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15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15화
철마수는 벽사대원들을 일거에 무찌르고 뒤로 물러나는 청운자와 청면자를 코앞에서 확인했다. 그럼에도 즉각 추격하지 못했다.
충격으로 인해 찾아온 일시적인 마비. 그는 찢어질 듯 눈을 부릅뜨고 움직이지 못했다.
뭐지, 저건?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빛의 무리가 아직도 뇌리 속에 생생히 남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검이 빛이 되어 갈래갈래 나뉘었고, 나뉜 빛줄기들은 사천을 종횡하던 벽사대의 몸을 찢어발겨 순식간에 포위망을 격파해 버렸다.
방어망이 구축되었으나 빛을 막지 못했다. 변변한 반격조차 하지 못한 채 공격에 가담했던 벽사대의 태반이 나가떨어진 것은 단 삼 초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
기가 막혀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점창에서 자랑하는 사일검법에 저런 수법이 있다는 소린 들어본 적이 없다.
사일검법이 점창의 비기로 알려져 있으나 강호에 나타난 점창의 검은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주지 못했고, 두려움의 대상에서 멀어진 지 오래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검은 전신이 으스스하게 떨릴 만큼 강력해서 자신이 직접 봤음에도 믿지 못할 정도였다.
담장을 지키던 벽사대가 막으려 신형을 날렸으나 점창의 장로들은 여유 있게 검을 날려 날아온 칼을 격퇴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중이다.
추격하려면 추격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는 추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사라져 가는 점창 장로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천천히 손에 끼었던 마령수를 벗었다.
무겁게 나오는 한숨 소리.
왜 선룡단의 단주인 대형이 행동에 신중을 기하라고 신신당부했는지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갔다.
전통의 명문 점창.
우습게만 알았던 점창의 힘이 이 정도로 강하다는 건 운남 공략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앞날 또한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철마수가 한숨을 쉰 이유는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젯밤 본문의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암각에서 점창 무인들의 하산을 알려주며 가져온 또 하나의 소식은, 동마수와 은마수가 파령대와 귀곡대를 이끌고 급히 남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수뇌부의 조치에 게거품을 물며 화를 냈다.
자신을 보내놓고 연이어 병력을 파견하는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장이라도 문단으로 달려가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젯밤만 해도 자신과 벽사대 서른이면 점창의 주력이 나오기 전까지 무정현을 장악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점창 장로들의 무력을 확인한 지금은 추가 병력을 파견한 본문의 조치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적절한 것이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오늘 유유히 빠져나간 장로들과 점창삼검이 같이 들이닥쳤다면 자신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청운자와 청면자의 무력은 자신의 예상 범위를 월등하게 뛰어넘었다.
“어디 다녀오십니까?”
“왜, 내가 너한테 보고하고 다녀야 하냐?”
“그게 아니라, 한참 동안 안 돌아오시니까 걱정이 돼서 그렇죠.”
“클클클, 궁금해서 놈들 상판을 보고 오는 중이다.”
“두 분이서요?”
즐거움이 가득 찬 얼굴로 청운자가 대답하자 운청이 입을 떠억 벌렸다.
장로들을 빼고 가장 연장자인 운청은 눈앞에 있는 장로들의 철없는 행동을 알게 되자 화를 숨기지 못하고 대들듯 따지기 시작했다.
성격이 불같아 열풍검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음에도 존장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았으나 지금 같은 비상 상황에서 아무런 상의 없이 적의 소굴에 갔다 온 걸 자랑하는 청운자의 뻔뻔함은 참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사숙들께서는 어쩌자고 그런 일을 하셨습니까!”
“그냥 보러 갔던 것뿐이라고 했잖아!”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요. 어찌 그리 생각이 짧으십니까!”
“이놈이! 너 말 함부로 할래?”
“그렀잖아요. 제가 뭐 없는 말 했습니까!”
“끄응.”
“운남 공략을 목적으로 온 놈들입니다. 점창과 마주 앉아 웃으면서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려고 온 놈들이 아닙니다. 사숙께서는 장문인께서 신신당부하신 걸 벌써 잊으셨단 말입니다. 정말 해도 너무하십니다.”
