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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66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9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풍운사일 66화

연환십이참은 중첩의 원리가 근간에 있고 공격은 십방(十方)을 제압하는 데부터 시작된다.

그 십방의 제압은 일초부터 바로 운용되며 폭우이화정의 숫자와 내력의 강도에 따라 초식이 바뀐다.

연환십이참은 개별 초식의 운용보다는 초식과 초식이 연환될 때 위력이 커지고, 초식의 중첩이 많아질수록 막강한 위력을 나타내는 특징이 있다.

그랬기에 당문혁은 처음부터 다섯 개의 초식을 연환시켜 운곡을 공격했다.

고요하게 서 있는 운곡의 기세는 절정검객의 표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저 정도의 검객에게 서툰 공격을 한다면 순식간에 승부가 갈릴 위험이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그의 신형은 바람처럼 움직였다.

반격을 허용하지 않기 위함이다.

강력한 연환십이참의 위력을 뚫고 상대의 검이 자신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운곡은 벌 떼의 울음처럼 들리던 소음이 귓가로 닥칠 때에야 비로소 견적세를 무너뜨렸다.

상대는 당문이 자랑하는 암천 칠비의 수장이다.

한순간의 방심은 패배를 불러오고 점창의 명예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된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 훨씬 더 두려운 것은 사문의 명예가 당문에 의해 손상되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운곡의 검에서 숨죽여 기다리던 시퍼런 검기가 넘실거리며 일어섰다.

그 검기가 십방을 장악하고 날아오는 폭우이화정에 맞서 공간과 공간 사이를 완벽하게 차단하며 돌진한 것은 당문혁의 차갑게 내려앉은 눈을 확인한 후였다.

단숨에 격파하지 못하면 당한다.

적의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환된다는 것을 용화에서 봤으니 운곡은 곧바로 분광을 꺼내 들고 정면대결을 펼쳤다.

움찔.

칠성이 주입된 분광이 폭우이화정과 부딪치자 신형이 흔들리며 검의 전진을 방해했다.

강력한 힘이다.

충격의 여파가 끝나기도 전에 두 번째 공격이 파도처럼 밀려와 제대로 몸을 수습하지 못한 상태에서 충돌이 이루어졌다.

미처 균형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날아온 이파는 처음 것보다 더 강력해서 결국 한 걸음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숨 쉴 틈 없는 공격과 똑같은 양상의 반복.

문제는 충돌로 인한 결과가 처음보다 더 안 좋게 나타났다는 것뿐.

시간이 지날수록 운곡의 몸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으나 워낙 강력한 내력이 담겨 있어 제치고 흘렸는데도 폭우이화정은몸을 스치며 피가 흐르도록 만들었다.

공간을 장악하며 날아드는 폭우이화정은 너무 빨라 눈에 보이지 않았고, 상상하지 못할 만큼 강해져 운곡의 전신을 노렸다.

이대로 방어에 치중하다가는 당할 가능성이 컸다.

더군다나 이미 구성의 내력을 썼는데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기에 운곡은 지금까지 숨겨놨던 회풍을 꺼내 들었다.

승부를 볼 때였다.

운곡의 검에서 생성된 검기가 온 하늘을 누비며 회전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직선으로 날아오던 폭우이화정도 방향이 꺾이며 돌았다.

회풍을 기다린 것이 분명했다.

속도와 강력함으로 무장되어 있던 폭우이화정에 변화가 담기며 충돌의 위치가 수시로 바뀌자 회풍을 꺼냈음에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상대의 눈은 조금의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꿰뚫고 있었다.

운곡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다섯 번의 공격을 더 받았고 그보다 더 많은 상처가 다시 생겨 전신이 피로 물들었다.

여전히 당문혁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암기를 날리며 유령보를 펼쳐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반은 보이고 반은 보이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당문혁의 신형은 언제나 사선과 호선의 경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운곡의 신형이 유운신법을 펼쳐 날아간 것은 마지막 날아온 폭우이화정이 옆구리를 스쳐 지날 때였다.

극히 미세한 한 호흡의 차이.

방어를 도외시한 채 운곡은 폭우이화정을 검으로 받지 않고 몸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을 이용해 운곡은 마지막 승부를 걸었다.

분수처럼 솟구친 피가 운곡이 펼친 검기와 함께 사선과 호선의 경계선에 서 있는 당문혁을 향해 날아갔다.

예상치 못한 움직임.

지금까지의 흐름은 당문혁이 예상한 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동(動)이고 적은 정(靜)이다.

이것이 십이연환참의 기본이다.

강력한 공격으로 수세에 몰리도록 강요하고 쉼 없는 공격으로 반격의 빌미조차 주지 않고 적을 꺾는다.

강호의 일절로 불리는 이유.

아무리 고강한 무력을 지닌 자라도 십이연환참에 걸리면 눈앞에 피를 흘리고 있는 운곡처럼 결국 망신창이가 되어 쓰러질 수밖에 없다.

