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1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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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131화
“상처는 괜찮냐. 치료 먼저 하는 게 어때?”
“시간 없다. 여기서 마창을 맞이하게 된다면 진짜 죽을지 모른다. 일단 떠나야 돼.”
“어디로?”
“십악 중 이제 남은 것은 마창을 빼고 일곱이다. 놈들은 모조리 이곳으로 달려오는 중일 거야. 그중 제일 먼저 오는 것은 마창이겠지. 그러니 마창만 가급적 먼 곳으로 유인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니까 먼 곳 어디?”
“팔공산(八公山)!”
운호의 대답에 일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팔공산은 안휘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고 운호는 그곳에서 마창을 잡으려는 모양이었다.
그곳으로 가려는 의도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팔공산은 회녕과 가까워서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은하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하지만 운상과 운여의 얼굴이 일그러진 건 반드시 마창을 잡고 말겠다는 운호의 의지 때문이었다.
마창은 요마왕과 근본적으로 다른 무력을 지닌 자였다.
절대고수의 수준에도 격에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마창은 십오천강에 포함될 만큼 무시무시한 강자였다.
운호의 상태를 보라.
운호는 요마왕을 척살하면서 세 군데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중이었다.
물론 치명상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작은 상처도 아니었다.
이런 상태로 마창과 싸운다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운여는 머뭇거리며 운호의 피가 말라붙은 소매를 붙잡았다.
“운호야, 막사검을 얻었으니 은하문으로 가자. 번천검께서는 천이란 놈들의 흉계를 알고 계시니 막사검을 맡기고 추이를 지켜보는 게 어떠냐. 은하문은 호천십문의 수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놈들도 쉽게 함부로 하지 못할 거다.”
“안 돼!”
“왜?”
“자꾸 잊어먹는 모양인데 우리는 목적이 있어. 우리는 놈들의 정보를 가지고 숭산으로 가야 한단 말이다. 그러니 마창을 반드시 잡아야 해.”
걱정 때문에 사문의 명을 잠시 잊었다.
일부러 잊은 건 아니었으나 운호가 되새기자 운여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물론 은하문으로 가면 안전은 할 것이다.
또한 은하문은 사람을 풀어 팔황문 총사의 위치를 감시하고 있을 테니 천에 대한 또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문의 명은 남에게 의지해서 얻을 만큼 허술한 정보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수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확실한 정보를 얻어야 사문에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사문의 숙원. 구룡의 회복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호의 말대로 마창을 잡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좋다. 그럼 이번에는 같이하자.”
“뭘?”
“마창 말이다. 혼자 하지 말고 같이하잔 말이다.”
“내가 걱정되서 하는 말이야?”
“무인으로서의 명예니 자존심 같은 것은 천하가 뒤집히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사치스러운 감정에 불과하다. 사문의 명을 우선하기 위해 반드시 마창을 잡아야 한다면 그런 감정 같은 건 버려야 돼.”
“알았다. 그렇게 하지.”
“정말 그럴 거야?”
“응, 그런다고.”
너무 빠른 대답에 운여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자존심에 목숨을 거는 운호가 합공을 하자는 말에 아무런 반감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뻔뻔한 얼굴.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여는 운호의 모습은 얼굴에 철판을 두른 것과 비슷했다.
“대신 내가 질 것 같으면 그때 도와줘라. 나도 목숨을 잃고 싶지는 않으니까.”
“지랄… 어쩐지.”
“그래도 십오천강에 포함된 마창과는 한번 붙어봐야 될 것 아니냐. 지금까지 잡은 자들은 백대고수에 포함된다 해도 모조리 하위권에 있었다. 이 기회에 내 무력이 어디까지 갔는지 알아봐야 되지 않겠어?”
“너, 내 말을 어디로 듣는 거야!”
“마창이 아무리 강해도 정말 난 쉽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러니 믿어주면 안 되겠냐.”
“네 맘대로 해, 인마!”
막사검을 얻은 운호 일행은 잠시도 쉬지 않고 팔공산을 향해 달렸다.
요마왕의 시신 복부에 팔공산으로 오라는 서신을 남겨놓았다.
아마 지금쯤 마창은 서신을 확인하고 팔공산으로 미친 듯 달려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름은 남기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검의라 해도 검에 당한 상처만 가지고 누가 요마왕을 죽였는지 알 수는 없다.
그랬으니 마창은 정체 모를 괴인의 서신을 확인한 후 거품을 물며 발광을 했을지도 모른다.
정체를 밝히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무조건 마창이 먼저 볼 것이란 확신이 없는 이상 괜히 정체를 밝혀 칠악의 추적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창은 반드시 온다.
