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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27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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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27화

소하령의 주장은 먹혀들었다.

무풍사나 팔황문과의 충돌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무엇보다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아무도 없는 송정을 미련 없이 떠났다.

비밀리에 회동한 자들을 추적하는 것으로 결정했으니 송정에 남아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었다.

일행이 동쪽으로 빠르게 움직인 것은 팔황문의 본거지가 송정 동쪽으로 삼백 리 정도 떨어진 합비에 있기 때문이다.

둘 중 어디로 가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어차피 싸움을 각오한 이상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가까운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는 마창까지 있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냄새가 난다.

마창이 팔황문의 근거지인 합비에 웅크리고 있다는 것은 뭔가 중요한 단서를 찾아낼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천하를 떠돌며 무소불위의 무력을 휘두르던 마창이 오 일이나 한곳에 머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으니 마창만 찾아낸다면 숨어 있던 연결 고리가 불쑥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참으로 고된 일정이다.

한 번도 편히 쉬지 못하고 벌써 한 달 가까이 이동을 했더니 온몸이 쑤시고 입에서 슬슬 단내가 났다.

그런 와중에도 운상과 소하령은 붙어서 끊임없이 떠들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체력이었고 엄청난 정신력이었다.

 

팔황문이 삼십팔세에 포함된 것은 불과 십 년 전이었다.

어느 순간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처럼 팔황문의 무림 진출은 그렇게 충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전까지만 해도 팔황문은 성도인 합비를 근거지로 삼고 상계를 주름잡던 거대 상가에 불과했었다.

상계의 기본이 권력과 힘이란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권력이 없으면 상로의 확장이 쉽지 않고 힘이 없으면 다른 자들의 침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때문이다.

팔황문이 무력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유독 안휘에 들끓던 녹림의 무리들로 인해서였다.

녹림십팔채 중에서 무려 세 개가 안휘를 둘러싸고 있는 산맥에 포진하고 있어 상로가 움직일 때마다 팔황문은 엄청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것이 분하고 억울했을 것이다.

상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자구책을 강구하던 팔황문이 지니고 있던 무인들을 체계화시키고 외부의 유력 무인들을 끌어들여 무력 단체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이십 년 전부터였는데 그때부터 그들의 무력은 급격히 강해지기 시작했다.

팔황문이 삼십팔세로 등극한 것은 완벽하게 무력 단체로 변한 그들이 안휘에 웅크리고 있던 녹림의 강자들을 일거에 쓸어버림으로 인해서였다.

안탕산, 삼불산, 오룡산을 근거로 삼고 있던 이천의 녹림 무리가 팔황문의 공격으로 산채를 잃어버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죽은 자가 부지기수였으며 수뇌부 중 살아남은 자는 하나도 없었다.

삼 산의 봉우리와 계곡마다 시체가 쌓였고 피가 흘러 개울을 형성할 만큼 완벽한 지옥도를 만들어냈다.

전격적인 진공, 그리고 뿌리조차 뽑아버리는 독심.

천하인들은 팔황문의 숨겨져 있던 저력에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피의 빚을 갚겠다는 녹림맹의 협박에 팔황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당당하게 전쟁을 선포했다.

오라!

복수를 위해 온다면 녹림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

이것이 팔황문의 포효였다.

녹림은 복수를 하겠다며 설치던 처음과는 달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세월을 삼켰다.

하지만 담대한 선포를 하며 버틴 팔황문이 무서워서 녹림이 숨을 죽였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녹림의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었다.

녹림맹주는 백대고수 중 상위 서열에 있는 십오천강 중 일인인 삼초살성 유월이었고 그 밑으로 기라성 같은 고수들이 포진되어 있으니 아무리 팔황문의 전력이 강해졌다고 해도 녹림맹 전체를 상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녹림의 힘은 갈라져 있을 뿐 하나의 힘으로 합해지는 순간 삼심팔세 중 그 누구도 당할 세력이 없었다.

사가들의 의견이 분분했고 사람들의 추측이 수십 갈래로 찢어졌으나 녹림의 침묵에 대한 진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결국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다.

팔황문의 삼십팔세 등극은 녹림의 침묵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팔황문은 천하를 공포에 떨게 만든 녹림을 침묵시켰으니 충분한 자격을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팔황문은 안휘의 성도 합비의 중심인 산하에 위치하고 있었다.

