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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00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풍운사일 100화

바람에 의해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갈대숲의 바다, 그리고 바다에 둘러싸인 외로운 섬처럼 불쑥 솟아오른 둔덕.

두 사람이 서로의 병기를 꺼내 들고 마주 서자 평야를 휩쓸며 지나던 바람이 구릉지를 비켜서 휘돌아 나갔다.

달빛은 유유하고 도도하게 흘러 갈대숲을 하얀 빛에 젖게 만들었고 구릉지는 두 사람이 내뿜은 기세로 인해 서서히 진공 상태로 변해갔다.

패천일도 성사일과 황수의 풍운아 점창의 마검.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든 문단벌의 결투가 교교한 달빛 아래서 시작되고 있었다.

절대고수들의 대결.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이 놀라고 지축이 울린다.

그들의 대결은 드넓은 구릉지를 쑥밭으로 만들며 그렇게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검기와 도기가 서로 물고 물리며 똬리를 틀었고 초식과 초식이 부딪치며 무한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살아서 움직인다.

그들의 검과 칼은 마치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절대고수들의 손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였다.

밀리지도 밀지도 못하는 싸움.

그럼에도 어떤 싸움보다 살벌했고 어떤 싸움보다 강력했다.

운호는 한 시진이 지나면서부터 분광을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는 유운과 사일의 중삼식만 운용하며 버텼으나 성사일의 검기가 점점 짙은 묵빛으로 변해갔기 때문에 분광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도, 패천일도 성사일도 점차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귀왕과의 싸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결투였다.

귀왕은 살기를 담지 않았기 때문에 힘에 부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으나 성사일의 묵룡도는 한 초식 한 초식 부딪칠 때마다 온몸이 저릴 정도의 충격이 왔다.

조금의 여유도 없고 한 치의 호흡도 섣불리 흩뜨리지 못할 만큼 패천일도의 칼은 무서웠다.

무인으로 살아오며 키워온 담력은 강철과 같았고 지옥 같은 훈련에서 살아온 세월들은 그에게 굳은 의지와 강한 심장을 갖도록 만들었다.

누구도 두렵지 않다. 그리고 반드시 이긴다.

또다시 반시진이 지났다.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지독한 혈투였다.

패천일도의 묵룡도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운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을 때였다.

하늘에서 벼락처럼 떨어지는 일곱 개의 검은 도기를 향해 운호는 삼 검을 뻗어냈다.

삼 검이 육 검으로 변했고 마지막에는 십이 검으로 변했다.

검들이 분산되며 뻗어 나가는 광경은 가히 충격적이었고 도기와 충돌하는 검기의 강력함은 압도적이었다.

콰앙…!

충돌로 인한 여파가 구릉지에 퍼져 나갈 때 두 사람의 신형도 휘청하며 뒤로 세 발자국씩 후퇴했다.

운호가 회풍을 꺼내든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패천일도의 검어질 대로 검어진 묵룡도기를 향해 운호의 검기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회전의 중첩.

원과 원이 끊임없이 맴돌며 생성하고 소멸하며 묵룡도기를 향해 파고들었다.

화탄이 터지는 것과 같은 무시무시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고 경기가 사방을 휩쓸었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무인들의 대결.

경기에 휩쓸린 토사들이 허공을 뿌옇게 물들였고 검기의 물결이 공간을 찬란하게 수놓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형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광폭하게 움직이며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신형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신형이 뚜렷해졌다.

그런 후 점점 속도가 둔해지며 도검의 움직임이 시야에 잡혔다.

지쳤기 때문이 아님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들의 검과 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기와 도기는 처음보다 훨씬 선명해져 이제 투명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점점 둔해지던 그들의 신형이 결국 멈춘 것은 그로부터 일 각이 더 지난 후였다.

두 사람의 얼굴은 득도한 고승처럼 더없이 평온해져 있었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귀왕을 잡은 게 이제야 이해가 간다.”

“고맙소.”

“이제 끝을 보자.”

“기다렸소. 일도께서는 비기를 보여주시오.”

“그걸 걱정했느냐. 염려하지 말거라. 너는 묵룡망을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전력을 다해 보여 주겠다. 조심하도록.”

“나 역시 아직 펼치지 않았던 최후 초식 회풍의 멸(滅)을 보여주리다.”

운호의 말을 들은 패천일도의 입에서 기꺼운 웃음이 떠올랐다.

처음과는 다르게 한 올의 경시도 담겨 있지 않은 웃음이었다.

무인으로서 상대를 인정한다는 건 성사일 같은 절대고수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운호를 향해 기꺼움을 숨기지 않았다.

“내 생전 너와 같은 자와 칼을 섞은 적이 없다. 참으로 아쉽다. 너와 같은 자를 내 손으로 죽이게 되다니…….”

패천일도의 칼이 천천히 들려서 진격세를 넘어 천단세로 변했다.

하늘을 가리키고 있던 칼이 저절로 진동하기 시작한 것은 운호가 가볍게 얼굴을 찌푸리며 흑룡검을 좌방에서 끌어올려 가슴으로 가져왔을 때였다.

위잉…!

묵룡도가 사람의 혼을 자극하는 굉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칼의 울음소리.

귀부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섬뜩하고 소름끼치는 소음이 먼저 운호의 귀를 자극한 후 하늘에서 도망이 떨어져 내려왔다.

검은 빛의 그물이었으나 보이지 않는 암기였기에 운호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텅 빈 하늘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죽음의 기운이었다.

운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런 후 호흡을 멈추고 하늘을 향해 흑룡검을 찔렀다.

너무 단순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단순한 발검에 운호가 쥔 흑룡검의 검첨에서 원이 생성되며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하늘로 올라간 원이 흑빛의 도기에 부딪친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발생한 일이었다.

섬광이 먼저 들렸고 곧이어 폭발이 터졌다.

그르릉… 쾅! 쾅!

운호의 검에서 솟구친 원은 패천일도의 묵룡망에 부딪치자 순식간에 확산되며 도기의 그물을 찢어버렸다.

전력으로 공중으로 떠올라 마지막 비기를 펼쳤던 성사일의 신형이 튕겨지며 둔덕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채 비탈면으로 튕겨 나간 그의 신형은 한동안 죽은 듯 꼼짝하지 않았는데 온몸이 만신창이로 변해 있었다.

운호의 마지막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운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슴을 길게 베였고 팔다리에도 각각 두 군데씩 상처를 입은 운호는 둔덕에 쓰러져 꼼짝하지 못했다.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입에서 시커먼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의 초점은 잡히지 않았고 팔과 다리는 경련 속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양패구상이다.

그 누구도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중상을 입었으니 이제 그들의 목숨은 풍전등화나 다름없게 되었다.

누구든 적에게 노출되는 순간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에 몰렸으니 이제 죽고 사는 것은 그들의 손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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