“운청아, 네 말이 맞다.”
“사숙도 마찬가집니다!”
“험험, 나는 억지로 끌려갔을 뿐이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 마라.”
슬며시 끼어들었던 청면자가 헛기침을 하고는 딴청을 했다.
하는 말마다 옳은 소리이니 존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럴 때는 그저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인데 사형인 청운자가 자신을 쳐다보며 떠넘기려는 의도를 보이길래 즉각 반응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더욱 큰 역효과를 나타내고 말았다.
끙끙대는 청운자에게서 등을 돌린 청면자는 자신들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점창삼검과 이대제자들을 확인하고는 입을 주욱 내밀었다.
놈들의 얼굴에는 모두 ‘왜 그랬어요?’란 표정이 담겨 있어 마주 대하기 곤란했기에 연신 헛기침만 토해냈다.
그러나 청운자는 자신과 전혀 다른 소신과 배포로 무장한 막무가내 기질을 내보이며 반격을 가했는데, 실로 교묘하기 그지없었다.
“야, 이놈아, 너 산에서 내려오니까 아래위도 안 보여? 우리가 설마 거길 놀러 갔겠어. 엉? 놀러 갔겠냐고!”
“궁금해서 가셨다면서요.”
“그건 그냥 해본 소리지, 그걸 그대로 믿어?”
“그럼 왜 가신 겁니까?”
“놈들의 전력을 탐색하러 갔었다. 어느 정돈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거든. 밀어낼지 기다려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서 간 거다.”
“아무런 말도 없이 달랑 두 분이서 가셨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놈들의 전력만 확인하고 즉시 후퇴했다.”
“그래도 무척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놈 참. 시어머니와 다름없는 놈일세. 알았다. 그리하마.”
“그래, 놈들의 전력은 어땠습니까?”
“너희까지 갔다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벽사대가 전부였습니까?”
“춘경장에는 그놈들과 철마수만 있었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숙,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되겠습니다.”
“왜?”
자신의 말에 운학이 중간에서 끼어들자 청운자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운학은 성격이 지랄 맞은 운청과 달리 쾌활한 성격이면서도 신중하고 사리가 밝은 놈이라 아무런 이유 없이 반대할 리 없었다.
“사숙께서 지시하신 대로 주변을 탐색했고 점창 문하에게 연락해서 칠절문의 동태를 살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청향표국의 다정검께서 전서구를 보내왔는데 영인(永仁)에서 파령대가 급속 남하하는 걸 확인했다고 합니다.”
“영인에서 오후에?”
“그렇습니다. 사실 운청 사형께서 화를 내신 건 그 때문이었습니다. 사숙들께서 그들과 조우했다면 무척 어려운 지경에 빠졌을 겁니다.”
“파령대라면 동마수라는 놈이 이끌고 있지?”
“그렇습니다.”
“그놈들뿐일까?”
“지금 확인된 건 그자들뿐입니다.”
“어쩔래?”
청운자의 시선이 청면자를 향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전혀 장난기가 담겨 있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놈들의 눈치나 살피자고 여기 온 것이 아니었소. 파령대까지라면 내일 끝을 봅시다. 그 정도라면 가능할 것 같소. 시간이 지날수록 천하가 점창을 우습게볼 테니 서둘러야 하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청면자의 대답에 청운자가 결론을 내리듯 방바닥을 쳤다.
쉬운 싸움은 아닐 것이나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오늘 있었던 벽사대의 무력으로 봤을 때 파령대가 합쳐지면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으나 천하가 운남을 지켜보고 있으니 질질 끌 일은 아니었다.
방 안에 있던 삼검을 포함해 이대제자들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눈을 빛냈다.
점창을 목표로 운남에 들어온 칠절문.
그 선봉인 벽사대와 파령대.
그들을 격파하지 못한다면 천하는 점창을 우습게 여기며 동네북으로 만들지 몰랐다.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점창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까맣게 몰랐다.
