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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51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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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51화

운호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안위를 물어오는 여인의 미소가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햇살이 없음에도 눈이 부시다고 느낀 것은 그녀의 몸에서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후광 때문이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인은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는 광채가 뿜어 나온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는데 이렇게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정도로 여인은 아름다웠다.

“저는 괜찮습니다.”

“흉악한 자들이에요. 사람이 이렇게 많이 다니는 곳에서 나쁜 짓을 하다니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소저 덕분에 화를 면했습니다.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될지 모르겠군요.”

“사해가 동도라고 했으니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명호가 어떻게 되시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저는 청성의 한설아(韓雪霞)예요.”

“아, 청성의 여협이셨군요. 미처 몰라 뵈었습니다.”

운호가 새삼 한설아를 바라봤다.

청성파.

사천의 북부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천무삼십팔맥 중의 하나.

문파에 소속된 무인의 숫자는 점창의 두 배에 달하고 절정을 넘어선 고수 또한 수십을 헤아린다고 들었다.

사천의 맹주.

사천을 장악하고 있는 문파 중 실질적으로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문파가 바로 청성이다.

그러나 더욱 놀랄 일은 바로 그녀가 한설아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운호는 몰랐지만 한설아의 다른 이름은 바로 청성일미였다.

천하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열 명의 여인을 일러 무림인들은 호천십미라 불렀는데, 한설아는 바로 그 십전 중 한 명이었다.

바닥에 쓰러졌다가 엉거주춤 일어선 문신들은 한설아의 입에서 청성이라는 말이 나오자 사람들 틈을 헤집고 정신없이 도망쳤다.

놈들은 사신을 본 것과 같은 표정이었다.

한설아의 뒤쪽에서 팔짱을 낀 채 구경하고 있는 청의무복 사내들이 혹시라도 따라올까 봐 각기 흩어져 그야말로 미친 듯이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보며 운호가 입맛을 다셨다.

자신에게는 절대고수처럼 행세하던 놈들이 청성이란 한마디에 정신줄을 놓고 도망치는 장면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곧 표정을 풀고 여인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주관적으로는 아니지만 어쨌든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녀가 도운 것은 확실했으니 인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더불어 청성 무인이라면 사천에서 벌어지고 있는 칠절문과 점창의 싸움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을 터였다.

그녀는 그가 원하는 정보를 가졌을 가능성이 컸다.

“도움을 받았으니 신세를 갚고 싶군요. 마침 저녁때가 되었으니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어떠시오?”

“그러고 싶지만 일행이 있어서요.”

한설아는 슬그머니 뒤쪽에서 기다리는 사내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마침 그녀에게 손짓하며 빨리 가자는 시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운호는 사라져 가는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청성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했더라면 원하는 정보를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워낙 순식간에 사라져 잡을 새도 없었다.

못 잡은 것이 아니라 안 잡은 거였지만 결과는 같으니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강호 경험이 별로 없는 운호가 정보를 얻기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객잔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저녁때가 지나 허기가 몰려왔기 때문에 걸음에 속도를 더해 객잔을 찾기 시작했다.

힘들게 찾을 필요는 없었다.

세 집 건너 하나가 객잔이었다.

부유한 도시에 가장 많은 것은 객잔과 주루, 그리고 노리개를 파는 상점이었으니 객잔은 지천에 깔려 있었다.

객잔들을 확인하며 길을 걷던 운호는 쉽게 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자공에서 가장 큰 객잔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보를 얻기 쉽다는 판단이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운호는 천인로를 가로지르며 계속 걷다 한순간 걸음을 멈췄다.

이게 객잔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객잔이 눈앞에 척 나타났기 때문이다.

 

천지객잔(天地客棧).

천지객잔은 자공에서 가장 큰 곳이 맞았다.

더군다나 음식마저 맛있기로 유명해서 사람들로 항상 들끓었으니 운호의 판단은 정확했다.

문제는 여기에서도 자리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었다.

이렇게 커다란 객잔에 빈자리가 없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현실로 나타났으니 운호는 문가에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객잔의 점소이들은 운호가 들어섰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사방에서 불러대는 손님들의 고함 때문에 그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손님들은 꾸역꾸역 계속 들어와 빈자리를 찾기 위해 눈을 번뜩이고 있었으니 운호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풍현에서 당운영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기에 운호는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떠올리자 지금 뭐 할까 하는 궁금증과 문득 보고 싶다는 생각이 한꺼번에 생겼다.

