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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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53화
용화궁(容華宮).
화성에 있는 칠절문의 본단을 사람들은 용화궁이라 부른다.
백여 채가 줄지어 늘어선 용화궁의 전각들은 화려함과 거리가 먼 대신 단순하면서도 웅장했다.
건물의 배치나 구조는 칠절문의 주인 전왕 혁기명의 성품이 그대로 투영되어 호탕하면서도 직설적이었다.
그 중심처의 한가운데 다섯 사람이 모여 있었다.
칠절문의 최고 수뇌부.
전왕과 총사 천수, 검절과 창절, 그리고 비각각주까지.
전위부대를 맡고 있는 수장들을 뺀 칠절문의 핵심들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단출하면서 정갈한 음식.
전왕은 틈날 때마다 이렇듯 측근들을 불러 식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여느 때와 다르게 분위기가 무척 무거웠기 때문에 자리에 앉은 사람은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무기는 어떤가?”
“다른 데는 괜찮은데 팔이… 왼팔은 봉합했으나 신경이 모두 끊어져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럼 못쓴다는 뜻이군.”
“구룡단주는 자신의 팔을 끊어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음.”
비각주의 대답에 전왕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양무기의 생각이 무슨 뜻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무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신경이 끊어진 왼팔은 반드시 잘라내야 한다.
자르지 않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든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왼팔을 항상 고정시켜야 되는데 그것은 잘라내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일이 될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자르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다.
팔을 자른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맞춰진 균형이 허물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 균형을 다시 맞추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니 괴롭고 힘든 나날을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팔을 자르면 무인으로 살 수는 있다.
그랬기에 전왕은 검미를 잔뜩 찌푸린 채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양무기의 의지가 마음속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운호에게 당한 구룡단주 양무기의 이야기가 나오자 좌중은 더욱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양무기는 전왕의 유일한 직전 제자였고 차기 유력 후계자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감정이 남달랐다.
그런 감정은 사람들의 표정에 고스란히 나타났는데 그것은 바로 분노였다.
그리고 그 분노는 전왕의 것이 가장 강했다.
“그놈이 원하는 대로 팔을 잘라줘라.”
“많이 힘들 겁니다.”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목숨을 끊는 것보다는 낫겠지. 장부는 복수를 위해 평생을 산다고 했다. 놈도 그렇게 할 것이야.”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비각주가 대답하고 입을 닫자 전왕의 눈이 천수를 향해 돌아갔다.
“총사.”
“예, 문주님.”
“놈은 찾았는가?”
“방금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자공에서 흔적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그래?”
“아무래도 놈들은 그곳에서 상처를 치료한 것 같습니다. 다시 도주하게 되면 후미가 불안해지니 이번에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누굴 보냈지?”
“귀수께서 십오천강과 함께 가셨습니다.”
“구룡단이 당한 건 십오천강도 안 된다는 뜻이다. 귀수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놈에게 지원군이 있다면 그들마저 위험해질 수 있어.”
“구룡단은 각개격파당한 것입니다. 정면 승부를 한다면 놈들을 잡을 수 있습니다.”
“곡성에 있는 금월과 만도를 그쪽으로 가라고 해. 가서 귀수와 함께 확실히 죽이라고 전해.”
“너무 과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황수로 가서 청무자를 잡아야 합니다.”
“내 말대로 해. 그들 대신 내가 청무자를 잡을 테니.”
“그렇게까지…….”
“공격 시간은?”
“내일 오시로 잡았습니다. 황룡단과 선룡단을 황수로 진출시켜 상락지단과 함께 청무자를 치겠습니다. 추궁지단을 노리는 청명자는 현재 양문에 있습니다. 여기 계신 검절과 창절께서 나머지 주력을 이끌고 그자를 잡는 것으로 계획했습니다.”
“괜찮군.”
“예상외로 점창의 힘이 강해서 상당한 피해가 예상됩니다.”
