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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18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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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18화

한설아는 두 문파의 싸움이 시작되는 걸 확인한 후 운호를 들쳐 업고 전력으로 천일평을 향해 돌아갔다.

운상과 운여를 업은 것은 그녀의 뒤를 따라 후퇴하던 쌍악이었다.

그들이 운곡 일행을 만난 것은 천일평의 중간 부분이었다.

운곡을 비롯해서 운검과 오검은 다친 몸을 힘들게 움직여 다시 천일평을 거슬러 오는 중이었다.

그들은 사제들이 후퇴해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자 왔던 길을 되짚어 오고 있었다.

사제들이 무사한 걸 확인한 그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하염없던 걱정이 한순간에 풀려 버리자 운곡을 비롯한 일행의 몸이 금방 휘청거리다가 풀썩 주저앉았다.

그들 역시 사제들만큼은 아니지만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제대로 서 있을 힘이 없었다.

그러나 힘들고 괴로웠음에도 그들은 금방 다시 일어섰다.

여기서 적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헤어날 방도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힘들어도 최대한 빨리 천일평을 벗어나야 했다.

그들은 한 몸이 되어 서로 부축하고 의지하며 옹안으로 들어가 의방을 찾았다.

두 문파의 전투 결과에 따라 옹안도 위험해질 수 있었지만 운호를 비롯해서 운상과 운여의 상태가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무호계의 전투 결과는 삼 일 후 찾아온 철혈문 한서 지단의 용무대주란 사람에게 들을 수 있었다.

옹안은 철혈문이 장악한 도시였으니 한서 지단의 정보망이 천지사방에 깔려 있는 곳이었기에 그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어도 운호 일행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는 팔과 다리 등 여러 군데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싸움 도중에 많은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무호계로 진출한 천검회 병력을 전멸시켰지만 철혈문 측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문제는 천검회가 본격적으로 철혈문을 치기 위해 전 병력을 접경지로 이동시켰다는 것이었다.

무호계 전투 결과가 천검회를 격동시킨 건 분명했지만 이토록 빠르게 움직인 건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었다.

용무대주는 왕충의 고마움을 전하기만 했을 뿐 두 문파에 관한 이야기는 가급적 피하려 했다.

자신도 모르게 문의 비밀을 노출시킬까 봐 상당히 저어하는 눈치였다.

그들이 머물며 치료하는 옹안은 따지고 보면 전쟁을 벌이려는 두 문파의 최전방 접경지는 아니었다.

천검회의 본단이 있는 도균은 북서쪽으로 이백 리나 떨어져 있었고 철혈문의 본단이 있는 설망은 북동쪽으로 삼백 리 길이다.

쉽게 말한다면 전쟁이 벌어지는 직선로에서 옹안은 대략 오백 리나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옹안은 이제 안전지대로 변한다.

천검회가 이를 악물고 끝장을 보겠다는 심산으로 주력 고수들을 파견할 수도 있으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무리 천검회의 전력이 막강하다 해도 철혈문을 눈앞에 두고 운호 일행을 척살할 만한 전력을 별도로 뺀다는 것은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

부상 정도를 확실하게 모르는 이상 운호 일행을 어찌하기 위해서는 상당수의 전력을 보내야 하는데 그것은 철혈문과의 전쟁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었다.

그랬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옹안에서 떠나는 것까지 고려했던 운호 일행은 발을 뻗고 치료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거대 문파들의 전쟁은 하루 이틀 만에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치료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다.

천검회와 철혈문의 개전은 금방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하다고 판단한 철혈문의 문주 호패왕 막수문이 삼십팔세의 하나이자 자신의 의동생이 이끄는 광서의 패도문을 끌어들였기 때문이었다.

패도문은 도귀들의 집단으로 광서를 완전 장악하고 있었는데, 문주인 천파도 육만호는 호패왕과 이십 년 전 피를 나눠 마시며 형제의 맹약을 맺은 사이였다.

전격적으로 패도문 병력이 귀주로 진입해 들어오자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처럼 보이던 천검회가 움직임을 멈추고 전선을 고착시켰다.

