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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36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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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36화

항상 여유 있던 당문가주 당청의 얼굴은 잔뜩 굳어져 마치 석고상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의 앞에는 내원당주 당황이 있었는데 그의 얼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놈들의 위치는 어딘가?”

“용화를 지나고 있습니다.”

“피해는?”

“미추지부 애들을 빼고도 포위 공격을 하면서 열일곱이 더 죽었습니다. 사천의 칠절문지부를 휩쓸었다고 하더니 놈들의 무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애들은 어디 있나?”

“용화에서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으, 천수 이놈을!”

당청의 이가 부드득 갈렸다.

불을 보듯 빤한 술수에 당문의 전위부대가 고스란히 걸려들었다.

뒤늦게 알고 수습하려 했으나 너무 일이 크게 벌어져 수습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앞뒤 재보지 않고 풍운대를 공격한 신풍단주 당추의 멍청함에 새삼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불같이 화를 냈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당청은 냉정을 되찾으려 무진 애를 썼다.

지금도 사천 전역에서 점창 무인들의 당문 공격 소식이 들불처럼 퍼져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사실과 다른 소문이.

당문이 점창 무인들의 공격을 받아 제대로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떼로 죽어 나자빠졌다는 소문이 확대, 재생산되어서 퍼지고 있었다.

막으려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막지 못했다.

누군가 고의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퍼뜨리는 게 확실했지만 정체를 끝내 알아낼 수 없었다.

물론 짐작도 갔고 확신도 있지만 증거가 없으니 몇 번이고 찻잔만 집어 던질 뿐이었다.

“천수 그놈의 계략에 보기 좋게 당했네. 어쩌면 좋겠어?”

“이미 사천뿐만 아니라 가까운 귀주와 감숙까지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나갔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전 무림이 점창의 위세에 당문이 고개를 숙였다는 소리를 하게 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가주님, 현재 상황이 그쪽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판단해야 됩니다. 억울하지만 미끼를 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자네 말은 죽이자는 건가?”

“다른 방법이 있다면 따르겠습니다.”

당황이 고개를 숙이자 당가주 당청의 얼굴에 깊은 골이 생겨났다.

점창과 은밀히 접촉해서 해결하는 방법은 세상에 소문이 퍼진 이상 물 건너간 지 오래이다.

천수는 교묘하게 당문의 자존심을 족쇄로 걸어놓았다.

족쇄를 풀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생각해 봤으나 마땅한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방법은 오직 하나.

당문 영역으로 들어온 자들을 죽이고 세상에 공표하는 수밖에 없었다.

“음, 놈들을 죽이면 점창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당문의 명예가 달린 일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나 우리 영역에 들어온 놈들은 무조건 죽여야 합니다. 그래서 전 무림에 본보기를 보여야 소문이 수그러들 겁니다.”

“그렇겠지.”

당청의 손가락이 다탁 위로 움직였다.

탁, 탁!

그의 손은 멈추지 않고 한동안 듣기 거북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검지를 주기적으로 두들기며 생각에 잠겨 있던 당청의 손가락이 멈춘 것은 당황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얼굴은 어느 샌가 예전의 그 여유 있는 표정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할 수 없군. 죽이는 걸로 하지. 대신 확실하게 끝장내도록 해!”

 

장원을 에워싼 채 다짜고짜 공격해 들어오는 당문 신풍단의 공격은 치밀하고도 강력했다.

뇌전의 위력은 정말 대단해서 방어진을 형성한 채 전력으로 비화를 펼친 후에야 막아낼 수 있었다.

뇌전에는 한 번의 발사에 오십 개의 강침이 들어 있었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위력 또한 대단해서 일류고수들조차 제대로 방어가 어려울 정도였다.

당문의 무서움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반격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의 암기 체계를 지녔으니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롭고 난해해 전력을 다하고 나서야 방어가 가능했다.

하지만 공격만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변명을 할 새도 없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운곡은 사제들을 이끌고 번개처럼 빠르게 장원을 둘러싼 신풍단의 포위망을 뚫었다.

검에는 눈이 없다고 한다.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본능이 작동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용화까지 후퇴하면서 꽤나 많은 수의 당문 무인을 죽이고 말았다.

그들이 신풍단을 마주친 미추에서 용화까지의 거리는 삼십 리가 넘는다.

