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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37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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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37화

당호의 손이 들리자 천뢰삼십이수의 신형이 팔방을 점유하며 풍운대를 향해 다가왔다.

풍운대가 움직인 것도 그와 비슷했다.

천뢰삼십이수의 이대절기 중 하나인 연환십이참은 당문이 자랑하는 폭우이화정(暴雨梨花釘)을 이용한 암기술로, 거리가 일 장만 확보되어도 시전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절기 중의 절기다.

더군다나 합격을 할 경우 그 위력이 몇 배로 증가하기 때문에 포위되는 순간 벗어날 길이 없게 만드는 공포의 암기술이 바로 연환십이참이었다.

그랬기에 운곡을 비롯한 풍운대는 천뢰삼십이수가 움직이자 즉시 그들 사이로 파고들며 혼전을 유도했다.

포위를 당해서도 안 되고 거리를 벌려서도 안 된다.

한 명당 다섯.

단순한 숫자로 계산해도 일 대 오의 싸움이다.

더군다나 천뢰삼십이수가 꺼내 든 금룡편은 거의 반 장에 가까운 길이를 가졌기 때문에 풍운대의 의도와는 다르게 거리가 자꾸 벌어졌다.

금룡편은 손으로 쥐는 부분과 쇠사슬로 연결된 금속 봉으로 이루어져 있고, 끝부분은 표창이 달려 있어 찌르는 역할도 할 수 있는 기형 병기다.

길이가 반 장에 달해서 장단 거리 공격이 모두 유효한데 공수의 기본이 되는 칠식(요, 자, 소, 대, 벽, 추, 절)의 활용이 모두 가능했다.

포위망을 피하고자 하던 풍운대의 의도를 천뢰수는 교묘하게 흘리며 다섯이 하나를 포위하는 진형으로 만들었다.

얼마나 수련하고 단련했으면 이리 자연스러울까.

그들의 움직임은 풍운대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즉각적이고도 쾌속했다.

 

운검은 자신을 둘러싼 여섯 명의 천뢰수를 향해 선공을 가했다.

비록 포위는 당했지만 연환십이참(連環十二斬)의 공격에서는 자유스러울 수 있었으니 어느 정도 의도는 성공했다고 봐야 했다.

한꺼번에 포위를 당한 것과 이렇게 소규모로 갈라져 포위당한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런 진형에서는 공격하는 자와 당하는 자의 구분이 모호해 연환십이참을 사용하는 것이 극도로 어렵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금룡편을 꺼내 든 천뢰수의 기세가 날카롭게 전신을 압박해 왔다. 그대로 선 채 버티기가 힘들어 먼저 선공을 취했다.

선공의 묘리를 살리기보다는 기세의 압력에서 풀어내기 위해서이다.

섬전으로 전면에 선 셋을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후면에서 공격해 오는 자들의 금룡편을 월파로 마주했다.

파악!

한꺼번에 셋의 공격을 받아낸 운검의 신형이 휘청하며 두 발 물러섰다.

강하다.

운검의 내력이 아무리 정순하다 해도 절정에 근접한 천뢰수 셋을 한꺼번에 감당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다.

뒤로 물러섰던 운검의 검이 급격히 변하며 창천으로 바뀌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금방 경험한 것처럼 내력으로 맞서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니 사일의 현묘함으로 상대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낙영, 비화, 무영이 운검의 검에서 끝없이 연환되며 천뢰수의 공격을 제치고 뿌리쳤다.

천뢰수는 이인 합격으로 순차적인 공격을 했으나 창천의 연환을 파훼하지 못하자 금룡편을 회전시키며 방위를 바꾸었다.

윙, 윙!

금룡편이 울기 시작했다.

더불어 회전하던 금룡편의 표창에서 은은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편기의 발현.

지금까지의 공격은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듯 천뢰수는 편기를 꺼내 들며 운검을 향해 교차 합격진을 가동시켰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금룡편이 마치 창처럼 운검을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

칠식의 묘를 다 가졌다 해도 금룡편은 유를 기본으로 하는 병기였는데 천뢰수가 내력을 주입하자 금룡편은 방패가 되고 창이 되었다.

운검은 천뢰수가 편기를 꺼내 들자 즉시 검에 내력을 가중시켰다.

그동안 여러 차례 격전을 치렀고 앞으로도 얼마만큼 힘든 싸움을 할지 알 수 없기에 최대한 내력을 아끼려 했으나 편기까지 발현되었으니 검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일 대 다수의 싸움은 언제나 힘든 법이다.

월등한 무력을 지니지 않으면 점점 몰리다가 목숨을 잃게 된다.

일수일퇴의 공방전이 아니라 수세 위주의 싸움.

그러면서 조금씩 얻게 되는 상처, 그리고 피.

