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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08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풍운사일 108화

일주천, 이주천, 삼주천.

끊임없이 천룡무상신공을 온몸으로 돌리며 운호는 전신을 덮고 있는 상처들을 치료했다.

그를 괴롭히고 있는 도상들은 패천일도의 투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피륙의 상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다시 말해 몸 안에 적이 심어놓은 악기가 스며든 것이니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악기를 정기로 다시 되돌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된다는 뜻이다.

무상으로 인해 치료를 하지 못한 하루의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치료에 전념했기 때문에 사실 운호의 몸 상태는 칠 할 이상 회복한 상태였다.

무리를 한다면 충분히 전투도 가능했지만 운호는 친구들에게 등을 맡기고 몸 상태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천검회가 예측대로 자신을 잡기 위해 주력을 동원한 것이라면 돌파의 첨두는 자신이 맡아야 되기 때문이다.

운상과 운여의 무력을 얕보는 것은 아니었으나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단숨에 적의 숨통을 끊어놓는 막강함이 필요했다.

운호는 그것이 일행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밖에서 들려오는 흉험한 싸움 소리에도 꼼짝하지 않고 요상을 지속했다.

운호의 눈이 떠진 것은 정확히 세 시진이 지난 후였다.

그의 눈은 호수처럼 고요했고 그의 몸에서 나오는 기세는 산악처럼 장중했다.

마치 대자연의 기운처럼.

운호는 눈을 뜬 후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설아를 향해 빙그레 웃음을 보였다.

그의 웃음은 따뜻했다.

“걱정했소?”

“네.”

“한 소저는 항상 걱정을 하는군요.”

“오라버니가 날 걱정하게 만들잖아요.”

“그랬나?”

“맨날 이렇게 다치기나 하고… 나 이제 그만 걱정하게 해주면 안 돼요?”

“음, 미안하오. 앞으로는 조심하겠소.”

“맨날 말로만.”

한설아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애교를 떠는 것으로 보였다.

그랬기에 운호는 웃음을 지우지 않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우린 이제 가야겠소. 아무래도 애들이 고전하고 있는 것 같으니.”

“돌파할 건가요?”

“그렇소. 소저는 내 뒤를 바짝 따라붙으시오.”

“알았어요.”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운호가 동굴 밖으로 향하자 한설아가 그 뒤를 따랐다.

운호의 걸음은 언제 부상을 당했냐는 듯 당당했고 한 치의 흩어짐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예상한 것처럼 운상과 운여는 고전을 면치 못하며 온몸에 피를 흘린 채 적을 막고 있었다.

급하다. 그리고 안타깝다.

친구들에게 등을 맡긴 시간은 그들의 피가 흘러넘치게 만들 만큼 너무 길었다.

“운상, 운여. 뒤로 빠져!”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이 한순간에 쏘아지 듯 유운신법을 펼쳐 날아간 운호의 검이 공격해 온 혈객들을 덮였다.

섬전(閃電).

사일검법의 첫 번째 초식인 섬전은 속도를 중시하는 쾌검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는데 지금 운호가 펼친 섬전은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쾌검은 다른 초식에 비해 위력이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운호가 펼친 섬전은 아예 통째로 혈객들을 날려 버릴 만큼 강력했다.

콰앙!

공격을 해 왔던 네 명의 혈객이 피를 뿜으며 뒤로 튕겨져 나가자 차륜전을 펼치기 위해 솟구치려던 혈객들이 기겁을 하며 신형을 멈췄다.

네 명이나 되는 혈객을 한꺼번에 이처럼 튕겨낼 수 있는 자들은 초절정의 절대고수들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적이 멈칫하는 사이, 운상과 운여를 가로막고 앞으로 나선 운호가 친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괜찮냐?”

“네 눈엔 이게 괜찮은 걸로 보여!”

피로 물든 몸을 한 채 인상을 쓰고 있던 운상이 신경질을 냈다.

하지만 운호는 그의 신경질을 일거에 잘라 버렸다.

“크게 다친 데는 없어 보이네. 엄살떨지 말고 이제 가자.”

“어디로?”

“내가 방향을 잡고 갈 테니까 내 뒤를 따라와. 한 소저가 중간이다. 알겠지?”