물론 방법은 있다.

단숨에 십방을 장악한 두 번의 연환 공격을 깨뜨리면 시전자의 신형이 적의 검에 노출된다.

그때 적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면 쓰러지는 것은 십이연환참을 시전한 자신이 되고 만다.

하지만 절정의 끝을 향해 다가서고 있는 자신의 공격을 한꺼번에 두 번이나 깨뜨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랬기에 운곡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며 천천히 숨통을 죄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운곡은 예상을 깨고 경계선에 선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작은 것은 주고 큰 것을 잡는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무인들이 가장 기본정신으로 삼는 사소취대의 원리.

하지만 운곡의 행동은 절대 사소취대라고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작게 잡아도 중상을 입게 되는 행동을 서슴없이 했으니 운곡의 행동은 사소취대가 아니라 사대취대라고 봐야 한다.

죽어도 지지 않겠다는 신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놀라움으로 눈이 찢어질 듯 커졌으나 당문혁은 입에서 나오는 신음을 억지로 참으며 지금까지 아껴두었던 구연참을 터뜨렸다.

고수의 타고난 본능은 이처럼 무섭다.

그 짧은 순간의 허물어진 균형을 노리고 운곡은 공중으로 도약했다. 당문혁은 자신이 가진 최대 비기 구연참을 서슴없이 꺼내 들며 마주 신형을 끌어올렸다.

허공에서 연작놀이처럼 수많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더불어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충돌음이 터져 나왔고, 그 여파로 땅이 흔들거렸다.

콰앙! 쾅! 쾅! 콰앙!

뿌연 먼지가 장안평을 휩쓸던 회오리와 섞여 비산해서 두 사람의 신형을 숨겨 버렸다.

그리고 한참 후.

먼지가 가라앉자 검으로 지탱한 채 무릎을 꿇고 있던 운곡이 천천히 일어나 쓰러져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당문혁을 향해 무심한 눈길을 던지는 것이 보였다.

승리를 했음에도 운곡은 혈인이 되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비무가 아니라 죽음을 두고 싸운 승부다.

문파의 명예를 두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쳤으니 운곡과 당문혁의 싸움은 비무가 아니라 일인전쟁이었다.

 

손에 땀을 쥐고 관전하던 당문과 점창의 무인들은 승부가 결정 나자 즉시 움직여 운곡과 당문혁을 각자의 진영으로 옮겼다.

운곡은 비틀거리며 두 발로 걸었지만 당문혁은 결국 업혀서 옮겨졌다.

누가 봐도 운곡의 승리였기에 점창무인들의 얼굴은 기쁨이 그득했으나 당문무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당문혁을 확인한 후 분노의 시선으로 점창무인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병기를 빼 들 기세.

그러나 앞으로 나서며 그들의 행동을 막은 것은 당추였다.

그의 얼굴은 굳어질 대로 굳어져 마치 석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훌륭한 솜씨였소. 하지만 내 사질이 방심한 부분도 보이는구려. 유리하다고 방심을 하다니, 쯧쯧.”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건가?”

“그렇다는 거요. 실력이 더 뛰어남에도 방심으로 인해 졌으니 안타까워서.”

“어쨌든 승부가 갈렸으니 이제 그만 헤어지는 것이 어떻겠나? 계속 봐야 서로 감정만 상할 테니 말일세.”

“…그럽시다. 하지만 입조심은 해줬으면 좋겠소. 다시 말하지만 실력이 떨어져서 진 것이 아니니 함부로 당문의 명예에 금이 가는 짓은 하지 않았으면 하오.”

“당추, 예전의 그대가 아니구나. 언제부터 무인의 자존심을 가문의 명예와 바꿨단 말이냐?”

“다른 말 할 것 없고, 약속이나 해주시오.”

어느새 붉어진 눈의 당추가 한 걸음 더 나왔다.

그는 어느새 기세를 풀어놓고 있었는데 뒤쪽에 포진하고 있는 호법들과 십팔혈룡, 뇌광십삼포 등이 모두 자신의 병기에 손을 얹고 있었다.

청문자의 대답 여하에 따라 이곳 장안평에서 끝장을 볼 수 있다는 의지를 그들은 숨기지 않았다.

가문의 명예는 비겁함도 가리게 만드는 명분이 되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청문자의 눈은 한 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네 말대로 그리해 주마. 그러니 조용히 돌아가라.”

“청문자의 이름으로 약속할 수 있겠소?”

“난 한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겠소. 그리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것이오. 그대도 점창의 명예가 달린 일이었다면 목숨을 걸었을 테니 말이오.”

“하긴 그럴 수도 있었겠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으니 그만하지.”

당추의 말에 의미 모를 웃음을 얼굴에 떠올린 청문자가 가볍게 혀를 차며 돌아섰다.

이제 당문과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가 등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확연하게 진 승부를 두고 억지 쓰는 당추의 모습에서 청문자는 당문의 모습을 보았다.

