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5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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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58화
칠절문은 전왕이 의동생으로 삼은 일곱 명의 무인을 위해 지은 명칭이었다.
청무자에게 왼팔이 잘린 도절을 비롯해서 현재 청명자를 공격하기 위해 떠난 검절과 창절이 있고, 이곳 황수 공략을 맡은 권절이 그 안에 포함된다.
그리고 나머지 셋이 지금 운풍을 공격하고 있는 금월과 만도, 귀수였다.
이들 셋은 전부 독문 병기가 칼이기 때문에 금절, 만절, 구절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나이 순서로 따지자면 가장 아래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전왕과 그의 일곱 의형제.
어느 날 불쑥 사천에 나타나 청성과 당문이라는 거대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세력을 키우더니 불과 십 년 만에 천하를 갈라 지배하는 서른여덟 개의 세력에 당당히 포함되어 세상에 우뚝 섰다.
초창기 호사가들은 칠절문이 청성과 당문의 세력 다툼을 교묘하게 이용해 어부지리를 얻었다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누구도 그들의 힘을 의심하는 자가 없었다.
전왕을 비롯해 칠절과 칠대무력 단체의 장이 모두 절정을 넘어선 고수였고, 무력이 뛰어난 자들을 적극 영입해 극진히 대접했기 때문에 칠절문은 용담호혈로 변한 지 오래였다.
특히 전왕의 의동생들인 칠절은 그중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운풍을 공격하는 금월, 만도, 귀수는 사형제 간으로 그 합격술이 굉장히 정교했다. 한참 칠절문이 세력을 떨치기 시작했을 때 당시 사천의 저승사자라 불리던 살혈신권(殺血申拳)을 쓰러뜨려 무림을 깜짝 놀라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점창의 선봉 운풍의 오행진을 공격한 칠절문의 병력은 그들 셋을 비롯해 본단의 문주 직속부대인 삼십 명의 흑철객과 칠십의 황룡단이었다.
운풍은 호흡이 서서히 급해지는 걸 느끼며 안색을 굳혔다.
이것은 적들의 강력한 공격에 내력이 소모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제대로 된 싸움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몰리지 않았겠지만 방어에 주력하다 보니 힘든 싸움이 되고 말았다.
바로 그가 이끄는 오행진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자리를 이탈해서 삼절과 제대로 된 싸움을 벌이게 된다면 오행진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오행진을 공격하고 있는 흑철객들의 무력이 워낙 강력해서 삼절과 싸우는 와중에도 운풍은 수시로 검을 틀어 흑철객을 막아야 했다.
좋지 않은 상황.
전왕의 최측근 호위부대인 흑철객의 무력은 전부 주력 전투부대의 대주급 이상이었다.
더군다나 삼절이 집중 합격을 하고 있어 그는 악전에 악전을 거듭해야 했다.
벌써 명자배 제자 셋이 목숨을 잃어 연환진의 기능은 거의 상실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세 명만 더 전열에서 이탈하게 되면 그가 이끄는 오행진은 깨지게 된다.
싸움은 그때부터가 진짜다.
오행연환진으로 버티던 방어 전술이 깨지게 되는 순간 난전으로 바뀌게 되는데 그때까지 최대한 적의 숫자를 줄여놓아야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다.
아직까지 점창의 오행연환진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적을 죽인 만큼 아군의 피해도 발생하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반 시진.
이런 흐름이라면 난전은 반 시진 이내에 찾아온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최대한 내력을 아껴 결정적인 순간에 대비할 필요성이 있었다.
두 번째 목표인 십오천강을 해치우는 데 벌써 두 군데의 상처를 입었다.
다행스럽게 상처를 입은 곳은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부위였지만 응급처치로 피만 멈추게 했을 뿐이었다. 치료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통은 사정없이 그의 몸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럼에도 운호는 상처를 붕대로 싸매고 분연히 검을 들었다.
문제는 운상이었다.
허벅지의 상처가 제법 커서 붕대를 감았음에도 피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갈 수 있겠어?”
“간다.”
“그래, 장하다. 가자.”
힘들고 괴롭다 해서 멈출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형제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있었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서둘러야 했다.
그것은 부상이 심한 운상도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우측 생문을 통해 진 밖으로 뛰쳐나가자 적들의 공격이 불끈 다가왔다.
망설이지 않았다.
단박에 해치우고 목표한 자들을 주살해야만 이길 수 있었다.
운호의 검이 팔방을 점유하며 다가오는 자들을 향해 터졌다.
섬전의 속도는 점점 빨라져 이젠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월파의 물결은 거의 일 장을 치고 나가 적들을 쓸어버렸다.
그야말로 폭풍과 같은 진격.
후위는 운상에게 맡겨놨기 때문에 운호는 오직 앞만 보며 달렸다.
