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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60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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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60화

한설아는 그렇게 운호 옆에 다가와 떨어지지 않았다.

운상과 운여는 주춤주춤 다가오다가 둘이 하는 짓을 보더니 어느새 오던 길을 되짚어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출현이 두 사람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할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그들의 생각처럼 사랑의 밀어만 속삭인 게 아니었다.

꿈처럼 아름다운 절경들을 보면서 잠깐 사랑을 속삭이기도 했으나 그들은 곧 청성의 상황과 구룡회에 관한 이야기로 주제를 옮겨 나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청성의 상황은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었다.

최근 들어 당문이 끝장을 보겠다는 듯 공격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천에서 연일 피가 튀는 격전이 벌어진다며 한설아는 얼굴을 흐렸다.

소림에 단 두 사람의 장로를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두 사람을 보냈다고는 하나 만인자는 전력에 도움조차 되지 않으니 실질적으로 청성은 전력에서 만수자를 뺀 것이 다였다.

그만큼 청성의 현재 상황이 어렵다는 뜻이다.

청성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구룡회의 소집에 응한 것은 이번 사안이 너무도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천하를 향한 누군가의 음모.

만약 그것이 사실이고 당문의 도발이 그로 인한 것이라면 이번 전쟁은 구룡회의 결정에 의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점창의 입장으로 봤을 때 청성의 참석은 기꺼운 일이었으나 아미파가 결국 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악산(樂山), 인수(仁壽)를 잇는 방어선을 대도문이 기어코 뚫으면서 아미는 죽음을 염두에 둔 마지막 일전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동맹 관계에 있는 문파들 간의 유기적인 협조 체계는 싸움이 전면전으로 변하면서 전 전선이 동시에 백천간두의 전투를 벌임으로 인해 붕괴된 지 오래였고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연일 계속되는 중이었다.

예상대로 당문은 막사검을 주겠다는 청성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칼같이 끊어버렸다고 한다.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막사검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으니 수없이 많은 무인들의 피가 흐른 지금 막사검을 준다 해서 원한과 복수를 어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소림의 대연무장은 그 크기가 사방 백 장에 달할 정도로 넓고 웅장했다.

구룡회는 대연무장의 중앙에서 벌어졌는데, 각 문파의 수장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원탁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 뒤쪽으로 수행해 온 무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십방십문 회의.

아미의 자리가 비어 한쪽이 허전했지만 그럼에도 장문인들이 자리에 앉자 무서운 고요가 대연무장을 사로잡으며 퍼져 나갔다.

대웅전 측 상석에 앉은 소림 방장 뇌인 대사의 입이 열린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집중되었을 때였다.

“지금부터 구룡회를 시작하겠소. 오늘 구룡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미리 공지한 것처럼 무림의 환란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점창의 제언 때문이었소. 우리 소림은 점창의 제언을 면밀히 분석한 바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현재 무림에 불고 있는 혈풍을 막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하게 되었소. 이번 회의의 개최는 그 외에 다른 어떤 이유도 없음을 미리 말해두는 바이니 조금의 오해도 없기를 바라오.”

뇌인 대사는 서언과 미언을 말한 후 자신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는 각 파의 장문인들을 일별했다.

확실하게 선을 긋고 시작한다.

이곳에 온 사람들 중 반수가량은 구룡회가 개최된 사안 못지않게 점창의 구룡 복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겠다는 뇌인 대사의 의중이 미언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그만큼 점창의 구룡 복원 요청은 소림의 입장에서 봤을 때 무척이나 예민한 사안이었다.

청현자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지만 거기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어차피 소림과 점창의 심중이 달랐고 여기 앉아 있는 다른 문파들의 속내도 모두 다르다.

괜히 섣불리 나서서 반감을 불러일으킬 이유가 없으니 침묵으로 대응할 뿐이었다.

무슨 뜻인지 분명히 알면서도 나서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자 뇌인 대사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럼 먼저 내가 점창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개략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겠소. 그다음 천왕성에 대해서 조사를 한 점창의 말을 듣는 것으로 진행할 터이니 여러분은 신중한 마음으로 경청해 주시면 고맙겠소.”

몇 번의 헛기침을 통해 좌중을 집중시킨 뇌인 대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뇌인 대사가 청문자를 통해 들었던 정보들을 이야기하자 회의에 참석한 각 파 장문인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미리 들었던 것보다 훨씬 세부적이었고 일목요연한 뇌인 대사의 설명은 진정 무서운 것이었다.

