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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53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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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53화

태사의에서 눈을 감고 있던 사내의 눈이 떠졌다.

요문.

천왕성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암현의 지배자.

성주인 요환은 대계가 시작되자 요문에게 전권을 일임하고 이선으로 물러나 본거에서 나서지 않았다.

무림일통의 꿈을 이루게 되면 앞으로의 세상은 요문에 의해서 좌우되어야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아들을 생각하는 아비의 마음.

일부 노신들을 제외한 성의 주요 인사들이 요문을 주군으로 모시며 대계를 추진하는 것은 성주의 그런 뜻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금 요문의 눈을 뜨게 만들며 방 안으로 들어온 총사 설운호는 그들 중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천뇌. 하늘의 뜻마저 알 수 있는 머리를 가졌다는 뜻이다.

그만큼 그의 머리는 범인의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을 만큼 대단해서 천왕성의 대계를 홀로 관장했는데, 네 명의 나머지 대공들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주요 인사들의 충성 서약을 받아내서 요문이 천왕성의 실권을 틀어쥘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바로 그였다.

왜 그가 요문을 선택했고 그리 절대적인 충성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아무도 그 이유를 알려 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왜’가 아니라 그가 이미 요문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설운호는 눈을 뜬 채 자신을 바라보는 요문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천천히 걸어 좌하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자세를 가지런히 한 그가 입을 연 것은 또다시 방문이 열리며 단황야가 들어와 맞은편에 앉았을 때였다.

“주군, 가셨던 일은 잘되셨는지요?”

“어렵지는 않았어. 용호문은 삼십팔세에 속할 정도로 강한 놈들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는 별로더군.”

“어느 정도나 하셨습니까?”

“반쯤 줄여놨어. 망추에 나가 있는 주력부대를 해치웠으니 이제 비슷해졌을 게야.”

“잘하셨습니다.”

“총사한테 칭찬을 다 받아보는구만. 이거 쑥쓰러운데?”

“마검은 어쩌셨습니까?”

“이미 알면서 물으면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그런 짓 좀 하지 마.”

“허허, 그런가요. 대뜸 아는 체하기도 그래서 드린 말씀인데 그리 소신을 탓하시니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빠져나간 후였다. 저기 단황야의 말만 믿고 있다가 닭 쫓던 강아지 신세가 되었어.”

“주군께서는 거기에 대해서 더 이상 말씀 안 하시기로 하셨잖습니까. 너무하십니다.”

“껄껄걸… 그랬나. 미안해. 요새 건망증이 심해져서 말이야.”

배석하고 있던 단황야가 억울하다는 음성으로 끼어들자 요문의 입에서 유쾌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단황야의 이런 반응이 재밌는 모양이었다.

수하와의 격의 없는 관계.

존엄과 질서를 내려놓고 농담을 주고받는 요문의 태도에는 억지가 하나도 섞여 있지 않았다.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란 뜻이다.

설운호가 부드럽게 웃으며 요문을 바라봤다.

단황야를 탓하며 변명을 댄 후 요문은 빙그레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눈부시도록 빛났기 때문에 옆에 있던 사람의 얼굴에도 자연스럽게 웃음이 피어났다.

믿음으로써 대하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웃음은 이렇듯 가식이 없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게 된다.

요문이 돌아온 것은 어제 늦은 저녁 무렵이었기 때문에 설운호는 오전 일찍 천각을 찾았다.

일찍이라고 해서 새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식사를 마치고 차까지 다 마실 시각. 해가 중천으로 떠오르기 직전의 여유로움이 가슴에 채워지는 진시 말이 돼서야 설운호는 천각으로 들어왔다.

인사를 오면서도 시각을 맞춘 것이 틀림없었다.

요문과 그의 관계는 그 누구보다 밀접했음에도 설운호는 아주 작은 것까지 요문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 썼다.

그런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쌓이고 쌓여 신뢰를 형성했으니 과례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현명하고 사려 깊은 처사다.

요문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마신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설운호를 향해 의미 있는 눈빛을 보냈다.

“마검이 맞을까?”

“종합적으로 유추했을 때 거의 그런 것 같습니다.”

“수호에서 사라진 후 여기엘 온 거구만. 결국 우리가 있는 곳까지 알아냈다는 뜻이군.”

“그자들이 성을 확인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천왕봉에 올라와도 성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긴 하지. 그래서?”

“천일조가 포위해서 공격하는 척하다가 놓아줬더군요. 이공자께서는 아예 출타 중이라 거짓까지 하고 성을 나서지 않았습니다.”

“마검인 줄 미리 안 게로군. 천일조장 서효원의 머리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짐작했을 게야. 홍이가 움직이지 않은 것은 수족이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아서였을 테고.”

“그렇사옵니다.”