여타의 유력 단체들과 다르게 그들이 성도의 중심에 머물고 있는 것은 근본이 상가에 있기 때문이다.

삼십팔세에 오를 만큼 강력한 무력을 지녔고 근래에 들어 욱일승천의 기세로 전력을 강화시키는 중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안휘의 상권을 휘어잡고 있는 절대상가였다.

 

무력 단체의 본거지는 대체적으로 웅장한 반면 치장이 없고 단순한 구조를 이루는 게 보통이었으나 팔황문이 머물고 있는 윤미성은 전각들이 화려했고 각종 기화이초가 천지사방에 깔려 유려한 경치를 이루었다.

곳곳에 파여 있는 인공 연못들에는 비단잉어들이 노닐었고 봄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지천에 피었다.

그중 동쪽 끝에 위치한 전각의 상판에는 ‘현문’이라 적혀 있었는데 다른 전각과는 달리 규모가 작고 치장도 덜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화려함 대신 은은한 고고함이 자리 잡아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오느라 고생했겠구나.”

“아닙니다, 총사.”

“사제는 잘 있느냐?”

“예, 강녕하십니다.”

노인의 질문에 앞에 앉은 중년인이 정중하게 대답을 했다.

보통의 얼굴, 보통의 인상.

뜻밖에도 중년인은 다름 아닌 천검회의 정보기관인 중안의 수장 주령이었다.

주령은 최대한의 공손함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노인이 바로 팔황문의 신비라 불리는 운천 손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운천 손주인.

팔황문의 대소사를 모두 관장하며 안휘의 노른자 합비를 수성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근래 들어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특수부대들을 키운 것도 그였고 사방에 깔린 절대 세력들의 견제를 뚫고 안휘의 상권을 강서와 호북까지 넓혀 나간 것도 그였다.

그를 팔황문의 신비라 부르는 것은 그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귀계들이 혀를 휘두를 만큼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팔황문의 행사는 언제나 결과가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시간이 흘러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는 천검문의 총사 화문탁을 사제라고 불렀다.

손주인은 주령의 대답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런 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 차를 입에 물었다.

“현재 전황은?”

“당초 계획대로 중경의 신마문과 호북의 철기맹, 그리고 죽련을 끌어들이는 중입니다.”

“순순히 들어올 것 같은가?”

“현재의 무림은 폭발 직전이었습니다. 언제든 도화선만 있으면 터질 판이었지요. 그건 그들도 알고 있었던 내용입니다. 거기에 맛있는 먹잇감을 내놓았으니 어찌 덤벼들지 않겠습니까.”

“그자들도 가만있지만은 않을 텐데?”

“그렇습니다. 놈들은 광동의 용호문과 패천방, 그리고 강서의 쾌활림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접촉한다고 합니다.”

“점점 판이 커지는구나.”

“원하던 바이기도 하지요.”

“사제의 생각은 어떠한가?”

“계획의 변동은 없습니다. 지금 접촉한 세력들까지 끌어들이면 혈검쟁투에 끼어든 문파는 열셋까지 늘어납니다. 그 정도면 천하 무림의 삼 할이 넘습니다. 거기에 강북에서 벌어지고 있는 청당전에도 일곱 개의 세력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 따지면 이제 육 할이 넘는 무림 세력들이 전쟁에 가담한 것입니다. 천천히 목줄을 죌 생각입니다. 철저히 소모전을 펼쳐서 놈들의 전력을 최대한 약화시킨다는 게 전략의 핵심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간은 당초대로 삼 년이냐?”

“천에서 지시한 기간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지요. 그나저나 총사께서는 저보고 안휘의 일을 알아 오라는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다음 달에 소천께서 호남에 오신다는 전갈입니다. 안휘의 현재 상황과 전략을 호남 상황과 합해서 보고하실 생각인 것 같습니다.”

“소천께서 호남을?”

“천신에서 보내온 전갈이었습니다.”

“음…….”

주령의 대답에 손주인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본천에 있던 소천이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천주의 일독이신 소천의 나이는 벌써 마흔이 넘었으나 아직도 소천으로 불리고 있으니 부를 때마다 송구한 마음이 든다.