강호의 경험이 적지 않으니 앞뒤의 구성과 이야기의 진행에 조금의 허점이라도 발견된다면 반박하고 싶은 내용들이었으나 뇌인 대사의 설명에는 어떠한 허점도 나타나지 않았다.

백이십 년 전에 나타났던 천왕성의 무림일통 야망.

무작정 정면으로 공격해 왔던 옛날과 달리 무섭도록 치밀하게 계획된 차도살인지계와 이이제이 전략은 구룡회에 참석한 무인들의 몸을 으슬으슬한 오한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모든 이야기를 끝낸 뇌인 대사가 잠시 숨을 고른 후 청현자를 바라봤다.

자신의 역할은 끝났으니 뒤를 책임져 달라는 시선이었다.

그랬기에 청현자는 운호를 불러내어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운호는 탕마행을 시행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어 중인들에게 설명했다.

다른 건 모두 빼고 오직 천왕성과 관련된 일들에 한해서 이야기했다.

귀왕의 이야기와 천검회에 관련된 것들, 마창의 증언과 직접 천왕산을 찾아 그들의 근거지를 찾아낸 걸 끝으로 꽤 긴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일목요연했고 명확한 설명이었음에도 너무 믿기지 않은 일들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반감.

특히 그것이 목숨과 직결된 것이라면 사람들의 반감은 커질 수밖에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특히 화산과 공동, 종남의 장문인들은 불신의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종남 장문인인 혜령자의 입이 열린 것은 운호가 예를 표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였다.

“꽤 긴 이야기였으나 결국 증거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구려. 귀왕이나 마창에 관련된 일들은 오직 마검의 증언에 의한 것뿐이고 천검회나 풍검문, 팔황문에 관한 것도 추측에 불과하오. 점창의 이야기가 신빙성을 얻기 위해서는 천왕성의 근거지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란 생각이 드오.”

“당연한 말씀입니다. 구룡의 행동 지침은 먼저 천왕성의 실체를 확인한 후에야 결정할 수 있을 것이오.”

혜령자에 이어 공동파의 장문인인 설문룡까지 같은 의견을 제시해 왔다.

중인들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이렇게 중차대한 일을 일개 개인의 증언만으로 무조건 믿는다는 건 다소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인 것 같았다.

소림 방장이 설명할 때는 설득력이 있었는데, 운호가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말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변했다.

무림의 위치에서 오는 차이와 점창에 대한 반감이 원인으로 작용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청현자는 그들의 얼굴을 주욱 둘러본 후 소림의 뇌인 대사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종남과 공동의 생각은 충분히 일리가 있소이다. 하나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그자들은 자신들의 정체가 발각되었기 때문인지 지금까지의 소모전을 버리고 현재 제문파의 전력을 말살시키고자 하는 전면전을 시행중이오. 숭산에서 천왕산까지는 직선로로 오천 리가 넘는 거리에 있소. 지금 당장 움직인다 해도 최소 십 일 이상은 걸릴 것이고 그자들의 방어막을 생각한다면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지 모르오. 존장들의 의견대로 천왕성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사이에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유념해야 될 것이오.”

청현자가 다른 의견을 말한 후 입을 닫자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들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투들이 얼마나 험악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천왕성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시간을 끌게 되면 천추의 한이 될 수 있는 후회를 만들지도 몰랐다.

그러나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화산 무인들 맨 앞에 있던 추령자가 냉막한 얼굴을 풀지 않은 채 청현자의 의견을 반박해 왔기 때문이었다.

추령자는 청문자가 이전에 소림을 방문했을 때 자칫 검을 꺼내 들 정도로 심하게 감정 싸움을 걸어왔던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마찬가지요. 실체도 확인하지 못한 마당에 구룡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오. 만약에 점창이 다른 무언가의 목적 때문에 거짓을 한 거라면 구룡은 자칫 무림에 고개조차 들지 못할 정도의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오. 재차 삼차 행동에 심사숙고를 해야 하오.”

“말조심하시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거짓을 말한단 말이오!”

추령자의 말을 들은 청무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는데, 그의 눈에는 불길이 담겨 있었다.

다른 곳이었다면 당장에라도 검을 빼낼 기세였다.

하지만 그 불길을 잠재울 만큼 추령자의 눈은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나는 점창이 거짓을 했다고 단정하지 않았소. 혹시라도 그럴 수 있다는 말을 한 것뿐이지. 점창은 구룡 복원이라는 염원을 가지고 있으니 그렇게라도 구룡회를 소집하고 싶어 했을 거란 생각을 해본 것뿐이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구룡의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천왕성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최급선무요. 구룡의 행동은 무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아무런 증거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오.”