당운영의 환한 웃음은 언제나 마음을 밝게 만들어주었다.

그나저나 이러다가는 밥 먹는 것조차 힘들 것 같았다.

자리는 계속 나고 있었지만 먼저 대기하고 있던 자들이 선점을 했다.

이럴 시간이 없다.

운상은 자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텐데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층으로 발길을 돌렸다.

객잔의 이 층은 부유층을 상대로 장사하기 때문에 음식 값이 무척 비싸다고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 층으로 올라서자 일 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쾌적감이 먼저 몰려왔다.

이래서 돈이 있어야 되는 모양이다.

점소이들이 아니라 예쁜 옷을 입은 소녀들이 시중을 들었고, 탁자의 배치도 훨씬 넓어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더군다나 시끌벅적했던 일 층과는 다르게 손님들의 수준 때문인지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도 가득 찬 건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구석에 빈자리가 하나 남아 있는 걸 찾아낸 운호는 빠르게 움직여 자리를 차지했다.

이곳에는 평상시에 먹던 소면과 만두가 없어 주문을 받으러 온 소녀에게 이 층에서 파는 음식 중 가장 싸고 맛있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하지만 소녀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얼빠진 얼굴로 운호만 바라볼 뿐이다.

천하의 미남자.

너무 잘생기고 멋진 것도 죄다.

심부름을 하는 소녀가 주문도 받지 않고 얼어 있었기 때문에 운호는 할 수 없이 옆 탁자에서 먹고 있는 걸 주문하고 말았다.

소녀가 돌아간 후에야 눈을 들어 천천히 장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목적이 있으니 그 목적을 이루게 만들어줄 대상을 찾기 위해서다.

운호의 눈이 커진 건 층계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확인했을 때다.

거기에는 한설아와 그의 동행으로 보이는 두 명의 청의무인이 막 계단을 올라와 자리를 찾기 위해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물론 원수는 아니지만 운호는 그런 심정으로 그들을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혼자서 사인용 탁자를 차지했기 때문에 셋이 더 합석해도 자리가 부족하진 않다.

마침 그가 손을 드는 걸 본 소녀가 일행인 줄 알고 그녀를 탁자로 안내해 왔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그녀와 일행은 운호를 확인하고서야 이해가 된다는 듯 표정을 풀었다.

그들이 다가오자 운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맞아들였다.

“오늘 따라 손님들이 많아서 빈자리를 찾기 힘들 겁니다. 제가 사는 것이 부담된다면 같이 앉아 식사라도 하시지요.”

“그렇지 않아도 오래 기다려야 될 것 같아 망설이던 중이었어요. 폐가 되지 않다면 그리할게요.”

“폐라니요. 제가 오히려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럼.”

한설아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앉자 나머지 사내들도 각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들은 미리 정해놓기라도 한 듯 음식을 주문하고 엽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야 운호에게 시선을 주었다.

날카로운 정광.

한눈에 봐도 고수다.

특히 오른쪽에 앉아 있는 자는 내력마저 감출 정도여서 그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조차 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삼십 전후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대단한 기세를 숨기고 있었다.

“나는 청성의 백건이고 이 사람은 내 사제인 청수라 하오. 만나서 반갑소.”

“저는 임호라고 합니다.”

“그렇구려. 어쨌든 신세를 지게 돼서 미안하오.”

“아니올시다.”

운호가 겸양을 표하자 백건이 마주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닫았다.

그리고 잠시 후 사제인 청수에게 뭔가 묻기 시작했다.

그들은 진명자라는 사람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꽤나 중요한 사안인 모양이었다.

운호의 눈이 잠시 사내들의 얼굴을 쓸고 난 후 한설아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사내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엽차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대화를 끊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자신도 볼일이 있으니 언제까지 입을 닫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한설아를 향해 슬그머니 말을 붙였다.

“자공에는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사문의 일로 왔어요. 말씀드릴 내용이 아니니 이해하시기를.”

“별말씀을. 질문이 적절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운호의 정중한 사과에 그녀가 들고 있던 엽차 잔을 내려놓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척 보면 안다.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심성도 착한 여인이란 걸.

사람의 성격은 얼굴에서 만들어지는 표정에서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표정은 어느 하나 나무랄 것 없을 정도로 착하고 순수했다.