남의 피 값을 고스란히 챙겨놓고 깨끗하게 입을 닦아버린 당문과 당추의 모습이 중첩되어 더 이상 상종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돌아서서 곧장 점창무인들이 있는 쪽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뾰족한 음성이 그의 발길을 잡았기 때문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제8장 사랑, 눈물, 이별

 

 

 

 

 

 

 

 

 

 

 

 

 

 

 

 

가녀린 체구, 오색나비의 안면.

앞으로 나선 여인은 등을 돌린 청문자를 향해 날카로운 기파를 쏘아내어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돌아서는 청문자를 향해 기다렸다는 듯 깊숙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후 입을 열었다.

“저는 당문의 유성호접이라고 합니다. 칠비 중 한 명이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칠비 중 가장 강한 무인은 접니다. 사숙께서 왜 흑호 사형을 내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번 비무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칠비의 수장이 저기 있는 흑호가 아니란 말이냐?”

“풍운대의 수장도 마검은 아니지요.”

“흠, 그래서 어쩌잔 말이냐?”

“마검과 비무를 하게 해주세요.”

안면을 가렸음에도 별빛처럼 빛나는 그녀의 눈이 청문자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왔다.

한 올의 두려움도 없는 시선이다.

그랬기에 청문자의 시선이 그녀에게서 당추로 옮겨졌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냐는 의미와 정말 비무를 원하느냐는 물음이 담긴 시선이다.

운호는 운곡과 격이 다른 무인이다. 아무리 그녀가 칠비 중 가장 강한 무력을 지녔다 해도 운호를 이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쓰러진 당문혁처럼 중상을 입고 들것에 실려 후송될 가능성이 컸다.

다행스럽게도 당추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만하거라. 승부는 끝이 났다. 더군다나 점창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해주기로 했으니 더 이상 시비를 걸지 말라.”

“숙부님, 저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이번 비무는 점창과 당문의 이름을 걸고 싸우는 게 아니라 저 유성호접의 명예를 위해서 싸우겠어요. 마검, 어디 있느냐? 앞으로 나서라!”

당추의 만류에도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처음부터 작심한 모양인지 그녀는 당추의 손을 뿌리치고 앞으로 나서며 운호를 불렀다.

 

“뭐냐, 쟤는?”

“운호야, 너 아는 애냐?”

날카로운 소리가 장안평에 울려 퍼지자 운상과 운여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운호를 쳐다봤다.

그녀의 목소리는 쇠가 긁히는 소리처럼 무척이나 듣기 거북했는데 음성을 변조한 것이 분명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고 헤어질 마당에 갑작스럽게 나선 여인이 불러대자 궁금해서 미치겠다는 표정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운호도 마찬가지였다.

“모르는 애다. 더군다나 얼굴까지 가렸잖아.”

“그런데 쟤가 왜 널 불러? 너 뭐 잘못한 거 있어?”

“그러니까 답답한 일이지. 부르는 목소리에 가시가 박힌 걸 보니 좋은 일로 부르는 거 같지는 않네.”

슬쩍 입을 내민 운호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당운영을 쳐다봤다.

십 장의 간격이 떨어져 있고 그동안 운곡의 비무를 관전하느라 그녀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자신을 불러대니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

궁금했으나 쉽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이번 행사의 주관은 청문 사숙이 하고 있어 그의 명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점점 심해져 갔다.

“마검, 겁을 먹은 것이냐! 당문의 유성호접이 한판 붙자는데 왜 나오지 못하느냐! 마검이라는 명호가 부끄럽지 않으냐!”

몇 차례에 걸쳐 나오라고 소리치던 그녀의 입에서 점점 과격한 언사가 쏟아졌다.

이대로 있으면 무슨 말을 할지 모를 정도로 그녀는 안하무인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연 것은 운상이었다.

“아니, 저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갈수록 지랄일세. 사숙은 뭐하시는 거야? 그냥 가든가, 아니면 화끈하게 한판 붙도록 해주든가 하시지. 운여야, 운호 귀 막아줘라. 이러다가 내상 입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내도 아니고 여자에게 비겁하다는 소릴 연속으로 듣는 것은 분명 고역스러운 일이었다.

청문자에게서 신호가 온 것은 다행스럽게 운여가 정말 운호의 귀를 막겠다고 나설 때였다.

청문자 역시 그녀의 폭언을 더 이상 견디지 힘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예상과 달랐다. 그녀가 있는 중앙으로 걸어 나가자 돌아오던 청문자는 운호의 걸음을 멈추게 만든 후 이해하지 못할 말을 했다.

“운호야, 조심하거라. 몸에 상처를 내서는 안 된다. 특히 얼굴은 조금이라도 긁혀서는 안 돼. 무슨 뜻인지 알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싸우라는 거 아니었습니까?”

“저 아이, 조만간 혼인한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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