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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61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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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61화

청현자의 한마디에 천왕성이란 공동의 적과 대항하기 위한 열기로 붉어졌던 각 파 무인들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화산의 장문인 추송자가 먼저 못마땅하다는 헛기침을 쏟아냈고 뒤이어 모산파의 장문인이자 무천십제의 일인인 무검제 월인강의 얼굴에서 싸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종남과 공동파의 장문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청현자의 요구를 그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외면했다.

그럼에도 청현자는 좌중의 인물들을 둘러보며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칠 년 전 우리는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상태에서 쫓겨나듯 구룡의 지위를 잃고 말았소.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결정을 한 것은 구룡을 조직한 선조들의 뜻을 위배하는 것이오. 따라서 우리 점창은 당연히 구룡 복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소. 칠 년 전 점창이 구룡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점창 자체의 일 때문이었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오. 그렇지 않소?”

“점창 자체의 일이 맞소.”

“그 당시 점창은 칠절문의 공격에 전전긍긍하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웅크린 채 점창산에 틀어박혀 있느라 구룡회에 참석할 수 없었소. 구룡은 무림의 영도 역할을 하는 문파들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오. 그것의 의미는 그만 한 자격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점창은 그리하지 못했으니 어찌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 할 수 있겠소.”

화산의 추송자가 송곳처럼 점창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그의 논리는 명확했고 정연했기 때문에 반박의 여지를 마련하기 힘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청현자는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추송자의 논리를 깨뜨려 버렸다.

“그리 따진다면 화산도 그리 자유롭지 못할 것이오. 칠십 년 전 화산이 녹림십팔채의 공격을 받고 휘청이던 때를 잊으셨소? 그때 화산은 문파의 존망이 위태로울 만큼 어려웠는 데도 우리 점창은 그대들의 자격을 운운하지 않았소. 묻겠소. 일개 도적들의 공격조차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던 화산이 과연 자격이 있었다고 생각하시오?”

“닥치시오!”

“당신들 화산이 몇몇 문파와 손을 잡고 점창을 끌어내렸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소. 점창을 끌어내리고 다른 문파를 내세운 이유가 화산의 이익을 위해서였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오. 다른 구차한 이유들을 아무리 들이대도 그러한 사실이 있는 한 점창의 구룡 회복은 당연한 사실이 되어야 하오.”

“흥,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마치 있었던 일로 치부하며 궤변을 펼치는구려. 다시 말하지만 점창이 구룡에서 탈락한 것은 자격의 문제였소. 그 당시 점창은 무림의 안위가 아니라 자신들의 안위조차 돌보지 못했던 문파였다는 걸 인정해야 할 거요. 점창 대신 구룡에 오른 모산파를 생각해 보시오. 모산파는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신주십강에 오를 만큼 강력한 문파요. 점창보다는 모산파가 구룡에 어울렸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오.”

“재밌는 말을 하는구려. 그렇다면 현재의 점창은 어떠하오?”

“무슨 소리요?”

“운호와 운상, 운여는 일어서라!”

“예, 장문인.”

추송자의 반문에 청현자가 마지막 줄에 앉아 있던 운호 일행을 불렀다.

가슴이 터질 듯한 분노를 느끼면서도 함부로 나서지 못한 것은 존장들의 대화를 중간에 가로막아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청현자는 운호 일행이 일어서자 추송자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저기 가운데 선 아이가 마검이오. 그리고 양쪽으로 팔비검과 무풍검이라 불리는 제자들이오.”

장문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즉각 알아챈 운호가 먼저 내력을 풀어 산악을 무너뜨릴 것 같은 기세를 추송자에게 쏘아 보내자 뒤이어 운상과 운여의 현천기공이 합세했다.

운호의 기세만 가지고도 감당이 안 되는 마당에 두 사람의 현천기공이 합해지자 추송자의 신형이 의자와 함께 반 보쯤 밀려났다.

무려 오 장을 격하고 벌어진 현상이었으니 진정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화산의 무인들이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으나 이미 운호 일행은 무력시위를 끝내고 기세를 걷어들인 후였다.

“저 아이들이 무림백대고수에 포함되는 귀왕과 마창 등 여섯을 쓰러뜨렸다는 소문은 아마 들어보셨을 게요. 무림동도들은 저들 중 마검을 무천십제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는데 어찌 우리가 모산파보다 못하단 말이오. 이미 오래전 우리가 삼십팔세에 포함된 칠절문을 일방적으로 깨뜨렸다는 것을 잘 아실 게요. 한 번만 더 자격 운운한다면 이제는 우리가… 화산의 자격을 묻겠소.”