더군다나 별빛 같은 눈은 그녀의 현명함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증표였다.

운호의 얼굴에서 웃음을 떠오른 건 그녀의 성격을 확인한 후였다.

“그런데 소저,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대답해 줄 수 있는 거라면 해드릴게요.”

“칠절문과 점창의 싸움에 대해 알고 싶은데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많은 걸 알지 못해요.”

“개략적인 거라도 말해주시오.”

“아직 전면전이 시작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도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단 말이오?”

“글쎄요, 남의 싸움이라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사천에 들어온 점창무인들이 움직임을 멈췄다고 해요. 소문에는 당문과 싸움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건 나도 들었소. 그렇다면 점창무인들은 용화에 있는 거요?”

“용화에 있는 건 청문자가 이끄는 점창삼군이고 나머지 일군과 이군은 양문과 황수에 있다고 해요.”

“아, 그렇구려.”

“당문주를 만나러 청문자가 간양에 갔다는 얘기도 들리더군요.”

“당문주를 왜?”

“협상 때문이죠. 당문이 막으면 점창은 칠절문을 칠 수 없으니 뭔가 제안을 해서 당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겠죠?”

“음, 그렇다면 칠절문이 곧 움직이겠구려. 점창의 전력이 용화에 묶여 있으니 칠절문에게는 기회가 되겠죠.”

뭐냐, 이 사람?

한설아의 머리에서 번뜩 떠오른 생각이다.

단 몇 마디에 상황을 정리하고 앞날에 대한 예측까지 흘러나왔기에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절대 흑사회 무리에게 겁박 받는 촌뜨기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막상 같이 앉아 대화를 해보자 진중한 성격에 상황 판단 또한 정확하다.

처음에는 자릿값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단순한 대답만 해었는데 점점 내용이 깊어지고 있었다.

한설아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운호의 전신을 천천히 살폈다.

한 치의 내기도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내공이 없다는 뜻인데 이상하게 철벽을 보는 느낌이다.

완벽하게 기세를 갈무리한다는 절대고수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으나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그럴 리는 없을 터였다.

자신의 감각에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이 사람이 너무 잘생겨서 그런가?

말도 안 되는 상상에 피식 웃음이 떠오르는 걸 억지로 참아야 했다.

어쨌든 뭔가 있는 사내다.

이야기의 주제는 칠절문과 점창의 싸움이지만 주로 점창에 관한 질문이 대부분이니 이 사람은 점창과 관련 있음이 분명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칠절문의 부대가 이동 준비를 하는 걸 보면 선공을 취할 공산이 커요.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건 왜 그렇소?”

“점창마검이 그들의 후미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에요.”

“점창마검이 누구요?”

“그는 며칠 만에 사천에서 가장 유명해진 사람이에요. 첫째날 유령단 십오 인 격살, 이틀 후 황룡단 격파, 사십삼 인 격살, 그다음 날 또다시 칠절문의 암천인 구룡단 사 인 피격 사살. 모두 그 사람 혼자 한 일이에요. 어때요? 대단하지 않나요?”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요?’

“그럼요. 구룡단은 칠절문의 최정예 무인들인데 혼자서 격파했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는 노릇이에요.”

“설마 혼자 했겠소.”

“칠절문은 지금 점창마검을 잡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중이라고 해요. 소문에는 전왕이 직접 나섰다는 이야기도 나돌 정도니 아마 사실일 거예요.”

“엄청난 사람인가 보오.”

“우리도 깜짝 놀랐어요. 점창에 그 정도로 대단한 고수가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거든요.”

“그래도 그렇지, 점창의 전력이 이탈된 좋은 기회를 칠절문이 내버려 두겠소. 시간 싸움이 될 텐데?”

“점창마검의 무력은 칠절문 주력전투부대 두 개의 힘과 맞먹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그런 자가 후방에 있다면 전면전을 치르기 힘들 거예요.”

“그럴 수도 있겠구려.”

운호가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자 한설아의 눈이 슬그머니 좁혀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자신의 욕심을 채웠는지 운호가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말투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살짝 높아졌다.

이번에는 그녀가 호기심을 풀 차례였다.

“자, 이제 말해보실래요? 왜 이런 것들이 궁금하죠?”

“나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오.”

“밀접한 관련이라… 그게 뭔지 궁금하군요.”

“소저가 말한 점창마검이 나를 지칭하는 것 같기 때문이오.”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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