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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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57화
점창무인들은 오행진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운호와 운상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워낙 격렬한 칠절문의 파상공격에 금방 의문을 묻고 싸움에 전념했다.
그들의 얼굴에 들어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불같은 투지뿐이었다.
지지 않겠다는 의지.
다시는 사문을 오욕 속에서 살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의지가 얼굴에 올올히 박혀 있었다.
점창의 오행연환진은 세 개의 오행진이 하나가 되어 방어선을 구축한다. 연환진 사이의 틈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적으로부터 완벽하게 포위되는 것을 막았다.
다시 말해 중앙을 비운 채 세 개가 한 묶음이 되어 연환진을 형성하고 벌어진 간격 사이로 적이 들어오면 연환진의 합공을 통해 격멸시키는 진형이다.
체력의 보완은 회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두 개의 오행진이 적을 막는 동안 후방의 하나는 체력을 보충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전방으로 나선다.
이런 이유로 점창의 오행연환진은 다수의 적으로부터 공격당했을 때 오랜 시간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는 절진의 면모를 갖췄다.
운호는 오행진이 만들어놓은 생문을 지나 칠절문의 진형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천강의 연환 공격에 십삼검 중에서 비교적 무력이 약한 운명자는 벌써 세 군데에 도상을 입고 온몸을 붉은 피로 물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운호는 번갈아가며 운명자를 공격하는 십오천강의 머리 위로 도약하며 칠검을 날렸다.
공격의 대상은 운명자를 공격하기 위해 접근하는 다섯의 천강이었다.
집중과 분산은 이토록 다르다.
천강보다 훨씬 무력이 뛰어난 구룡단원조차 운호의 일격에 주춤거리고 물러났다. 공격을 분산시켜 받아낸 천강들은 몸만 움찔거렸을 뿐 곧장 반격을 시도해 왔다.
하지만 이쪽도 운호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압력이 약해지자 기운을 차린 운명자가 반격을 시도했고 뒤이어 운상이 떨어져 내리며 천강들의 후미를 강타했다.
열다섯이 한꺼번에 공격을 했다면 모를까, 숫자가 나뉜다면 싸움은 훨씬 수월해진다.
더군다나 사형의 위기를 보고 급한 김에 다수를 상대로 검을 날렸기 때문에 현저하게 위력이 축소되었을 뿐 운호의 검이 무뎌진 것은 아니었다.
천강들의 공격은 집요했다.
순식간에 운호를 포위하더니 교묘하게 시차를 두며 지속적인 공격을 감행해 왔다.
왜 특수타격대란 별명을 얻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구룡단은 자신들이 지닌 강력한 무력으로 정면승부를 해왔으나 이들은 철저한 연환을 통해 공격과 방어를 병행하며 끈질기게 운호의 약점을 공격해 왔다.
역시 아직 운호의 경험은 일천하다.
적들이 지연작전을 펼치며 시간을 끌자 십여 초의 공방을 펼치던 운호의 검이 적정의 원리를 잃어버리고 광폭하게 변했다.
단박에 끝을 보고 운상과 운명을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이 검을 바쁘게 만들어 공격과 방어의 균형을 허물어뜨린 것이다.
그 결과는 심각했다.
천강의 연환 공격을 깨뜨리는 방법은 동시에 둘 이상을 잡는 것뿐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좌방에서 공격해 온 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우측의 셋이 지금까지의 방식을 깨고 한꺼번에 덮쳐왔는데, 그 위력이 워낙 강력해 피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볼 수 없던 공격.
절대고수를 잡기 위해 길러진 잔인한 늑대들은 이런 기회를 만들고자 지금까지 시간을 끌었던 모양이다.
실수를 했지만 후속 조치는 빨랐다.
전력으로 끌어올린 내력을 거둬들이기에는 늦었기에 운호는 좌방의 적을 향해 무섭게 돌진했다.
결행(決行).
이 한 번의 공격으로 좌방의 둘을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운호는 내력을 더하며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분광을 펼쳐 적들의 중간을 관통했다.
검기로 둘러싸인 운호가 통과하는 순간 적들의 몸에서 핏물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적정의 원리를 거둬 버린 운호의 검은 그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섬광이 터지고 적이 쓰러졌으나 운호의 신형은 멈추지 않았다.
쓰러지는 천강들을 뒤로하고 감락지부의 정예 속으로 뛰어들었다.