당문의 추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망산으로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구룡단과 무풍팔사가 마룡단과 함께 그들을 따라오면서 산으로의 진입을 저지했기에 운곡은 풍운대를 이끌고 용화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칠절문은 철저히 풍운대를 고립시키는 작전을 펴고 있었다.

뻔히 보이는 의도.

풍운대를 당문과 충돌시켜 사천에서의 싸움을 혼전으로 이끌려는 전략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당문의 태도였다.

당문 정도라면 칠절문의 의도가 뭔지 충분히 알았을 테고, 미추지부의 일도 점창이 한 짓이 아님을 짐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추격을 강화하며 집요하게 공격해 오고 있었다.

벌써 여섯 번의 충돌로 입고 있는 흑의는 피가 묻어 번들거리고 여기저기 찢겨져 보기 흉하게 벌어졌다.

“사형, 당문 영역을 벗어나려면 삼십 리를 더 가야 합니다. 어쩌시겠습니까?”

“망산을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둘째 사형, 망산으로 가면 안 됩니다. 앞뒤로 협공을 받게 되면 그야말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운검이 결정하자는 얼굴로 운곡을 쳐다보자 대신 운몽이 나서며 말렸다.

그는 왼쪽 팔이 길게 찢겨져 있었는데 상처를 입었는지 옷을 찢어 동여맨 상태였다.

“그래서 초현으로 가자고?”

“어쩔 수 없습니다.”

“운몽, 지금까지는 당문의 주력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당문의 주력이 나서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위험해질 거야. 차라리 망산을 지키는 놈들을 뚫는 게 쉬울 수도 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초현까지 가지 않아도 될지 모릅니다.”

“무슨 말이냐?”

“청문 사숙이 학경에서 감락으로 이동 중이란 걸 잊으셨습니까. 하루가 지났으니 아마 청문 사숙께서는 우리 소식을 들었을 겁니다.”

“청문 사숙이 우릴 구하러 온다는 뜻이냐?”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워낙 명석한 운몽이기에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만약 그의 말대로 이루어진다면 안전하게 몸을 빼낼 수 있을 테지만 당문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칠절문과의 전쟁이 끝나지 않은 마당에 당문과의 전면 충돌이라니.

새삼 답답한 심정이 되어 모두가 입을 닫았을 때 좌측 능선으로 삼십여 명의 백색무인이 마치 구름처럼 넘어왔다.

표홀(飄忽). 그들의 신법은 그야말로 미풍처럼 부드럽고 독수리처럼 빨라 순식간에 십 장 안으로 단축해 들어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백색으로 치장된 사내들.

운곡은 그들이 전면에 나타나 자신들을 막아오자 길고 긴 신음을 흘려냈다.

어쩐지 갑자기 추격해 오는 자들이 없다고 했다.

혹시 당문의 사정이 변한 게 아닌가 하는 기대도 했으나 나타난 사내들을 확인하자 당문의 의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천뢰삼십이수(天雷三十二手).

당문을 사천의 반석에 올려놓은 최정예 무인.

그들이 펼치는 금룡편법(金龍鞭法)과 연환십이참(連環十二斬)은 무림의 일절로 꼽힐 만큼 강력하다.

사천에서는 그들을 사신이라 불렀고, 실질적으로 그들과 부딪쳐 살아난 자는 없었다.

천뢰삼십이수를 보낸 것은 풍운대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당문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감락으로 이동하던 청문자의 부대는 천중산에서 멈추었다.

그동안 열두 차례의 기습으로 인해 점창 무인들은 제대로 잠조차 자지 못했지만 안광은 아직까지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그 열두 차례의 공격에서 칠절문은 오십여 명의 시신을 남겨두고 도주했다.

“천수 이놈!”

“사숙, 고정하십시오.”

운청으로부터 풍운대의 소식을 들은 청문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설상가상이라더니 꼭 이 짝이다.

운호를 찾기 위해 급히 남하를 시켰더니 풍운대 전체가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

더군다나 그것이 모두 칠절문의 모사꾼인 천수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이가 갈렸다.

“정말 대단한 자다. 지형과 이동 속도까지 감안한 모양이구나.”

“기다렸다는 듯 천지사방에 소문을 뿌리고 있습니다.”

운청이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말을 받았다.

풍운대의 소식은 연신 지급으로 날아들고 있는 중이었다.

전서구를 날릴 새도 없이 쫓기고 있었으나 워낙 들불처럼 소문이 퍼졌고, 신응들이 수시로 정보를 보내와 풍운대의 움직임은 실시간으로 보고되는 상태였다.