운검의 몸에서 금룡편에 스친 상처들이 벌어지며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당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내력이 담긴 천고의 병기 금룡편의 예기는 스쳐 지나며 운검의 전신에 상처를 남겼다.

자신의 몸에서 흐르는 피를 보자 운검의 이가 저절로 악물려졌다.

가급적 죽이지 말라는 운곡 사형의 전음을 들었다.

천뢰삼십이수는 당문의 주력 부대 중 하나이니 이들을 죽인다는 건 당문과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딜 생각이었다. 두세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선뜻 검이 나가지 못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강해지는 적의 공격을 태산과 창천만 가지고 받아들이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더군다나 원형으로 돌던 천뢰수의 금룡편이 사선을 가로지르며 귀곡성을 흘려내기 시작했다.

초식의 변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적들의 눈에서, 그리고 금룡편이 뿜어내는 살기에서 지금 펼치려는 초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에 운검은 결국 분광을 꺼냈다.

때를 맞추어 기회를 노리던 천뢰수의 신형이 공중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운검을 향해 일거에 금룡편을 내리꽂았다.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오색영롱한 편기가 운검의 몸을 뒤덮으며 사방에서 귀신 울음소리가 울려 나왔다.

바로 금룡편법의 마지막 초식 유성망이었다.

천뢰수를 사천에서 강자 중의 강자로 만들어낸 비기.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천뢰수의 자존심이었다.

연환십이참을 꺼내지 않고 금룡편을 꺼낸 이유는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유성망이 천뢰수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렸다.

연환십이참까지 동원되었다면 이 싸움은 훨씬 흉험하게 전개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천뢰수가 펼친 유성망은, 팔방을 점유하며 강력한 산파를 만들어낸 분광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며 깨져 나갔다.

유성의 그물이 조각조각 잘려진 것은 불과 이십 초가 지나지 않아서였다.

사지가 잘리진 않았으나 여섯의 천뢰수는 바닥에 누워 애끓는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눈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충격으로 인해 찢어질 듯 커져 있었다.

 

천뢰삼십이수의 수장 당호는 손을 들어 공격 명령을 내린 후 풍운대를 보며 풀썩 웃었다.

‘새끼들, 어디서 얻어 들은 건 있어 가지고.’

하기야 그대로 포위당한 채 연환십이참의 공격을 당했다면 고슴도치가 되어 검조차 휘둘러 보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무인으로 자라오면서 점창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칠절문 따위에게 수모를 당하는 문파에 대해 가문의 어른들은 그저 쓴웃음만 지은 채 상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점창에 대한 소문은 사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어 지식은 대충 가지고 있었다.

일문의 장로라는 자가 칠절문의 일개 대주와 비슷한 실력을 지닌 무인에게 패했다는 소릴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칠절문 대주 수준의 무인은 당문에 쌔고 쌨다.

대충 꼽는다 하더라도 팔십은 훌쩍 넘고, 절정을 뛰어넘은 고수도 서른은 가볍게 넘는다.

재밌는 사실.

얼마나 하찮은 문파길래 장로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단 말인가.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웃음이 났지만 한편으론 동정심이 들기도 했다.

문파의 몰락은 의외로 쉽게 나타나는 모양이다.

점창이 복수를 한답시고 산에서 내려왔다는 소리를 들은 것은 이틀 전의 일이다.

먼저 검을 뽑았단다.

쥐도 막다른 길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대든다고 들었는데 꼭 그와 같은 상황이라 생각했다.

무인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결정을 한 자들이 과연 누구인지 알아보고 싶을 정도로 점창의 행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기 멀대 같은 놈이 자신들을 풍운대라고 불렀던가.

이름은 좋다. 풍운대.

하지만 그것뿐, 자신의 눈에는 하룻강아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접근하면서 포위망을 구축하지 않은 것도, 연환십이참을 포기하고 금룡편법으로 상대한 것도 무조건 이긴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놈들이 격파했다는 칠전문 세 개 지부와, 용화까지 도주하면서 상대한 당문의 전위부대는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그랬기에 당호는 다섯씩 짝을 진 천뢰수가 풍운대를 갈라놓은 채 공격하는 것을 여유 있게 지켜봤다.

금룡편에 의해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풍운대의 모습은 사냥에 걸린 짐승처럼 보였다.

당장 육신이 잘려 죽는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의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전황이 바뀐 것은,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외원당주 당추에게 보고할 내용들을 정리했을 때다.

늘 있는 일이지만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한 그에게 숙부이신 당추는 기분 좋은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콰앙!

동시다발적인 빛 무리의 향연.

일방적으로 몰리던 풍운대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폭발적인 검기를 뿜어내며 진격하는 것이 보였다.

일방적인 검기가 아니라 빛의 산란, 즉 검기의 물결이 전장을 온통 휩쓸고 있었다.