운호가 팔황문에서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마창은 모종의 이유 때문에 반드시 막사검을 얻어야 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피해 인적이 없는 외진 길로 오다 보니 생각보다 하루가 더 걸렸다.
무림의 눈은 훨씬 밝고 이해하지 못할 만큼 넓다.
조심에 조심을 기해도 행적이 노출되기 다반사였으니 무조건 사람의 눈을 피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삼백 리 길.
먼 길을 돌고 돌아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된 상태에서 팔공산에 도착한 것은 미천을 떠난 지 삼 일 만이었다.
멀리서 봐도 높고 거칠다.
험산 중의 험산이었고 중간까지만 나무가 자랐을 뿐 정상 쪽에는 온통 바위뿐이었다.
산자락에 도착해서 운호가 먼저 걸음을 멈추자 일행이 그를 따라 둥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그 미친놈이 사람 눈을 피하지 않고 왔다면 아마 우리보다 먼저 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겠군.”
“그래서 말인데… 이쯤에서 하령이는 은하문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왜죠?”
“자칫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다면 팔공산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와라.”
“꼭 그래야겠어요?”
“그렇게 해. 나는 물귀신처럼 다른 사람을 위험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걸 질색으로 아는 사람이야.”
“좋아요. 어디까지 알아오면 되는 거죠?”
“무풍사와 팔황문 총사가 천과 접촉했는지 여부, 그리고 칠악의 행적.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혈검쟁투와 청당전의 상황을 알아와.”
“나는 막사검을 오라버니가 가졌다는 거 말해야 돼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내가 하지 말란다고 해도 할 것 아니냐. 아까 말했듯이 줄 건 줘도 된다. 대신 우리를 상대로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되면 널 다시는 못 볼 테니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젠 가봐라. 우리도 서둘러야 된다.”
운호의 손짓에 소하령이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오랜 시간을 같이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이 들 대로 들어서 막상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더군다나 마창이란 강적과 싸움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되는 마음도 컸다.
그럼에도 그녀는 운상의 손짓마저 확인한 후 천천히 신형을 돌려 땅을 박차고 날아갔다.
역시 고수.
불과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신형은 숲을 넘어 사라지고 없었다.
마창과 약속한 곳은 팔공산의 비로봉이었다.
가장 높은 성우봉 대신 비로봉을 택한 것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탈출구를 마련해야 된다는 소하령의 의견 때문이었다.
소하령은 팔공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데, 은하문과 가깝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주 왔다고 했다.
정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비로봉이 낮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무려 이백 장을 올라가야 하니 범인이라면 반나절이 꼬박 걸려야 되는 길이다.
하지만 운호 일행은 불과 반시진 만에 비로봉에 올라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마창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았다.
비로봉에 올라서니 왜 소하령이 이곳을 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사방이 훤히 트여 있었고 어디로도 내려갈 수 있는 지형이었다.
엄청난 병력이 사방을 완벽하게 포위하지 않는 한 도주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 몸을 피하는 건 가능해 보였다.
물론 마창도 똑같은 조건일 것이다.
운호 일행의 합공에 불리한 처지로 몰리면 언제든지 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염려할 일이 아니었다.
광기에 젖은 마창의 성격상 막사검을 찾지 못한다면 죽어도 도주를 택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사방을 모두 확인한 운호가 천천히 자리에 앉자 운여가 다가오며 가슴에서 금창약을 꺼냈다.
요마왕과의 싸움에서 운호는 제법 커다란 부상을 입었는데 이곳으로 급히 이동하느라 제대로 된 치료조차 하지 못했다.
왼쪽 팔에 이어 옆구리와 허벅지에 매단 붕대를 풀고 금창약을 바른 운여가 깨끗한 붕대를 등짐에서 꺼내 상처를 꼼꼼히 동여맨 후 뒤로 물러났다.
그는 운호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다.
“우리가 지키고 있을 테니 얼른 운기를 해. 조금이라도 더 회복해야지.”
“아프지 않아. 오면서 시간 날 때마다 요상술을 펼쳤더니 많이 좋아졌다.”
“말 좀 들어. 마창이 오기 전까지 최상의 상태를 만들어야 돼. 인마, 네가 잘못되면 우리도 같이 죽어!”
“알았다, 알았어. 귀 아프니까 소리 좀 그만 질러.”
운여의 성화에 운호가 좌정을 한 후 운기에 들어갔다.
그러자 운상과 운여가 각각 운호를 가운데 두고 호위에 들어갔다.
