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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29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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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29화

현문에서 은밀하게 빠져나와 팔황문의 외곽으로 날아온 운호는 가벼운 휘파람 소리로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운여와 운상, 그리고 소하령은 각자 은신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운호가 빠져나오자 즉시 모여들었다.

적진으로 파고들어 감시하고 돌아온 운호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소하령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삼 일 동안의 잠복.

무인은 추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가의 고수는 내공이 운기 되면 피부가 강철처럼 변하고 내장이 응축되며 신체를 최적의 환경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랬으니 절대 고수인 운호 일행이 추위에 영향을 받을 리 없다.

그럼에도 이토록 초췌하게 변한 것은 제대로 씻지 못하고 바람과 서리를 맞은 채 음식조차 건량으로 해결하며 버틴 것이 원인이었다.

일행은 모두 모이자 운호의 신호에 따라 즉시 신법을 펼쳐 팔황문에서 최대한 멀어졌다.

산을 하나 넘은 그들이 멈춘 곳은 여행자들이 자주 머무는 관제묘였다.

관제묘는 땅 밑으로 파여져 있어 쉴 곳 없는 여행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었다.

역시 먼저 입을 연 것은 운상이었다.

그는 삼 일 만에 운호가 빠져나와 자신들을 이끌고 관제묘로 들어오자 급한 마음을 얼굴에 가득 담아 대뜸 질문부터 했다.

“알아냈어?”

“이것저것 많이 듣긴 했다.”

“빨리 말해봐. 궁금해 죽겠어.”

“놈들은…….”

운상의 독촉에 운호가 현문에서 들은 내용을 일행에게 말해주었다.

워낙 중요한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일행의 얼굴은 점점 심각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운호의 이야기가 끝나고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그만큼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궁금한 것들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운여가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라면 요마왕이 막사검을 지닌 채 미천에 있다는 뜻인데 나는 미천이란 지명을 처음 들어본다. 마창이 있다는 산망도 마찬가지고.”

운여가 말을 하면서 운호를 쳐다봤다.

혹시 아느냐는 시선이었다.

그런 운여를 운호가 황당한 눈으로 마주 보았다.

산에서 같이 살았고 세상에 나와서도 대부분 같이 돌아다녔다.

언제부터인가 이놈은 뭔가 궁금하거나 모르는 게 있으면 자신에게 해결하라는 시선을 보내오곤 했는데 이런 경우가 생길 때마다 주먹을 들까 말까 고민에 빠진다.

물론 가끔가다 해결한 경우도 있었으나 그것은 상황에 맞춘 추리가 들어맞은 경우였고 지금처럼 지명에 대해서는 전혀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랬기에 운호는 신경질적으로 운여를 쳐다본 후 고개를 돌려 소하령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안휘에서 계속 살아왔으니 산에서 살던 점창의 도사들보다는 훨씬 지명에 대해서 잘 알 거란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다행스럽게 맞아들었다.

운호의 시선을 받은 소하령이 즉시 입을 열어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미천은 안휘 북쪽 끝에 있는 와양(渦陽)에서 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죽림을 말해요. 워낙 외진 곳이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데 거기에 요마왕이 있다니 뜻밖이네요.”

“산망은?”

“산망은 이곳 합비의 외곽에 있는 명교사(明敎寺) 뒤편의 동굴들을 말해요. 마창의 행적을 찾을 수 없더니 그곳에 숨어 있었군요.”

“은하문에서도 마창의 행적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지?”

“우리뿐만 아니라 안휘, 강서에 있는 호천십문은 물론이고 칠대세가들도 모두 구악의 행적을 찾고 있었어요.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었지 막사검의 행적은 초미의 관심사였으니까요.”

“은밀하게 막사검의 행적을 추적한 것은 막사검을 차지하겠다는 욕심 때문이냐?”

“당연한 것 아닌가요. 막사검을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고 했어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전설이 있는 이상 누가 욕심을 부리지 않겠어요.”

“결국 팔황문의 총사가 뜻한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겠구나.”

“분명 그렇게 될 거예요.”

운호의 말에 소하령이 얼굴빛을 흐렸다.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신비 조직의 음모는 너무나 지독한 것이었다.

한번 입이 열린 소하령은 얼굴빛과 다르게 떠버리의 본색을 숨기지 못하고 미천과 산망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했다.

구악에 대한 행적과 은하문의 추적 내용은 거기에 덧붙여진 덤이었다.