“그사이에 수많은 무인들이 죽는다 해도 말이오!”

“그렇소.”

“그런 터무니없는!”

청무자가 화를 참지 못하고 발을 구르자 청석이 꺼지며 산산조각으로 변했다.

대연무장에 깔려 있는 청석은 강도가 강한 것으로 유명해서 웬만한 충격에는 깨지지 않았는데 단순한 발길질 한 번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한쪽에서 무례하다는 고함이 터져 나왔고 다른 한쪽에서는 참으라며 말리는 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한 번 터진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고함이 멈추지 않았다.

제시된 의견에 반론이 난무했고 그런 과정에서 또다시 감정들이 격돌했다.

아홉 개의 문파들은 서로의 의견을 제시했는데, 전혀 터무니없는 것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조정되지 않았다.

결국 사자후를 터뜨려 언쟁을 막은 것은 회의를 주재하던 뇌인 대사였다.

그는 침중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나섰는데, 언쟁을 막는 그의 음성에는 은은한 내력이 실려 있었다.

“진정들 하시오. 이곳은 싸우기 위해 모인 곳이 아니오. 의견이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어찌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단 말이오. 자중해 주시면 고맙겠소. 나는 구룡의 수장을 맡고 있는 소림 방장으로서 화산의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오. 추령자의 말씀대로 구룡의 움직임은 전 무림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아무런 증거 없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오. 하나 심정적으로는 점창의 의견을 따르고 싶구려. 지금도 수많은 무림동도들이 검하의 고혼으로 사라지고 있소. 산하는 피로 붉게 물들고 곡소리가 천지에 가득하니 이것이 어찌 인간 세상이라 할 수 있단 말이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의 의견을 종합해서 두 가지 안을 의견으로 상정하겠소. 첫째는 천왕성의 실체를 확인하고 추후의 행동 지침을 결정하는 것이고, 둘째는 천왕성의 실체를 인정하고 구룡의 무림 참전을 본격화하는 것이오. 물론 두 번째 안으로 진행될 때는 천왕성의 실체 확인을 병행하게 될 것이오.”

이미 회의 시간은 한 시진을 훌쩍 넘고 있었다.

뇌인 대사의 기조 설명에 이어 운호의 설명이 이어졌고 결론 없는 의견 제시와 감정 싸움이 벌어지며 시간만 잡아먹고 있었기 때문에 뇌인 대사는 주재자의 직권으로 의견을 상정하고 투표권을 행사했다.

의외로 참석 문파들은 뇌인 대사의 직권 상정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았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결국은 뇌인 대사의 말처럼 두 가지 안으로 모든 의견이 귀결되었으니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오래 지속되던 의견 충돌은 의외로 간단하게 결론지어졌다.

먼저 구룡이 나서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중지시키자는 두 번째 안이 여섯 표를 받으며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의견이 통일된 후 구룡의 행동 지침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대안을 결정하고 나면 세안들은 상식 범위에서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각 문파들은 이미 나름대로 자신들의 안을 생각하고 왔는데, 거의 대동소이해서 크게 이견이 없었다.

결정된 안은 천왕성의 음모로 전쟁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리고 싸움 중지를 요청하는 무림첩을 발송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천왕성의 예하 세력을 색출하고 적과 아군을 구분하며 천왕산으로 사람을 급파해서 그들의 실체를 확인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다음은 무림맹의 창설이었다.

천왕성의 무림일통 야욕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 구룡 중심의 무림맹을 창설해서 당당하게 맞선다는 복안이었다.

역시 무림의 늑대들답다.

대안이 결정되자 구룡은 점창이 예상한 것처럼 일사천리로 의견을 귀결시켜 나갔는데, 오히려 세목으로 따진다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도 제시되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전략이 마련되었다.

모든 의견과 전략은 소림의 나한전주 뇌만 대사의 손에 의해 정리되어 뇌인 대사가 공포함으로써 효력을 발생시켰다.

천왕성의 야욕을 분쇄하는 결정이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장문의 회의 결과를 중인들에게 낭독한 뇌인 대사는 서류를 뒤로 물리고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점창의 청현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는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지 않았다.

“이제 구룡회의 긴급 소집 사안이 모두 끝났소. 점창은 할 말이 있으면 해도 되오.”

말을 끝낸 뇌인 대사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천왕성과의 일전을 염두에 둔 전략 생성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홍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두운 그림자가 그의 얼굴에 내려앉고 있었다.

청현자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뇌인 대사의 말이 끝나자마자였다.

“점창은 구룡 복원을 원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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