“홍이는 그런 놈이지. 지 식구라고 생각하면 끔찍하게 아끼는 놈이야.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게다.”

“이공자께서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잡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 못 잡았을 거야. 마검은 이미 십제의 반열에 오른 자다. 더군다나 그의 동행들도 절대의 경지에 오른 것으로 추측될 정도로 강한 자들이야. 홍이가 갔다면 나는 아마 동생을 하나 잃었을지도 몰라.”

“이공자가 맡은 임무였습니다. 임무는 방치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 딱딱하긴… 쯧쯧.”

요문이 혀를 찬 후 입술을 오므렸다.

그는 뭔가 생각할 때 자주 그런 모습을 보인다.

뭔가를 잠깐 생각하던 그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설운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질 때였다.

“내성의 호법들을 몇 보내지 그랬나?”

“호법들은 성주님 직하에 계신 분들입니다. 성주님의 허락 없이는 움직이지 않으시는 분들이지요. 더군다나 제가 보고를 받았을 때는 이미 그들이 산에 오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시간상으로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삼공도 있었잖아. 오패도 있었고.”

“그분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거 참, 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 실권이 없어.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실 일은 아닙니다. 이십오성 중 반 이상이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대계를 위해 세상에 나가 있잖습니까. 더군다나 삼공께서는 아니지만 오패께서는 제가 부탁했으면 내성에서 나오셨을 겁니다. 오패께서는 이미 주군께 심복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안 했나?”

“성주님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검을 잡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나 성주님의 신뢰를 잃게 되면 주군께 피해가 올까 두려웠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럼 마검은 그냥 보낸 건가?”

“그럴 수는 없지요. 오신풍을 보내서 제대로 배웅을 했습니다.”

“음……!”

요문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 소리가 흘렀다.

오신풍은 동생인 요홍의 측근들이었고 그들을 보냈다는 것은 책임을 물어 죽음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뜻이다.

설운호는 영악하게도 수하들의 죽음으로 책임을 피하려는 요홍의 의도를 징계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슬쩍 붉어진 눈으로 설운호를 바라봤다.

“…그건 너무 과했어.”

“대공들께서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대계가 진행되는 지금 다른 마음을 조금이라도 먹게 된다면 천왕성은 내부로부터 무너질 수 있습니다. 아예 화근을 제거하는 것만이 그런 불안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주군께서는 유념하셔야 되옵니다.”

“너무 숨 막힐 정도로 옥죄기만 하면 터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지금까지는 총사의 행동에 대해서 아무 말 안 했지만 이 이상은 안 돼. 총사!”

“예, 주군.”

“동생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마. 놈들은 권력의 경쟁자 이전에 내 혈육들이야. 내가 누구보다 믿어야 될 놈들이란 뜻이지 슬퍼하게 만들 대상들이 아니란 말이다. 내 말, 무슨 뜻인 줄 알아들었나?”

“알겠사옵니다.”

“그래… 총사, 부탁이니까 이제부터 그렇게 해줘.”

“주군의 뜻이 그러하다면 더 이상 독단으로 판단을 내리지 않겠나이다.”

“고맙네.”

“대계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의 존재가 노출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주군, 대계를 당겨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충분하지 않은 데도?”

“벌써 일 년을 끌었으니 바짝 당기면 우리가 원하는 정도까지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리할 필요 없어. 비밀 노출이 문제라면 오패를 보내 마검을 척살하는 건 어떤가?”

“이미 점창도 모두 안다고 봐야 합니다. 더군다나 어디까지 이 이야기가 퍼져 나갔는지 알 수 없으니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총사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렇게 해. 엉뚱한 놈 때문에 천하가 더 많은 피를 흘리겠구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할 수 없지. 그리하도록.”

 

운호 일행은 수녕(遂寧)에서 오신풍을 쓰러뜨린 후 파중(巴中)을 건너 섬서로 들어섰다.

오신풍은 그야말로 별호처럼 바람 같은 사내들이었다.

기연을 얻기 전이었다면 고전했을 만큼 강력한 무력을 지녔고 하나가 죽자 나머지 넷도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지며 승부를 걸어오는 패기도 보였다.

죽어가던 그들의 눈빛이 지금도 선했다.

처음으로 천왕성이란 이름에 포함되어 있던 자들을 죽였지만 생각과는 달리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암계와 귀계를 만들어낸 천왕성이었고, 오랜 옛날 무림을 핏물 속에 젖도록 만들었던 자들의 후예들이란 선입감 때문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불꽃처럼 사라지던 그들의 마지막을 대하자 천왕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마두이며 마귀였고 그것도 아니라면 악인이라 여겼는데 그들도 자신과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섬서로 들어왔음에도 무인들의 시신은 지천에 깔려 있었다.

산과 들에서 볼 수 있었고 심지어는 개천에까지 무인들의 시신이 보였다.