비록 부상을 입었다고는 하나 운상의 검은 아직도 생생히 살아 후미의 적들을 제거하며 운호를 호위했다.
불과 일각 만에 십여 명의 적을 제거하고 목표로 한 중앙의 도객들에게 다가갔다. 그때 막강한 기세를 가진 자들이 앞을 가로막은 채 포위했다.
바로 흑철객들이었다.
서른의 흑철객은 적의 접근을 확인하자 즉시 반으로 나뉘어 포위망을 구축해 왔다. 그 기세가 십오천강 못지않았다.
그러나 운호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포위망에 사로잡히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될지 몰랐다.
그랬기에 운호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곧장 분광을 꺼내어 전면을 가로막은 세 명의 흑철객을 향해 쇄도했다.
콰앙!
싸움을 함에 주저함을 갖지 않겠다.
한번 내린 판단을 의심하게 되면 적객들과의 싸움에서처럼 상처를 입게 되고 위험에 빠질 것이니, 오직 단호한 결단으로 전진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피와 바꾼 소중한 경험이다.
운호가 펼친 분광이 흑철객들의 칼들을 부수며 그대로 돌진했다. 그것은 뒤를 받친 채 오행진을 공략하던 황룡단 무인들까지 덮쳤다.
순식간에 세 명의 흑철객과 두 명의 황룡단 무인을 쓸어버린 운호의 검이 회전했다. 그리고 운상을 공격하던 좌방의 흑철객을 향해 쏘아졌다.
내력이 소모되는 한이 있더라도 단박에 숫자를 줄여놓아야 유리한 싸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운호는 연이어 분광을 펼쳐 또다시 두 명의 흑철객을 쓰러뜨렸다.
순식간에 다섯의 동료를 잃은 흑철객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도대체 저자는 누구기에 저토록 가공스런 무력을 보여준단 말인가.
놀람과 의문이 겹쳐진 표정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흰색 견장을 찬 사내의 짧은 고함 소리에 금방 정신을 차렸다.
죽음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사신을 눈앞에 두고도 전력을 다해 공격을 감행하는 그들은 수많은 전장을 누벼온 전사로서 손색이 없었다.
“운상, 우측을 맡아라!”
남은 열 명의 흑철객이 끝장을 보겠다는 듯 동시에 신형을 띄우자 운호의 입에서 고함이 터졌다.
운상은 부상의 여파 때문인지 행동반경이 극도로 축소되어 있었기에 방어의 범위를 줄여줄 필요가 있었다.
단숨에 끝장을 본다.
운호의 검이 울었다.
운상이 맡은 우방을 제외한 삼방을 향해 운호의 검에서 생성된 검기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검기가 돌고 돌아 공중에서 떨어지는 흑철객의 칼을 향해 솟구쳤다.
윙윙윙!
검이 울었고, 검에서 떨어져 나간 검기가 공간과 공간 사이를 휩쓸며 춤을 추었다.
크크크, 끼익, 피익!
격돌로 인한 충돌음은 흑철객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비명처럼 들렸다. 솟구친 피는 전권을 넘어 오행진을 공격하는 황룡단원들의 머리 위로 안개가 되어 뿌려졌다.
또 다른 진화.
전력으로 펼친 운호의 회풍은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경지를 선보이며 순식간에 일곱의 흑철객을 고혼으로 만들어 버렸다.
운호는 쓰러진 자들을 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황룡단 사이를 뚫고 죽음의 길을 만들어내며 거침없이 삼절을 향해 전진했다.
거칠어진 숨결조차 가다듬지 않은 채 신형을 날리는 그의 몸은 온통 피로 덮여 있었다.
내력을 전력으로 가동하자 막아놨던 혈이 뚫리며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격돌로 인해 새로 생긴 상처에서 나온 또 다른 피가 적들의 것과 섞여 그를 혈인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의 눈은 극도로 차가웠다.
이 전장에서 유일하게 형세를 관장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으니 얼음같이 차가운 심장으로 적의 숨통을 조여야 했다.
운호의 눈은 운풍의 것과 달랐다.
운풍은 삼절과 접전을 펼쳤고 선봉에 서 있기 때문에 다른 오행진의 상태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운호는 가장 후미부터 중앙까지 이동하며 싸웠기에 그 누구보다 정확한 형세 파악이 가능했다.
점창의 오행연환진은 앞으로 이각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난전으로 들어서면 숫자에서 밀리는 점창은 싸움에 이긴다 해도 엄청난 피해를 입고 말 것이다.
그것은 그도, 사문의 어른들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운호는 이를 악문 채 운풍이 버티는 중앙을 향해 유운신법을 펼쳤다.