자신을 뺀 서른하나의 천뢰수가 모두 바닥에 쓰러진 채 고통에 겨운 신음을 지른 것은 불과 일각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믿기지가 않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이봐, 당호.”

“으…….”

운곡이 넋 나간 얼굴로 서 있는 당호를 부르자 그의 입에서 비명과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당호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운곡은 빤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몇몇은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서둘러야 될 거다.”

“죽어? 죽는다고?”

“정신 차려! 애들 죽이지 말고.”

“지금까지 실력을 숨겼단 말이지?”

“일부러 숨겼겠나. 꺼낼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운곡!”

“말하라.”

“너는 내가 그냥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겠다는 거냐?”

“너라면 그냥 가겠나?”

“사제들이 저런 꼴이라면 나는 무조건 그냥 간다.”

“흐, 그것도 맞는 말이군. 하지만… 난 그냥 못 간다.”

“왜지?”

“너희를 우습게본 나로 인해, 멍청한 수장을 둔 탓에 내 수하들은 진짜 실력조차 꺼내보지 못했다. 운곡, 수하들을 살려줘서 고맙지만 천뢰수의 명예를 위해 나는 너에게 연환십이참을 써야겠다. 받아줄 테냐?”

“무서운 암기라고 들었지. 하지만 받아주마. 너희가 왜 졌는지 똑똑히 가르쳐 주겠다. 운검!”

“예, 사형.”

“사제들과 뒤로 물러나라!”

좌우로 도열되어 있던 사제들이 대사형인 운곡의 말에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풍운대는 대부분 전신에 상처를 입고 있었는데 피가 새어 나와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뒤로 물러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혈인을 보는 것 같아 운곡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덤벼라, 당호. 너만 가슴 아픈 게 아니다!’

 

당호는 천천히 걸어 천뢰수가 쓰러져 있는 범위를 벗어나 운곡을 기다렸다.

폭우이화정은 만년한철을 오랫동안 담금질해서 만든 작은 송곳이라고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문제는 당문 비전으로 중간에 방향을 제어하는 홈과 문양을 새겨 넣었고, 삼양귀원공(三陽歸元功)의 내력을 사용해서 연환십이참을 가동시킨다는 데 있다.

천고의 절학 연환십이참.

열두 번의 초식.

검이나 도처럼 암기술도 초식이 있다. 연환십이참은 열두 개의 초식이 있었고, 당호는 그중 다섯을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연환십이참의 마지막 초식은 지금도 무림에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만천화우(滿天花雨)였다.

열하나의 초식을 한꺼번에 연환함으로써 온 세상을 비와 꽃으로 덮어버린다는 만천화우는 당문의 역사상 단 셋만이 터득했다고 알려져 있다.

현 당가주인 당청이 아홉 초식을 연환할 수 있다고 하니 당호의 연환십이참은 당가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엄청난 빗방울이 한꺼번에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폭우이화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암기가 당호의 품에서 천천히 꺼내졌다.

아니다. 왼손은 품이었는데 오른손은 허리춤에서 나왔다.

전혀 보이지 않던 폭우이화정은 당호의 손에 들리자 보검의 칼날처럼 번뜩이며 살기를 뿜어냈다.

당호는 주저하지 않았다.

상처를 입고 신음을 흘리는 수하들의 존재가 그를 서두르도록 만들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승부로 끝장을 본다.

폭우이화정을 쥔 왼손이 아래에서 위로 향하며 운곡을 향해 뻗어 나갔고, 뒤이어 좌로 세 발자국 이동시킨 오른손이 사선으로 튕겨졌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몸짓.

사람의 몸이 얼마나 유연하게 바뀔 수 있는지 보여주기라도 하듯 당호는 온몸을 기묘하게 꺾으며 연달아 폭우이화정을 날렸다.

똑같은 방향이 없었고, 일직선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좌우, 그리고 공중과 후면이 온통 폭우이화정으로 덮였다. 그야말로 천지사방에서 쇄도해 들어와 운곡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숫자.

사람의 고막을 격렬하게 자극하는 소음, 그리고 시퍼런 빛으로 변한 흉기의 비상.

절체절명의 위기.

운곡의 몸이 회전하며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폭우이화정이 그의 몸에 무서운 속도로 틀어박히기 시작할 때였다.

윙, 윙, 윙!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라 회전하는 검기의 바람이었다.

바람은 검이 가는 대로 따르며 회전을 일으켰다.

찌르고 베어도 회전했고, 진격하거나 후퇴할 때도 여지없이 폭우이화정과 부딪쳤다.

무적의 검초 회풍(回風).

세상에 처음으로 나온 무적의 검초 회풍이 폭우이화정을 먼지로 만들며 허공으로 날려 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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