이대로 계속 내버려 두면 언제까지 이야기가 계속될지 몰랐기 때문에 운상이 기회를 보다가 중간에서 끼어들었다.

“미천까지의 거리는?”

“오백 리 정도 돼요.”

“운호야, 지금 서둘러 떠나면 우리가 더 빠르겠다.”

“그 말은?”

“놈들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해야 되지 않겠어?”

“막사검을 뺏자는 말이구나?”

“그런 후 마창을 끌어내면 놈은 꼼짝없이 걸려들 거다.”

“좋은 생각이네.”

운상의 말에 운호가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옆에 있던 운여는 그에 호응하지 않았다.

“신중하게 생각해야 된다.”

“왜?”

“마창에게 요마왕의 행적을 알려준다는 것은 차도살인 계획이야. 놈들은 마창을 이용해서 눈엣가시 같은 구악을 모두 죽일 생각이란 말이다.”

“그래서?”

“잘못하면 마창 대신 우리가 구악의 목표가 될 수 있단 뜻이다. 팔황문이 우릴 잡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우리가 나선다면 아마 얼씨구나 할 거다.”

“그러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워야지.”

“그런 다음 어쩔 생각인데?”

“얘기했잖아, 마창을 잡는다고.”

“이 답답아, 그게 쉬운 일이냐. 마창이 누구 집 강아지로 보여? 만약에 부상이라도 당하게 되면 우린 승냥이들한테 몰리다가 영락없이 저승 구경을 해야 돼!”

“괜찮아.”

“뭐가 괜찮아!”

“시간 싸움이다. 놈들의 계획대로라면 분명 마창에게 제일 먼저 정보를 줄 거야. 그런 후 나머지 구악에게 요마왕의 행적을 알릴 게 분명해. 우리가 먼저 가 있다가 마창을 유인해서 빠져나가면 나머지 놈들은 닭 쫓던 개처럼 헤매고 돌아다닐 거다. 그러니까 충분히 승산이 있어.”

“기어코 마창을 잡아야겠냐?”

“마창을 잡으면 천이란 신비 조직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어. 그러니 반드시 마창을 잡아야 한다.”

“팔황문의 총사는?”

“이만큼 했으면 많이 노력한 거야. 무림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니잖아. 더군다나 우린 운남에서 건너온 도사들이라고. 팔황문 총사의 뒤를 쫓는 데는 우리보다 안휘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적격이다. 안 그래?”

운호가 말을 마치며 소하령을 바라보았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팔황문의 총사는 은하문에서 맡으라는 시선이었다.

말이 많을 뿐이지, 소하령은 누구보다 눈치가 빠른 여인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운호가 자신을 쳐다보자 짧은 고민을 마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문에 전서를 보낼게요. 상황이 이리 변했으니 아버지께서도 그냥 있지는 않을 거예요.”

 

수명각.

점창의 수많은 도관 중 서산 중턱에 마련된 작은 건물의 이름이 수명각이었다.

가난한 문파의 도관답게 아무런 치장이 되어 있지 않았고 낡고 헤어진 옷처럼 여기저기 보수한 흔적이 보였다.

수명각은 서산에 있는 이십여 채의 전각 중 덩그러니 외롭게 떨어져 있었지만 근래 들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락거리는 곳이었다.

바로 수명각의 주인이 청허자였기 때문이었다.

점창의 현존 최고 어른이자 정신적인 지주인 청허자의 나이는 벌써 여든다섯이었다.

청정한 삶을 살았고 고강한 무예를 익혀 심신을 수양하며 평생을 정진했으나 세월을 막을 수는 없었다.

천수를 누린다는 말은 하늘이 준 수명을 올곧이 지키며 눈을 감는 걸 말한다.

사람마다 천수의 나이는 모두 다르지만 천수를 지킨 사람을 사람들은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며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천수를 지킨다는 건 어찌 보면 행복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도 같이 동반하는데, 청허자의 경우가 그랬다.

혼자서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의 노환.

강호를 질주하며 사해를 아우르던 청허자는 어느새 인생의 막바지에 다다라 힘든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하니 수명각은 언제나 탕약 냄새가 진동했고 수발드는 어린 도인들과 도의가 수시로 드나들어 언제나 분주한 곳으로 변했다.

그런 수명각에 청문자가 나타난 것은 해가 중천으로 올라온 해시 무렵이었다.

노환의 특성은 쉽게 낳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급격하게 나빠지지도 않는다.