“그래도 놈들이 죽는 건 변하지 않는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당문을 끌어들이는 것은 실패했지만 다행히 청문자를 전장에서 빼냈으니 내일이면 운남은 우리 땅이 될 겁니다.”
운호와 운상은 날이 밝자마자 짐을 싸서 의방을 나섰다.
비록 운상의 몸이 완쾌되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 자공을 벗어날 필요성이 있었다.
한설아의 정보에 의하면 선룡단의 일대가 자공으로 들어와 자신들을 찾는다고 했다.
곧 추가적인 병력이 들어올지도 몰랐다.
그랬기에 그들은 곧장 시내를 벗어나 조천으로 방향을 잡고 신법을 펼쳤다.
감락으로 가는 경로에 설치된 칠절문의 조천지부를 깨뜨리고 우회하면서 권절이 수장으로 있는 감락지단의 외곽을 때릴 생각이다.
여기서 조천지부까지는 한 시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서두른다면 점심을 감락 근처에서 먹을 수도 있었다.
급격하게 신형을 날리던 운호의 몸이 새처럼 비상하면서 우회한 것은 실개천이 보이는 들판의 끝자락이었다.
자공을 벗어나면서부터 따르는 자들의 기척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대놓고 따라오고 있었다.
운호와 운상은 우회해서 추적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추적자는 운호가 불쑥 나타났음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얼굴이다.
“뭐요, 당신?”
“뭘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러나. 계면쩍게.”
“원래 거지들은 다 그리 뻔뻔하오?”
“얻어먹고 살려면 얼굴이 두꺼워야 되긴 하지.”
“도대체 당신의 목적은 뭐요? 정보를 주는 척하면서 사지로 몰아넣더니 이렇게 불쑥 다시 나타나고.”
“내가 준 정보는 사실이었네. 다만 구룡단이 그쪽으로 온다는 것을 몰랐을 뿐.”
“웃기는 소리!”
“정말일세. 만약 내가 양다리를 거치고 있었다면 어떻게 다시 자네를 보러 왔겠나.”
황만이 억울하다는 표정과 더불어 과장되게 몸짓, 손짓을 해대자 옆에 있던 운상의 인상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그는 이미 충분히 열 받은 얼굴이었다.
“여보쇼, 거지 선생.”
“거지는 선생이 없다네.”
“당신, 죽고 싶어? 우리가 물로 보이는 모양인데, 사람 잘못 봤다는 걸 가르쳐 주지. 어디부터 잘라줄까?”
“이보게, 검은 집어넣지 그래. 난 정말 호의로 왔다니까!”
운상이 슬쩍 검을 꺼내 들자 황만이 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두 걸음이나 물러섰다.
그는 적의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기에 검을 든 운상의 손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운호가 나선 것은 황만이 슬금슬금 물러나며 거리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수틀리면 바로 튈 기세였다.
여기서 개방의 거지를 잡는다고 해서 얻는 것이 없으니 도주하기 전에 용건부터 알아볼 필요성이 있었다.
“좋소. 그래, 왜 온 거요?”
“자네들에게 정보를 주려고 왔네.”
“이번에도 이중 정보요?”
“내 목숨을 걸고 보증하지.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번 역시 절대 아닐세.”
“그렇다면 들어나 봅시다. 도대체 무슨 정보요?”
“칠절문이 오늘 대대적인 공세를 펼칠 거란 정보가 들어왔네.”
“정말이오?”
“우리 정보에 따르면 화성에 있는 칠절문 본단 병력이 전왕을 필두로 모두 출발했어. 청문자가 용화에 발이 묶인 걸 기화로 공격할 계획이 분명하네.”
“전왕이 직접 나왔단 말이오? 그는 어디로 갔소?”
“황수, 청무자가 있는 곳이지. 그곳으로 전왕을 비롯해 선룡단과 황룡단이 가고 있네. 거기다 권절이 감락지단을 이끌고 합세하기 위해 출발했으니 이대로라면 청무자는 절대 버티지 못할 걸세.”