“다친 우리는 안중에도 없고 한 소저만 챙기는군. 정말 눈꼴시어서 못 보겠어.”

“그만해. 한 소저 얼굴 붉어지잖아.”

“부끄러워하라고 한 소리다. 그러니까 얼굴 붉어지는 건 당연하지.”

“하여간… 운상, 넌 물에 빠지면 주둥이만 둥둥 뜰 놈이다.”

“시끄럽고, 아프니까 얼른 가자. 저 새끼들 진형 갖추잖아.”

운상이 상처 난 곳을 여기저기 훑어보다 전열을 정비하고 있는 적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천검회의 무인들은 삼필사를 필두로 구혈객이 진형을 형성시키며 두텁게 포위망을 구축하는 중이었다.

그때 운여가 입을 열었다.

그도 운상처럼 전신에 상처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 것이 꽤나 타격을 받은 것 같았다.

“운호, 저 늙은이들이 그 유명한 살인귀들 삼필사란다. 그러니까 중앙 말고 좌측을 뚫자.”

“저 붉은 옷을 입은 놈들은?”

“천검구혈객.”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렇게 하자.”

운여의 눈짓에 대답을 마친 운호가 천천히 검을 끌어올렸다.

삼필사는 중앙에 포진했고 구혈객은 삼필사의 좌우로 나누어 차단한 상태였다.

그중 운여가 가리킨 곳은 운호의 급습으로 인해 타격을 받고 물러난 네 명의 혈객이 지키는 곳이었다.

그들은 전부 한두 군데씩 검상을 입고 있었는데 운호의 일격을 버텨내지 못하면서 생긴 상처들이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그쪽이 취약하긴 할 것이다.

“가자!”

중앙에 서 있던 백사가 한 걸음 나오며 뭐라 말을 하려 입을 떼는 순간 운호의 입에서 벽력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일 장을 격하고 좌측에 서 있던 혈객들을 덮쳤다.

삼필사와 나머지 혈객들이 반응을 보였을 때는 이미 운호의 흑룡검에서 생긴 검기의 물결들이 혈객들을 쓸고 지난 후였다.

막강한 힘에 의해 밀려나며 또다시 상처를 입은 혈객들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올 때 이미 운호 일행은 포위망을 벗어나고 있었다.

천검구혈객이 절대고수를 잡기 위해 키워진 특수 타격대였지만 포위망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운호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럼에도 혈객들의 무력은 대단했다.

단숨에 목숨을 끊기 위해 전력을 다한 공격은 아니었으나 혈객들은 잠시 튕겨난 후 곧바로 후미에서 움직이는 운상과 운여를 향해 검을 날려 왔다.

그들의 검에서 생성된 붉은 검기들이 피로 물든 운상과 운여의 신법을 따라잡으며 치명적인 공격을 가해 왔다.

그들만이 아니다.

급하게 추격해 온 삼필사의 신형은 가히 폭발적이었기 때문에 금방 전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 움직였다가는 운상과 운여는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야 했다.

그랬기에 앞장서서 달리던 운호의 신형이 독수리처럼 비상하며 뒤로 떨어졌다.

콰쾅… 쾅… 쾅!

하늘에서 떨어진 검기의 물결.

시리도록 아름답고 잔인한 소멸의 기운이 막 운상과 운여를 공격해 온 네 명의 혈객을 덮쳤다.

단 일격.

그 일격에 혈객들이 핏덩이가 되어 뒤로 날아가 바닥에 뒹굴었다.

그들은 쓰러진 후 더 이상 일어서지 못했다.

삼필사를 필두로 그 뒤를 따르던 혈객들과 백여 명의 천검회 무인이 그 일격에 추격을 멈췄다.

당당하게 서서 검을 빼든 채 그들을 바라보는 운호의 모습은 전신(戰神)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황당한 눈으로 멈춰 선 삼필사의 신형은 마치 얼음처럼 굳어져 있었다.

구혈객과 붙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이긴다 해도 쉽게 이기지는 못한다.

화검제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구혈객은 그들 셋과 붙으면 백여 초 이상 싸워야 겨우 이길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무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더군다나 구혈객이 익힌 천검진이 발동되면 이긴다는 보장조차 할 수 없는 절정의 무인들이었다.

그런데 단 일격에 넷이나 절명을 하고 말았다.