아무리 천검회가 신주십강의 하나라고 해도 삼십팔세를 둘이나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더군다나 운호 일행에게 상당수의 전력을 잃었기 때문에 그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과는 달리 호패왕은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선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전력에서 우위를 가졌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귀주를 반으로 가른 접경지대에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요충지를 장악해서 적의 숨통을 압박하려는 시도가 매일같이 벌어졌고 밤낮을 가리지 않은 탈환전이 지속되었다.

초전의 유리함은 당연히 철혈문과 패도문 연합이 차지했다.

새로이 전장에 가세한 패도문의 도귀들은 귀주 남부를 압박하며 치고 들어왔는데 그 기세가 너무 강력해서 천검회의 남부 병력은 버티지 못하고 연신 후퇴를 거듭했다.

서북쪽 접경지대도 마찬가지였다.

철혈문은 전력을 집중해서 천검회의 다섯 개 지부를 격파하며 거점을 용환까지 이동시켰다.

용환에서 천검회 본단이 있는 도균까지는 불과 백여 리에 불과했으니 숨통을 조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훌륭한 전과였다.

전선의 흐름이 바뀐 것은 호남의 천문이 전투에 가세하면서부터였다.

그들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천검회를 응원하며 철혈문의 배후인 강구(江口)를 순식간에 점령하고 말았다.

철혈문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패도문이 남부를 장악해서 밀고 들어오는 중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다면 신주십강 중의 하나인 천검회를 때려잡을 수 있었는데 후방에서 기습을 당하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병력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모든 병력을 긁어모아 진격했기 때문에 본단인 설망은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다.

전력의 상당 부분을 되돌리지 않으면 천문에 의해 본단을 뺏길 수도 있었다.

후퇴를 결정하고 서둘러 돌아가려던 호패왕의 걸음을 막아준 것은 삼십팔세에 속하는 호남의 파한문이었다.

천문과 파한문은 근래에 들어 호남의 중심인 소동(邵東)을 두고 영역 싸움을 하고 있었다.

천문이 천검회를 응원하자 파한문이 전격적으로 그들을 공격하며 서쪽으로의 진로를 가로막은 것은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다는 논리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귀주에서 시작된 전투는 이제 영역을 넓혀 호남까지 번졌고 곧이어 강서로까지 확대되었다.

강서의 수라맹이 공개적으로 전쟁 참여를 공포하며 천검회 측에 서자 분쟁을 벌이고 있던 제천문이 철혈문을 응원하며 전쟁에 가담했던 것이다.

들불처럼 번져 버린 전쟁의 기운이 강남의 반을 장악하며 미친 듯이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이 전쟁을 두고 혈검쟁패라 부르기 시작했다.

삼 년에 걸쳐 산하에 수많은 피를 흘린 혈검쟁패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방에 들어 있는 사람은 둘.

천검회의 총사인 화문탁과 정보를 총괄하는 중안의 수장 주령이었다.

그들은 술상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는데 술만 마셨는지 안주는 그대로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화문탁이었다.

“전선은?”

“총사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놈들을 한쪽으로 몰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전선은 귀주가 아니라 호남 쪽이 될 겁니다.”

“놈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

“교묘하게 움직였고 거듭해서 조심했기 때문에 우리의 의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쟁에서 전략적 요충지는 언제든지 변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클클클… 그렇지, 그런 법이지.”

화문탁이 유쾌하게 웃자 그를 따라 주령의 얼굴에서 슬그머니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들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현재의 상황이 매우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철혈문 측은 아직도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모양입니다. 머리가 비었으니 목숨이 떨어져도 할 말 없는 자들입니다.”

“오랜 기간을 준비해 온 우리를 그들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나저나 강북은 어찌 되가는가?”

“역시 청성의 저력은 대단했습니다. 당문이 그렇게 철저히 준비했는데도 오히려 밀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조만간 풍검문과 황보세가가 참전하면 아미파와 공동파도 끌려오게 됩니다. 그쪽 역시 전쟁의 확산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천하의 반이 전쟁에 휩쓸렸으니 이제 반만 남았군. 그렇지?”