추송자는 청현자의 행동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반쯤 밀렸던 의자를 바로 하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그는 청현자의 날카로운 시선을 맞받으며 한 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어리석은 짓이다.

그까짓 무력시위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화산이 어리숙하게 보였단 말인가.

물론 무천십제 중의 일인인 사형 신검제가 자리를 같이하지 않았고 백대고수에 들어 있는 사제 청천검 추명자도 다른 일 때문에 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전혀 두렵지 않다.

점창이 구룡 복원을 위해 몸부림칠 걸 뻔히 알면서도 문의 주력을 대동하지 않은 것은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점창의 구룡 복원은 참석한 문파의 투표로 결정되는 것이지 무력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었다.

만약 점창이 구룡 복원이 안 되어 미친 짓을 해도 충분히 잠재울 수 있었다.

자신들과 함께하는 공동과 종남이 있고 모산파가 있으니 점창은 혼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분란이 일어나게 되면 소림에서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신주십강에는 구룡 중에서 넷이 포함되어 있었다.

소림과 화산, 무당과 모산파가 그들이었다.

요즘 들어 점창의 힘이 급격하게 강해졌다고는 하나 구룡 전체를 향해 도발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웃을 수 있었다.

어린애 장난하는 것처럼 가소롭게 행동하는 청현자를 보며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은 채 날이 선 음성을 뱉어냈다.

“감히 제자들을 부려 타문의 존장을 욕보이다니 이것이 무슨 짓이란 말이오. 진정 어처구니없구려.”

“자격을 원했기에 단지 보여주었을 뿐이오.”

피하지 않는 시선.

그토록 부드럽고 여유 있던 청현자가 팽팽하게 추송자를 노려봤다.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자세였다.

하지만 그러한 청현자의 태도는 공동과 종남 장문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종남 장문인 혜령자는 마치 자기가 당한 일인 것처럼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그런 자격은 자격이 아니오. 성스러운 구룡 회합에서 일개 제자가 타 문파의 존장을 억압하는 일이 발생했으니 이를 어찌 그냥 넘긴단 말이오!”

“맞는 말씀이오. 점창은 먼저 화산 장문인께 사과를 해야 될 것이오.”

혜령자에 이어 공동의 송곡자가 거칠게 항의를 하자 그렇지 않아도 웅성대던 장내가 소란스럽게 변했다.

거의 모든 소란스러움은 점창의 행사를 비난하는 소리들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모산파의 장문인 무검제는 탁자에 손을 올려놓은 채 느긋한 자세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마치 어린아이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른의 모습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는 여기로 오기 전, 화산파가 보내온 장로를 만난 적이 있었다.

자파의 이익이 아니라고 우겼지만 화산파가 점창을 밀어내고 모산파를 구룡에 세운 것은 엄청난 이득이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화산파만 좋다면 무엇하러 모산파가 들러리를 서겠는가.

구룡에 올라선다는 것이 모산파에게도 커다란 이득이 발생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화산파의 도움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웃긴 건 화산파의 행동이었다.

도움을 줬다는 생색을 내기 위함인지 화산은 마치 모산파가 수하라도 되는 양 자신들의 의견을 강요했다.

웃긴 일이지만 그렇다고 거부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점창이 구룡 복원이 되든 안 되든 모산파와는 상관없는 일이 된다.

점창의 구룡 복원이 결정되면 나머지 문파 중 하나가 자연스럽게 탈락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아미나 곤륜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것이 함정이다.

그의 판단으로 점창은 곤륜이나 청성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분명 투표를 하게 되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나올 게 분명했다.

관심 없는 일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따분한 일이 없다.

그랬기에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검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새파랗게 어린놈이 십제의 반열에 거론된다는 건 진정 가소로운 일이었다.

강호의 소문대로 그가 백대고수에 속한 자들을 여섯이나 척살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무천십제의 명성은 중천의 태양처럼 뜨거운 것이었다.

함부로 거론되서는 안 되는 무적의 고수들이 바로 무천십제란 말이다.

또다시 소란스러움을 멈춘 것은 소림의 뇌인 대사였다.

회의를 시작하면서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고 상황은 그가 생각한 대로 흘러갔다.

점창의 억울함을 알지만 그들의 복원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했다.

화산의 동맹에 서 있는 종남과 공동, 그리고 모산파는 벌써 투표수의 과반을 차지했고 나머지 문파들의 눈치도 이상했다.

나름대로 점창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던 청성이나 곤륜은 입을 굳게 닫은 채 침묵을 지켰다.