그랬기에 점창의 장로들은 돌아가며 수명각을 찾았는데 청문자가 이곳에 온 것은 열흘 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자리에 누워 있던 청허자가 고개를 돌려 청문자를 바라보았다.

청문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반가움이 가득 들어 있었다.

“사제 왔는가.”

“몸은 어떠십니까?”

“괜찮아.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던가. 가만, 사제 얼굴을 보니 그냥 온 게 아닌 모양일세.”

몸은 말을 듣지 않는 데도 오랜 세월을 겪으며 챙겨온 경륜은 청문자가 그냥 오지 않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하기야 육십 년이 넘도록 같이 살아온 사람이니 얼굴색 하나만 봐도 청문자의 상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사실임에도 청허자의 말을 들은 청문자는 풀썩 웃었다.

“사형께서는 아무래도 남의 속을 들여다보는 재주가 있는 모양입니다. 어찌 그리 잘 아십니까.”

“자네 왼손이 꼼지락거리고 있잖아. 사제는 할 말이 있으면 미세하게 왼손을 흔든다네.”

“어이구, 그걸 지금 말씀해 주십니까. 참 빨리도 말해주십니다.”

“죽을 때가 다가오니까 가르쳐 주는 거야. 안 그러면 뭐하러 말해주겠나… 자, 말해봐. 천하를 들썩이게 만든 자랑스러운 우리 사제가 바쁜 걸음을 왜 하셨는지 궁금해 죽겠네. 콜록… 큭… 크큭.”

청허자가 웃음 띤 얼굴로 말을 하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마른기침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청문자를 향해 팔을 치켜세웠다.

일으켜 달라는 뜻이다.

그랬기에 청문자는 급히 다가가 그의 몸을 부축했다.

허깨비 같다.

아니다. 마치 바짝 마른 고목이라고 보는 게 더 맞겠다.

청허자의 몸을 부축한 청문자의 눈이 아련하게 젖어갔다.

사형이란 이름을 가졌지만 어찌 보면 부모와도 같은 존재였고 평생을 아들처럼 아끼며 보살펴 주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형이 이렇게 힘들어 하니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왔다.

사형은… 당신의 몸이 이렇게 힘들고 괴로움에도 자신을 볼 때마다 사문의 명예를 빛내줬다며 언제나 자랑스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가슴으로 안아 온전하게 앉을 수 있도록 만들자 기침을 멈춘 청허자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얼른 말하라는 무언의 독촉이다.

그랬기에 청문자는 운호가 탕마행을 하면서 보내온 전갈들을 천천히 이야기했고 신비 조직을 상대하기 위해 소림을 방문할 계획이란 것도 덧붙였다.

청허자는 청문자가 모든 이야기를 끝낼 때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듣기만 했다.

그런 후 이야기를 마치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 오랫동안 자리만 보전하고 있었네. 지금쯤 따스한 햇살이 중천에 있을 것 같구먼. 오랜만에 천화봉을 보고 싶은데 나 좀 데려다 주면 안 되겠나?”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약해진 몸에는 바람이 좋지 않겠지만 청문자는 청허자를 업고 천화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청암으로 간 후 걸음을 멈추었다.

아기를 업은 엄마처럼 청문자는 조심스럽게 청허자가 천화봉을 볼 수 있도록 몸을 틀었다.

그러자 청허자의 입에서 작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푸른 하늘 속에 잠겨 있는 천화봉의 모습은 그의 가슴을 먹먹하도록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평생을 함께해 온 천화봉.

천화봉의 바위 하나 나무 하나에 추억들이 알알이 배어 있으니 천화봉은 산이 아니라 그의 인생 자체였다.

“사제의 등이 이렇게 넓은 줄은 몰랐네. 참으로 따스하구먼.”

“제가 기억하는 사형의 등은 바다와도 같았습니다.”

“그랬던가…….”

“사형… 저에게 사형은… 이번에 가면 꽤 오랫동안 산을 비울 것 같습니다. 꼭 보중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그러지… 자네가 올 때까지는 꼭 살아 있겠네.”

“빠른 시간 내에 다녀오겠습니다.”

“사제… 이제 나에게 남은 소망은 한 가지뿐이네.”

“압니다.”

“소림 방장의 수염을 뽑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구룡회를 개최토록 해야 돼. 죽어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스승님을 볼 수 있도록 해주게. 자네가 그렇게만 해주면 내가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해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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