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8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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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80화
한설아는 운호 일행과 헤어진 후부터 사형들을 따라 전력으로 신법을 펼쳤다.
사숙인 만수자가 워낙 서둘렀기 때문에 두 시진에 달하는 거리를 한 번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사문에서 내려온 사숙들과 사형들이 그들을 기다린 것은 광원으로 진입하기 바로 직전인 혼천이었다.
사숙의 서두름에 매우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았지만 설마 만호자와 네 명의 사숙이 내려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만호자는 청성이 만송자와 더불어 천하에 자랑하는 청성이절 중 한 명이다.
그의 명호는 파혼검(破魂劍)으로 무림백대고수에 속한 절대검객이다.
내심의 긴장은 만호자와 사숙들, 그리고 서른에 달하는 사형들의 가세로 순식간에 풀렸고, 대신 오랜만의 해후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해후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땅거미가 어둑해져 사람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할 때 적들은 마치 유령처럼 나타나 그들을 포위해 왔다.
이백에 달하는 청갑의 괴인.
단창을 소지한 청갑의 괴인들은 이십 명이 한 조가 되어 십방을 차단하며 다가왔는데 그 기세는 숨이 막힐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들의 전면에 선 일곱 명의 복면인이었다.
중강에서 본 단황야란 인물뿐만 아니라 그와 비슷한 복장을 한 여섯 명의 검객은 가히 폭풍 같은 기세를 흘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청성의 무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만호자와 다섯의 만자배 무인이 있었고, 서른셋의 일대제자가 포진했으니 웬만한 문파는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는 전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싸움이 벌어진 후 일각이 지나면서 깨져 버렸다.
적들의 무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했고, 특히 황금 번개 문양의 검객들은 만호자를 비롯해 만자배 사숙들을 완벽하게 차단해 청갑괴인들에게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일대제자만으로 청갑괴인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공격은 괴이하고도 독했고, 워낙 인원수의 차이가 컸기 때문에 지속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상황이 변한 것은 불과 이각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비록 불리했지만 싸움을 포기할 거란 생각을 갖지 않았는데 그녀의 예측과는 달리 사숙들은 네 방향으로 흩어지며 포위망을 뚫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적들의 강력한 공격도 원인이었지만 만수자가 지닌 상자를 지키기 위함이 분명했다.
사로의 도주와 사로의 추적.
그녀가 속한 도주로를 이끈 것은 만호자였고, 적의 선두에는 단황야가 있었다.
만호자는 무조건 도주한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돌아서서 적들을 향해 공격을 시도해 청갑괴인의 숫자를 줄였다.
일대제자들의 안전과 적의 추적을 가급적 늦추기 위한 노력이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처음에만 빛을 발했을 뿐 단황야가 적극적으로 대응해 오자 헛된 수고가 되어 산으로 들어가는 둔덕에서 결국 적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치열한 접전.
사십 명에 둘러싸인 일곱의 청성무인은 필사적으로 공격을 막아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수세에 몰렸다.
청갑의 괴인들을 열이나 베었지만 청성 쪽도 셋이나 죽었다.
남은 것은 넷이었으나 몸이 성한 채 움직이는 건 만호자 하나뿐이었다.
악전을 거듭했으니 서너 군데 상처를 입어 나머지는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한설아도 마찬가지.
그녀는 왼팔과 옆구리, 그리고 허벅지에 부상을 입어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만호자가 단황야의 공격을 뿌리치고 서쪽으로 몸을 날린 것은 그녀가 공격해 온 청갑괴인의 가슴을 찢은 후 뒤로 물러설 때였다.
설마했으나 만호자는 슬픈 눈으로 그녀를 한 번 바라본 후 지체 없이 단황야를 뒤에 매달고 둔덕을 벗어났다.
그것은 백건을 비롯해서 악전고투하던 유혁도 마찬가지였다.
망설이지 않은 후퇴.
각자의 방향을 잡은 그들은 청성의 독문신법인 암향표를 펼쳐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설명은 길었으나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인은 눈과 눈으로 말하고 몸과 몸으로 뜻을 주고받는다.
만호자가 그들을 봤을 때 만수자가 들고 있던 상자가 그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은 도주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녀와 사형들은 즉시 그 의미를 눈치챈 후 즉시 몸을 날렸다.