이를 갈고 문파의 중흥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칠절문의 야욕을 단박에 때려 부수고 청문자와 청무자가 백대고수의 반열에 들어선 지 이 년 만에 마검과 팔비검, 무풍검 같은 고수들을 길러내었으니 대단한 집념이라고 인정할 만했다.

하지만 무림의 세계는 그리 간단하거나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염원일지 몰라도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점창이 복원된다는 것은 누군가가 다시 탈락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당사자가 누구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될 테니 점창의 구룡 복원을 환영하는 문파가 없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그랬기에 애초부터 점창의 구룡 복원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중인들의 소란을 잠재우고 뇌인 대사는 지체 없이 점창의 구룡 복원 요청을 투표로 결정하겠다는 선언을 해버렸다.

날은 이미 어둑해졌고 천왕성의 음모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언제까지 점창의 구룡 복원 요청 때문에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가부를 묻는 투표가 진행된 후 나온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투표권이 없는 점창을 제외하고 오직 청성만이 복원에 찬성했을 뿐이었다.

일방적인 결과.

점창 무인들이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결과에 승복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뇌인 대사는 결과를 발표하고 지그시 점창 무인들을 응시하기만 했다.

이미 나온 결과는 번복이 불가능했으니 그저 점창 무인들을 달래주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위로의 말을 꺼내려고 할 때 뒤쪽에 배석해 있다가 울분을 터뜨리며 일어선 점창 무인들과 다르게 침묵을 지키던 청현자가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광소를 터뜨렸다.

그의 웃음은 처연하면서도 슬픔과 분노가 가득 들어 있어 듣는 사람의 심장을 후벼 파고 있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며 계속되던 웃음이 끝났을 때 청현자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금방이라도 피가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 옛날 천왕성의 무림 침공으로 천하가 어지러울 때 점창은 운남의 길목에서 문파의 운명을 걸고 홀로 일어나 그들의 야욕을 막은 적이 있었다. 그때 구룡은 스스로를 낮추고 황금 패를 만들어 바치며 점창이 무림의 태두임을 인정했었다. 그것은… 무력에 대한 굴종이 아니라 무림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점창의 위대한 정신을 추앙하기 위함이었으니 누구의 강요도 없었던 무림의 의리였다. 그런데 오늘 점창은 무림의 중심이라는 구룡의 배신으로 심장이 찢겨지는 고통을 맛보게 되는구나. 자격이 없어 구룡에서 쫓아냈다고 했느냐? 홀로 천하를 구하기 위해 전 문도가 죽음으로 맞선 점창은 선조들이 몰살되면서 백이십 년 동안 힘들고 괴로운 세월을 보냈다. 비기들을 잃어버려 무파의 자존심은 땅바닥으로 처박혔고 문하인들의 수는 차츰 줄어들어 문파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힘든 세월을 보낸 점창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한단 말이냐. 나는 그 옛날 구룡이 보여주었던 의리를 치맛자락처럼 걷어내고 점창을 향해 비수를 들이대던 칠 년 전 그날 이후, 오늘만을 기다리며 지옥같이 힘든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당신들은… 당신들은 오늘마저 끊임없는 치욕을 점창에게 안겨주는구나. 크하하하!”

청현자의 입에서 또다시 광소가 터진 것과 검이 뽑힌 것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파악!

검이 휘둘러졌고 곧이어 청현자의 왼팔이 팔꿈치에서 끊기며 소림 방장의 앞에 툭 하고 떨어졌다.

놀란 운풍이 단숨에 오 장을 격하고 날아와 땅바닥에 떨어진 팔을 감싸 안았으나 청현자는 그런 그를 향해 일갈을 날렸다.

“운풍!”

“장문인, 이런 일을… 어인 일이시옵니까!”

“이 팔은 여기 소림에 남긴다. 선열들께 지은 죄를 내 한 팔로 속죄하고자 함이니 너는 내 뜻을 거역하지 말라.”

“아니 되옵니다!”

운풍의 음성은 피를 토해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청현자는 운풍의 행동을 제지한 후 곧바로 좌중에 앉아 있는 구룡의 장문인들을 하나씩 천천히 노려보았다.

그런 후 마지막으로 화산 장문인 추송자를 향해 강렬한 시선을 던지며 가슴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토해냈다.

“천왕성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살아남으라. 그리하면 나중에 우리 점창이 너희 구룡을 하나씩… 하나씩 만나러 갈 것이다. 그때 우리가 흘린 이 피눈물을 반드시 갚아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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