다행히 겨울이었으니 망정이지 여름이었다면 온갖 역병이 창궐해서 아무 죄 없는 민초들의 삶까지 망가뜨렸을 것이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오신풍의 마지막을 보면서 천왕성에 대한 선입감을 지우려고 했으나 섬서에 들어와 지천에 깔린 무인들의 시신을 보자 새삼 적의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자신들의 영달과 이익을 위해 타인의 삶을 억압하고 조절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해서는 절대 안 될 만행이었다.

이제 하남까지의 거리는 칠천 리.

오 일 동안 흥평(興平)까지 오천 리나 되는 길을 전력을 다해 움직였기 때문에 일행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특히 여자인 소하령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씻지 못했기 때문에 막상 흥평 시내로 들어오자 지나치는 객잔들을 바라보며 간절한 눈빛을 나타냈다.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던지 잠시도 쉬지 않던 입까지 오래전에 닫아놓은 채 열지 않았다.

“운호 오라버니, 여기서 잠깐 쉬어가면 안 될까요. 너무 힘들어요.”

“그러자.”

너무나 쉬운 대답에 소하령의 붉어졌던 얼굴이 금방 하얗게 변했다.

쉬자고 말은 했지만 철딱서니 없는 투정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호 일행은 사문의 명운을 건 하남행을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말을 꺼내고도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 정도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운호가 쉽게 대답하고 먼저 객잔으로 향하자 소하령은 눈만 껌벅거렸다.

지금까지 가장 서둘러 일행을 이끈 것이 운호였기에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객잔으로 들어서자 그의 의중이 뭐였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시내에 위치한 객잔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청결했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중 반 이상이 무인들이었다.

사천과 섬서를 비롯해서 중경과 운남까지 청당전의 영향권에 있는 곳은 무인들로 넘쳐 나는 중이었다.

수많은 낭인들이 돈을 쫓아 전쟁터로 향했고 거대 세력의 전위에 선 중소 문파들마저 싸움판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이곳 객잔에서도 무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굳이 들으려 애를 쓰지 않아도 청당전의 상황이 그들의 입을 통해 고스란히 들려왔다.

그들은 대낮임에도 술을 마시며 거리낌 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그 대부분이 청당전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한쪽 건너 탁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세 명의 사내들은 다른 자들과 달리 운호가 듣고자 하는 내용의 깊은 정보들을 여과 없이 흘려내는 중이었다.

“용호문이 그렇게 박살 날 줄 어떻게 알았겠어. 내강(內江)에서 당문의 후미를 압박하던 세력이 한꺼번에 사라졌으니 이제 다시 균형이 팽팽해졌다.”

“누가 한 짓이야?”

“그건 알려지지 않았어. 하지만 일방적인 싸움이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아. 직접 본 사람의 말로는 내강에 있던 시신이 모두 용호문 사람뿐이었단다.”

“용호문을 그 정도로 만들 정도면… 도대체 믿기지 않는군. 누군가 당문을 돕는 세력이 있는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르지. 우리가 모르는 강력한 세력이 당문 쪽으로 가담되었을 수도 있어.”

“그것참, 환장하겠네. 그럼 우린 어디로 가야 되는 거냐?”

“청성 쪽에 붙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용호문이 저 지경이 된 걸 보면 청성 쪽이 유리하다는 정보는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럼 너희들은 당문 쪽으로 가자는 거냐?”

“어차피 녹봉도 당문 쪽이 훨씬 높았으니까 그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싸움에 유리하지 않다면 굳이 청성 쪽으로 갈 이유가 없잖아.”

대화의 내용으로 봤을 때 돈을 찾아 떠도는 낭인들이 틀림없었다.

그런 데도 그들은 청당전에 대한 주요 정보들을 꽤 많이 알고 있었는데, 기세가 날카롭고 안광이 형형한 것이 낭인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실력이 뛰어난 자들 같았다.

그들의 입에서는 청당전에 관련된 문파들의 정보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공동파와 황보세가의 원홍 싸움이 화제에 올랐다가 중소 문파들의 싸움에 이어 청성과 당문의 일각이 붙었던 쌍류(雙流) 싸움도 거론되었다.

쌍류에는 운호 일행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정보력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사내가 떠든 쌍류 싸움은 그들이 본 것과 거의 흡사해서 놀랄 정도였으니 다른 정보도 꽤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 했다.

문제가 생긴 것은 그다음이었다.

대화를 듣고 있는 것은 운호 일행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던지 그들의 입에서 쌍류 싸움이 거론되며 마검 일행이 출현했다는 소리가 흘러나오자 그렇게 시끌벅적했던 객점이 순식간에 조용하게 변했다.

현 천하의 풍운아, 마검.

마검이 사천에 출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객점은 금방 정적에 휩싸여 버릴 정도의 충격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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