청성의 일절 암향표는 평지보다 산과 같은 지형에서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신법이다.
그랬기 때문인지 전력을 다해 신법을 운용하자 여섯 명의 추적자가 순식간에 오 장 거리로 벌어졌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대로라면 추적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최선을 다해 연신 몸을 날렸다.
어둠은 그녀의 편이었으나 시간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왼팔의 상처는 그런 대로 버틸 수 있었지만 옆구리와 허벅지의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다.
이대로라면 당할 수밖에 없다.
놈들의 무력은 셋은 어렵고 둘은 충분히 감당이 된다.
더 기력이 떨어지기 전에 놈들을 분산시켜 기습으로 잡는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그녀는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반격할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전력으로 암향표를 펼쳐 이십 장 간격까지 벌여놨기 때문에 놈들은 그녀의 행적을 알지 못한다.
행적을 알지 못한다는 건 정확한 방향도 모른다는 뜻이다.
추적의 기본은 적의 동체가 확인되었을 때 빼고는 언제나 분산이 최적의 방법이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건 도주자가 무사히 도망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행동과 다름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놈들은 예상대로 순식간에 세 갈래로 방향을 정해서 추적해 왔다.
방향이 갈린다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놈들의 간격이 벌어진다는 걸 의미했기에 한설아는 아픈 몸을 이끌고 계속해서 몸을 날렸다.
그런 후 반각이 지난 후 바위틈에 몸을 숨겼다.
이 정도면 반격을 통해 놈들을 주살한다 해도 나머지 적들이 즉시 지원할 수 없는 거리를 확보했다는 판단이 들었다.
숨을 죽인 채 검을 빼 들고 기다리자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옷자락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가 숨은 바위 위로 청갑의 사내가 뛰어오르는 게 보였다.
앞의 놈은 보내고 뒤의 놈을 덮쳤다.
뒤를 따르던 자는 앞장선 자가 무사히 지나가자 방심을 한 상태에서 한설아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단 일격에 쓰러져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삐익!
앞장섰던 자를 공격하기 위해 검을 올릴 때 놈은 벌써 호각을 분 후 단창을 마주 뻗어오고 있었다.
여기서 시간을 끌면 더 이상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고 있다.
청명심법을 극도로 끌어올렸고, 그녀가 익힌 청운적하검 중 가장 위력이 강한 전신회추(轉身回由)를 펼쳤다.
선풍이 먼저 불며 검기를 회전시켜 적의 오대 사혈을 한꺼번에 노렸다.
강력한 일격.
청갑괴인도 피할 수 없는 공격이란 걸 느꼈는지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단창을 일곱 번 연속으로 찔러왔다.
콰앙!
정상의 몸이었다면 일 초에 쓰러뜨렸을 테지만 내력이 중간 중간 끊어졌기 때문에 놈의 가슴에 상처를 냈을 뿐 죽이지는 못했다.
그랬기에 그녀는 다시 한 번 도약하며 전신회추를 날렸다.
피가 먼저 뿌려졌고, 뒤이어 괴인의 몸이 고목나무 쓰러지듯 엎어졌다.
하지만 그녀 역시 놈의 창에 어깨가 찔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부상의 여파 때문이다.
옆구리의 상처는 몸을 경직시켜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조차 피하지 못하고 또다시 상처를 입게 만들었다.
내력을 전력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인지 아물었던 상처들도 다시 벌어지며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느낌.
자신의 피가 흘러 몸을 적시면 사람은 저절로 움츠러들게 되어 있다.
더군다나 적들이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한설아는 마지막 힘까지 짜내어 서쪽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속도가 훨씬 느려졌다.
암향표의 신비로운 위력도 내력이 떨어지고 몸의 균형이 무너지자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적을 불러들인 것은 피비린내였다.
전신에서 흐르는 혈향은 적에게 이정표나 다름없었다.
두 명의 청갑괴인이 그녀의 좌측에서 내려찍듯 공격해 온 것은 불과 반의 반각도 지나지 않을 때였다.
급격히 방향을 돌리며 피했으나 충돌의 여파로 다섯 걸음이나 튕겨져 나갔다.
놈들은 시퍼런 눈을 빛내며 좌우에서 협공을 해왔는데 어찌나 절묘하던지 연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내력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은 탓이다.