아직 천주가 살아계시기 때문이지만 천의 모든 결정은 소천께서 내린 지 오래되었고 마음으로 승복하여 주공으로 모신 분이다.

그랬기에 손주인은 묵직한 신음을 끝으로 안휘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재 사마외도 무리의 칠 할이 소탕되었네. 조만간 곧 나머지도 소탕될 것이야. 동북대전은 그것이 완료되는 대로 판을 벌일 생각이다.”

“막사검은 어찌하실 계획이신지요.”

“동북대전이 벌어지면 수거해서 천으로 환원시킬 것이다.”

“송구하오나 그 시기를 알 수 있겠나이까?”

“짧으면 삼 개월, 길어도 오 개월은 넘기지 않아야겠지. 소천께는 오 개월로 보고하도록.”

“알겠사옵니다.”

끊어지는 손주인의 이야기에 주령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뜻이다.

물론 기간에서 조금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자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는 숙였던 허리를 들고 마지막 말을 꺼냈다.

“저희 총사께서 이 말도 전하라 하셨습니다.”

“무엇이냐?”

“아무래도 천의 계획이 일부 노출된 것 같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문상께서 마검을 잡아 비밀을 막아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마검이라…….”

“놈들의 진로가 이곳으로 향했습니다. 아마 막사검을 쫓아온 것 같습니다.”

“그자가 어디까지 알고 있다는 말이냐?”

“정확한 것은 아니오나 본단의 정체와 천검회를 비롯해서 일부의 예하 세력을 파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제가 어쩌다가 그런 실수를 했단 말이냐. 그 말이 사실이라면 마검이라는 아이를 반드시 죽여야겠구나.”

 

합비(合肥).

안휘의 성도이자 인구 백만이 넘는 거대한 도시다.

북에는 회하가 흐르고 남으로는 장강이 흐른다. 강남으로 가는 입구로서 동비(東肥)천과 서비(西肥)천이 합류했다고 해서 합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당대 중기에 창건한 절로 조조가 군사훈련을 했다는 명교사(明敎寺)가 있었고 삼국시대 조조의 대장 장료(張遼)가 팔백의 병사로 손권의 십만의 군대와 싸워 승리한 소요진(逍遙津) 등이 있다.

풍경이 아름다웠고 비옥한 옥토를 가져 농산물이 풍부했으며 물산이 많이 나와 교역이 발달해서 천하의 어느 곳과 비교해도 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한 도시였다.

그랬기에 도시 곳곳은 화려한 거리들이 사방으로 죽죽 이어졌고 거리 양쪽으로는 고루거각들이 들어차 온갖 물품을 팔았다.

원래 부유한 동네는 밤이 더 화려한 법이다.

운호 일행이 합비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는데 멀리서 바라본 도시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사전에 합비가 팔황문의 아성이라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운호 일행은 전도복을 벗고 일반 무복으로 갈아입었다.

모든 곳에 눈이 있는 팔황문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는 조심을 기해야 했다.

추측이고 바라는 일이 아니었지만 번천검의 말처럼 팔황문이 천의 예하 세력이라면 천검회와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말은 곧 그들이 자신들을 노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여인만큼 이목을 끄는 경우도 없기 때문에 소하령의 얼굴을 바꾸었다.

못생긴 것을 예쁘게 만들기는 어려우나 예쁜 얼굴을 가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중심가에서 벗어난 곳에 숙소를 잡았다.

풍영 객잔은 합비 외곽에 위치해 있었는데 다른 도시의 외곽에 있는 객점들과는 다르게 청결했고 음식 맛도 좋았다.

가린다고 가렸고 행색을 바꾸려 노력했으나 그들의 노력은 그리 효과를 보지 못했다.

객잔에 들어와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감시의 눈이 따라붙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력을 근간으로 하는 세력이라면 절대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따라붙지 못한다.

아마도 이것은 팔황문이 상계에 근간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휴우…

운호는 따라붙은 검은 시선들을 확인하고 고개를 흔들며 소리 나지 않는 휘파람을 불었다.

지금은 자신들의 정체를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감시만 붙여놓은 상태였으나 금방 다른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다른 상황.

바로 피를 부르는 싸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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