멈추면 당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감락지부의 무인들은 전위와 중위, 후위로 나뉘어 점창무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운호가 뛰어든 것은 그들의 중앙이었다.
그러나 빽빽하게 숲을 이루어 싸움을 지켜보던 감락지부 무인들이 인의 장막을 형성한 채 운호의 전진을 가로막았다.
그들 역시 무인.
싸움의 흐름을 단박에 알아채고 운호의 통과를 차단해 온 것이다.
그 잠깐의 방해는 운호의 등과 허벅지에 제법 큰 도상을 만들어냈다.
급하게 공중으로 솟구치며 방어 초식인 비화(飛花)를 펼쳤으나 뒤쪽에서 다가온 천강들의 공격이 몸을 훑고 지나간 후였다.
운상이 우려하던 부분이었다.
적의 진영에서 절정의 고수들을 잡는다는 것은 이런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운호는 연속으로 비화를 펼쳐 추가적인 공격을 차단하고 상처를 슬쩍 살폈다.
뼈가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커서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참 고단한 육신이다.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얼마나 많은 칼질을 당했는지 셀 수도 없다.
분광과 회풍은 위력이 강력한 대신 내력의 소모가 다른 초식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구룡단원들은 무력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분광과 회풍으로 상대할 수밖에 없었지만 만나는 자들마다 계속해서 후삼식을 쓴다면 내력은 급속도로 소모된다.
그것은 절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싸움이다.
수많은 적으로 둘러싸인 지금, 싸움이 끝나기 전에 전장에서 이탈하게 된다면 천추의 한으로 남게 될 것이다.
방금처럼 위기의 상황이라면 모를까, 최대한 내력을 아껴 싸움이 끝날 때까지 버텨야 했다.
비화에 이어 낙영(落英)과 무영(無影)으로 반격을 시도하자 일직선으로 다가오던 자들이 삼방으로 흩어지며 또다시 포위망을 구축했다.
하지만 둘이 죽었기 때문인지 그 압력은 훨씬 덜했다.
싸움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천강들은 구룡단원들에 비하면 그 무력 수준이 한 단계 아래인 자였다.
그럼에도 상처를 입은 것은 내력을 아끼기 위해 분광과 회풍을 쓰지 않은 것이 원인이고 천강들의 합격술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다.
상처는 입었으나 운호는 후회하지 않았다.
몇 개의 상처보다 내력을 보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앞으로도 이런 싸움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
몸에서 흐르는 피는 불같은 투혼을 불러일으켰고 얼음처럼 냉정한 이성을 가져다주었다.
이 싸움에서 더 강해질 것이고 더욱 강한 심장을 갖게 될 것이다.
천강들의 얼굴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
방금 운호가 보여준 일검은 그들의 두려움을 일깨워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운호가 분광을 펼친 것은 단 한 번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격은 컸던 모양이다.
일 초에 두 명의 전신이 폭파되는 것처럼 터졌다.
도대체 무슨 초식이기에 그 정도의 위력을 보인단 말인가.
그 초식이 또다시 시전된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들었지만 그들은 금방 신형을 교차시키며 칼을 돌리기 시작했다.
줄어들었던 압력이 천강들의 움직임으로 다시 살아났다.
사천을 종횡했다는 십오천강.
두려움을 이겨내고 금세 냉정함을 되찾은 그들의 의지는 인정해 줄 만큼 훌륭한 것이었다.
도객이 칼을 돌린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으나 운호는 그들의 전조가 승부수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들의 눈에서, 그리고 그들의 칼에서 피어난 살기가 이빨을 감추지 않은 채 고스란히 다가왔기 때문이다.
천강들이 돌리던 칼은 점점 빨라져 그 모습을 감춘 채 하나의 원이 되어 운호를 노렸다. 그러다 한순간 공중으로 솟구치며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세 개의 원, 그리고 세 개의 신형.
칼이 먼저였고, 그 뒤를 따라 어느새 비수를 꺼내 든 천강들이 전 방위를 차단하며 공격해 왔다.
운호의 이가 지그시 악물려졌다.
설마 칼을 던질 줄은 몰랐는데 적들은 목숨처럼 소중히 여겨야 할 병기를 미끼로 동귀어진의 수법을 펼치며 거침없이 접근해 왔다.
무인이라는 자들은 참 웃긴 존재다.