벽사대와 파령대의 힘을 합친 것보다 더 강한 은마수의 귀곡대가 학경(鶴慶)을 넘어 무정현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점창의 장로들이 왔다 갔다고?”
“예, 형님.”
“왜 못 잡았느냐?”
“방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무력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했습니다.”
“쯧쯧쯧, 철마수가 변명을 다 하는구나.”
술병이 놓인 탁자에 느긋하게 앉은 은마수가 가볍게 혀를 찼다.
오십 중반의 노인.
은색 전포를 가지런히 차려입은 은마수는 육 척이 되지 않을 만큼 왜소해서 의자에 파묻힐 정도였으나 슬그머니 탁자에 놓인 술병을 잡자 팽팽한 긴장감이 유발되었다.
그의 말 한마디는 좌중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는데, 똑같은 음성이었음에도 말에 따라 분위기가 수시로 바뀌곤 했다.
분위기가 슬쩍 이상하게 바뀌자 좌측에 앉아 있던 흑색전포 노인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위압적인 외모.
얼굴을 사선으로 가로지른 검상이 그의 외모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상처 입은 장비를 연상시켰다. 눈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빛은 오싹하게 만드는 광기가 배어 있어 그가 얼마나 잔인한 성품의 소유잔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가 나선 것은 퉁퉁 부은 얼굴로 잔뜩 위축되어 있는 철마수를 두둔하기 위함이었다.
“넷째가 언제 변명하는 것 보셨소. 아무래도 그 늙은이들이 한 수가 있었나 보오. 넷째야, 상세하게 이야기를 해봐라. 어떻게 된 거냐?”
“그게…….”
동마수의 질문에 철마수의 입이 열리며 지금까지 벌어진 일에 대한 이야기가 조목조목 새어 나왔다.
집요한 성격대로 상황을 설명하는 말솜씨는 빈틈이 없어, 무정현에 들어온 후부터의 일이 하나도 빠짐없이 거론되었다.
특히 점창 장로들이 보여준 무력은 무인의 관점에서 세세하게 설명했는데, 마치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해 동마수와 은마수의 얼굴을 찌푸려지게 만들었다.
은마수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철마수의 설명이 마무리되었을 때다.
“검에서 빛이 흘렀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검기가 연속해서 나뉜 것처럼 보였습니다.”
“검기가 분산되었다는 말이냐?”
“소제가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음…….”
철마수가 소신을 굽히지 않고 대답하자 은마수의 입에서 침중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절정에 든 고수들이 검기를 생성시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검기를 분산시켰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검의 단계를 봤을 때 검기의 분산은 일종의 탄강이나 검파 단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점창의 장로들이 그 정도의 무력을 지녔을 리는 없으니 검력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검법의 묘리에서 발생했다는 뜻인데 점창의 비기인 사일검법에 그러한 초식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은마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한동안 말없이 눈을 오므린 채 생각에 잠겼던 은마수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철마수가 찜찜한 얼굴로 깍지를 끼며 상체를 뒤틀었을 때다.
“그렇다면 그들이 온 이유는 정찰 겸 벽사대의 무력을 측정하기 위해서였겠구나.”
“소제도 그리 생각합니다.”
“동마!”
“예, 형님.”
“오면서 천향표국과 조우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쯤 점창에서도 파령대가 온 것을 알겠구만.”
“일부러 노출시킨 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냥 깡그리 죽여 버릴 걸 그랬습니다.”
“흐흐, 미친 짓을 한 것은 철마로서 충분하다. 칠절문이 살인에 미친 집단이냐?”
동마수의 대답에 은마수가 입술 끝을 올리며 작은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그의 눈은 동마수와 철마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는데, 반쯤 감긴 눈에는 숭의문을 괴멸시킨 것에 대한 분노가 아직도 은은히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숭의문을 도륙한 철마수의 행동을 질책하며 주먹을 들었다.
그 주먹에 철마수는 열 번이 넘게 마당에 쓰러져야 했고, 얼굴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부상자들까지 죽여 버린 철마수의 행동을 은마수는 용서하지 않았다.
