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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48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풍운사일 48화

양무기의 칼에는 번개가 담겨 있었다.

칼이 떨어질 때마다 강력한 전기가 검을 타고 손바닥으로 파고들어 움찔움찔 운호의 움직임을 제어했다.

인간이 전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법.

이는 뇌진도법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능에 진기가 주입되면서 발생되는 현상임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운호는 물러서지 않고 양무기의 칼을 굳건하게 받아냈다.

적정의 원리.

황룡단주와의 대결에서 시험했던 적정의 원리가 양무기와의 대결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내력이 실린 칼이라도 이화접목의 수법이 발휘되면 비틀어 뿌리칠 수 있다.

섬전으로 시작된 운호의 검은, 이화접목을 주로 사용하는 창천으로 넘어가 끊임없이 연환되며 양무기의 검과 부딪쳤다.

적의 칼에 내력이 증가되는 순간 그에 맞춰 운호의 검 내력 역시 자연스럽게 증가되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이는 운호의 검에 적정의 원리가 확실하게 장착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끝없는 연환.

양무기는 뇌진도법의 절초들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압박했으나 창천의 초식들을 연환시키며 버티는 운호의 검을 꺾지 못했다.

특별한 강함은 없는데 빈틈이 전혀 없다.

꼭 솜에 대고 칼질을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절정고수.

무림이란 세계에서 절정의 반열에 든 고수들은 호적수를 만나기 극히 어렵다.

강호가 아무리 넓다 해도 절정고수를 만난다는 것은 가뭄에 콩 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혹시 만난다 해도 그들은 사소한 이유로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무림에서의 위치가 함부로 검을 뽑지 못하게 만들 뿐 아니라 싸움이 벌어지면 둘 중 하나는 죽게 되기 때문이다.

강호에 쌓아올린 명성은 그들에게 서로의 목숨을 원하도록 만든다.

그럼에도 그들은 언제나 꿈을 꾼다.

자신이 가진 실력을 마음껏 받아줄 수 있는 적이 불현듯 앞에 나타나기를.

물론 지면 죽음뿐이겠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꿈을 꾸며 강호를 살아간다.

 

운호도 양무기도 시간이 지날수록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몸에 지닌 모든 것을 뽑아내어 적에게 쏟아붓는 그들의 몸에서 살기가 사라져 버린 건 오십 초가 넘는 순간부터였다.

유희(遊戱).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가 지닌 비기들을 주고받으며 황홀감에 전신을 떨었다.

즐거웠다.

무인으로서 이런 검을, 이런 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을 잊었고 초식을 잊었다.

나를 잊었으니 앞에 선 것은 적이 아니라 오직 칼뿐이었다.

그렇게 백여 초를 더 교환한 그들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뒤로 물러섰다.

시간으로 따지면 반 시진이 넘는 격돌이었는데, 공터 주변은 원래의 형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죽이기 위한 대결이 아니라 비기를 겨루는 수준이었음에도 그들의 무력은 오 장을 초토화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땀에 젖은 양무기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주 좋구나. 도대체 너는 누구냐?”

“풍운대의 운호.”

“점창에 너 같은 자가 있다니 진정 믿겨지지 않는구나.”

“점창에는 나보다 강한 사람이 부지기수야.”

“웃기는 소리!”

“내 말이 거짓으로 들리는 모양이구나. 그러면서 운남은 왜 왔어? 죽을려고.”

“조금 띄워주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만.”

“하늘 높은 걸 왜 모르겠나. 내가 진짜 모르겠는 건 니들이 왜 점창을 건드렸냐는 거다.”

“그거야 먹고살자는 거 아니겠어?”

“그게 다냐?”

“한 가지 더 든다면 점창이 만만해서겠지. 그런데 점점 재밌어져. 너무 약해서 상대도 안 될 거라 생각했는데 제법 하는 놈이 많아서 내가 참 즐겁다.”

“실컷 즐겨. 지옥에 가면 그러지도 못할 테니.”