운풍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세 절정고수의 연환 공격을 자리를 지키면서 받아냈고, 오행진의 방어까지 신경 쓰다 보니 벌써 다섯 군데나 상처를 입고 있었다.
급하다.
운호는 도약한 상태 그대로 운풍의 옆구리를 공격한 후 신형을 회전하며 돌아 나오는 금월의 등판을 향해 분광을 쏘아냈다.
정면으로 부딪쳐도 받아내기 어려운 공격인데 기습이었으니 오죽할까.
더군다나 금월은 만도와의 공수 전환 때문에 방어할 새도 없이 운호의 검기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의 반응은 눈부셨다.
기형적으로 몸을 꺾은 그의 칼이 세 개로 변하며 운호를 공격해 왔다.
동귀어진의 수법이자 오직 적의 심장을 찢어버리겠다는 필살 초식.
그 짧은 순간에 시전된 그의 칼은 굉렬한 도풍과 함께 운호의 전신을 노렸다.
하지만 상대는 운호였고, 그가 펼친 것은 분광이었다.
다른 초식이었다면 모를까, 금월의 무력으로 분광을 완벽하게 막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능선에서 전장을 관찰하던 당운영과 당문혁의 얼굴은 긴장으로 인해 잔뜩 굳어 있었다.
진정 엄청난 싸움이다.
무인으로 태어나 이런 전투를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행운이었다. 황수의 분지에서 벌어지는 경천동지할 싸움은 그들을 놀라움과 흥분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제일 먼저 벌어진 전왕과 청무자의 싸움은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황수에서 전왕과 청무자의 싸움만 벌어졌다면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을 것이다.
하지만 분지에서 벌어진 집단전은 그들의 싸움에서 눈을 떼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혹자들은 당문을 독과 암기만을 지닌 가문으로 오해하지만 그들은 또 하나의 커다란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진법에 대한 재능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진법이 그들 손에 있다고 알려진 만큼, 당문은 진법에 대한 조예가 어느 문파보다 깊고 넓었다.
그랬으니 점창의 오행연환진을 몰라볼 리 없다.
단순하고도 효율적인 진법.
저런 진형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절정의 무인과 일류무인이 적절한 혼재되어 있어야 하는데, 점창무인들의 무력은 그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팽팽하던 전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창 쪽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워낙 숫자에서 차이가 났고 칠절문 쪽에 절정고수들이 많다 보니 점창의 오행진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때 후미에서 나타난 두 명의 사내가 전장을 가로지르며 폭풍처럼 진격하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무력.
그들의 검은 일격 필살이고 대적 불가였다.
불과 반 시진 만에 그들에게 당한 숫자는 오십에 가까웠다.
“저자, 정말 대단하구나.”
“그렇… 군요.”
“왜 그러느냐?”
“아니에요. 너무 놀라서 그래요.”
“하긴 나도 놀랐다. 저 나이에 저 정도의 무력이라니. 혹시 저가가 마검 아닐까?”
“그럴 리가요. 마검은 의빈에서 사라졌다고 했어요. 이곳까지 오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렇다면 저자는 누구란 말이냐?”
“…풍운대의 일원이겠지요.”
당문혁의 반문에 당운영이 말끝을 흐리고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봐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가 그녀와 같이 삼 일을 보낸 운호라는 사실을.
전신(戰神)이 되어 전장을 휩쓰는 그의 모습을 보자 저절로 몸이 굳어지고 정신마저 차릴 수 없었다.
유령단에게조차 당해 생사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었던 운호가 어찌 저런 무력을 보인단 말인가.
진정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의문은 잠시에 불과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걱정으로 인해 손에 땀을 쥐어야 했다.
엄청난 위력을 보이고 있지만 적들의 숲을 지날 때마다 그의 몸에도 상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몸에 상처가 생길 때마다 그녀의 몸이 움찔거렸다.
방금 전도 굉렬한 접전 끝에 비틀하며 물러서는 운호를 보자 저절로 몸이 경직되어 당문혁의 물음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문혁은 그녀의 대답이 확신의 부족에게 온 것이라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라면 양패구상이다. 점창의 오행진은 이제 일각도 버티지 못할 것 같구나.”
“특히 우방이 버티지 못하네요. 우방은 벌써 깨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구나. 쯧쯧, 앗!”
당운영의 지적에 안타까운 얼굴로 혀를 차던 당문혁의 얼굴에서 경악성이 흘러나왔다.
바람처럼 날아온 청수한 노인이 우방을 압박하던 칠절문 병력을 종축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마치 모래성이 물결에 휩쓸려 쓰러지는 것처럼 칠절문의 진형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신위.
노인의 검에서 발현된 검기는 일 척이 넘었다. 그를 막아선 자들은 폭풍에 휘말린 허수아비처럼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