“총사, 천하의 동쪽이 움직이지 않으면 대계를 펼치기가 힘듭니다. 현재 전쟁에 가담한 삼십팔세는 아홉 개에 불과합니다. 강북에서 네 개가 더 가담한다 해도 채 반도 되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아. 곧 그곳에도 피가 흐르게 될 것이다. 욕심은 욕심을 부르고 힘을 가진 자는 욕심으로 인해 검을 들게 마련이지. 그러니 그 욕심에 불을 지펴주면 결국 피 흘리는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막사검을 안휘에 풀어놓을 것이다.”

“그게 무슨… 설마?”

“막사검을 풀어놓으면 그쪽에 있는 우리 세력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삼 년만 지나면 중원의 세력들은 만신창이로 변하게 될 거다. 그때가 되면 천(天)의 깃발을 대지에 휘날릴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선조들이 간절히 원했던 중원일통의 꿈이 이루어진단 말이다.”

“그래도 막사검을 풀어놓게 되면 너무 많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세력 간의 쟁투가 아니라 무인이라면 모두 미친 자가 될 터이니 그 피는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만마당을 만들어 사파의 무리들과 마두들을 저세상으로 보낸 것은 무림을 진정한 무인들의 세계로 전환시킨 후 천의 이름으로 통일시키기 위함이었다. 막사검을 하남에 떨어뜨리면 나머지 사갈 같은 자들이 모두 모일 것이다. 하남에 흐른 피는 그들의 몸에서 나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어째서 그렇습니까?”

“소문은 소문을 낳는 법이니 막사검을 지녔다고 알려진 자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나는 소문으로 나머지 사파의 무리들과 마두들을 제거할 생각이다.”

“아…….”

화문탁의 설명에 주령의 입에서 감탄이 새어 나왔다.

깨끗한 세상을 꿈꾸는 천(天)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데 더할 나위 없는 계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주령의 감탄에도 화문탁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술상에 놓인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 후 주령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파의 무리들과 마두들이 모두 처리되면 그때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욕심은 사특한 무리들만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의 기운이 천하를 덮은 이상 이제 그 누구도 발을 빼지 못할 것이다.”

 

운호 일행의 부상은 이전과 다르게 내상까지 겹쳐졌기 때문에 몸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두 달이 지난 후였다.

운상과 운여의 상태가 워낙 안 좋았고 오검의 상세도 회복이 더뎠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천룡무상신공은 무서운 효능을 발휘해서 채 보름도 되지 않아 운호를 일어나게 만들었다.

강남에서 벌어지는 전쟁 상황을 수시로 알려주던 쌍악이 옹안을 떠난 것은 운호가 자리를 완전히 털고 일어났을 때였다.

떠나는 무령의 눈은 더없이 아련했다.

자신이 여자임을 모를 거란 생각에 무령은 끝끝내 운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떠났다.

운호 역시 떠나는 그녀에게 그저 잘 가라는 말만 했을 뿐이다.

해야 할 말과 하고 싶은 말들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운호는 끝내 더 이상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떨 때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이 서로의 마음을 덜 아프게 하는 법이다.

쌍악이 떠나고 난 후부터 운호는 신응을 가동시켜 정보를 수집했다.

점창 본산과의 연락을 통해 풍운대의 상황을 보고했고 지금 벌어지는 무림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았다.

처음과 다르게 전쟁의 판은 무서울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강남도 그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강북의 전황도 미친 듯이 커져 갔다.

황보세가가 당문의 편에 섰고, 풍검문이 주력들을 대거 파견함에 따라 아미파와 공동파가 전쟁에 참전했다.

이제 강북의 전쟁도 사천을 벗어나 감숙과 섬서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일은 일행들이 거의 완치되어 자리에서 일어서던 어느 겨울, 안휘에서 터지고 말았다.

막사검의 출현.

전쟁의 소용돌이 외곽에서 긴장된 눈으로 상황을 관조하던 세력들과 모래알 같은 기인이사들의 눈이 한꺼번에 안휘로 쏠렸다.

‘막사검을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란 전설은 유구한 역사가 되어 도도히 전해져 왔기에 천하인들은 막사검을 얻기 위해 안휘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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