠절문은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을 만큼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산문만 틀어막는다면 천왕성이 아무리 많은 병력을 투입해도 절대 점창산을 오르지는 못한다.

 

대사형인 운곡을 포함해서 풍운대 전체가 나타난 것은 꽃들이 활짝 피어 운문 전체가 화사하게 변한 사월의 첫날이었다.

그들은 좌정한 채 움직이지 않는 운호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 소리 없이 내려앉은 후에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행동을 절제하며 숨소리조차 조심했다.

만약 운호가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상태라면 그들의 출현은 천추의 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운호의 눈은 그들의 걱정과 다르게 금방 떠졌고 운곡을 확인하고는 급히 몸을 일으켜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대사형과 사형들을 뵙습니다.”

“벌써 삼 개월을 못 봤는데 여전하구나, 운호.”

“버릇이 어디 가겠습니까.”

“하하, 그렇지. 그런 게지.”

“그런데 어인 일로 이리 전부 오셨습니까. 무슨 일이 생겼는지요?”

“장문인의 명이 떨어졌다.”

“…명이라면?”

“하산해서 천하통일전에 참전하라는 명이시다!”

운곡의 대답에 운호의 몸이 움찔했다.

참전.

산을 내려가 강호로 가게 된다는 걸 의미하는 단어였다.

마치 막아놨던 봇물이 터지듯이 운곡의 말이 끝나자마자 당운영과 한설아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떠올랐다.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 두려웠다.

또다시 약속을 지키지 못해 그녀를 슬프게 만든다는 건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산을 내려가라는 명이 떨어졌다.

사랑 때문에 사문의 명을 거역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단지 그녀들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언젠가 다시 찾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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