사천을 종횡하던 절정고수 철마수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얼굴이 퉁퉁 부을 정도로 얻어맞은 것은, 은마수가 그에게는 아버지와 다름없는 친형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은마수는 철마수에게 있어 목숨마저 내어줄 하늘같은 존재이기에 매타작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은마수라고 다 큰 동생을 때리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손을 댄 것은 칠절문의 기강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인명을 함부로 대하게 되면 민심이 이반되고, 칠절문은 사마외도로 분류되어 세상과 등지는 삶을 살아가게 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이 왜 그리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나 그는 철마수에게 주먹을 날려 수하들에게 자신의 뜻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랬기에 그는 동마수의 스쳐 지나가는 말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으르렁댔다.
자신의 뜻에 반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길 때면 언제나 이렇듯 목소리가 변한다.
은마수의 날카로운 눈빛이 천천히 거둬지며 화제가 바뀐 것은 동마수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고개를 숙인 후였다.
“점창 늙은이들의 무력이 그 정도라면 파령대가 온 것과 상관없이 공격해 올 것이다. 점창삼검이 같이 왔으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승부를 보려 할 게야.”
“열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인원으로 공격해 올까요?”
“그들은 분명히 온다. 우리가 운남에 들어온 사실 하나만으로도 시간은 그들 것이 아니다. 천하가 그들의 대응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점창의 명예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오면 죽을 텐데요.”
“크크크, 그래서 점창과의 싸움이 즐거운 거야. 명문이라는 놈들은 술수를 쓰지 않으니 상대하기가 무척 편하거든. 재밌는 싸움이 될 테니 슬슬 몸을 풀어놔라.”
바람처럼 표홀한 신법.
점창이 자랑하는 유운신법의 특징은 빠르면서도 구름이 흘러가는 것처럼 부드럽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열 명의 점창 무인이 춘경장의 전면에 위치한 능선에 내려앉은 것은 어둠이 몰려와 전각에 횃불이 켜진 술시 무렵이었다.
그들은 흑색 도복을 끈으로 묶어 움직이기 편하게 만들었는데 춘경장이 눈에 보이자 숨결이 조금씩 뜨거워지고 있었다.
“사형, 곧장 가오?”
“잠시만 지켜보고. 파령대가 왔다더니 어제보다 인원이 늘었군.”
“경계 서는 자들이 꽤 되는구려.”
“가급적 빠른 시간에 숫자를 줄여놔야 싸우기 편해진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알고 있소.”
청면자의 재촉에 청운자가 춘경장의 전각 쪽으로 시선을 주며 시간을 끌었다.
어차피 공격에 대한 계획은 모두 세워져 있기 때문에 그가 지시만 내리면 즉각적인 공격이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전각에는 열이 넘는 무인이 전각 곳곳에 위치해서 경계를 서고 있었는데 완전 무장한 상태였다.
불안한 기운.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전각 안에서도 투기의 숨결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다리는군.”
“그렇소.”
“하긴, 칠절문의 정예라고 불리는 놈들이니 오죽하겠나. 그렇지 않아도 점창이 기습했다는 소린 듣고 싶지 않았다.”
“생각보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놈들이구려.”
“운청아.”
“예, 사숙.”
“오늘 싸움은 점창의 힘을 천하에 보여주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싸움에서 점창의 명예가 지켜지기를 바란다. 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너희의 목숨이다.”
“사숙!”
청운자의 노안에 담긴 걱정이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에 운청의 입에서 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무슨 뜻인지 너무나 잘 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이기에 받아들이는 감정이 남달랐다.
사숙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도 옆에서 이를 지그시 악물고 있는 명자배 제자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제자 명각도 와 있었기에 그는 청운자의 시선을 똑바로 받아내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싸움에 비겁하라는 뜻이 아니라 목숨을 중히 하라는 뜻이다. 너희가 살아야 점창의 명예도 산다. 내 말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라.”
“저 또한 사숙과 같은 생각이옵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