“오랜만에 정말 마음껏 몸을 풀었다. 하지만 이제 밤도 늦었으니 가서 쉬어야겠어. 경고하는데, 지금까지와는 다를 거다.”

“너도 그러냐? 나도 그렇다. 오늘 쥐새끼들 피해 다니느라 몹시 피곤하거든. 나도 얼른 끝내고 쉬고 싶어.”

양무기는 천천히 자신의 칼을 횡격세로 만들었다.

기세가 변하며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의 몸에서, 그리고 그의 칼에서.

지금까지와는 완벽하게 다른 기세고 기도다.

 

운호는 천천히 검을 끌어 올려 내력을 주입했다.

적의 칼에서 쏟아져 나오는 살기는 몸이 따끔거릴 정도로 날카로워 그대로 받아내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기세는 기세로.

절정고수들의 대결이 한쪽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기가 새어 나오는 순간 둘 중 하나는 죽는다.

전력을 다해 적을 꺾는다는 건 여지와 사정을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르릉!

양무기의 칼에서 은은하게 천둥소리가 새어 나오며 도기가 찬연하게 피어올랐다.

단숨에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가 그의 칼에 고스란히 담겨 운호를 노리고 있다.

강적.

지금까지 상대한 그 누구보다 강력한 무력이 적의 칼에 담겨 있다.

적정의 원리가 몸에 장착된 후 가장 커다란 경고가 울렸기 때문에 운호는 서슴없이 분광을 꺼내 들었다.

검기가 산란되며 양무기의 전신을 한꺼번에 모두 겨냥했다.

기세의 압박을 받은 것은 운호만이 아닌 모양인지 양무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한순간.

그의 신형이 좌에서 우로 갈지자로 움직이며 접근해 오다 공중으로 도약했다.

달에 비친 양무기의 신형은 그림자로 착각할 만큼 어두웠으나 그의 칼은 천둥소리와 함께 붉은색 뇌전으로 변해 떨어져 내렸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일격.

뒤에 서 있던 운상의 입에서 놀람으로 인한 경호성이 터지는 걸 들으며 운호가 검을 곧추세웠다.

적이 아무리 강해도 지지 않는다.

운호는 유운신법을 펼쳐 급히 좌측으로 벗어나며 삼검을 날렸다.

전력을 다한 적의 공격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정면으로 맞받아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피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부딪쳐야 되겠지만 뒤쪽에 대기하고 있는 구룡단을 고려한다면 가급적 상처를 입으면 안 된다.

검기가 부챗살처럼 퍼져 나가 급히 회전하는 양무기의 칼과 충돌했다.

쾅! 쾅! 쾅!

검기와 도기가 부딪치자 작은 폭발음이 연속으로 생겨났다.

공격이 실패하자 급히 일 장이나 뒤로 후퇴한 양무기의 칼이 운호의 미간을 노리며 섰다.

물러서면서도 칼끝이 운호에게서 벗어나지 않는 건 반격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운호가 후퇴하는 양무기를 따라붙지 않은 것은 계속되는 전투를 통해 허와 실의 묘리를 배웠기 때문이다.

우세가 비세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걸 알고 난 후부터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상처가 터졌는지 다시 피가 흐르고 있다.

처음에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으나 지금은 옷을 적실 만큼 새어 나와 끈적끈적함이 느껴졌다.

승부를 봐야 할 때였다.

 

운호는 양무기가 다시 접근해 오는 것을 보면서 마주 달려 나갔다.

양무기의 입술은 굳게 닫혀 있고 옷은 터질 듯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전력을 다하는 모습.

그의 귀두도(鬼頭刀)가 천둥소리와 함께 온통 핏빛 적색 도기를 뿜어내어 빈 공간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사면이 막혔으니 방법은 하나, 오직 돌파뿐이다. 운호는 분연히 분광을 꺼내어 벼락처럼 떨어지는 칼을 향해 진격했다.

찌익, 쫘악!

검기의 물결이 비단을 찢어내는 소리를 내며 벼락과 충돌했다.