언제 마창이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긴장된 눈으로 산 아래에 시선을 두고 움직이지 않았다.
천룡무상신공이 운기 되면서 자연스럽게 오룡이 운호의 몸을 감싸며 올라왔다.
이번에는 운상과 운여가 있음에도 오룡은 보란 듯이 올라와 춤을 추며 사방을 노닐었다.
산 아래를 바라보던 운상과 운여가 그 모습에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같이 다니면서 운호의 몸이 금빛에 잠기는 건 여러 번 본 적이 있었으나 이렇게 생생한 용틀임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용들의 춤사위는 경이적이었고 전율이 일어날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충격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더욱 그들을 놀라게 만든 것은 운호가 지니고 있던 막사검이 용틀임에 맞추어 오색찬란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발견했을 때 나타났던 서기는 아무것도 아닐 만큼 눈부신 기운이 비단으로 만들어진 보자기를 뚫고 나와 사위를 밝혔다.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기이한 현상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나 이런 것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운호의 몸을 감싸던 오룡이 하나의 거룡으로 변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보에서 나오던 기운도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깊고 깊은 눈.
운기를 마친 운호의 눈은 득도한 고승의 눈처럼 하염없이 깊었고 순수했다.
하지만 그런 눈도 앞으로 다가와 자신의 볼을 꼬집는 친구들의 손가락에 의해 금방 황당함으로 변하고 말았다.
“왜 그래, 이놈들아.”
“너, 그 용 뭐냐?”
“무슨 용?”
“이놈아, 운기할 때 네 몸에서 다섯 마리의 용이 튀어나왔어. 설마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그게 정말이야?”
운상의 말에 운호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오히려 말도 안 된다는 듯 반문을 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운호는 오룡봉성의 현상을 발현하면서도 스스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친구들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운호의 반응을 본 운상과 운여의 표정은 놀라움을 넘어 이젠 황당함으로 변하고 있었다.
용을 뿜어낸 놈이 오히려 반문을 하고 있으니 그들의 반응은 충분히 그럴 만했다.
운상이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불쑥 입을 연 것은 기억 속에서 뭔가를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그거 혹시 오룡봉성 아닐까?”
“그게 뭔데?”
“그 옛날 사일검법 중 태양을 베는 검, 후예사일을 완성하셨고 천하제일고수로 군림하신 만천자께서는 운공을 하실 때마다 다섯 마리 용이 하늘을 온통 채워 만륜각을 금빛으로 물들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청면 사숙께서는 그것을 두고 오룡봉성이라 말씀하셨다.”
“정말이야?”
“오룡봉성은 강간이 깨지고 생사현관의 문이 열리기 전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운호가 만든 것이 오룡봉성이 맞다면 강간이 깨졌을 거다. 말해봐. 너, 강간이 깨진 거야?”
“그것 참… 얼마 전 패천일도와의 싸움에서 사경을 헤맬 때 필사적으로 운공을 했는데 그때 강간이 깨졌다.”
“그걸 왜 이제서야 말해!”
“일부러 숨긴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잠시 잊었을 뿐이다.”
“아이고… 그렇다면 오룡봉성이 맞는 모양이다.”
운호의 대답에 그동안 듣고만 있던 운여가 깊게 숨을 내리쉬었다.
막상 추측을 했어도 그것이 사실로 나타나자 믿겨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오룡봉성의 경지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불세출의 고수 만천자의 몸에서 발현한 것이라면 내공 면에서 최고의 경지란 추측이 가능해진다.
그랬기에 일행은 각자 생각에 잠겨 침묵 속으로 잠겨들었다.
운여가 한참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것은 불현듯 생각난 것 때문이었다.
“좋다. 그게 오룡봉성이라고 쳐. 그런데 막사검은 왜 춤춘 거야?”
“무슨 춤?”
“네가 운기하면서 오룡봉성이 나타났을 때 막사검에서 오색찬란한 서기가 뿜어져 나왔다.”
“설마.”
“설마는 무슨. 운상이도 같이 봤어. 혹시 막사검하고 오룡봉성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거 아닐까?”
운여가 말을 해놓고 머리를 긁적였다.
스스로 말해놓고도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것 같았던지 그는 친구들의 얼굴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하지만 운호와 운상도 그의 표정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대답이 없는 질문은 언제나 사람을 아무 생각 없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운호의 눈이 번쩍 빛난 것은 운여가 또다시 입을 열기 위해 머리에 얹었던 손을 내릴 때였다.
그의 표정은 어느새 무겁게 가라앉았고 목소리에서 나온 음성은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