그래서 더욱 천수가 대단하다.

청문자는 새삼 천수의 귀계에 탄식을 터뜨리며 깊고 깊은 고민 속으로 빠져들었다.

감락에서 지금 풍운대가 쫓기는 것으로 추정되는 용화까지는 사십 리에 불과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거리.

아주 당문과 싸우라고 돗자리를 깔아놓은 것처럼 천수는 완벽한 계책을 선보이고 있었다. 명예를 먹고사는 가문이 당문이다. 이 정도의 소문이 퍼졌으니 당문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문뿐만 아니라 점창도 마찬가지였기에 청문자는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장고에 장고를 거듭했다.

청문자가 결심한 듯 다시 입을 열은 것은 운청이 긴장감을 풀기 위해 혀로 입술을 적실 때였다.

“운청!”

“예, 사숙.”

“진로를 용화로 바꾼다.”

“가실 생각이십니까?”

“풍운대는 점창의 목숨이다. 그 아이들은 반드시 구해내야 된다.”

“칠절문은 어쩌고요?”

“용화 일이 먼저다.”

“사숙, 지금 우리가 그쪽으로 빠지면 일대와 삼대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견디기를 바라야겠지. 사형들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백색무인 천뢰삼십이수는 십 장 앞에서 멈춘 채 움직이지 않고 오직 한 명이 풍운대를 향해 다가왔다.

“몰골이 말이 아니군. 도망치느라 고생이 많다.”

“그대는 누군가?”

“당호.”

“육혼(戮魂)?”

“들어본 모양이군.”

“물론. 꽤 유명하잖아.”

운곡은 사내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한참을 바라봤다.

육혼 당호.

당문의 미래라고 불리는 칠룡 중의 하나로 천뢰삼십이수를 이끄는 무인이다.

들리는 소문에는 그가 사천오흉을 칠십여 초 만에 격살했다고 전해진다.

사천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인간사냥꾼 사천오흉은 절정에 근접한 무력으로 삼 년 전부터 온갖 나쁜 짓을 하며 사천을 휘저어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 자들이다.

사천오흉을 처치한 그의 명성은 중천에 뜬 해처럼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는 운곡의 말과 시선을 받고도 풀썩 웃을 뿐이다.

“자네가 이들을 이끄는 모양이지. 이름이 뭔가?”

“운곡.”

“못 들어본 이름이네.”

“처음 나왔으니까.”

“초출이었군. 그런데 뭣 하러 여기까지 와서 지랄을 했어. 나오자마자 죽으면 더 아픈데?”

“쫓기느라 변명도 못했다. 물론 우리가 백날 얘기해 봤자 듣지도 않았을 테지만 말이야. 그래도 궁금한 건 물어봐야겠다. 전부 돌대가리만 있는 건 아닐 테고, 당문이 이러는 이유가 뭐냐?”

“웃기지?”

“웃긴다.”

“나도 웃겨. 하지만 말이야, 세상은 가끔 가다 웃긴 일도 해야 되는데 너희를 잡는 게 바로 그런 것 중에 하나다.”

“말을 빙빙 돌리는군. 버릇이냐?”

“버릇이라기보단 뭐랄까, 죄 없는 놈들을 죽이려니 조금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고 할까. 그래도 다행이야. 오면서 우리 식솔을 꽤 죽였다면서?”

“크큭, 넌 꽤 재밌는 자로구나.”

“애송이, 금방 끝날 거다. 아프지 않게 죽여줄 테니까 너무 겁내지 마라.”

“너희만 왔나?”

“내가 우리만 간다고 했다. 너희 정도 잡는데 같이 오면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서. 왜, 부족한 것 같아?”

“당호, 우릴 그냥 보내주는 건 어때?”

“보내주지. 대신 목은 내려놓고 가라.”

“여기서 끝을 봐야 된다는 뜻이구나.”

“물론.”

“쯧쯧, 그렇다면 뒤에 있는 놈들도 가까이 오라고 그래.”

“왜?”

“어차피 이리 된 거, 너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말해줘야겠다.”

“뭘?”

“우리가 누군지는 알아야 편히 죽을 거 아니냐?”

“크크큭, 정말 웃긴 놈이로고. 하긴 뭐 하는 놈들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 묻자. 너희 정체가 뭐냐?”

“풍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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