무수한 빛의 잔영.

충돌로 생긴 섬광이 끊임없이 터져 누가 누군지 분간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굉렬한 전투.

뒤에서 관전하는 운상도, 맞은편에서 보고 있는 구룡단도 입을 쩍 벌린 채 꼼짝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영원 같은 삼십 초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처음과는 다르게 그들의 격돌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한 치의 빈틈만 보여도 사지를 절단해 버리겠다는 살기가 그들의 병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양무기의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져 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운호의 검이 칼끝을 제치고 들어와 상처를 내기 시작하더니 삼십 초가 지난 지금은 제법 커다란 상처를 냈기 때문이다.

물론 놈도 온몸이 피로 물들고 있다.

자신의 칼 역시 놈의 검을 뿌리치고 전신을 긁었기 때문에 꽤 많은 상처를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자신이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명확했다.

놈이 두 번이면 자신은 세 번 당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상처가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진행되면 진다.

그랬기에 그는 칠도를 연환시킨 후 급히 뒤로 물러나 신형을 세웠다.

거칠어진 숨소리.

아무리 절정에 달한 고수라도 막강한 적과의 싸움은 체력을 소모시키는 법이다.

“정말 대단한 놈이다.”

“이제 알았어?”

“움직일 때는 몰랐는데 서니까 아프네. 이거 정말 오랜만에 피를 보는구먼.”

“이제 끝장을 내자. 자러 가야 돼서 말이야. 내 친구가 무척 피곤하단다.”

“크크크, 좋아. 아주 좋아.”

양무기는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칼을 쳐다봤다.

아직 그에게는 뇌진검법의 최후 초식인 금마사풍(金馬社風)이 남아 있었다.

끝을 본다고?

단순한 놈.

놈은 아직 강호의 무서움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자신에게는 비장의 한 수가 남았으니 한 번의 공격은 더 할 생각이다.

이기든 지든 그걸로 놈과의 승부는 끝을 낸다.

여기엔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덟이나 되는 사제가 있다.

강호에서 이긴 자는 살아남는 자뿐이다.

그것이 강호의 법칙이니 비겁하다며 혀를 찰 일은 아니다.

이제 곧 너희는 여기서 무조건 죽는다.

 

운호는 양무기가 웃음을 멈추고 칼끝으로 심장을 겨냥하자 검을 놈의 미간으로 향했다.

어쩐지 기분 나쁜 웃음이다.

기세로 보아 숨겨놓은 마지막 비기를 꺼내려는 것이 분명했기에 운호는 내력을 전신으로 퍼뜨리며 검병을 다시 움켜쥐었다.

선공을 허락하면 안 된다.

여기서 놈을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후속되는 싸움이 커다란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운호는 지체 없이 양무기를 향해 검기를 회전시켰다.

회풍(回風).

검기가 회전하며 양무기의 전신을 타고 넘었다.

그러나 양무기도 준비하고 있었는지 기다렸다는 듯 십삼도를 펼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무시무시한 뇌전이 무질서하게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고도 운호는 공격을 멈추지 않고 돌진했다.

콰앙!

엄청난 충돌.

충돌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신형이 붙었다 떨어져 나간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충돌의 결과는 참혹했다.

운호는 비틀거리며 세 걸음을 뒤로 물러섰다.

가슴에는 횡으로 길게 도상을 입어 살이 쩍 벌어진 채 피가 계속해서 새어 나왔다.

커다란 부상이다.

그러나 양무기의 상태는 훨씬 더 심했다.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왼팔이 덜렁거리고 옆구리와 다리 쪽에도 뼈가 보일 정도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신음 소리는 마치 짐승이 흘리는 것과 비슷했다.

“이런 개 같은 놈!”

신음을 끝으로 운호를 향해 양무기의 고함이 터졌다.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는지 그는 분노로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워낙 커다란 상처였기에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구룡단이 신형을 날려 다가왔으나 양무기의 시선은 운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반드시 널 죽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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