병기가 충돌할 때마다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밀리니 제대로 된 싸움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한설아는 마지막 한순간 팽이처럼 회전하며 왼쪽에서 단창을 찔러온 자의 다리와 허리를 연환으로 베었다.
남아 있던 마지막 힘을 다한 공격.
그것을 끝으로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했다.
숨은 가빠오고 헛구역질이 자꾸 올라왔다.
움직임을 멈추고 땅에 눕자 찢어진 옆구리와 어깨를 관통당한 상처에서 고통이 쏟아져 나왔다.
청갑의 괴인은 헐떡이는 그녀에게 다가와 이를 드러내며 단창을 치켜들었다.
그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는데 사람을 죽이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눈이었다.
일말의 동정심도 없고 주저함도 없다.
하지만 괴인은 단창을 내리찍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다가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져 버렸다.
새로 나타난 자들은 사십 중반의 사내였다.
유독 청갑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눈에 띄던 자들, 바로 능외쌍마였다.
놈들은 처음부터 한설아의 도주로 후미에 처져서 따라오며 기회를 노렸다.
목적은 오직 하나. 한설아를 수중에 넣기 위함이다.
검은 안대를 한 손평이 득의의 웃음을 흘리며 형인 손칠을 쳐다봤다.
그의 칼은 쓰러진 괴인의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켈켈, 봐라. 내 말대로 됐잖아.”
“잘했다.”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하자고. 앞장서서 괜찮은 장소 찾아봐.”
“저년은?”
“내가 제압해서 업고 갈 테니까 걱정 말고.”
“좋아, 십전 중 하나를 먹는 행운이 오다니, 오늘 일진은 올해 중 최고인 것 같구나.”
손칠이 징그러운 웃음을 흘리는 동안 손평은 괴로워하는 한설아의 혈도를 제압한 후 들쳐 업었다.
그런 후 먼저 몸을 날린 손칠을 따라 바위와 바위틈을 헤집고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들이 신형을 멈춘 것은 바위 군에서 벗어나 울창한 나무 사이로 아늑하게 수풀이 펼쳐진 평지였다.
손평은 한설아를 수풀에 내려놓고 아혈을 풀어주었다.
여인의 탄성이 없는 운우지락은 재미를 반감시키는 법이다.
땅에 눕혀진 한설아의 표정이 사색으로 변하며 비명이 흘러나왔다.
“뭐하는 짓이냐!”
“흐흐, 너 같은 예쁜 계집을 두고 우리가 뭘 할 것 같으냐.”
“능외쌍마…….”
“오호, 이제야 우리가 누군지 알아본 모양이군. 잠시만 기다리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마.”
“내 몸에 손대는 순간 난 죽는다.”
“어차피 주는 것, 순순히 주는 게 좋을 것이다. 처녀로 죽으면 썩지도 않는다고 하니 고이 벌리거라.”
“미친 새끼들. 청성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내서 죽일 것이다!”
“그런 게 두려웠다면 여기 있지도 않았다. 청성일미를 먹는데 그까짓 게 대수겠느냐. 뭐 해? 안 할 거야?”
손평이 손칠을 향해 말을 하고 슬쩍 뒤로 물러섰다.
장유유서.
그래도 형이라고 놈은 손칠에게 양보를 하고 구경하겠다는 자세로 두 발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언제나 하던 행동이었으니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손칠이 앞으로 나와 한설아를 향해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비록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지만 한설아의 몸매는 놈을 자극할 만큼 충분히 농염했다.
놈의 손이 움직인 것은 벌레가 몸에 들어온 것처럼 한설아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때다.
거침없는 손길.
상의를 벗겨내고 곧이어 바지를 벗겨내자 피에 물든 미끈한 피부가 눈앞에 나타났다.
저절로 침이 고이고 눈이 충혈되어 갔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여인을 강간하고 간살했지만 한설아처럼 아름다운 미녀는 처음이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 손칠이 부지런히 자신의 옷을 벗었다.
시간이 없었다.
얼른 일을 치르고 본진과 합류하지 않는다면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한설아의 비명은 이제 처절하기까지 했지만 놈은 그 비명이 교소로 들리는 모양이었다.
놈의 신형이 공중으로 튕겨져 나간 것은 불끈 솟은 낭심을 가운데로 밀며 한설아를 덮칠 때였다.
“능외쌍마 이 새끼들! 죽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