놀라움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두려움이었다.

절대의 무력을 지닌 자에 대한 두려움은 전신을 위축시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올가미를 만들어냈다.

추격이 멈추자 운호는 힐끗 일행의 뒷모습을 확인했다.

이미 친구들은 삼십여 장이나 앞쪽에서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운호의 입에서 살벌한 음성이 흘러나온 것은 좌측 끝에 있던 혈객이 깔아놓은 기세를 이겨내고 꿈틀거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따라오지 마라. 굳이 죽이고 싶지 않으니. 이쯤에서 그만 두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마검이 황수전투에서 대단한 신위를 보였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하지만 우리는 삼필사다. 혈객 몇 죽인 것 가지고 너무 오만한 소리를 하는구나. 더군다나 너희들은 이미 천라지망에 갇혀 있다. 꿈틀거려 봤자 죽는 건 변하지 않는다.”

두려움에서 벗어난 백사가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려 운호를 겨냥했다.

그와 두 명의 노인은 운호가 뿜어낸 광포한 기운을 어느새 이겨내고 당당히 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과연 삼필사.

강서와 귀주를 오가며 무적을 구가했던 그들의 무력은 허명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다.

운호는 삼재진을 형성하며 다가오는 삼필사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 순식간에 상황 판단을 끝내고 뒤로 날아갔다.

혈객들을 잡은 것은 부상당한 운상과 운여가 추가적인 부상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지, 여기서 추격자들과 끝장을 보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삼필사가 살기를 뿜어내고 다가오자 지체 없이 친구들을 따라 신법을 펼쳤다.

백사의 말대로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다면 운상과 운여의 앞에 막강한 적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운호가 뒤로 날아가자 흠칫 놀란 삼필사가 삼재진을 풀고 급히 극한으로 신법을 펼쳐 운호를 추격했다.

도주하는 운호도, 추격하는 삼필사도 신법의 빠르기가 번개 같아 신형이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운호의 신형이 귀신처럼 멈춘 것은 오십 장을 달린 후였다.

걸려들었다.

운호가 급하게 방향을 틀어 도주한 것은 나머지 적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삼필사를 잡기 위함이었다.

기회가 날 때마다 최대한 적들의 전력을 깎아내어야만 천라지망의 위력이 감소될 수 있다.

특히 삼필사 같은 자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 포위망을 뚫는 것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삼필사가 자랑하는 포궁삼재진이 펼쳐지기 전에 일격에 때려잡는다.

그런 생각으로 운호는 회전한 자세 그대로 회풍의 탄자결을 펼쳤다.

셀 수 없이 생성된 원형검기가 화살처럼 쏘아져 세 사람의 신형을 노리고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삼필사의 신형이 멈칫하는 것 같더니 폭발적인 속도로 운호의 검기를 향해 뛰어들었다.

역시 고수.

그들은 그 짧은 순간에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극도로 내공을 끌어올려 회풍과 부딪쳐 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치명적인 실수로 나타났다.

운호의 회풍은 강간이 깨지기 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 상태였다.

더군다나 그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전력을 다하지 못했다.

그르릉… 쾅!

세 가지의 붉은색 검기가 운호의 회풍과 충돌하며 천둥 같은 굉음을 울려냈다.

양쪽으로 튕겨 나간 신형들.

운호는 일 장이나 비틀거리며 튕겨 나가 우뚝 섰지만 삼필사는 그렇지 못 했다.

하나는 쓰러져 일어서지 못했고, 하나는 무릎을 꿇은 채 끊어진 왼팔을 부여잡고 있었다.

백사는 가슴이 길게 찢어진 채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믿겨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강호에 나와 종횡한 지 사십 년.

수많은 싸움을 했고 많은 부상을 당했지만 이토록 일방적으로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심 백대고수들을 향해 도발할 정도로 그들의 무력은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만큼 약하지 않았다.

그들의 최대 무기인 포궁삼재진으로 맞서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억울했다.

뒤돌아 미련 없이 떠나는 운호를 보면서도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 억울해서 그의 노안에 투명한 눈물이 맺혔다.

동생들의 신음 소리가 마치 엄마 잃은 사슴의 울음처럼 애처롭게 들려와 그는 두 눈을 꽉 감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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