자신의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적을 죽이고 말겠다는 의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옆으로 처졌던 검극을 세우고 날아오는 칼들을 향해 섬전(閃電)으로 십이검을 찔렀다. 그 후 우측으로 삼 보 이동해 월파(月破)를 펼쳐 접근하는 좌, 우방의 적들을 베었다.
후방으로 오 보 후퇴하며 전방에서 다가온 자의 목을 친 것은 풍영이었는데 차분하게 가라앉은 운호의 눈은 시리도록 차가워 다른 사람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운호의 검은 더할 나위 없이 정교했고 무정했으며, 터무니없이 강력했다.
운상은 두 명을 죽인 후 나머지 천강들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운상의 칼질을 당해 등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운호는 지체 없이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운상보다는 사형인 운명이 더 위험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당한 상처가 제법 깊었는지 그는 두 명의 천강에게 둘러싸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운명은 세 명을 베었는데 거기서 또다시 상처를 입어 혈인으로 보일 만큼 상태가 좋지 못했다.
운호가 접근하자 두 명이 공격을 멈추고 대응해 왔다. 그러나 허공을 격하고 날아온 섬전은 그들의 몸을 튕겨낸 후 거침없이 진격해 심장을 갈라 버렸다.
고수를 잡기 위해 키워졌다는 천강은 진형이 허물어지자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동료들이 연속으로 죽어나가는 것을 목격한 후부터는 평정심조차 잃어버려 제대로 반격하지도 못하고 칼을 떨어뜨렸다. 마지막까지 운명을 공격하던 두 명의 천강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순식간에 나타나 적을 베어버린 운호가 다가서자 운명의 표정에서 놀람을 넘어 황당함이 나타났다. 치열한 공격을 받느라 전권을 확인할 겨를조차 없었는데 눈을 돌려보니 천강들은 운상을 공격하는 둘을 빼고는 전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중 일곱을 운호가 해치웠으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운호 너, 어떻게 된 거냐?”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게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다. 정말 내가 알고 있는 운호가 맞기는 한 거냐?”
“그럼요. 사형께서 알고 있는 운호가 맞습니다. 그러니 진 안으로 들어가서 지혈부터 하시지요. 여기는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고맙다. 금방 치료하고 나오마.”
분명히 놀라고 궁금했을 텐데도 운호가 자리를 대신해서 지키자 운명은 서둘러 진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무엇보다 적들로부터 사문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고, 운호가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했다.
이 정도의 무력을 지닌 운호라면 황수전투의 변수로 충분히 작용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운호가 생문을 지키는 동안 운상은 나머지 천강을 해치우고 절뚝거리며 후퇴해 왔다.
허벅지에 칼을 맞아 걷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운호의 얼굴이 잔뜩 찡그려졌다.
“어때, 따라올 수 있겠어?”
“괜찮다. 깊진 않아.”
“큰일이네. 너도 일단 들어가서 치료부터 해.”
운호가 말을 끝내자마자 허공을 격하고 칠검을 때려냈다.
운상의 뒤를 따라 감락지단의 병력이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병력의 물결이다.
운호와 점창무인들의 오행진에 막혀 끝없이 다치고 쓰러졌지만 칠절문의 공격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다가오던 자들이 운호의 공격에 셋이 한꺼번에 쓰러지자 감락지단의 무인들은 접근 대신 폭멸궁을 쏘기 시작했다.
접근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병기.
그러나 그것은 일반 무인들에게 해당하는 것이지, 운호처럼 절정의 끝을 향해가는 무인들에게까지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삼 장 범위에서 쏜 단사들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으나 운호는 비화(飛花)를 펼쳐 한 발도 남김없이 격퇴했다.
마음 같아서는 유운신법을 펼쳐 적진으로 날아가 한바탕 드잡이를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오행진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유혹을 뿌리치고 굳건히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운명이 나타난 것은 거의 일각이 지났을 때였다.
“운호야, 이젠 되었다. 내가 맡을 테니 너도 들어가서 치료해라.”
“운상이는 안에 있습니까?”
“너를 기다리고 있다. 안에서 들으니 계속 이동할 거라고 하던데 정말이냐?”
“그럴 생각입니다.”
“너 때문에 이 싸움이 조금은 수월해질 수 있겠구나. 그러나 조심해라. 무리하지 말고.”
“그러겠습니다, 사형. 이따 끝내고 뵙겠습니다.”
“고맙다. 도와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