황만의 설명에 운호와 운상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권절의 감락지단이 움직였다는 것은 여기서 끝장을 보겠다는 칠절문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청문자의 부재를 노린 집중 파괴 전략이다.
“그렇다면 양문으로는 누가 갔소?”
“검절과 창절이 움직였네. 그쪽에는 나머지 칠절문의 사 개 전투부대가 모두 집결되었지.”
“으…….”
“그래도 그쪽은 좀 나은 편이야. 황수에 비하면 말이지. 하여간 청문자의 부재로 인해 점창은 엄청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을 거야.”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이유는?”
“점창이 칠절문의 오만을 꺾어주길 바라기 때문일세.”
“왜?”
“이유는 나중에 말해주지.”
“그렇다면 믿지 못하겠는데…….”
“나는 할 이야기를 모두 다 했네. 믿고 안 믿고는 자네들에 달렸다네.”
“흥!”
“아,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더. 자네들을 잡기 위해 칠절 중 무려 셋이 나섰네. 특수타격병기라는 십오천강과 함께 말이지. 아마 지금쯤 여기 어딘가까지 와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러니 몸조심하도록.”
정말 마지막이었던 모양이다.
황만은 말을 마치자마자 지체 없이 곧장 왔던 역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신법의 운용이 마치 허공에서 유연하게 선회하는 매의 모습과 닮았다.
그리고 그 속도 또한 번개를 무색할 정도로 빨라 금방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단순한 거지가 아니란 걸 알았지만 저 정도로 뛰어난 신법을 지녔다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운호와 운상은 황당한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저 거지, 믿을 수 있을까?”
“나도 칠절문이 움직일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빠르군.”
“운호야, 어떡하지?”
“전면전이 시작되면 기습작전은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도 참전을 해야 될 것 같다. 일군은 무정현 싸움에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전력이 약해져 있어. 그러니 우리는 황수로 간다.”
“황수라면 여기서 두 시진이 조금 넘는 거리야.”
“신응 쓸 수 있을까?”
“자공으로 다시 돌아가면 쓸 수 있어.”
“그럼 가자. 사숙들께서는 이 사실을 모를 테니 빨리 연락부터 해줘야겠다.”
“거지 얘기 못 들었어? 자공으로 삼절이 십오천강인가 뭔가 하고 같이 들어왔다는 말. 놈들 만나면 연락이고 뭐고 우리마저 위험해질 수 있단 말이다.”
“그래도 무조건 연락을 해야 하니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운호의 눈이 번뜩였다.
한 번 결정하면 후회하지 않는 성격을 가졌고 밀어붙이는 결단력도 남다르다.
그랬기에 그는 즉시 방향을 틀어 자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운청은 날이 밝아 떠나기 위해 인사를 온 운곡에게 한 장의 서신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읽어보라는 시늉.
운곡은 의아한 시선으로 서신을 받아 들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운곡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하다 마지막에 가서는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서신을 내려놓은 그의 눈이 운청을 향했으나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먼저 운청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자세다.
“운곡, 아무래도 네가 운호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상황이 이리 변했으니 어쩔 수가 없군요. 하지만 운호는 반드시 찾아야 하니 운여라도 보냈으면 합니다.”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 너희가 출발하기 전에 전서가 도착해서 그나마 다행이구나.”
“당문이 막으면 어쩔 생각이십니까?”
“사숙께서는 당문이 막지 않을 거라 하셨다.”
“협의가 되었다는 뜻이군요. 혹시 사형께서도 짐작하고 계셨습니까?”
“짐작이라기보단 언질을 받아놓은 게 있었다. 사숙께서는 그자들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놓으셨다.”
“돌아오고 계시겠지요?”
“직접 황수로 오실 거다.”
“천수의 의중을 정확하게 꿰뚫고 계셨으니 청문 사숙의 안목에 놀라울 뿐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출발은 언제 할 생각이십니까?”
“시간 싸움이니 반 시진을 넘으면 안 된다. 중간에 쉬지 못할 테니 그 시간 내에 식사를 모두 마치고 출발 준비를 마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